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국내 게이머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운 소식이 전해졌다. 확률형 아이템 획득 확률 정보를 법적으로 공개하는 것을 골자로 한 게임법 개정안이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문체위) 법안심사소위를 넘지 못한 것이다. 국회의원이 낸 법안이 법이 되기 위해서는 상임위, 법사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 첫 단계도 넘지 못했다. 아예 좌절된 것은 아니고 밀린 것이라고는 하지만, 올해 안에 국회를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외에도,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게임 관련 법안 다수가 남아있는 상태다. 21대 국회는 2020년 5월 30일에 시작됐고, 2년 반이 지난 2022년 12월 23일 기준으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법) 개정안 17개, e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e스포츠법) 개정안 8개가 상임위에 계류되어 있다.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 등 대안이 이미 반영되어 폐기된 것은 제외한 수치다.
21대 국회 임기는 2024년 5월 29일까지이며, 보통 임기 말미에는 총선 준비에 집중하게 된다. 따라서 현재 발의된 법안이 국회를 넘어 법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사실상 내년 상반기 정도로 압축된다. 21대 국회가 전반기를 넘어 후반기에 돌입한 현재, 어떠한 게임법안이 남아 있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자율규제로는 안 된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법 5종
가장 먼저 살펴볼 부분은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를 핵심으로 한 게임법안 5종이다. 발의 순서대로 유정주 의원, 유동수 의원, 하태경 의원, 전용기 의원, 이상헌 의원이 냈으며 지난 20일에 열린 문체위 법안소위에 안건으로 올라갔으나 가결되지는 못한 상태다. 주 내용은 자율규제로는 문제 해소가 어렵다고 판단되어 법적으로 게임사에 확률 정보를 공개할 의무를 지우는 것이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법안마다 조금씩 다르다.
우선 유동수 의원 법안에는 확률 공개와 함께 '컴플리트 가챠'를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컴플리트 가챠는 확률형 아이템에서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을 모으면 추가적으로 아이템이나 별도 혜택을 주는 유형으로, 과금 유도가 과도한 모델로 비판을 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자율규제로 이러한 유형의 BM을 제한하고 있다. 이어서 하태경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유저 권익 보호를 위해 게임물관리위원회에 이용자권익보호위원회를 두라는 내용이 있고, 전용기 의원 법안에는 확률 정보를 검색하기 쉬운 방식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부분이 언급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이상헌 의원은 기존에 발의한 게임법 전부개정안(법 내용을 모두 고치는 것)에도 확률 정보 공개가 포함되어 있었고, 전부개정안 처리가 지연되자 ‘확률 정보 공개’만 따로 떼어 일부개정안으로 발의했다. 이 의원이 발의한 전부개정안에는 확률 정보 공개와 함께 중소 게임사 지금 지원, 환전이나 핵 프로그램 등 불법 행위에 대한 광고 금지, 해외 게임사 국내대리인 지정 등이 담겼다. 전부개정안 역시 발의된 지 2년이 지난 현재도 계류된 상태다.
핵 사용자 처벌·잠수함 패치 금지 등, 눈길 끄는 게임법안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외에도 다수의 법안이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 중에는 게이머 눈길을 끌 만한 내용도 적지 않다. 먼저 김경협 의원은 핵을 이용한 유저에게도 과태료를 부과해 핵 이용을 억제하자는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다. 이어서 김예지 의원은 소위 ‘잠수함 패치’라 부르는 사전공지 없이 진행되는 업데이트를 금지하고, 게임 내용을 변경할 경우 유저에게 반드시 알리는 것을 명시하는 법안을 냈다.
이어서 유동수 의원은 게임사 직원이 아이템을 부당하게 생성해 판매해 이익을 얻는 것을 금지하는 법과 게임 아이템 환불 과정에서 유저가 현금으로 돌려줄 것을 원할 경우 게임사는 정당한 이유가 없다면 이에 응해야 한다는 환불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앞서 이야기한 법안들은 통과될 경우 게임업계는 물론 시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게임위 및 자체등급분류 관련 법안도 있다. 김영식 의원은 게임위 심의위원 과학기술 전문가를 위촉해 전문성을 보강하자는 취지의 법안을 냈다. 이어서 양경숙 의원은 자체등급분류 사업자가 심의한 게임이 연령등급에 맞지 않다고 판단되면 게임위에서 즉시 서비스 중단을 요청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권명호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부정한 방법으로 자체등급분류 자격을 얻거나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경우 지정을 취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게임산업 진흥 측면에서 접근한 법안도 있다. 먼저 조승래 의원은 게임산업 진흥을 전담하는 일명 ‘한국게임진흥원’ 설치에 대한 법안을 발의했다. 여기에는 진흥원 설치와 함께 자체등급분류 범위를 청소년이용불가까지 넓히는 것, 모든 연령이 즐길 수 있는 전체이용가 게임에 대해서는 유저 연령확인을 하지 않는 것 등이 포함됐다. 이어서 김예지 의원은 개인 및 소규모 게임사에 등급분류 수수료를 면제해 영세기업 부담을 줄여주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e스포츠 진흥법 역시 다수 남았다. 허은아 의원이 발의한 전부개정안을 포함해, e스포츠 정식체육화 추진, e스포츠 종목사에 대한 세제 지원, 대리게임, 핵 사용 등이 적발된 관계자를 일정 기간 e스포츠 선수로 활동할 수 없도록 하는 것, 선수 및 코치 대한 임금체불 금지, 종목사의 예고 없는 e스포츠 리그 폐지 금지, 장애인 선수 출전을 도울 보조기구 개발 추진 등이 있다.
신중한 처리 중요하지만 좀 더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법을 만들고 고치는 것은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 여러 계층에서 실효성이 없다고 장기간 지적되어온 강제적 셧다운제를 없애기까지 10년이 걸렸고, 법 내용 일부를 고치는 것 역시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따라서 한 번 정비할 때 부족하거나 미흡한 부분이 없는지 꼼꼼히 짚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법안을 발의하는 과정에서 시류나 국민감정에 따라 일단 내고 보는 흐름이 과했던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여야간 정쟁이 과열되며 주 업무라 할 수 있는 법안 심사가 등한시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신규 법안이 국회를 넘지 못하고 버려진 법안 폐기율이 68.4%였다. 21대 국회 역시 쉬운 입법, 지연되는 심사가 여러 번 문제로 제기된 바 있다. 따라서 입법이라는 측면에서 국회에도 실효성 있는 입법과 속도감 있는 처리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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