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즈 도그마 2, 진입장벽 넘으면 인생 게임
게임메카 김형종 기자
2024.03.29 20:08
2012년 발매된 ‘드래곤즈 도그마: 다크 어리즌(Dragons Dogma: Dark Arisen, 이하 DDDA)'은 소수의 열광적인 팬이 있는 이른바 소위 ‘컬트 클래식 ‘이라는 정의가 정확하게 부합하는 게임이다. 세계관은 어둡고 위협적이며, 1회차는 그 어떤 게임보다도 불친절하고, 최적화 수준도 심각하며, 퀘스트를 수행하면 할수록 주변 캐릭터들은 사라진다. 상당히 호불호가 나뉘는 유형의 게임이지만, 호 쪽에 속하는 유저들은 끊임없이 후속작이 나오길 기대했다. 본 기자 역시 DDDA를 약 700시간 정도 플레이한 팬 중 하나다.
12년 만에 출시된 후속작 ‘드래곤즈 도그마 2(Dragons Dogma 2)’는 발표 당시부터 이상할 정도로 온 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며 높은 기대감을 모았다. 이후 디렉터 인터뷰에서 게임이 전작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정보가 전해졌을 때, 기자는 오히려 불안해졌다. 전작과 유사한 게임이라면, 발매 전 이상하리만치 높아진 대중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엔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게임 출시 이후 확신을 가졌다. DDDA를 좋아하는 팬들에겐 매우 훌륭한 후속작이자 인생 최고의 게임이 될 가능성을 지녔지만, 대중적인 게임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훌륭한 판타지 세계관이 강점인 RPG
주인공은 용에게 대항하다 심장을 빼앗기고 각성자가 된다. 이후 AI 동료 ‘폰’과 함께 여행하면서, 세계의 위기에 대항한다. 게임은 전반적인 게임 배경, 장비, 소품, 시스템 등을 통해 세계관 몰입을 돕는다. 그 중 특히 폰은 여행하는 동안 심심하지 않도록 계속 말을 걸고, 전투에서도 큰 도움을 준다. 이는 싱글플레이 게임임에도 '동료와 함께 여행하는 감각'을 극대화한다. AI도 전반적으로 향상되어, 전작 대비 전투 효율도 좋아졌고 상황에 맞는 대사도 늘어났다.
판타지 세계관에 걸맞는 여러 직업도 쉬운 적응을 돕는다. 기본 직업군에 속하는 아처, 시프, 파이터, 메이지. 그리고 상위직업에 해당하는 워리어와 소서러, 하이브리드 직업인 마검사, 매직 아처 등을 플레이 가능하다. 직관적인 직업들이니만큼, 처음 플레이하는 경우에도 특징이나 스킬을 대충 짐작 가능하다. 전사 직업군인 파이터와 워리어의 경우 파이터는 방패를 활용한 수비적이고 다소 짧은 공격이 특징인 반면, 워리어는 양손무기를 활용한 강력한 기모으기나 묵직한 피해가 강점인 식으로 차별점이 주어진다.
다른 직업 역시 특색이 매우 강하다. 시프는 버튼 하나로 적 공격을 재빠르게 피할 수 있고, 소서러는 스태미너를 과소비해 빠르게 주문을 영창하고 다시 회복하는 등 공격적인 마법 운용이 가능하다. 가장 독특했던 직업은 마검사로, 상대 캐릭터를 정지시키는 봉인의 마탄과 근접 공격을 동시에 활용해 전투한다. 판타지 세계관과 여기에 잘 어울리는 직업으로 플레이하는 것은 상당히 몰입감 있는 RPG 경험을 선사했다.
이외 장점은 플레이어 캐릭터를 ‘수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몇몇 게임에서 보이는, 사람에 동물 귀만 달아놓고 수인이라 주장하는 파렴치한 캐릭터가 아니다. 진짜배기 털 난 캐릭터가 나온다. 다만 고양이(호랑이)과 수인만 존재하기에, 강아지, 돼지, 말, 여우 등 다양한 종류의 수인을 고를 수는 없는 점은 아쉬운 포인트이긴 하다. 그래도 이 정도만으로 환호를 지르는 일부 신사분들이 있을 것이다.
직선적이고 호쾌한 액션이 강점인 전투, 초반부 난이도는 아쉽다
드래곤즈 도그마 2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바로 특유의 절제된 액션이다. 화려하지만 비현실적인 공격 모션을 사용하는 게임들과 달리, 드래곤즈 도그마 2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타격감 좋은 액션을 선보인다. 이는 마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각 속성 기초마법을 요약하면 ‘불 뿜기’, ‘번개 치기’, ‘얼음 발사’ 정도로, 매우 직선적이다. 환술사를 제외한 모든 직업의 기술은 직관적인 효과로 인해 사용 방식을 이해하기 쉽다.
액션은 직관적이지만, 전투는 복합적이다. 고용한 폰과 함께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계속해서 적들과 싸우게 되는데, 전반적인 타격감이 우수해 전투 자체의 재미가 뛰어나다. 공격 자체는 단순하지만, 플레이어 조작이나 필드에 존재하는 여러 기물들을 통해 여러 전략을 활용할 수 있다. 주변에 놓인 폭발 상자, 바위 등을 적에게 던지거나, 다리를 끊어 추락시킬 수도 있다.
간혹 등장하는 중형 몬스터는 각자 서로 다른 공격 패턴, 행동 양식, 약점 등을 지녀 전투를 흥미롭게 만든다. 예를 들어 그리핀은 전투 도중 체력이 감소하면 날아 도망치는 습성을 지녔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날개를 불태우거나, 비행하기 전 빠르게 처치해야 한다. 오거는 영화 ‘킹콩’의 킹콩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몬스터로, 여성 캐릭터만 보면 흥분하고 납치하려 한다. 키메라의 경우 머리, 몸통, 꼬리가 서로 다른 패턴을 선보인다.
하지만, 아쉽게도 드래곤즈 도그마 2의 전투는 지나치게 잦은 빈도와 드랍 시스템 때문에 그 매력을 일부 상실했다. 게임은 퀘스트 보다 전투에서 경험치를 많이 얻도록 설계됐고, 직접 걸어 이동하는 구간이 많다. 그 과정에서 심한 경우 3보 1전투를 치를 정도로 전투가 잦다. 그러다 보니 초반 베르문트 지역에서 지나치게 레벨이 빨리 올라 해당 지역 전투가 금세 긴장감을 잃어버린다. 심지어 오거, 그리핀 등 중형 몬스터도 초반에는 위협적이지만, 10시간만 플레이 해도 샌드백과 날파리로 전락한다. 쉬운 전투 난도는 후반부 세계 변혁과 함께 뒤바뀌지만, 해당 단계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독특한 무기 강화 방식과 제작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소형 몬스터가 주는 전리품은 강화와 판매 이외에는 사용처가 없으며, 처치해도 장비 등 귀중한 전리품을 줄 확률도 거의 없다. 결과적으로 보상은 경험치, 직업 포인트뿐이기에, 계속되는 전투는 피로감을 가중시키고 흥미를 떨어뜨린다.
적 가짓수가 적다는 치명적 단점은 그야말로 화룡점정이다. 플레이어가 가장 자주 상대하는 적은 고블린, 리자드맨(사우리안), 들개 등 소형 몬스터다. 고블린과 리자드맨 모두 다양한 아종이 존재하고, 종마다 약점과 공격 패턴이 다르다. 하지만 전투가 지나치게 잦고, 폰으로도 정리가 가능할 정도로 난도가 낮기 때문에 다양한 패턴을 감상하기 전에 전투가 끝나버린다. 결국 전투에 쉽게 질려버리는 만큼, 잦은 전투 빈도는 훌륭한 몬스터 설계가 빛을 바래게 만들었다. 내가 모험을 하는 것인지, 고블린 슬레이어가 된 것인지조차 헷갈릴 정도다.
스태미너, 무게, 빠른 이동 등 수많은 불편한 시스템
드래곤즈 도그마 2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매우 불편한 무게, 스태미너, 빠른이동, 퀘스트 수행, 세이브 시스템을 지녔다. 일정 이상 아이템을 지니면 움직임이 느려지고, 스태미너 재생 속도가 감소한다. 마을 밖에서 달리면 스태미너가 감소하고, 0이 되면 잠시 동안 그로기 상태에 빠진다. 따라서 항상 적은 무게를 유지해야 한다. 게임을 플레이하며 폰을 데리고 다니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짐을 나눠 들기 위함이다. 폰이 아니라 포터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빠른 이동 기능은 전작 대비 더 열악해졌다. DDDA에서는 우차가 없었지만, 대신 찰나의 비석(귀환석)이 훨씬 저렴했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는 찰나의 비석이 무려 1만 골드로, 특히 게임 초반부에는 장비보다 비쌀 정도인 만큼 구매가 부담스럽다. 그런 이유로 우차가 다니는 지역이라면 이를 활용하고, 그렇지 않은 장소는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
우차는 게임의 치밀한 설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차는 드래곤즈 도그마 2의 몇 안되는 이동수단으로, 앉아 ‘눈 감기’를 누르면 빠르게 시간이 흘러 목적지에 도착한다. 문제는 우차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낮지 않은 확률로 습격을 당한다. 이때 소형 적과 만나면 다행이지만, 간혹 사이클롭스나 오거 등 중형 몬스터와 만나면 공격 한 번에 우차가 파괴되고 플레이어는 열심히 걸어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 또한 만약 이동 경로에 다리가 끊어져 지날 수 없다면, 우차는 즉시 멈추고 플레이어는 또 다시 걸어야 한다. 훌륭한 세계와의 상호작용이지만, 동시에 굉장히 불편한 설계다.
전반적인 퀘스트 구조 역시 상당히 불친절한데, 우선 퀘스트 수주 표시가 없다. 누군가가 퀘스트를 주는지 알기 위해서는 직접 말을 걸거나, 해당 인물이 다가와 퀘스트를 주길 기다려야 한다. 또한 대부분 퀘스트는 목표를 애매하게 알려준다. 예를 들어 감옥에서 법무관을 구출해야 하는 퀘스트에서 법무관은 뜬금없이 ‘책이 많은 장소가 아니면 탈옥하지 않겠다’고 진상을 피운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이 장소를 알기 위해 퀘스트를 준 대장에게 돌아간 뒤, 힌트를 얻고, 또 새로운 퀘스트를 완료해야 ‘책이 많은 장소’를 확정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들은 퀘스트를 놓치거나 실패하는 경우도 잦다.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것이 고유의 세이브 시스템이다. 드래곤즈 도그마 2는 RPG 중에서는 특이하게 실시간 세이브 시스템을 채용했으며, 세이브 파일은 단 하나만 지원된다. 즉, 퀘스트를 날렸다면 그대로 저장돼 버린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전작과 달리 ‘여관에서 시작’이라는 세이브 되돌리기 기능이 존재해, 이후 진행을 대가로 진행 시점을 되돌릴 수 있다. 다만 이마저도 문제가 있는데, 무조건 여관이나 집에서 자야 하며, 벤치에서 기다리기, 우차, 심지어 잠을 잔 캠프 모두 ‘마지막으로 잔 여관’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만약 탐험을 위해 캠프를 전전하다 실수로 메뉴에서 여관에서 시작 버튼을 눌렀다면, 그 동안의 진행이 모두 증발한다. 어떻게 알았냐고? 기자도 알고 싶지 않았다.
불편함은 몰입을 강화한다
자꾸 불편한 시스템과 불편하고 지루하고 반복적인 전투를 언급하다 보니 이 리뷰가 드래곤즈 도그마 2를 까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이상한 시스템을 넣은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바로 리얼리티를 강조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몰입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퀘스트를 수행할 때 직접 미션 목표와 도달해야 하는 지역 등을 알려주면, 해결은 쉽지만 반대로 플레이어의 능동성이 떨어진다. 반면 처음부터 단서를 직접 찾아야 한다면, 귀찮고 생각도 많이 해야 하지만 그만큼 과정에서 몰입감이나 해결한 뒤 느끼는 만족감도 극대화된다.
대표적인 퀘스트가 바로 늑대에게 납치된 아이를 구출하는 퀘스트다. 해당 퀘스트를 처음 얻게 되면, 플레이어는 마을 중앙에서 소년의 행방을 파악해야 한다. 만약 처음부터 소년 위치를 알려주면, 클리어는 쉽지만 기억에 남지 않는 흔한 임무로 남을 것이다. 대신 드래곤즈 도그마 2는 소년의 위치를 곧바로 알려주지 않고 마을 중앙에서 사람들과 대화하도록 유도한다. 이후 플레이어는 ‘늑대’와 ‘밤에 빛나는 꽃’이라는 다소 모호한 정보를 얻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플레이어가 직접 소년의 행방을 유추해야 한다.
이런 작은 추리 미니게임을 즐기는 과정 속에서, 플레이어는 드래곤즈 도그마 2라는 세계에 몰입하게 되고, 등장하는 캐릭터들에게 애정을 느끼게 된다. 폰 역시 퀘스트 수행을 돕는데, 다른 세계에서 퀘스트 경험이 있다면 플레이어에게 목적지를 안내하는 등 전투 외에도 큰 도움을 줘, 시스템과 세계관에 대한 몰입감을 높인다.
이동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이츠노 히데아키 디렉터의 인터뷰 발언처럼 '빠른 이동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재미있는 게임'은 아니며, 지나치게 잦은 전투는 전반적인 게임 품질을 떨어뜨릴 정도다. 하지만 가장 흥미롭고 진기한 경험 역시 필드를 돌아다니며 마주치게 된다. 한번은 오거가 나타나 우차를 공격하자 아군 여성 폰이 절벽으로 튕겨 떨어졌고, 이를 본 오거가 뒤따라 절벽으로 돌진하면서 나무 다리를 부숴버렸다. 10초도 안되어 동료, 빠른 이동, 사냥 드랍템 등 모두를 잃었지만, 너무도 어이 없는 상황에 화보다는 웃음이 나왔다.
이런 경험들은 빠른 이동이 난무하는 여타 RPG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불편함을 감수하면 그만큼의 재미가 찾아온다. 다만 여기까지 신입 유저를 끌고 오는 친절함이 부족하며, 게임 설계, 난도 조절 등이 좀 더 치밀했다면 훨씬 더 몰입감 있는 게임이 됐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해결되지 않은 게임 외적 문제와 몰입을 해치는 상술
이외에도 드래곤즈 도그마 2를 평하자면 기술적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베르문드나 바탈 등 NPC가 많이 등장하는 곳에서 프레임이 크게 떨어진다. 오히려 적이 등장하는 전투에서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캡콤측은 문제가 NPC 행동 패턴이 CPU에 과부하를 일으켜 발생했다고 전했지만, 출시 1주가 넘은 현재까지도 고쳐지지 않아 큰 불편을 야기하고 있다.
크게 비판하긴 어렵지만 몰입감을 해치는 부분으로 유료 DLC 판매가 존재한다. 다른 아이템은 게임플레이에 큰 혜택을 주진 않지만, ‘귀로의 초석’은 순간이동 지점을 설정하는 아이템으로 편의성과 크게 연관있다. 빠른 이동을 몰입을 위해 시스템적으로 제한해놓고, 관련 아이템을 현금으로 파는 것은 다소 어불성설로 느껴진다. 이외 아이템은 게임플레이에 영향을 거의 주지 않는 만큼, 상술처럼 느껴진다.
드래곤즈 도그마 2는 상당한 진입장벽을 가진 게임이다. 편의성이 매우 떨어지고, 전투가 지나치게 빈번하며, 퀘스트는 복잡하고 능동적인 해결책을 요구한다. 심지어 최적화도 완벽하지 않아 PC에서는 고성능 CPU와 그래픽카드를 요구한다. 하지만 만약 이런 장벽들을 모두 넘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인생게임이자 최고의 게임으로 다가올 수 있다. 전작에서도 확장팩에서 게임이 완성됐던 만큼, 이번 작품에서도 업데이트나 DLC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