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게임광고] 얘 이름은 크레용이 아니라 신짱이에요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2021.05.24 16:36
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지금은 일본 대중문화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일본문화는 '왜색'이라 해서 금기시되는 존재였습니다. 일부 만화나 게임 등은 현지화를 거쳐 수입됐으나, 이마저도 일본색이 강한 부분은 드러내거나 삭제한 채였죠. 여기에 저작권 개념도 흐릿할 때라, 독자적 번역을 거친 해적판으로 소개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과거엔 같은 콘텐츠라도 호칭이 통일되지 않았던 경우가 있습니다. 정식 번역판 호칭은 그렇다 쳐도 동짜몽(도라에몽), 드라곤의 비밀(드래곤볼), 권법소년 용소야(쿵후보이 친미), 메가톤맨(죠죠의 기묘한 모험) 같은 해적판의 호칭이 그대로 굳어지는 경우도 상당했습니다. 이런 사례들은 게임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제우미디어 게임챔프 1993년 4월호에 실린 도라에몽 게임 광고입니다. 일단 현지명에 맞게 도라에몽이라고 표기되긴 했는데, 괄호 안에 '동자몽'이라는 표기를 함께 실었습니다. 참고로 이 명칭은 1970년대 도라에몽 원작을 따라 그린 모작판(;;) '동짜몽'에서 시작됐는데, 이후에도 동자몽이라는 이름으로 해적판이 재출시되기도 했습니다. 진구의 이름이 '징구'나 '찡구' 등으로 번역됐고, 도라에몽이 좋아하는 빵이 도라야키나 단팥빵이 아니라 군만두로 나오는 등 여러모로 독자적 현지화를 거쳤죠.
동자몽의 그림자는 1993년 7월호 새로운 광고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도라에몽 옆에 '일명 동자몽' 이라는 표기가 붙어 있으니까요. 광고주 측에서는 도라에몽이 제대로 된 정식 명칭임을 인지하고 게임 광고를 실었지만, 워낙 동자몽이라는 표기가 일반인들 사이에서 익숙하다 보니 추가로 설명해준 것에 가깝습니다.
도라에몽과는 달리, 위 광고는 아마도 광고주 측에서 원작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던 것으로 풀이됩니다. 크레용 신짱, 국내 명칭 '짱구는 못말려'로 소개된 작품인데요, 일본에서는 1990년 초반부터 인기를 끌었지만 국내에 정식 소개된 것은 90년대 중반으로 다소 늦었습니다. 이 광고가 실릴 무렵인 1993년 8월에는 국내에서 크레용 신짱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죠. 그러나 게임은 소개하고 싶으니, 원작 제목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문제는, 크레용 신짱이라는 제목을 잘못 해석했다는 점입니다. 붉은 문구를 보면 "개구쟁이 소년 크레용이 펼치는 새로운 타입의 액션게임"이라고 설명이 돼 있습니다. 주인공 이름은 '신짱(노하라 신노스케)'인데, 앞의 크레용이라는 단어를 주인공 이름으로 착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일본 대중문화가 개봉되지 않았던 당시 기준으로 '신짱'이라는 이름은 아무리 애칭이더라도 쉽게 사용되지 않는 어감이다 보니 저런 방식을 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입니다. 어쨌든, 소년 크레용의 모험이라니 듣기만 해도 재밌습니다.
마지막은 1994년 1월호에 실린 뿌요뿌요 광고입니다. 뿌요뿌요는 RPG '마도물어'에서 파생된 퍼즐 게임으로, 이 작품에 나오는 슬라임들은 '뿌요'라는 정식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억지로 현지화를 시키면서 '동글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버렸습니다. 아무래도 저연령층을 의식한 네이밍인 듯 한데, 굉장히 어색한 느낌이 듭니다.
수입사의 독단적 해석이나 해적판의 난립 등으로 인해 원작과 다른 이름을 가지고 오는 경우는 게임 뿐 아니라 영화나 만화, 애니메이션 등에서도 꽤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원작 명칭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틀린 취급을 받기도 했죠. 다행히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후에는 이런 사례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는데요, 지금 와서는 오히려 저런 모습들이 그리운 풍경으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