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2077] 사이버펑크 오락실은 낡고 더럽다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2020.12.11 18:46
안녕하세요, 성지순례 외전입니다. 그동안 저희는 국내 곳곳을 넘어 세계 각지의 오락실을 탐방해봤는데요, 이제는 그를 넘어 미래 오락실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바로 10일 출시된 타임머신, 사이버펑크 2077을 타고 말이죠.
다만, 이 세계에서는 1990년대부터 세계 경제가 붕괴되고 기업들이 전쟁을 벌이면서 게임시장이 거의 초토화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엔터테인먼트는 TV나 영화, 브레인댄스 등 영상매체에 집중돼 있습니다. 사실 브레인댄스라는 극한의 VR이 존재하는 순간부터 게임은 큰 의미가 없긴 하지만요. 그렇지만, 역시 고전적 방식의 게임 역시 수요가 어느 정도는 있습니다. 당연히 오락실도 있습니다. 저희가 안 찾아갈 리 없죠.
첫 번째 성지는 왓슨 지구에 있는 리틀 차이나입니다. 말 그대로 차이나타운인데요, 나이트 시티에서 가장 북적거리는 곳 중 하나죠. 이 곳에는 오래된 오락실이 하나 있는데요, 헌터들에게 유명한 '애프터라이프' 바 근처입니다.
이 곳이 오늘의 첫 번째 성지, 'BD SHACK' 입니다. 모름지기 BD라 함은 브레인 댄스의 약자인데, 이 곳은 아무리 봐도 BD랑은 연이 없는 곳이거든요? 왠지 뒤에 있는 '쉑'이 게임센터 손님을 뺏어간 BD에 대한 욕인가 싶습니다.
여느 오락실이 그렇듯, 이 곳에도 건물 바깥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기기를 한 대 설치해 놓았군요. 일단 저 기기부터 즐겨줘야 하겠...는데, 자세히 보니 이거 그냥 자판기네요? 펀치 게임이나 두더지잡기 한두 대 쯤 설치해 놓을 법도 한데, 생각해 보니 2077년 나이트 시티에는 손에 쇳덩이 박은 놈들이 득실거려서 그런 기기 놔두면 하루 만에 가루가 돼 있을 겁니다.
내부 전경입니다. 밤에 와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이렇게 휘황찬란한 네온느낌 조명을 켜 놓는 건지 몰라도 상당히 화려합니다. 전체적으로 ㄴ자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일단 오른쪽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벽을 따라 게임기 세 대가 붙어 있습니다. 왼쪽의 게임기 두 대는 '히소우 팬저'라는 기기박스에 들어 있긴 한데, 막상 내용물을 보면 영 딴판입니다. 하긴, 오래된 게임센터에서 기기 외관과 내용물이 다른 경우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죠. 왼쪽은 무슨 크롬 브라우저 미니게임으로 나오는 것 같은 말 점프 게임 '로치 레이스'고, 오른쪽은 라이덴 시리즈 초기작을 연상시키는 비행슈팅 게임입니다. 대충 봐도 엄청 옛날 게임 같네요. 오른쪽은 빠찡코 기기인데, 조금 후에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한쪽에는 왠지 모를 냉장고가 한 대 있는데요, 아마 게임 하는 사람들 사먹으라고 놔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냉장고 안에는 우유, 소다, 맥주, 그리고 왠지 모를 두부...가 들어 있는데요, 우유는 그렇다 쳐도 대체 왜 두부가 들어 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출소해서 오락실 온 사람들 먹으라고 넣어 놓은 걸까요? 참고로 돈을 내고 사먹는 것 같은데, 직원이 없어 꺼내먹지는 못했습니다.
한쪽 벽면에는 다트 게임~~이 있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그냥 네온사인 장식물이네요. 이런거 헷갈리게 걸어놓지 말라고! 뒤쪽에는 게임 포스터가 붙어있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면 이 역시 음료수나 영화 포스터입니다. 리듬게임 포스터 한두 개 정도는 걸어줘도 괜찮을 텐데 말이죠.
아마도 이 곳은 직원용 공간인 듯 합니다. 동전이 걸리거나, 음료수 등을 꺼내 마시거나, 기기 고장 등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겠죠? 어쩐 일인지 직원은 자리를 비웠습니다.
나이트 시티는 빈부격차가 아주 큰 지역으로, 빈민층은 거의 거지와 같은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이 오락실 직원은 무려 노트북을 그냥 펼쳐놓고 갔네요. 대충 보니 CCTV도 별로 없던데, 뭘 믿고 여기다 이런 걸 놔뒀나 싶습니다. 노트북 갖다 팔면 몇백 유로달러는 벌 수 있을 것 같지만, 저는 준법시민이므로 그런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음은 아까 안 가본 왼쪽 코너로 가보겟스니다. 여기도 일반 오락기와 빠찡코 기기가 벽을 따라 쭉 서 있네요. 기기 뒤쪽 공간이 시원시원하게 비워져 있어서 통행으로 인해 게임에 방해를 주거나 하는 일은 없을 듯 합니다.
이 곳에도 아까와 똑 같은 게임기들이 있군요. 모름지기 같은 게임들은 한 자리에 몰아 놓는 것이 좋은데, 여긴 따로따로 짝을 지어놨습니다. 참고로 왼쪽 '히소우 팬저'를 자세히 보면, 요기 시티라는 개발사에서 무려 2010년에 만든 게임임이 표시되고 있습니다. 무려 67년 전 초 고전게임이에요. 2020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1953년 게임인 셈인데, 세계 최초의 전자게임이라는 오실로스코프 용 '테니스 포 투'가 1958년 만들어졌으니 저희는 상상조차 불가능하군요.
이쪽에는 코너를 따라 게임기 세 대가 놓여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 배치가 마음에 안 드는데, 세 명이 동시에 플레이 할 경우 등이 서로 닿습니다. 안 그래도 인심 사나운 시대에 저런 배치라면 십중팔구 싸움으로 발전할 테니, 되도록이면 저 자리에선 게임 하지 마세요. 참고로 저 레이싱 게임은 3D도 아니고 무려 2D입니다.
빠칭코 게임기입니다. 아마 저 사이로 구슬들이 튀어다니다 점수를 올리면 돈이나 구슬이 쏟아져 나오는 방식이겠죠. 한국이라면 이런 방식의 아케이드 게임기는 불법이지만, 여기는 미국. 그것도 자유주인 나이트 시티 아닙니까! 전문 빠칭코 가게도 따로 있을 정도니 이 정도는 문제 없습니다.
매장 한쪽에는 이처럼 음식과 음료 자판기가 따로 마련돼 있습니다. 왼쪽은 얼핏 건전지처럼 보이지만, 나이트 시티에서 가장 유명한 인스턴트 음식 'XXL 부리또' 입니다. 주인공 V도 자주 애용하고, 주민들도 많이 먹죠. 다만 영양분석 결과 포화지방과 나트륨 등이 위험 수준으로 들어있다고 하니 적당히 드시길 바랍니다. 왼쪽에는 국민 음료인 '니콜라'가 있는데, 총 세 가지 맛을 판매합니다. 가격은 부리또 5유로달러, 니콜라 1유로달러 입니다.
실내에 뭔가 은은한 음악이 흐른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라디오를 켜 놓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마음대로 채널을 바꿀 수도, 끌 수도 있었는데요, 아마 직원이 오면 제재하겠죠?
게임기 뒤쪽에는 이렇게 대기하는 사람들 앉아서 음료나 음식을 즐기라고 의자도 마련돼 있습니다. 다만 저 의자... 대체 저기 놓인지 몇 년이나 됐는지 모를 정도로 흠집이 많네요. 바닥에는 매너 없는 손님들이 버리고 간 빈 캔과 박스 등이 나뒹굴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저 피 묻은 수건 같은 건 대체 뭘까요...? 아마 위에서 소개한 코너 게임기 즐기다가 싸움이라도 붙었을 듯 싶습니다.
첫 번째 성지순례를 마치고, 두 번째 성지순례 장소로 떠나 보겠습니다. 이 곳은 재팬타운. 일본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죠. 왜 자꾸 아시안 지역들만 가냐고요? 다른 데는 제대로 된 오락실이 없는 걸 어떡해요??
재팬타운에서 한참을 아래쪽으로 쭉 내려오면 더러운 강이 나오고, 그 주변에 빈민촌이 형성돼 있습니다. 컨테이너라고 부르기도 애매할 정도의 슬레이트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이 곳에 두 번째 성지가 있습니다. 간판도 제대로 없는 이 곳이죠. 일단 네온사인에 적힌 대로 '엑스하트엑스하트(X♡X♡)'라고 부르겠습니다.
얼핏 오락실 같지도 않아 보이는 이 곳이지만, 안으로 들어오면 이처럼 아늑한 공간이 펼쳐집니다. 지역 게이머들이 안에 모여 술 한 잔 기울이고 있는데, 아마 동네 사랑방 역할도 하는 듯 합니다. 재떨이를 보니 담배까지 피워도 되는 곳인가 보군요. 비흡연자 게이머 분들은 방문하실 때 주의 바랍니다.
이곳에 있는 게임기는 사실 이게 다입니다. 게임 4종은 위 'BD 쉑'에 있던 것과 똑같지만, 왠지 테트리스를 연상시키는 새로운 게임이 한 대 보입니다. 일단 게임기에는 런앤건 이라고 쓰여 있지만, 저게 정식 게임명칭은 절대 아닐 겁니다. 어떤 게임인지 좀 제대로 보려 했는데, 그다지 재미없어 보입니다.
한쪽에는 빈 사물함 같은 게 있습니다. 얼핏 보니 경품을 넣어 놓는 함처럼 보이는데요, 아마도 옛날엔 일정 스코어를 달성하면 이 곳에 있는 선물을 제공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지금은 운영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출구 쪽에도 비슷한 게임기들이 있는데, 독특한 점은 의자가 놓여있다는 겁니다. 앞서 방문한 'BD 쉑'은 시설은 조금 더 좋았지만 게임은 무조건 서서 해야 했는데, 이 곳은 앉아서 편히 게임을 즐길 수 있겠군요. 오른쪽 의자는 왠지 한국식 플라스틱 의자 같은데, 설마 두한이네 4딸라 버거샵에서 훔쳐온 건 아니겠죠...?
한쪽에는 편하게 앉아서 대기할 수 있도록 안락한 쇼파도 마련돼 있습니다. 약간 오래돼 보이긴 하지만, 딱히 앉는 데 불편하진 않을 겁니다. 왠지 모르게 테이블 위에는 머스터드 소스와 후추통, 박스 볶음면 등이 놓여 있는데요... 아마 외부에서 음식을 사 와서 먹는 것도 가능한 듯 합니다.
실제로 바깥으로 나가면 이처럼 맛있는 꼬치구이를 파는 노점 등이 산재해 있으니, 배 고프면 밖에 나가서 음료와 술, 먹거리를 사 와서 게임을 즐기며 편하게 놀면 됩니다. 별도의 콜키지 비용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2077년 나이트 시티의 오락실들을 탐방했습니다. 현실과는 달리 1990년대부터 수많은 전쟁을 겪고, 브레인 댄스 등 다른 방향으로 과학기술이 발전한 시대라 그런지 전통적인 느낌의 게임은 별로 주목받고 있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60년도 더 전에 만들어진 게임기들이 현역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가슴 한켠이 아려오네요. 부디 현실 세계에서는 게임산업이 계속 발전해서 60년 전 게임이나 즐겨야 하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이상, 나이트 시티에서 성지순례였습니다.
#성지순례에 빠지면 섭섭한 나이트 시티 맛집 소개는 아래 영상으로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