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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 끼가 넘쳐 흐른다 ‘홍대 앞 개발사’ 바이닐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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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 인디밴드 맴버, 유명 밴드 인큐베이팅 대회 우승팀, 잘나가는 락페스티벌 기획 및 연출자까지……. 왠지 한쪽으로 집중된 이력을 자랑하는 듯한 사람들이 모였다.

경력만 보면 이들이 일하는 곳은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일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모바일게임 개발자다. 스타트업 바이닐랩은 총 8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개발사다. 최근개발 중인 리듬게임 ‘라디오해머’ 테스트버전을 대중들에게 공개하며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소개한 이력에서도 독특함이 느껴지는데, 그 외에도 주목할 것들이 있다. 먼저 게임 개발사들이 많이 모여 있는 강남이나 구로, 판교가 아닌 홍대 어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사무실에는 컴퓨터 외에도 핸드드럼이나 키보드, 기타까지 많은 악기가 존재한다. 아직 출시된 게임은 없고……, 구성원의 면면을 살펴보면 개발보다는 왠지 밴드활동을 하고 있다는 게 더 신뢰가 간다.

어쩐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숨기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스타트업 바이닐랩. 게임메카 사무실과는 불과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바이닐랩의 사무실을 직접 방문했다.

홍대 옆 합정에 있는 바이닐랩의 사연

상수동 조용한 카페와 음식점들 사이에 바이닐랩의 사무실이 있다. 역시나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그렇듯 사무실 입구라기보다 가정집 같은 현관문에 잠시 당황하는 척 해주었다.

내부에 들어가니 다른 개발사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장비가 보였다. 입구에는 신시사이저가 맞아주었고, 구석구석 악기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컴퓨터야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장비였지만, 기타 세 대와 핸드드럼이 있는 사무실이 어디 흔한가? 

하지만 바이닐랩의 직원은 사무실이 지저분한 것이 신경 쓰였는지 구석구석 관심을 보이는 기자를 끌고 인근 카페로 나가자고 재촉했다.


▲ 기자를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신시사이저였다


▲ 콘솔 게임기는 익숙하지만 핸드드럼은 충격이었다

잠시 후 바이닐랩의 나동현 대표가 도착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카페가 다소 특이해서 분위기가 좋다고 운을 뗐는데, 나 대표는 카페가 좋아서 합정에 사무실을 냈다고 답했다. 농담처럼 지나가듯 말했지만, 이곳에 자주 온다는 말까지 들으니 왠지 진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중에는 사무실을 내고 카페도 같이 운영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카페가 좋다는 말과 사무실에서 많은 악기를 봤기 때문일까? 바이닐랩이 합정에 있는 이유는 취미생활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지 추측했지만, 나동현 대표는 전혀 뜻밖의 대답을 들려줬다.


▲ 바이닐랩의 나동현 대표

나동현 대표는 회사가 합정에 있는 이유로 브랜드가치를 강조했다. 회사를 브랜드화하려면 그 안에 다양한 코드를 내포해야 하는데, 그중에는 공간도 소중한 요소라는 것이다. 게임과 음악적 감성을 결합해 리듬액션 게임을 만들려는 바이닐랩에게 홍대나 합정 같이 공연문화가 자리 잡은 지역은 적격이었다.

이런 특징은 개발사 이름에서도 잘 나타난다. 바이닐랩은 래코드판을 일컫는 단어 ‘바이닐’과 연구소를 뜻하는 단어 ‘랩’의 합성어다. 음악을 좋아하는 직원들이 음악 관련 용어를 회사 이름에 사용하기 원했고, 그 결과 개발사의 이름에 ‘바이닐’이 들어갔다. 다른 하나 ‘랩’이라는 글자에는 게임 개발자을 주로 담당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개발사라는 이름이 너무 딱딱해서 연구소와 실험실이라는 뜻의 '랩'을 사용했다고 한다. 음악을 연구하는 실험실, 리듬액션 게임 개발사다운 이름이다.


▲ 사무실에서 합주라니 얼마나 멋진가? (사진제공: 바이닐랩)


▲ 커피를 자급자족한 흔적들


▲ 심지어 팥빙수도 팔았다고 한다

나동현 대표는 "실제로 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팀워크가 좋다"며,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사무실이 합주하는 공간으로 바뀌는 등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 외에도 커피나 팥빙수를 만드는데 조예가 깊은 직원도 있어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 스스로 자급자족하는 문화도 조성하고 있다니 정말 끼가 많은 개발사라고 감탄할 수밖에 없다.

직원들의 이런 활동은 게임을 만드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줬다. 나동현 대표는 “게임이 재미있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며, “다른 분야에서 빛을 발하는 직원은 다른 관점에 서서 영감과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맛을 뽑아내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발 경력만 10년 이상, 믿을만한 게임 ‘라디오해머’

음악적 영감이 풍부한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낸 첫 게임이 바로 ‘라디오해머’다. ‘라디오해머’는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리듬게임으로, 노트를 캐릭터화해 악당들과 대결한다는 식의 스토리를 넣었다. 음악은 내부 작업을 통해 자작곡을 50여 개 이상 준비 중이며, 여기에 인디밴드들과 협업으로 음악을 계속 추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라디오해머’ 이야기를 꺼내자 나동현 대표는 자작곡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게임을 하면서 저절로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는 음악을 만들었으며, 음악을 듣기 위해 게임을 하게 될 정도라고 자부했다. 또한, 아기자기한 그래픽에 철저하게 맞춰 음악과 게임 분위기 간의 괴리감도 최대한 줄였다고 한다.


▲ '라디오헤머'의 테스트버전 영상 (영상출처: 바이닐랩)


▲ 다가오는 바바리맨이 리듬액션 게임의 노트 역할을 한다 (사진출처: 공식영상 캡처)


▲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벌어지는 상황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사진출처: 공식영상 캡처)

인디밴드의 음원 역시 들어갈 계획이지만,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다. 과거에 인디밴드와 연계해 나온 리듬게임의 선례를 보면 비주류 취향이라는 약점이 게임 분위기와 잘 융합하지 못해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자작곡 위주로 플레이하되, 인디밴드작품은 곁들이는 방식이라고 한다. 매니악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기보다는 전체 유저를 위한 소비성향을 공략하는 것이 ‘라디오해머’의 전략이다.

또한, 게임 하나에 그치지 않고 바이닐랩의 브랜드를 기반으로 여러 콘텐츠에 도전할 계획도 밝혔다. 캐릭터의 이야기를 소극장 같은 곳에서 상영할 수 있는 영화로 만들기도 하고, 노래를 이용해 앨범을 내거나 캐릭터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도 구상 중이라고 한다. 직원들이 가진 끼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한 콘텐츠들이다.

이런 배경에는 게임이 가장 대중적인 문화상품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닐랩의 비전이 숨어있다. 나동현 대표는 "1차 콘텐츠로서 음악이나 미술, 영상을 합치고 다듬어낸다면 더 좋은 창작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그 결과물에는 게임도 포함된다"며, "이런 창작물들을 계속 공급하다 보면 사회에서 보편적인 문화상품으로 자리 잡고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 바이닐랩의 홍보 영상(영상출처: 바이닐랩)

그는 이어 "게임 개발만 10년 이상 해온 경력자가 리듬액션 게임을 만들면서 처음으로 모바일 시장에 뛰어들었다"며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는 초심자이기 때문에 성공을 장담하지 않겠지만, 음악과 게임개발이 우리가 자신 있는 분야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야소프트나 라이언게임즈 등 수많은 개발사를 거치며 경력을 쌓아온 바이닐랩의 개발 실력 및 음악과 관련된 내력들은 의심할 여지를 주지 않을 정도다.

'라디오해머'라는 게임 제목을 들었을 때 문득 생각난 것은 '라디오헤드'라는 영국 밴드였다. 음악을 좋아한다면 누구나 알만한 '라디오헤드'처럼 '라디오해머'도 도약에 성공해 누구나 알 수 있는 문화상품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본다.


▲ 카페가 정말로 마음에 드는지 사무실도 버리고 이곳에서 회의를 한다 (사진제공: 바이닐랩)


▲ 스타트업의 화이트보드는 대부분 분위기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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