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넘게 일했는데, 초과 근무기록이 삭제됐다?

▲ 회사와 근무시간 초과 관련 분쟁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진출처: 픽사베이)

최근 크래프톤에서 근무시간과 관련해 회사와 직원 간 충돌이 발생했다. 가장 큰 쟁점은 근무시간 무단 삭제다. 실제로는 주 52시간보다 더 많이 일했지만, 회사 근태 시스템에 남은 출퇴근 시간을 임의로 삭제해 수치적으로 1주 평균 52시간을 넘기지 않게 위장했다는 것이다. 직원은 이러한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입장이고, 회사 측은 근무시간을 임의로 조정하는 일은 없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러한 일은 비단 크래프톤만의 문제는 아니다.올해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50인 이상 기업으로 확대됐기에 모든 직장 및 게임사에서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법을 어겨가며 52시간을 넘겨서 일하고 추가로 일한 시간에 대한 임금도 받지 못하더라도 회사에서 다른 말을 한다면 직원들이 이에 대해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

일단 개인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것은 시간과 비용, 심리적인 부분에서 부담이 크고, 개인적으로 사측에 근무시간을 초과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요청하기도 어렵다. 여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생기면 소문이 퍼져 재취업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이번 크래프톤 사례에서도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직원들이 정식 대응이 아닌 익명 커뮤니티를 통해 문제를 제기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을 것이다.

1명으로도, 익명으로 근로감독을 요청할 수 있다

일단, 정부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놓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시행하는 ‘근로감독 청원제도’다. 고용노동부 공식 홈페이지에 가면 상단 메뉴 기장 왼쪽에 ‘민원’ 메뉴가 있고, 하위 메뉴에 민원신청이 있다. 민원신청 페이지 검색창에 ‘근로감독 청원’을 검색하면 바로 신청 페이지가 뜨고, 이후 신청자와 회사 정보, 근로감독을 청원하는 이유를 작성해 등록하면 된다.

▲ 고용노동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근로감독을 청원할 수 있다 (사진출처: 고용노동부 공식 홈페이지)

이에 대해 스마일게이트 노조 차상준 지회장은 “직원 1인으로도 신청이 가능하며, 청원을 넣으면 14일 안에 고용노동부 담당자가 답변을 주게 되어 있다. 만약 부득이한 이유로 14일 안에 답변이 어렵다면 신청자에게 이 부분도 따로 연락을 준다”라며 “담당자가 신청인에게 실명으로 하고 싶은지, 익명으로 하고 싶은지 물어보고, 익명으로 진행하고 싶다면 익명으로도 진행해준다”라고 전했다. 다만, 담당자와 연락이 필요하므로 전화번호 등 연락처는 남겨야 한다.

온라인 접수 과정에서는 증빙자료가 없어도 된다. 이후 업무에 배정된 담당자가 자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신청인에게 실제 근무시간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요청한다. 이때 자료로 쓸 수 있는 소재는 다양하다. 가령 본인 근무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회사 인트라넷 시스템이 있다면, 52시간이 꽉 찬 화면과 날짜와 시간이 나오게 찍은 회사 업무용 PC 화면을 함께 첨부하는 식이다. 

이 외에도 휴일 혹은 심야 시간에 업무 지시를 받은 이메일이나 카카오톡 메신저, 심야에 업무를 마쳤음을 보고하는 이메일, 작업한 결과물을 회사 시스템에 등록할 때 그 화면을 처리시간과 일자가 나오게 찍은 것 등도 자료로 쓸 수 있다. 여기에 본인 출퇴근시간이 자동으로 기록되는 무료 앱도 있다. 구글플레이, 애플 앱스토어 등에서 ‘근무시간 체크’ 등을 검색하면 여러 앱이 나온다. 이중에는 GPS를 기반으로 사용자가 몇 시에, 어디에 있었는가를 일별로 자동으로 기록해주는 앱도 있기 때문에, 52시간을 넘겨서 일을 했음을 앱에 저장된 출퇴근시간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

▲ GPS를 통한 위치추적도 가능한 근무시간 체크 앱이 있다 (사진출처: 구글플레이 공식 페이지)

자료를 검토한 고용노동부 측에서 근로감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회사에 근로감독관이 불시에 방문해 실질적인 조사에 들어간다. 그렇다면 근로감독을 통해 실제 근로시간을 밝혀낸 사례가 있을까? 동화노무법인 이은솔 노무사는 “최근 게임사를 대상으로 이뤄진 근로감독에서는 디지털포렌식 기법을 통해 출입기록, 시스템 접속 기록, 야근 교통비나 식대 지금 내역 등을 조사해 실제 근로시간을 밝혀낸 사례도 있었다”라고 전했다.

방법은 있지만 현실적으로 진행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이처럼 노동자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개인이 이를 직접 진행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면이 많다. 가장 큰 우려사항은 조사 과정에서 회사 측에 제보자 신변이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변이 노출된 상태에서 회사와 다투는 것 자체도 부담이고, 직장 내 괴롭힘이나 퇴사 종용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법적으로 보면 기본적인 안전장치는 있다. 우선 근로감독관은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대면조사를 강행할 수 없고, 익명을 요청했음에도 근로감독관이 고의로 회사에 제보자 신변을 노출했다면 벌금 500만 원에 처할 수 있다. 고의는 아니지만, 근로감독관의 실수로 신변이 노출되어 피해를 봤다고 판단된다면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는 것도 가능하다. 국민신문고에는 ‘소극행정 신고센터’가 있고, 이를 통해 신고할 수 있는 유형에는 공무원이 일을 게을리하거나 업무를 부주의하게 처리해 피해를 받은 형태도 포함되어 있다.

▲ 국민신문고를 통해 부주의한 업무 처리에 대해 민원을 넣을 수 있다 (사진출처: 국민신문고 공식 홈페이지)

그러나 이미 근로감독관이 회사 측에 제보자 신원을 유출해서 문제가 된 사례가 수없이 많이 보도된 바 있기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위에서 설명한 근로감독관에 대한 징계는 신변이 유출되어 피해를 입은 당사자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신변이 노출되어 불이익을 받거나 퇴사할 경우 근로자가 입는 피해는 어떻게 하더라도 100% 보상받을 수 없다. 이로 인해 현직 게임업계 근로자들은 재직 중에는 신고를 거의 하지 않고, 퇴사를 결심했더라도 게임업계를 뜨겠다는 결단이 서지 않으면 신고까지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의가 아니더라도, 조사관이 나와 직원이 실제로 일한 근무시간이 얼마인가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그 범위가 특정 시간대나 근무 패턴 등으로 좁혀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근로감독관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회사 측에서 조사 시간대와 패턴을 토대로 신고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역으로 색출해낼 가능성도 있다. 위험부담을 줄이고 싶다면 개인 혹은 소수보다는 부서, 팀 등 단체로 신청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이 역시 쉽지만은 않다.

이에 대해 변호사 등 전문가 도움을 받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돈과 시간이 들어가기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경제적 부담은 지자체 등에서 시민이 법률문제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무료법률상담 등으로 줄일 수 있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결심이다.

정리하자면 근무시간에 대해 회사와 갈등이 생기면 정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석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직장인이 겪을 수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한 대비책은 턱없이 부족하다. 고용노동부가 주 52시간 안착을 중요 과제로 삼고 있다면, 실 수요자라 할 수 있는 직장인이 좀 더 쉽고 부담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마련하는 세심한 행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