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zip] 미르 2 분쟁, 최후 승자가 위메이드인 이유

▲ 미르M 출시 당시 위메이드 사옥 랩핑 현장 (사진제공: 위메이드)

2024년 상반기에는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 사이의 법률적 분쟁과 관련해 의미 있는 판결들이 상당히 많이 선고됐습니다.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는 지난 20여 년간 수십 건이 넘는 소송을 서로에게 제기하며 가히 전쟁을 방불케 할 만큼 치열하게 다투어왔는데요. 세월만큼이나 많은 사건들이 있었던 만큼 이번 연재는 2회로 나누어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의 저작권 분쟁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이번에는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 사이에 이러한 저작권 분쟁이 발생하게 된 경위를 간략하게 짚어보고, 위메이드가 액토즈소프트를 상대로 국내에서 제기한 계약 무효 확인 등 청구 소송(대법원 2021다215978) 사건 및 싱가포르 ICC 중재 법원에 제기한 신청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이 사건들은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 물적분할, 법인 인수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소송을 벌이는 당사자도 여러 번 추가 및 변경되어 다소 복잡한 면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해의 편의를 위해 이번 연재에서는 위메이드 측을 단순히 ‘위메이드’로, 액토즈소프트 측을 ‘액토즈소프트’로만 표현하도록 하겠습니다.

‘미르의 전설’ 저작권 분쟁의 시작

▲ 미르의 전설 2 대표 이미지 (사진제공: 위메이드)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 사이의 기나긴 저작권 분쟁의 시작은 2000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위메이드 박관호 의장은 1996년 자신이 활동하던 컴퓨터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1996년 액토즈소프트를 설립해 ‘미르의 전설’을 개발했고, 이후 ‘미르의 전설 2’를 개발하던 박 의장은 도중 액토즈소프트를 퇴사, 위메이드를 설립해 ‘미르의 전설 2’ 개발을 완료했습니다.

저번 연재에서 다룬 ‘다커 앤 다커’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이렇게 핵심 개발자가 게임 개발 도중 퇴사를 하고, 이후 게임을 개발 완료하게 되면 항상 저작권과 관련하여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요. 액토즈소프트와 위메이드 또한 ‘미르의 전설 2'의 저작권과 관련하여 저작권 분쟁이 존재했지만, 2001년 서로 합의를 통해 양사가 공동으로 개발한 것으로 공동저작권자로 확인을 마쳤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 사이에 생길 수 있었던 문제는 잘 해결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후 ‘미르의 전설 2’가 중국에 진출하면서 양사 사이에 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됩니다.

중국에서의 성공 및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계약’의 문제점

▲ 중국 진출은 미르의 전설 2에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 (자료출처: 위메이드 공식 홈페이지)

2001년, 중국에 진출한 ‘미르의 전설 2’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액토즈소프트는 중국 회사 ‘샨다게임즈(현 셩취게임즈)’와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계약(Software Licensing Agreement, SLA)을 체결했습니다.

계약의 대략적인 내용은 샨다게임즈에 미르의 전설 2에 대한 중국 내 사용·홍보·배급·마케팅·개작·수정·전환에 대한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이었는데요. 계약 체결 당시가 2001년인 만큼 PC게임에 대해서는 상세히 규정되어 있었지만, 모바일게임이나 웹게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이 존재하지 않거나, 저작권 관리 및 보호와 관련해 당시에는 예측할 수 없었던 사항에 대한 대비점이 미비한 등 여러 문제점이 존재했습니다.

여기에 2005년 미르의 전설 2가 세계 최초로 중국 동시접속자 수 80만 명을 기록하며 기네스북에 오르는 등 양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상업적으로 성공했고, 자연스럽게 SLA 계약에 대해서도 위메이드, 액토즈소프트, 샨다게임즈 사이에도 분쟁이 지속되었습니다.

막대한 이익이 걸린 만큼, 서로 여러 차례 SLA에 대한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법원에 여러 가처분 및 소송을 제기하는 등 싸움을 이어가던 양사는, 2004년 액토즈소프트가 위메이드를 상대로 제기한 서울중앙지방법원 2003카합4191호 사건에서 재판상 화해를 이뤄내면서 어느 정도 합의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 2004년 위메이드(원고)와 액토즈소프트(피고) 사이에 성립된 재판상 화해의 주요 내용(자료출처 :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가합562160 판결문)

2017년 다시 시작된 저작권 분쟁

2004년 재판상 화해를 통해 다소 잠잠했던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 사이의 법적 분쟁은 2017년 SLA 계약 연장 계약 기간이 도래하면서 다시 발발했습니다.

양사의 새로운 분쟁은 액토즈소프트와 SLA를 체결한 샨다게임즈 측(SLA 계약 체결 이후 샨다게임즈가 가진 SLA 계약에 관한 권리도 다른 회사들에 순차적으로 양도됐으나 편의상 ‘샨다게임즈 측’이라고 표현합니다)이 중국 내 불법 게임업체를 전부 단속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불법 게임업체에 라이선스를 부과해 로열티를 받는 형태로 관리하면서 다시 시작됐습니다.

위메이드는 액토즈소프트에 이러한 샨다게임즈 측의 저작권 침해행위가 시정되지 않는 이상 SLA 갱신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히며, 2017년 6월 27일 액토즈소프트를 상대로 법원에 계약갱신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액토즈소프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2017년 6월 30일 샨다게임즈 측과 SLA에 대한 연장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 2017년 액토즈소프트(좌)와 위메이드(우)의 미르의 전설 2 저작권 분쟁은 다시 시작된다 (사진제공: 액토즈소프트/위메이드)

이후,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 사이에서 SLA 연장계약이 유효인지 무효인지를 두고 커다란 싸움이 벌어지게 됩니다. 두 회사는 이와 관련해 총 3곳에서 법적 판단을 받았는데요, 중국과 대한민국의 법원, 그리고 싱가포르에 위치한 ICC 국제상공회의소입니다. 먼저, 중국에서는 2021년 위메이드가 제기한 해당 계약의 무효 확인 청구에서 위메이드 측 청구에 대해 패소 판단을 내렸습니다. 대한민국 대법원에서도 올해 중국과 마찬가지로 위메이드 상고를 모두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한편, 2023년 싱가포르 ICC에서는 액토즈소프트와 샨다게임즈가 체결한 SLA 연장 계약이 무효라고 보아 위메이드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여기에 대해 액토즈소프트가 2024년 1월 22일 ICC 중재 판정문에 대한 취소소송을 취하하면서 ICC 중재 판정도 확정됐습니다.

즉, 표면적으로는 양국의 법원과 국제중재재판소가 다른 판단을 내린 것처럼 보이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조금 상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법원 판단에서 '각하'와 '기각'의 차이

먼저, 이 부분을 이해하려면 법률적 용어인 ‘각하’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각하’라는 것은 법원에서 검토할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해서 사안을 검토하지 않고 돌려보낸다는 의미입니다. 법원에서 사안을 검토한 후 원고 주장이 이유 없다고 판단하는 ‘기각’과는 구분됩니다.

그리고, 2021년 1월 28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선고된 판결문을 살펴보면 위메이드가 액토즈소프트를 상대로 청구한 'SLA 연장 계약이 무효임을 확인해 달라'라는 청구에 대해서 고등법원은 아래와 같이 '각하'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 SLA 연장계약의 무효에 대한 확인을 구하는 위메이드(원고)의 청구에 대하여 ‘각하’ 판단을 내린 항소심 판결문(자료출처 : 서울고등법원 2019나2049565 판결문)

법원의 각하 판단 근거를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법원이 보기에 위메이드 측이 이미 싱가포르 ICC 국제상공회의소의 중재판정을 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외국에서의 중재판정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장차 국내법원에 의하여 승인되어 국내 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게 되므로, 굳이 중재판정을 진행하면서 대한민국 법원에서까지 SLA 연장 계약이 유효한지를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다소 생소할 수 있으나, 우리 법상 어떠한 법률관계의 확인만을 구하는 소송을 ‘확인의 소’라고 하는데, 이러한 확인의 소는 당사자 사이의 법적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유효하고 적절한 수단이어야만 제기할 수 있습니다.

즉, 법원이 보기에는 위메이드가 SLA 연장 계약과 관련한 법적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손해배상까지 포함한 ICC 중재판정에서 해결하는 것이 대한민국 법원에 확인의 소를 제기하는 것보다 더 유효하고 적절한 수단으로 판단된다는 것이죠.

이에 대해서 위메이드 측은 대법원에 2심 법원의 판단과는 달리 국내 법원에서 SLA 연장 계약의 무효여부를 판단 받는 것이 법적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유효하고 적절한 수단이라는 취지로 상고를 제기했고, 대법원은 2024년 4월 25일,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의 각하 판단이 잘못된 것이 없다는 취지로 위메이드의 상고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결국, 대법원 판결문만 보면 일견 법원이 위메이드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SLA 연장계약’의 유효 여부에 대해서는 우리 법원이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고 ‘각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 위메이드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 대법원 판결의 이유 (자료출처: 대법원 2021다215978 판결문)

SLA 연장계약과 관련한 분쟁의 승자 위메이드

한편, 앞서 살펴보았듯, 2021년 7월 31일 ICC에서는 SLA 연장계약이 무효라는 점을 확인하고, 액토즈소프트 측에게 위메이드 측에 합계 약 2,500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2024년 1월 22일 액토즈소프트가 ICC 중재 판정문에 대한 취소소송을 취하하면서 ICC 중재 판정도 확정됐습니다.

ICC와 같은 국제 중재판정은 조약에 따라 국내 법원에서의 승인 절차를 거쳐 국내 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게 됩니다. 위메이드가 이러한 ICC 중재 판정문에 따라 액토즈소프트를 상대로 판정문에 따른 돈을 지급받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입니다.

▲ ICC에서 선고된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 사이의 중재 판정문 요약본 (자료출처 : 싱가포르 대법원 홈페이지)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위메이드의 상고를 기각한 것을 이유로, 대한민국 법원에서는 액토즈소프트와 샨다게임즈 간 SLA 연장 계약이 유효하다고 판단했기에 위메이드의 집행이 어려울 것으로 오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 대법원은 2심인 서울고등법원의 각하 판결을 확인하였을 뿐, SLA 연장계약 유효 여부에 대해서는 별도 판단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항소심에서도 장차 ICC 중재 판정이 내려질 것을 이유로 SLA 연장계약의 유·무효 여부에 대한 위메이드의 청구를 각하한 만큼, 우리 법원의 입장은 ICC 중재 판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에 가깝습니다. 결국, SLA 연장계약과 관련한 분쟁의 승자는 위메이드로 보입니다. 그것도 2,500억 원이 넘는 큰 액수로 말이죠.

하지만,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의 분쟁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이번에 알아본 사건과는 반대로 액토즈소프트가 위메이드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제기한 소송도 다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차회에는 액토즈소프트가 위메이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중 최근 2024년 5월 9일,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2020다250561 사건에 대해 알아보고, 향후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 간 저작권 분쟁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예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