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言] 모든 감정은 소중하다 ‘모노웨이브’
게임메카 김형종 기자
2024.02.17 10:00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정호승 시인의 시 ‘슬픔이 기쁨에게’ 마지막 구절이다. 일반적으로는 행복이나 기쁨이 주는 감정적 즐거움에 주목하지만, 모든 감정은 저마다 중요한 역할을 가진다. 예를 들어 슬픔은 고통을 주지만, 동시에 해묵은 감정을 해소한다. 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은 이런 다채로운 감정의 중요성을 섬세하게 다뤄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인디 개발팀 스튜디오 BBB가 개발 중인 ‘모노웨이브(Monowave)’는 이런 감정의 중요성을 주제로 만들어진 퍼즐게임이다. 작년 부산인디커넥페스티벌(이하 BIC)에 처음 공개됐으며, 인디게임 온라인 전시 행사 버닝비버에 데모버전을 출품했다. 독특한 콘셉트와 아트가 특히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스튜디오 BBB 개발자들에게 게임 기획과 개발과정에 대해 자세히 들어볼 수 있었다.
감정을 활용해 도망친 정령들을 찾는 퍼즐게임 모노웨이브
모노웨이브는 퍼즐 플랫포머게임으로, 감정을 수호하는 정령 ‘모노’가 폭주한 네 감정으로 혼란해진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플레이어는 감정의 힘을 적절히 활용해 각종 함정을 피하고 퍼즐을 풀어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 맵에는 여러 감정을 나타내는 꽃이 등장하며, 여기에 모노가 닿으면 해당 감정 상태가 된다. 감정에 따라 모노는 서로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 행복 감정 상태일 때는 높이 점프하고, 슬플 때는 좁은 틈을 지나가며, 분노 중에는 돌진해 벽을 탈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모노는 노래를 불러 자신의 감정을 주변 캐릭터에게 전할 수 있다. 이를 적절히 활용해야 하는 퍼즐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정글 지역에는 악어가 등장하는데, 악어가 분노 감정일 때는 모노를 공격하지만 불안할 때는 점프를 돕는다. 최진용 레벨 기획자는 "감정을 표현하고, 이를 전달하는 매체로서 노래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감정을 활용한 퍼즐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색감과 아트 역시 독특하다. 게임은 여러가지 색을 칠한 뒤 그 위에 검은 색을 덧칠하고, 이후 긁어내는 ‘스크래치 기법’ 느낌을 주고자 했다. 또한 캐릭터와 배경을 구성하는 선이 또렷하면서도 날카롭지 않아, 어두운 배경임에도 동화적이고 화사한 느낌을 전한다.
이처럼 모노웨이브는 게임 콘셉트와 아트 모두에서 예술성이 느껴진다. 이런 게임을 만든 스튜디오 BBB는 어떤 곳일까?
모노웨이브를 개발중인 서강대학교 게임 개발팀 스튜디오 BBB
스튜디오 BBB는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대학 아트&테크놀로지 학과 학생 7인이 모인 개발 팀이다. 예술과 기술을 모두 다루는 학과 교육 방향성이 모노웨이브 콘셉트와 그래픽 디자인에도 녹아있다. 기획 둘, 아트 둘, 프로그래밍 하나, 총 5명의 팀원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후 마케팅과 사운드 담당이 더해지며 현재의 7인 팀이 완성됐다. 팀원 모두 과동기거나 1년 선후배 사이다.
모노웨이브 개발 초기에는 학업과 개발을 병행했고, 때문에 게임 개발에도 많은 어려움도 겪었다고 스튜디오 BBB 팀원들은 말했다. 임권영 리드 프로그래머는 "우리 학과가 게임개발 학과가 아니기도 해서 문제가 산적했다"라며, "기말고사와 BIC 기간이 겹치는 등 여러 사건이 생겨서 고생했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오는 2024년 1학기엔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팀원 대부분이 휴학할 예정이라고.
본격적으로 게임을 만들 때도 어려움이 많았다. 일단 주인공 구상부터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사람 얼굴 모양 캐릭터를 구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기괴하게 느껴져 아이디어를 폐기했다. 이후 김호진 일러스트레이터가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에서 영감 받아 한 붓 그리기 형태의 주인공 모노를 완성했다. 얼굴을 반으로 나누는 선으로 평면과 입체감을 동시에 부여했고, 표정을 나타내기도 쉬워졌다.
수많은 인간 감정 중 게임에 활용할 것을 선택하는 과정도 복잡했다. 초기 기획 단계에서는 역겨움, 놀람 등 더 많은 감정이 있었다. 다만 주제와 볼륨, 감정을 전달하는 특유의 노래 부르기 시스템 등을 고려할 때, 적은 수의 감정을 더 깊이 있게 다루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게 행복, 분노, 불안, 슬픔 네 감정이 주축이 되는 모노웨이브 개발이 본 궤도에 올랐다.
모든 감정이 소중하다는 주제의식이 드러나는 게임플레이
바로 위에서 설명했듯 모노웨이브는 행복, 분노, 불안, 슬픔이라는 네 감정을 중심 소재로 활용한다. 긍정적으로 여겨지는 행복 외에도 현대사회에서 특히 위험요소로 여겨지는 불안 등 다소 부정적으로 조명되는 감정도 활용된다. 김채현 스토리 기획자는 "감정은 익숙하지만 소홀히 하기 쉬운 소재인 만큼, 감정의 여러 부분을 조명하려 했다"고 말했다.
특히 강조한 부분은 바로 모든 감정이 소중하다는 주제의식이다. 김채현 기획자는 "감정적인 모습을 나약하다고 생각하거나, 행복 이외 슬픔, 불안, 분노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사회적 시선도 팽배하다"라며, "모노웨이브는 모든 감정에 가치가 있다는 것을 퍼즐 플랫포머로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게임은 네 감정을 적극 활용하도록 퍼즐을 구성했다. 행복은 안개를 제거하거나 높이 점프할 때 꼭 필요하지만, 가시 덩굴을 지날 때는 불안이 필요하다. 이런 감정에 대한 기획 의도가 가장 강하게 담긴 부분이 바로 첫 보스 불안 고슴도치 스테이지다. 모노웨이브는 퍼즐게임으로서는 특이하게 보스전이 존재하는데, 감정에 지배당한 고슴도치는 가시를 세우고 맵 구석으로 도망친다.
모노가 불안 고슴도치에게 해야 할 것은 여러 감정을 활용해 그를 진정시키는 것이다. 모노는 맵을 돌아다니며 행복, 분노, 슬픔 등 적절한 감정을 수확한 뒤, 고슴도치에 다가가 노래를 통해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 보스전 맵 역시 각 감정을 적절히 활용해 탐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스테이지 이동과 보스 대처에서 감정의 소중함이라는 주제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셈이다.
빠르게 완성으로 달려가는 모노웨이브
모노웨이브는 9개월 정도 개발된 프로젝트다. 현재 스튜디오 BBB는 출시를 위해 집중 개발 중이다. 작년 8월 말 BIC에 참가했고, 그 과정에서 기획 기반을 완성했다. 거대 타이틀에 비해 개발 기간은 짧지만, 인디팀 치고는 인원도 많고 각자 맡은 일이 뚜렷하며 동기부여도 확실했다. 최진용 레벨 디자이너는 "고난도 스테이지를 테스트하며 팀원이 괴로워하는 모습이 좋았다"라며 “더욱 고통을 주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개발 중이다”라고 말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모노웨이브는 작년 12월 버닝비버에 참가해 데모 버전을 공개했다. 이애경 마케팅 담당자는 "주인공 디자인이 호평이었고 온라인으로 관련 상품을 내달라는 문의도 많아 힘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기믹에 허점이 발견되거나, 불친절한 튜토리얼과 불편한 조작감 등에 대한 지적도 나와 절치부심의 계기가 됐다고.
최근 특히 힘을 쏟는 부분은 설정과 스토리를 설명하는 방식을 게임에 구현하는 것이다. 임권영 리드 프로그래머는 "감정을 테마로 한 독특한 세계관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게임에서 재대로 풀어내지 못한 부분이 다소 아쉬웠다"라며, "초반 고슴도치 보스전도 불안 외 감정을 활용해 불안을 제거하는 연출을 명확히 표현하지 못해 아쉬웠고 그런 부분을 더 강화하겠다"고 전했다.
모노웨이브 개발팀은 최대한 참신한 게임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완성도를 높일 예정이다. 임권영 프로그래머는 "현재 게임 완성도와 볼륨을 끌어올리는 중으로 30~50% 정도 게임이 개발된 상태다"라며, "퍼즐 플랫포머는 쟁쟁한 명작이 넘치는 레드오션이지만, 기획, 그래픽, 사운드 모두 독특함과 참신함으로 무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