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구한 후 맞이한 아침, 파판14: 황금의 유산
게임메카 신재연 기자
2024.12.12 18:22
지난 2022년 출시된 파이널 판타지 14 효월의 종언은 하이델린-조디아크 사가를 끝맺는 이야기로서 장엄한 결말과 이별을 맞이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처럼, 희망을 품고 세상의 끝에서 종언을 이겨낸 모험가는 자신의 손으로 평화를 쟁취했다. 이후 6.1 업데이트부터는 새로운 모험을 준비하는 듯한 전개를 이어나가며 기대를 높였다.
그리고 약 2년 반 만에 새로운 모험인 황금의 유산이 업데이트됐다. 개발진은 이를 모험가의 바캉스라고 표현한 바 있는데, 실제로 만난 황금의 유산은 단순한 ‘휴식’에 그치지 않았다. 후학을 양성하는 모습의 에피소드를 필두로 한 새로운 시작은, 지금까지의 이별을 의미 있게 서술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 이 리뷰는 '황금의 유산'의 전개와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으므로, 원치 않으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시길 바랍니다.
죽은 자들의 유산과 산 자들의 유산 ‘황금향’
황금의 유산의 배경은 신대륙 중 하나인 투랄 대륙으로, 현실의 아메리카 대륙과 유사한 환경을 지니고 있다. 플레이어는 열대우림과 고산지대, 개척 중인 사막 지대와 예상치 못한 미래의 풍경 등을 맞닥뜨리며 ‘황금향’에 대한 비밀을 찾아나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제작진은 끊임없이 문화의 차이와 대화, 그리고 앎을 강조한다.
다만 그 메시지에 비해, 사전에 플레이어가 각 캐릭터를 알아갈 시간은 거의 제공하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우크라마트와 왕권을 두고 겨루는 인물들의 내적인 면을 조망하기 어려웠고, 플레이어 설득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나치게 길게 이어지는 컷신으로 인해 플레이어가 주도적으로 진행을 멈추기 어려워 피로를 누적시킨 것도 영향을 끼친 듯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이라는 철학적인 이야기를 각 캐릭터들이 성장하는 서사와 엮어내는 과정을 보며 피로를 씻어낼 수 있었다. 보다 세밀하게 설명하자면 삶과 죽음, 그리고 누군가가 남긴 각자의 유산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이는 유사한 주제로 전개된 파이널 판타지 9를 오마주한 요소로 더욱 명징해진다. 신규 직업인 바이퍼와 파이널 판타지 9의 주인공의 특징이 연관되는 점, 특정 지역의 명칭, OST 편곡 등이 그 예시다.
이는 효월의 종언까지 거대한 숙명을 이겨내기 위해 많은 죽음을 마주했던 유저들에게도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떠나 보내는 일과 기억하는 일은 공존할 수 있고, 산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돌아보게 만든다.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메시지를 곳곳에 배치하며, 함께 살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이런 메시지들이 종합되며, 새벽을 지나 황금빛 아침을 맞이한 모험가와 그 동료들이 유대를 더욱 강화함은 덤이다.
개선된 그래픽과 세밀화한 컷신 연출, 감정선 더욱 높였다
이번 업데이트에서 눈여겨 볼 부분으로는 비주얼 강화로 세계의 생동감이 더욱 살아났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전반적인 빛 묘사가 더욱 뚜렷해졌으며, 맵의 밀도도 높아져 마을을 돌아다니는 동안 해당 NPC와 캐릭터만 서있는 듯한 위화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피부 텍스쳐나 악세서리의 텍스쳐가 세분화 돼, 다소 밋밋하게만 느껴지던 등장인물들의 착장에도 개성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표정이다. 단순한 몸동작과 입 움직임, 미묘한 변화를 보여주는 페이셜 액팅이 더욱 세분화됐다. 눈썹이 비딱해지거나 감정이 동요할 때 눈동자가 흔들리는 요소, 혹은 곁눈질을 하거나 당황할 때의 모습 등 전반적인 연출들이 더욱 보강돼 각 인물의 감정선을 이해하는 일에 큰 도움을 준다.
‘정리정돈’에 집중한 직업 밸런스와 콘텐츠 조정
파이널 판타지 14는 전투 아이콘 개수를 게임 패드 버튼 수에 맞추기 위해, 새 스킬이 추가되는 매 확장팩마다 일부 스킬을 변화, 삭제하는 방식으로 조정해온 바 있다. 이를 위해 특정 직군의 전투 매커니즘이 완전히 바뀌는 경우도 잦았다. 그러나 이번 확장팩은 간소화에 집중한 조정이 두드러졌다. 일부 직군의 경우 운용 난이도 하향으로 진입장벽이 낮아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신규 직군 또한 간소화에 집중한 듯, 실제 사용 가능한 전투 아이콘의 개수는 매우 적다.
물론 간소화와 획일화는 다른 만큼 일부 요소에는 아쉬움이 있다. 예시로는 점성술사의 카드 뽑기 리워크가 존재한다. 첫 출시 당시 다양한 효과를 가진 카드를 상황에 따라 활용하는 무작위성으로 플레이어의 판단이 중요했던 점성술사는 매 확장팩을 거치면서 구조가 간소화됐다. 다만 당시에도 카드 뽑기의 무작위성을 중시하는 구조는 남아있었는데, 이번 리워크를 통해 그 특성이 완전히 소거되며 직군이 가진 재미와 특징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채집 및 제작은 편의성에 집중했다. 제작에서는 버프 스킬의 효율이 크게 늘어나 제작 장비의 스탯 조절이 더욱 유연해졌고, 신규 특성인 ‘촉진’을 통해 CP 조절이 편리해졌다. 더해 채집에서는 91레벨에 만날 수 있는 ‘재발견’ 특성으로 간혹 해당 포인트의 채집 횟수와 GP를 모두 회복돼 채집 난도가 대폭 낮아졌다. 어부 직군에서는 특정 물고기를 낚아야만 발동하는 생미끼 낚시를 자유로운 시점에 사용할 수 있도록 생미끼 보관 스킬인 ‘예비 미끼’로 편의성을 높였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유산이 남긴 것은 ‘후배 모험가’였다
지난 확장팩에서 아쉬운 평을 들은 번역도 크게 개선된 모습이었다. 인터뷰에서도 공개된 바 있듯, 하이에나와 스킬명의 완역과 직역은 몰입도를 해치지 않았다. 특히 종교적, 철학적, 의학적 요소가 많았던 리퍼 및 현자의 스킬과 달리 신규 직업인 픽토맨서와 바이퍼의 스킬명은 다소 길기는 해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요소들로 구성됐다. 이에 직업의 메커니즘 이해도도 크게 완화됐다.
종합하자면, 황금의 유산 출시 이후 언급됐던 문제점들은 구조의 문제에 가까웠다. 제작진은 굴루쟈쟈의 입을 빌려 모험가가 선배로서 우크라마트의 견문을 넓이는 조력자로 힘써달라 말했지만, 이 과정에서 마주한 일부 요소들이 유저들의 몰입을 다소 어렵게 했다.
그러나 많은 선배 모험가들의 힘을 빌려 주인공 모험가가 세상을 구했듯, 선배 모험가의 도움으로 하여금 성장하는 후배 ‘우크라마트’를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 세계의 끝에서 세상을 구한 모험가가 새로운 후배 및 동료들과 어떤 이야기를 그려나갈지 기대를 모으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