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zip] 액토즈는 미르 2 배상금을 받을 수 있을까?

▲ 액토즈소프트 CI (사진제공; 액토즈소프트)

지난 편에서는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 사이에 있었던 20여 년간 이어진 소송전 개요를 살펴보고, 싱가포르 ICC 중재 판정에 따라 약 2,500억 원이 넘는 판결금을 거머쥔 위메이드가 종합적으로 양사 간 저작권 분쟁에서 승리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짚어봤습니다.

그러나,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 간 저작권 분쟁은 소송으로 나아간 것만 하더라도 수십 건이 넘으며, 그 중 게임산업과 관련된 법적으로 의미가 있는 판례들도 다수 선고됐습니다.

지난 편에서는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가 긴 소송기간 동안 물적분할, 법인 인수 합병 등 다양한 변동이 일어났음에도 이해의 편의를 돕기 위해 위메이드와 관련된 법인들을 단순히 ‘위메이드 측’으로 표현했는데요.

이번에 살펴볼 2024년 5월 9일, 대법원에서 선고된 2020다250561호 사건의 판결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메이드가 물적분할을 통해 전기아이피라는 회사를 설립한 과정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르 IP 사업 분할, ‘전기아이피’의 설립

▲ 전기아이피 대표 이미지 (사진출처: 전기아이피 공식 홈페이지)

지난 편에서도 살펴보았듯,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 사이의 저작권 분쟁은 위메이드 박관호 의장이 액토즈소프트를 퇴사한 후 위메이드를 설립해 미르의 전설 2를 개발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법적 분쟁을 이어가던 양사는 2004년 액토즈소프트가 위메이드를 상대로 제기한 서울중앙지방법원 2003카합4191호 사건에서 재판상 화해를 이뤄내면서 어느 정도 합의점에 도달했는데요. 이후 2017년 5월에 위메이드는 미르의 전설 관련 IP 사업 부분을 분리해 전기아이피의 주식 100%를 위메이드가 배정받는 방식, 즉 단순 물적분할을 통해 ‘전기아이피’라는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이 결과로, 위메이드가 가지고 있던 미르의 전설 저작권을 포함한 IP 재산 일체는 전기아이피라는, 법적으로는 완전히 별개인 법인이 가져가게 됐습니다.

액토즈소프트, 전기아이피에 대한 민사소송 제기

이렇게 물적분할로 설립 된 전기아이피는 2017년 6월부터 2018년 5월까지 약 1년간 중국 회사 13곳과 미르의 전설 저작권을 이용해 모바일게임 또는 웹게임을 개발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내용으로 약 400억 원 규모의 저작권 이용허락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뒤에서도 살펴보겠지만,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 사이에는 2004년 화해하면서 작성한 합의서에 따라, 미르의 전설 IP와 관련해 수익이 발생하면 이를 위메이드와 액토즈가 8 대 2로 나누기로 했습니다.

전기아이피는 위 계약에 따라 저작권 이용허락 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 체결일 전후로 액토즈소프트에 계약서를 보내는 방법으로 연락했는데요. 이에 대해 액토즈소프트는 전기아이피가 이용을 허락할 계약 상대방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거나, 계약을 체결하고 사후에 통보한 것은 효력이 없다는 취지 등의 이유를 대면서 전기아이피 측이 중국 회사들과 체결한 미르의 전설 저작권 이용허락 계약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액토즈소프트는 2017년 11월 6일 전기아이피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저작권침해정지 소송(2017가합576442)을 제기했습니다. 액토즈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위메이드가 전기아이피를 설립해서 중국의 회사들이 미르의 전설과 관련된 모바일 게임 등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액토즈소프트의 저작권을 침해한다”는 것입니다.

▲ 액토즈소프트가 전기아이피를 상대로 제기한 2017가합576442 저작권침해정지 청구 소송의 청구취지(자료출처 :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가합576442 판결문)

소송에서 ‘주위적 청구’와 ‘예비적 청구’의 의미

이 사건 판결문의 판단을 설명하기에 앞서 법률적 용어인 ‘주위적 청구’와 ‘예비적 청구’에 대해서 간단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이 사건에서 액토즈소프트가 위메이드가 전기아이피라는 법인을 설립한 행위 자체를 인정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생각해봅시다. 이 경우, 액토즈소프트는 법원에 “위메이드가 전기아이피를 설립해 미르의 전설 IP와 관련된 재산권을 이전한 것은 무효이므로, 전기아이피가 혼자서 미르의 전설 IP로 중국 회사들과 계약을 체결한 것은 나(액토즈소프트)에게 있어 불법행위이므로 전기아이피가 받은 돈의 일정 부분을 손해배상으로 받게 해달라”라고 청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만 청구하면 법원에서 “위메이드가 전기아이피를 설립하여 미르의 전설 IP와 관련된 재산권을 이전한 것은 유효하다”라고 판단할 경우, 액토즈소프트는 소송에서 지고 아무것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이에 액토즈소프트는 추가적으로 “전기아이피가 유효하게 설립되었다고 하더라도 나(액토즈소프트)도 미르의 전설 저작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전기아이피가 받은 돈의 일정 부분을 받게 해달라”라고 다시 법원에 새로운 소송을 제기해야 합니다.

이 경우 필요한 것이 ‘주위적 청구’와 ‘예비적 청구’인데요. 주위적 청구와 예비적 청구는 원고가 여러 주장에 대해 순서를 붙여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뜻합니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조금 더 복잡하지만, 이 사건에서 액토즈소프트는 주위적으로는 ‘위메이드가 전기아이피를 설립하여 미르의 전설 IP를 넘긴 것은 무효이고, 따라서 전기아이피가 받은 돈의 50%를 액토즈소프트에게 지급하여야 한다’라고 청구했습니다. 이어서 예비적으로, ‘만약 전기아이피가 미르의 전설 IP를 위메이드로부터 적법하게 승계하였다고 하더라도, 액토즈소프트는 저작권자로서 50%를 전기아이피로부터 받을 수 있다’라고 덧붙여서 청구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법원은 액토즈소프트가 주위적으로 청구한 내용부터 판단한 후, 주위적 청구가 타당하다면 예비적 청구에 대해서는 살펴볼 필요 없이 액토즈소프트의 주위적 청구를 받아들이는 판결문을 작성하면 됩니다. 주위적 청구가 옳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그때서야 예비적 청구에 대해서 심판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기아이피에 대한 1심 및 2심의 판단은?

이 사건에서 1심 및 2심은 모두 액토즈소프트의 주위적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즉, 1심과 2심에서 법원은 대한민국 법률을 적용하여 ‘위메이드가 전기아이피를 설립해서 미르의 전설 IP 재산권을 이전한 것은 적법하다’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어서 액토즈소프트의 예비적 청구에 대해서는 ‘액토즈소프트 또한 미르의 전설 저작권자로서 수익을 배분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보면서도, “2004년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 사이에 재판상 화해를 거치면서 체결한 합의에 따라 전기아이피가 수익의 80%, 액토즈소프트가 20%를 배분받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결론내렸습니다.

액토즈소프트는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면서 전기아이피에게 약 400억 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 중 약 80억 원만 인정한 셈입니다.

▲ 2004년 위메이드(원고)와 액토즈소프트(피고) 사이에 성립된 재판상 화해의 주요 내용(자료출처 :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가합562160 판결문)

준거법과 관련된 대법원의 판단

그런데, 지난 5월 선고된 대법원의 판단은 조금 달랐습니다. 먼저 액토즈소프트의 주위적 청구와 관련해 1심과 2심에서 대한민국 법률을 적용한 것을 문제로 삼았습니다.

대법원은 '미르의 전설의 저작권을 국내 저작권과 중국 내 저작권으로 구분한 뒤, 위메이드가 물적분할을 통해 전기아이피에게 미르의 전설의 국내 저작권을 승계한 것은 문제가 없지만 중국 내 미르의 전설 저작권을 이전한 것에 대해서는 중국법을 적용하여 심판하여야 한다’라고 판단한 뒤, 중국법을 적용해 이 사건을 다시 판단해보라는 취지로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즉,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주요 쟁점인 '전기아이피가 위메이드로부터 중국 내 미르의 전설 저작권을 적법하게 이전받았는지' 내지는 '액토즈소프트가 전기아이피에게 지급받아야 할 돈은 얼마인지' 등에 대해서는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은 셈입니다.

▲ 7년이 걸린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 대법원의 판결문(자료출처 : 대법원 2020다250561 사건 판결문)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 법적 분쟁의 향방

액토즈소프트가 소송을 제기한지 7년이라는 긴 시간 지나 내려진 판결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번 대법원 판결문은 일견 아쉬운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준거법, 즉 어떠한 법적 분쟁의 해결할 잣대가 되는 법을 어떤 나라 것으로 정할지는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액토즈소프트가 전기아이피를 상대로 제기한 이 사건 소송은 다시 서울고등법원으로 돌아가 판단을 받게 되어 최종적인 대법원 판단이 나오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액토즈소프트가 전기아이피로부터 얼마를 받아갈 것인가'라는 결과는 이미 스포일러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법을 적용해 법원에서 액토즈소프트의 주위적 청구를 받아들이며 전기아이피가 위메이드로부터 유효하게 미르의 전설 중국 내 저작권을 이전받지 못했다는 판단이 나오더라도, 이로 인해 액토즈소프트가 입은 손해는 2004년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 사이에 재판상 화해를 거치면서 체결한 합의에 따라 8 대 2, 즉 약 80억 원이라는 기존 결정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에 근래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 사이에 형성되는 화해 분위기에 따라 액토즈소프트가 이 사건 소를 취하하거나 소송 중 조정 내지는 화해가 이루어지는 등의 방식으로 이 사건이 마무리될 확률도 높습니다.

지난 편과 이번 편에서는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 간 수많은 소송 중, 위메이드가 원고인 소송과 액토즈소프트가 원고인 소송에서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소송을 하나씩 뽑아서 살펴봤습니다. 두 회사 간 법적 분쟁도 이제는 마무리되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서로 오랜 기간 분쟁을 벌여온 만큼, 잘 정리된 다음에는 소송에 쓰였던 자원들을 활용하여 재밌고 좋은 게임을 많이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