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보다 오기가 생기는 TPS, 청강대 졸업 작품 ‘여명’

▲ 여명 대기화면 (사진: 게임메카 촬영)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이하 AI)이 창조자인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서사는 문학,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지난 2016년 있었던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 이후 셀 수 없이 많이 쏟아졌다. 3인칭 액션 슈팅게임 ‘여명’도 이러한 AI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는데, 한국적 요소를 잘 녹여냈다는 점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여명은 지난 11일 스토브 인디에서 열린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게임콘텐츠 스쿨 졸업전시회 ‘청강크로니클 2020’ 출품작이다. 매력적인 캐릭터 일러스트와 3D 모델링, 보스 외형 디자인 및 공격 패턴 구성 등은 프로가 만든 게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전반적인 게임 완성도가 높다 보니 눈에 띄는 단점들도 학생들이 만든 게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으로 느껴졌다.

▲ 여명 공식 소개 영상 (영상출처: 청강 게임 공식 유튜브 채널)

첫 인상부터 호감, 뒷심 있는 마무리까지

여명의 주인공은 시간을 멈추거나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초능력 소녀 마야가 주인공이다.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마야 일러스트를 보면 여명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는데, 아담하고 귀여운 외모에 육중한 샷건을 든 반전 매력이 인상적이다. 또한 3D 모델링은 2D 일러스트의 매력을 120% 담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완성도가 높다.

마야를 초능력자로 만든 것은 AI다. AI는 자신들을 창조한 인간들을 정복하고 이 같은 상황을 영구히 유지하기 위해 각종 비도덕적 실험을 자행했는데, 마야의 시간을 다루는 초능력은 이 실험을 통해 발현됐다. 마야는 AI의 앞잡이로 길러졌지만, 이를 거부한 채 조력자 맥스와 함께 인류 구원을 위한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 여명의 주인공 마야 (사진출처: 스마일게이트 스토브)

▲ 3D 모델링도 매력적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인류를 구하기 위해 AI와 맞서는 마야 (사진: 게임메카 촬영)

배경이야기를 전달하는 내레이션과 전투 중 마야와 맥스가 나누는 대화까지 모든 대사가 한국어로 더빙되어 있다. 목소리 연기가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전문 성우가 아닌 학생들이 직접 녹음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완성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오히려 약간의 사투리 억양(예: 에이↗아이↘)이 묻어나는 마야 목소리는 친근감이 느껴져 매력을 더한다.

여명은 튜토리얼 포함 총 3개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겉보기에는 대략 15분 내에 엔딩까지 내달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슈팅게임 베테랑이 아닌 이상 최소 1시간, 최대 2~3시간은 투자해야 할 만큼 악랄한 난이도를 자랑한다. 레이저나 총을 쏘는 AI, 방패를 들고 근접 공격을 하는 AI, 그리고 비행하는 AI 등 다양한 적들이 끊임없이 몰려와 마야를 공격하는데, 2~3대 정도 맞으면 사망에 이르기에 게임 시작 전 손을 충분히 풀어두는 것을 권장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난이도가 높긴 해도 ‘이걸 어떻게 깨?’라는 생각보다는 ‘거기서 실수만 하지 않았으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 포기보다 오기가 생기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죽기를 반복하다 보면 점점 강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적의 공격을 타이밍에 맡게 피하고, 시간정지 필드 및 시간 되돌리기 스킬을 적절히 구사해 절체절명의 위기를 피하는 등 높은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 마야의 HP는 매우 적기 때문에 적의 공격을 맞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궁극기를 쓰는 마야. 전장의 적을 깔끔히 청소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시간 정지장이 없었다면 가루가 됐을 것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 중 압권은 단연 보스전이다. 보스 ‘블렌더’는 평범한 공격으로는 거의 닳지 않는 많은 양의 체력을 지니고 있는데다가, 다양한 공격 패턴을 무작위로 쏟아낸다. 블렌더를 제거하는 방법은 오직 약점을 노리는 것 밖에 없는데, 이 약점을 공략함에 있어 손맛과 머리 쓰는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마야의 스태미나, 스킬 쿨타임 등도 이전보다 훨씬 더 신경 써야 하기에 소울류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보스전의 매력은 한가지가 더 있는데, 바로 한국적인 디자인이다. 챕터 1 배경도 한국 도시 곳곳에 있는 골목을 연상케 하긴 하지만, 보스전 맵과 보스 외형은 한국 전통 요소를 담아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조선시대 궁궐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맵은 목조 건물에 알록달록 단청이 칠해져 있으며, 보스인 블렌더는 해외에서도 화제를 모은 패션 아이템 ‘갓’을 착용하고 있다. 보스전에 돌입하기 전 한번쯤 천장을 올려다보길 권한다.

▲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하는 보스 블렌더 (사진: 게임메카 촬영)

▲ 갑자기 장르가 탄막슈팅게임으로 바뀌기도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마지막 발악으로 즉사 스킬까지 구사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보스와 맵 디자인이 매우 인상 깊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여명 만든 팀 ‘Limited’,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여명은 현재 스마일게이트 스토브와 스팀에서 무료로 즐길 수 있다. 게임을 즐긴 유저들의 평가는 매우 긍정적인데, 특히 스팀에서는 현재(21일 오후 3시 기준) ‘매우 긍정적(1377개 리뷰 중 94%가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데, 국내는 물론 해외 게이머도 호평하고 있다. 

물론, 자잘한 버그와 전반적인 게임 비주얼에 비해 높은 요구 사양 등 기술적인 문제점이 아쉽다. 여기에 적의 공격이 마야에게 적중됐는지 아닌지 구별하기 힘든 피격감과 가시성이 조금 떨어지는 조준점 등도 단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같은 단점들이 게임의 재미를 덮는 수준은 아니다. 여명을 만든 청강문화산업대학교 ‘Limited’ 팀을 응원하며, 앞으로 더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길 기원한다.

▲ 자잘한 버그가 있긴 하지만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높은 완성도로 개발자들의 향후 행보를 기대하게 하는 게임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