[순정남] 호러를 버린 호러게임 TOP 5

※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호러게임이라는 말은 구조적 장르보다는 분위기를 표현하는 단어다. RPG건, FPS건, 액션이건, 플레이어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게임이라면 호러게임이라 불린다. 일반적으로 호러게임이라고 하면 무겁고 진중한 분위기와 긴장감 넘치는 연출 등이 보장되기에, 다른 게임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곤 한다.

그러나, 호러로 시작해 대성공을 거둔 게임 중 일부는 사도로 빠져버렸다. ‘호러는 애초부터 우리의 본래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시리즈를 길게 가져가고 싶은 회사 수뇌부의 압력에 의한 것인지는 몰라도, 호러를 버리고 액션이나 RPG 요소 등에 치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 ‘호러를 버린 자에게는 호러의 저주가 임한다’는 말이 어울리는 게임들을 뽑아 보았다.

TOP 5. 디아블로

디아블로는 초창기에만 해도 잔혹한 던전에서 무시무시한 악마들과 사투를 벌이는 호러게임이었다. 1편은 으스스한 BGM이 나오는 어두컴컴한 지하 던전 자체가 꽤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선사했고, 2편에서는 액션성이 훨씬 강화되긴 했지만 대신 잔혹한 면이 더욱 부각되며 호러의 명맥을 어느 정도 계승했다.

그러나 개발진이 싹 갈아엎어진 3편에서 디아블로는 완전히 호러의 끈을 놨다. 고딕풍이었던 캐릭터는 와우를 연상시키는 동글동글한 느낌으로 바꼈고, 배경은 산뜻해졌다. 액션 RPG로서 흥행 면에서는 성공했을 지 몰라도, 시리즈 특유의 색채를 잃어버렸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결국 블리자드는 4편에서는 앞서 1, 2편 당시 분위기를 재현하겠다고 선언했는데, 과연 그 시도가 성공적일지 매서운 눈으로 평가해 보도록 하자.

디아블로 1 시절, 그 분위기만으로도 무서웠던 때가 있었다 (사진출처: 블리자드 뉴스 공식 홈페이지)
▲ 디아블로 1 시절, 그 분위기만으로도 무서웠던 때가 있었다 (사진출처: 블리자드 뉴스 공식 홈페이지)

TOP 4.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

모름지기 엄청나게 무서운 호러게임도 몇 번에 걸쳐 반복하다 보면 그 공포가 많이 희석된다. 어디서 어떤 장면이 나오는지 빤히 보이는 데다가, 징그럽고 무서운 괴물이나 귀신도 자꾸 보면 익숙해져서 나중엔 정까지 들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반복 플레이는 호러게임의 가장 큰 적일지도 모르겠다. 멀티플레이 대전 위주 호러게임이 만들기 어려운 이유다.

이를 가장 명백히 증명하는 사례가 바로 데드 바이 데드라이트다. 분명 초반에는 무시무시한 살인마 한 명과 생존자들의 네 명의 가슴 졸이는 숨바꼭질과 추격전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공포는 희석되고 게이머들의 경험치가 무시무시하게 상승해, 이제는 네 명의 생존자가 연약한(?) 살인마 한 명을 놀려먹는 역 괴롭힘 게임이 되어버렸다. 이를 타파하려면 새로운 게임 모드를 지속적으로 출시해 새로운 공포를 선사해야 하건만, 서비스가 4년이 넘어갔음에도 캐릭터나 코스튬 추가에만 그치며 호러게임으로서의 명맥을 스스로 버리고 있다. 현재 데바데 스팀 페이지를 보면 ‘코미디’ 태그가 당당히 붙어 있을 정도다.

초창기만 해도 쫒는 살인마에 쫒기는 생존자 구도였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사진출처: 스팀)
▲ 초창기만 해도 쫒는 살인마에 쫒기는 생존자 구도였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사진출처: 스팀)

TOP 3. 바이오하자드

바이오하자드는 과거 좀비 호러게임의 대명사였다. 출구가 없는 곳에서 무시무시한 좀비들에 쫒기고, 그 와중 다양한 퍼즐 요소를 풀어가며 적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는 호러에 관심 없던 게이머들마저도 좀비 호러물 팬으로 만들 정도였다. 영화 역시 게임 IP를 원작으로 한 작품 중 유례 없는 성공을 거뒀는데, 그만큼 원작의 호러 콘셉트가 잘 먹혀들었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바이오하자드는 시리즈가 전개됨에 따라 호러보다는 액션에 치중하기 시작했고, 결국 4편 이후에는 호쾌하게 좀비나 괴물을 해치우는 액션 게임이 되어버렸다. 물론 그 와중에도 액션 면에서 호평을 받으며 새 팬들을 유입시키긴 했지만, 초창기 호러물을 기억하던 팬 입장에서는 아쉬울 따름이었다. 다행히 이러한 여론을 인식한 것인지 7편에서 다시 호러로 복귀했고, 2019년 발매된 바이오하자드 RE:2 에서는 완전히 초심을 되찾은 모습을 보였다. 돌아온 탕아는 ‘돈쭐’내며 용서해주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최근 RE:2에서 초심으로 돌아온 '돌아온 탕아' 바이오하자드 (사진출처: 스팀)
▲ 최근 RE:2에서 초심으로 돌아온 '돌아온 탕아' 바이오하자드 (사진출처: 스팀)

TOP 2. 데드 스페이스

SF 호러 서바이벌의 새 장을 연 데드 스페이스. 우리의 공돌이 아이작 클라크가 폐허가 된 우주선에서 괴생명체인 네크로모프들의 습격을 받아 가며 생존하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심장을 조여오는 공포 연출과 네크로모프의 기괴한 비주얼, 피와 살이 튀는 고어 장면 등이 조화를 이룬 명작으로 평가받았다.

사실, 데드 스페이스는 이런 호러적 요소 외 액션이나 게임 디자인 측면에서도 많은 호평을 받았다. 체력이나 총알 등 UI를 별도 표기가 아닌 게임 내에 자연스레 녹아들게 한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러자 데드 스페이스는 점차 호러 요소를 감소시키기 시작해 3편에 이르러서는 평범한 액션 TPS가 되어버렸다. 나중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는 EA 측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고 한다. 심지어 EA는 2017년 4편을 한창 개발 중이던 비서럴 게임즈를 해체시킴으로써 ‘돌아온 호러게임 탕아’가 될 기회마저도 빼앗아갔다.

불쌍한 아이작... 네크로모프로부터 자유로워지니 시리즈가 사라졌네 (사진출처: 스팀)
▲ 불쌍한 아이작... 네크로모프로부터 자유로워지니 시리즈가 사라졌네 (사진출처: 스팀)

TOP 1. F.E.A.R.

일반적으로 서양 호러게임들은 괴물이나 좀비, 유령, 살인마 등을 통해 깜짝 놀래키거나 징그러운 모습으로 공포감을 안겨주긴 하지만, 끈적끈적하고 찝찝하며 음산하고 소름끼치는 동양적 귀신의 무서움은 느끼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2005년 출시된 F.E.A.R.는 일본식 공포영화의 영향을 받아 동서양의 공포가 어우러진 새로운 형태의 호러게임으로 주목 받았다.

그러나 빛을 본 것은 1편 뿐. 2편부터 호러 연출이 전작보다 크게 떨어진다는 혹평을 많이 받았고, 3편에 이르러서는 흔하디 흔한 FPS가 되어버렸다. 스토리 역시 지나치게 단순해졌고, 전작에서 쌓아 온 설정과 캐릭터도 붕괴됐다. 이를 기반으로 국내에서 개발한 온라인게임 ‘피어 오리진 온라인’은 호러 껍데기마저도 제대로 못 씌운 양산형 게임이라는 평을 받으며 관짝에 못을 박았다. 그 때 무덤에 들어간 F.E.A.R. 시리즈는 지금도 아무 소식 없이 지하에 잠들어 있다.

호러를 버리면서 관짝에 못 박고 용접까지 해 버린 피어 시리즈 (사진출처: 스팀)
▲ 호러를 버리면서 관짝에 못 박고 용접까지 해 버린 피어 시리즈 (사진출처: 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