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인터뷰가 있어 서울 마포구 상암동을 찾았다. 대다수의 게임 업체가 강남과 판교에 몰려있기에 사실상 이곳에 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더욱이 이번 인터뷰이는 예능 담당 PD다. 사원에서 업체 대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계자를 만나봤지만, 방송국 예능 PD는 사실 처음이다.
그는 사실 비디오 게이머라면 알만한 사람은 아는 인물이기도 하다. 모 게임 커뮤니티 게시판에 오랜 시간 활동해온 유저이자 방송 홍보도 병행했는데, 크게 반응이 없자 자신이 해당 방송의 PD라며 실명까지 인증한 독특한 일화도 있다. 그렇게 인터뷰에 앞서 서로 마주 앉아 게임에 관한 담소를 나누다 소니와 MS가 선보일 두 차세대 게임기 중 무엇을 구매할 생각이냐고 물었는데 “하나만 구매하면 아쉬우니 둘 다 구매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 tvN 'SNL 코리아' 속 화제의 코너 'SNL게임즈'를 만든 김민 PD
이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의 그가 방송국 PD라는 생소한 사람이 아닌, 방송 제작일을 하는 게이머라는 친근한 느낌을 받았다. 바로 tvN ‘SNL코리아’의 화제의 코너 ‘SNL게임즈’를 만든 김민 PD가 이번 인터뷰이다.
'SNL 코리아'에서 게임 전도사로 활약 중인 김민 PD
2009년 CJ E&M 예능 PD로 입사해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조연출과 연출을 거친 김민 PD는 ‘SNL코리아’ 팀에서 게임 전도사로 통한다. 더불어 친한 작가를 비롯한 직장 동료 중에도 게이머가 많아 서로 정보도 공유하면서 게임 타이틀도 빌려주는 등, 나름대로 교류가 활발하다고 한다.
▲ 'SNL 코리아' 로고 위에 자리한 'GTA 5' 스티커가 인상적인 김민 PD의 수첩
“SNL게임즈에서 열연한 (김)민교형도 ‘언차티드’ 시리즈의 열성 팬이다. 이에 같은 개발사의 신작인 ‘더 라스트 오브 어스’를 비롯한 다양한 게임을 빌려준 적도 있다. 그러다 곧 엄청난 게임이 나온다고 알려주었다. 그 게임이 ‘GTA 5’로, 나 역시 발매 당일 국전에서 줄을 서서 구매했고 방송 기간에도 다른 이들과 경쟁하듯이 즐겼다”
'SNL게임즈'는 웃음과 메시지 그리고 오마주의 결과
‘GTA’는 게임성에서 두말없는 대작이자 논란도 뒤따르는 문제작이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사회악처럼 묘사해 국내에 출시되는 것만으로 문제가 되듯이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을 상대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방송국에서 ‘GTA’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을 내보낸다고 했을 때 의견 충돌은 없었을까?
“게임을 소재로 풍자하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기획해왔다. 그것이 방송에 선보인 게 ‘GTA’인 셈인데, 국장도 게임에 대해선 익히 알고 있었다. 이에 우려와 달리, 뜻밖에 해보라고 말해서 순조롭게 진행됐다. ‘SNL 코리아’팀의 게임에 대한 인식은 호의적이다(웃음)”
그렇게 시작된 ‘SNL게임즈’는 단순히 웃음만 주는 것이 아니라 풍자를 지향했다. 웃음과 더불어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았다는 의미다. 특히 ‘GTA 조선’ 끝에 ‘게임을 하니까 네가 폭력적으로 되는 거야’는 말과 함께 체벌을 가하는 엄마를 향해 ‘엄마가 더 폭력적이야’라는 아들의 대사가 나오기도 했다.
“어떤 콘텐츠든 폭력성이 있는데, 게임만 유독 편중된 시선이 많았다. ‘GTA 조선’ 속 정명옥은 한국의 전형적인 어머니상을 연기했다. 이에 ‘엄마가 더 폭력적이야’라는 대사를 통해 이 같은 시선을 해학적으로 돌려 표현했다”
▲ 엄마의 폭력성(?)에 대해 해학적으로 돌려 표현하기도 (이미지 출처: 'GTA 조선' 영상 캡쳐)
“어떤 방송이든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기획하지는 않는다. ‘SNL게임즈’의 시작인 ‘GTA 조선’ 역시 실험에 가까웠다. 다행히 반응이 좋았기에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만들면서 임한 감정은 단순 패러디가 아닌, 오마주(존경)에 가까웠다”며 한 명의 게이머로서의 만족에 대해서도 피력했다”
첫 회만으로 크게 호평을 받으며 꾸준히 ‘GTA OO’ 시리즈를 이어가던 김민 PD는 ‘GTA 5’의 국내 유통사에 연락을 받았다. 당시 염려했던 저작권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 아닐까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사실 저작권 문제로 불거지지 않을까 걱정됐다. 그래서 그랜드 세프트 오토(Grand Theft Auto)가 아니라 그랜드 세프트 어텀(autumn)으로 제작했다. 나름 저작권과 관련해 피할 방도(?)는 갖추고 시작했다. 다행히 통화는 잘 봤다는 감사의 인사였고, 프랭클린(캐릭터)이 썼던 모자나 반려 동물 목줄 등 ‘GTA 5’ 관련 상품을 받았다. 모자의 경우 민교형이 직접 쓰고 촬영하기도 했으며, 목줄은 게임 내 등장하는 애완동물 촙의 것과 같다. 현재 민교형의 반려견에게 채워진 것으로 안다”
▲ 오토(Auto)가 아니라 어텀(autumn)! 시청자들을 즐겁게 한 타이틀을 모아 찰칵
▲ 특히 'GTA 조선' 케이스 안에는 대동여지도도 수록됐다
또한, 김민 PD는 ‘GTA’ 시리즈를 이어가다 캡콤의 서바이벌 호러게임 ‘바이오하자드(레지던트 이블)’를 소재로 한 ‘레지던트 이불’도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오마주가 과했던 탓일까? 시청자들의 공감을 크게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반응은 다소 기대 이하였다.
“’레지던트 이불’을 만든 건 ‘GTA’만 이어가기에 한계가 있었고 ‘SNL게임즈’ 답게 저변을 넓히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됐다. 타이틀명은 영화로도 나온 ‘레지던트 이블’이 더 친숙하게 느껴져서 결정했고, 이불이라는 소재를 더해 최종 완성됐다. ‘GTA’와 비교해 반응은 덜 했지만, 오마주 면에서 개인적인 만족도는 가장 크다”
▲ 김민 PD가 개인적으로 만족도가 가장 크다고 밝힌 '레지던트 이불'
촬영에 따른 고충, 그리고 애드리브가 낳은 역사적인 장면
오마주에서 비롯된 ‘SNL 게임즈’, 하지만 방송은 김민 PD만의 노력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출연자를 비롯한 수많은 스텝의 노력이 이뤄낸 결실이다. 무엇보다 촬영 방법이 일반적인 기법이 아닌, 최대한 게임답게 진행해야 했기에 남다른 고충도 있었다.
“카메라, 조명, 보조 출연자들에게 대본이나 말로 설명하긴 불가능했다. 그래서 촬영 전에 플레이 영상을 보여주며 이렇게 찍으면서 쫓아다녀 주십사 이해토록 했다. 처음엔 당연히 힘들었지만, 대부분 남자 스텝이고 ‘GTA’를 몰라도 게임을 안 해본 사람은 없으니 금방 이해하더라”
그렇게 시작된 ‘SNL게임즈’ 촬영은 대본에 의한 웃음도 있었지만, 연기자가 즉석에서 선보인 애드리브도 상당히 많다고 한다. 김민 PD는 애드리브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SNL게임즈’에 특히 애착을 보인 두 크루들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카스 2 임진왜란’에서 임요환의 ‘콩은 까야 제맛이지’ 역시 애드리브다. 초기 대본에는 대사가 거의 없이 마린, 벌처, SCV 목소리만 조합해 꾸밀 생각이었다. 그래도 한 마디 정도는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부탁한 것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확신이 없었고 긴가민가했다. 일단 촬영은 했고 모니터링을 하는데, 이건 대중들의 이해도를 떠나 정말 역사적인 장면이라는 느낌이 와 결국 방송에 내보내게 됐다”
▲ 그렇게 탄생한 역사적인 장면 '콩은 까야 제맛이지' ('카스 2 임진왜란' 방송 영상 캡쳐)
“그리고 서유리씨가 특히 ‘SNL게임즈’에 대한 애착이 컸다. 게임 내 목소리(성우)도 도맡았고, 게임과 관련해서는 절대 자신이 프로그램에서 빠져서는 안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여기에 민교형도 게이머인지라, 촬영 중 새로운 아이디어나 애드리브를 자주 선보였다. 깻잎도 그랬고 풀뿌리를 뜯어다가 불로초로 활용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민교형과 서유리. 두 사람이 ‘SNL게임즈’에 가장 이해도가 빠르고 정말 잘했다”
편집된 주옥 같은 장면들, 그리고 임요환의 프로토스 플레이
‘SNL게임즈’의 방영 시간은 평균 5분 남짓이다. 온종일 촬영을 하면서 많은 장면을 확보하지만, 방송 분량상 편집이 불가피하다. 아쉽게 일반에 공개되지 못한 주옥같은 장면들, 그리고 촬영 중 있었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공개했다.
“방송 중 잠깐 나왔던 ‘메탈기어 송 병장’은 사실 행정보급관(행보관)을 피하는 ‘GTA 군대’의 프리퀄로 기획했었다. 실제 ‘GTA 군대’에서 행보관을 피해 박스를 쓰고 도망치는 잠입 액션 느낌으로 찍기도 했다. 원작 ‘메탈기어 솔리드’ BGM을 더해 제대로 선보일 생각이었는데 그 분량만 1분이 넘더라. 극 흐름상 어쩔 수 없이 편집할 수 밖에 없었다”
“‘레지던트 이불’에서는 크루인 서유리와 권혁수씨가 좀비로 열연한 장면도 있었다. 창호지 뒤에 숨어있다가 지나가는 민교를 덮치는 장면인데, 정말 잘 찍었고 현장에서 박수도 나왔다. 그런데 편집을 하다 보니 이것이 개그인지 공포영화인지 모를 만큼 너무 사실적으로 나왔더라. 결국, 방송에서는 통편집할 수 밖에 없어 두 사람에게 정말 미안했다”
▲ 김민교와 함께 'SNL 게임즈'에서 활약한 권혁수(좌)와 서유리(우) (사진 출처: 서유리 SNS)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카스 2 임진왜란’ 촬영 장소인 PC방이 정말 명소가 됐다는 것이다. 촬영 지연이 돼 홍진호와 임요환이 촬영이 시작될 때까지 손님들 사이에서 게임을 즐겼다. 이 둘이 동네 PC방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으니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극중 게임가게 주인아저씨로 나오는 김원해씨가 ‘스타크래프트’를 즐기고 있었는데, 플레이가 답답했는지 임요환이 직접 하겠다고 자리를 뺏기도 했다. 그때부터 손님들이 몰려들어 구경했다. 나 역시 촬영 준비고 뭐고 일단 가서 봤다. 임요환이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테란이 아닌 프로토스를 하고 있더라(웃음)”
SNL게임즈, 내년에도 계속된다
지난 11월 23일, ‘SNL코리아’는 시즌 4의 대장정을 마치고 다음 시즌을 기약한 상태다. ‘SNL코리아’ 홍보는 물론, 게임에 대한 긍정적인 면도 알린 ‘SNL게임즈’를 다음 시즌에서도 계속 볼 수 있을까?
“내가 계속 ‘SNL게임즈’를 맡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찍으면서 참 행복했고, 대중적으로도 인지도를 많이 올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게임에 대한 공감대(소재)는 앞으로 더 활용해도 될 것 같다. 다만, 매주는 아니고 간헐적으로 등장할 것 같다. 앞으로 내가 어떤 게임을, 또 어떤 패러디를 하게 되었든 이건 해당 게임에 대한 오마주로 알아주었으면 한다. 앞으로도 다양한 시도를 해볼 테니 기대해주셨으면 좋겠다”
▲ 참고로 김민 PD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어쌔신크리드 2'다
어쩌면 다음 시즌 'SNL게임즈'에서는 후드를 쓴 암살자가 나올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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