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는 엔터테인먼트 사업도 게임처럼 한다

▲ 유니버스 대표 이미지 (사진제공: 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한다는 소식은 게임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지난 7월에는 엔터테인먼트 자회사 클렙을 설립했고, 11월 초에 K-POP 모바일 앱 ‘유니버스’를 발표했다. 유니버스는 한국, 미국, 일본, 대만 등 186개국을 대상으로 사전예약 중이며, 지난 12월 8일에 참가자 100만 명을 돌파했다. 참여 아티스트는 강다니엘, 더보이즈, 몬스타엑스, 박지훈, 씨아이엑스, 아스트로, 아이즈원, 에이비식스, 에이티즈, (여자)아이들, 우주소녀까지 총 11팀이며, 출시 후에도 계속 아티스트가 추가될 예정이다.

얼핏 엔씨소프트와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이질적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전혀 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6년부터 진행해온 피버 페스티벌은 블소 e스포츠 대회인 월드 챔피언십과 가수들의 음악공연을 연계한 행사였다. 2015년에는 블소 뮤지컬 ‘묵화마녀 진서연’을 선보인 바 있고, 2019년부터 남성 아이돌 그룹 몬스타엑스와 진행하는 웹예능 프로그램을 내보낸 적도 있다.

이러한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전문 자회사를 세우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엔씨소프트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할까? 유니버스를 자세히 살펴보면, 엔씨소프트가 계획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사업 윤곽이 보이는 듯 하다. 재미있는 부분은 엔씨소프트는 엔터테인먼트도 게임처럼 풀어가려 한다는 점이다.

마인크래프트 같은 샌드박스 요소 앞세운 유니버스 앱

유니버스를 압축적으로 설명하면, 아티스트가 있는 온라인 공간에 팬들이 접속해서 그 안에 있는 여러 콘텐츠를 가지고 노는 앱이다. 이 중 게임적인 느낌이 가장 뚜렷한 것은 ‘스튜디오’다. 스튜디오에는 아티스트가 직접 참여한 모션캡처와 바디 스캔을 기반으로 제작된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 캐릭터에 원하는 옷을 입히고, 머리를 세팅하고, 소품을 더해서 취향에 맞게 꾸밀 수 있다.

이렇게 꾸민 캐릭터로 나만의 뮤직비디오도 만들 수 있다. 단순히 움직이는 캐릭터를 찍는 수준이 아니라 조명, 배경, 카메라 앵글 등을 선택해서 촬영하는 것이 가능하다. 가상의 캐릭터를 커스터마이징하고, 이 캐릭터로 뭔가 만들 수 있다는 점은 마인크래프트와 같은 샌드박스 게임을 연상시킨다.

▲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꾸미고, 뮤직비디오를 찍을 수 있는 스튜디오 (사진제공: 엔씨소프트)

▲ 사전예약 보상으로 스튜디오 의상을 준다 (사진출처: 유니버스 공식 페이지)

UCC는 앞서 이야기한 스튜디오에서 끝나지 않는다. 게임과 마찬가지로 K팝 팬덤 사이에서는 아티스트를 소재로 한 2차 창작이 활발하다. 이러한 부분을 겨냥한 콘텐츠 크리에이터도 있다. 이에 유니버스는 직접 그린 팬아트나 영상 등을 앱에 올리면 유저 댓글을 통해 반응을 살필 수 있고, 추천을 많이 받으면 그 주의 콘텐츠로 선정되며 추가 보상을 받는 구조를 구성했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활동을 저장하고, 이 기록을 경험치처럼 쌓아서 보상을 받는 구조는 게임을 넘어 SNS, 온라인 쇼핑몰, 오프라인 매장까지 여러 분야에서 자주 사용되는 대표적인 게이미피케이션 요소다. 리니지를 비롯한 여러 게임을 서비스하며 유저들의 활발한 활동을 유도하기 위한 보상체계 구축에 노하우를 지닌 엔씨소프트가 엔터테인먼트 앱인 유니버스에도 이러한 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고 볼 수 있다.

활동에 따라 보상을 주는 구조가 더 명확하게 드러난 부분은 컬렉션이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반을 사거나, 콘서트에 가거나, 응원봉과 같은 굿즈를 구매했을 때 이를 앱에 기록해두면 MMORPG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업적처럼 쌓인다. 그리고 이렇게 쌓은 업적은 보상으로 돌아온다. 가장 가까운 예로 리니지M에도 플레이 중 획득한 아이템을 모아서 등록하면 캐릭터 능력치가 높아지는 컬렉션이 있는데, 유니버스에 있는 컬렉션도 이를 떠오르게 한다.

▲ 팬 활동을 업적처럼 쌓아서 보상을 받는 컬렉션 (사진출처: 유니버스 공식 페이지)

아티스트와 전화하는 듯한 느낌 살린 인공지능 목소리

게임적인 요소와 함께 엔씨소프트의 기술력이 더해진 부분도 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직접 전화를 걸어온다는 콘셉트를 앞세운 인공지능 목소리다. 유니버스에 참여하는 아티스트가 제작에 참여했고, 원하는 시간과 상황을 설정해두면 실제 목소리를 기반으로 만든 AI 음성과 통화할 수 있다. 유니버스 공식 페이지에서 아티스트 목소리를 미리 들어볼 수 있는데 기계적인 느낌이 적고, 톤과 음정도 실제로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AI 목소리는 엔씨소프트가 인공지능에서 의미 있는 결과물을 냈던 분야이기도 하다. 게임에서 보면 블소 튜토리얼을 읽어주는 AI 목소리가 있다. 여기 들어간 여성 목소리는 성우가 녹음한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 음성인데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처럼 자연스러운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음성합성 기술을 뉴럴 보코더라고 부르며 엔씨소프트는 이 기술을 지난 10월에 열린 국제학회에서도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야구, 축구, e스포츠 대회 등에 쓸 수 있는 AI 목소리인 중계체도 공개했다.

▲ 유니버스에는 아티스트가 제작에 참여한 인공지능 목소리가 들어간다 (사진출처: 유니버스 공식 페이지)

AI 음성합성 분야에서 쌓아온 노하우를 유니버스에도 도입해서, 팬들이 생생하게 아티스트와 소통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콘텐츠로 완성했다. 콘텐츠 분야에서 정부와 업계가 함께 주목하는 부분은 ‘융복합’이다. 게임과 영화처럼 전혀 다른 콘텐츠를 결합하거나, 인공지능과 같은 신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이는 일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리해 보면, 엔씨소프트의 유니버스는 게임, 인공지능,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결합된 융복합 콘텐츠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융복합 기술을 토대로, 엔씨소프트가 쟁쟁한 강자가 많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낼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