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날짜를 적을 때마다 2017보다 2016이 더 자연스러운 건 2016년을 완전히 마무리 짓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얽매여 있을 수는 없는 일. 2016년에 대한 확실한 마침표를 찍기 위해 지난 1년의 PC 시장을 톺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실제 판매 데이터 기반의 다나와리서치를 통해 지난해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의 모든 데이터를 취합했다.
2016년 PC 시장은 전반적으로 활기찬 모습이었다.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의 팀 기반 FPS 게임 <오버워치>는 주요 PC 부품부터 주변기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영향을 미쳤고 엔비디아 지포스 GTX 10시리즈 GPU는 PC 시장에 활력소를 더했다. 물론 CPU와 메인보드 쪽은 조용했다. 인텔이 틱톡 전략을 PAO(프로세스-아키텍처-최적화)로 수정하면서 새로운 칩셋의 출시를 미룬 것이 그 이유.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활기를 띠었다. 그중에서 업계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아 깊은 인상을 남긴 5개의 제품군을 선정했다.
■ 그래픽카드, 여전히 엔비디아•이엠텍
지난해 가장 흥미진진한 곳 중 하나가 그래픽카드 시장이었다. 지난 5월 엔비디아가 파스칼 아키텍처 기반의 지포스 GTX 10시리즈를 내놓더니 7월에는 AMD가 라데온 RX400 시리즈로 맞불을 놨다. 둘 다 기대 이상의 성능과 성능 대비 저렴한 가격을 앞세웠다. 특히 AMD는 은연중에 내비치는 자신감이 적지 않았다.
▲ 출처: 다나와리서치(2016년 판매량 기준)
하지만 다나와리서치에서 지난 1년의 판매 데이터를 되짚어보니 AMD의 반격은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물론 라데온 RX400 시리즈가 나왔을 때는 점유율이 9.5%까지 오르긴 했지만 2016년 전체로 보면 겨우 6%에 그쳤다. 기대에 못 미치는 성능과 기대 이상의 가격 때문에 원성을 산 것. 반면 엔비디아는 여전히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 출처: 다나와리서치(2016년 판매량 기준)
이런 상황은 칩셋별 점유율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AMD는 11위에 라데온 RX460을 겨우 올렸을 뿐 상위권은 고스란히 엔비디아에 내놨다. 올해 발표한 엔비디아 GTX 10시리즈의 경우 2위(GTX1060), 7위(GTX1070), 8위(GTX1050), 10위(GTX1080), 13위(GTX1050 Ti)에 이름을 올렸다. 시장 점유율 확보는 물론 완벽한 세대교체까지 달성했다.
▲ 출처: 다나와리서치(2016년 판매량 기준)
그래픽카드 제조사 중에는 이엠텍과 조텍이 2015년에 이어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각각 33.4, 18.9%의 점유율을 확보했다. 갤럭시는 기가바이트와 자리를 바꿨다. 2015년에는 4위였지만 2016년에는 3위로 올라섰다. 8.6% 점유율로 그 뒤를 따르고 있는 MSI는 7위에서 5위로 올라섰다.
■ 모니터, 오버워치 덕에 고주사율 판매량 상승
2016년 모니터 시장 역시 전체 판매량이 전년 대비 125.2% 늘어나면서 활기를 띠었다. 특히 오버워치의 영향으로 60Hz 이상의 고주사율을 지원하는 모니터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가격은 다소 비싸지만 화면 전환이 빠르고 움직임이 많은 FPS 게임의 특성상 고주사율을 지원하는 모니터를 사용하면 한결 부드럽고 뚜렷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 출처: 다나와리서치(2016년 판매량 기준)
다나와리서치에서 월별 판매량을 뽑아보면 오버워치가 시장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7월부터 60Hz 이상의 고주사율 모니터 비중이 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2016년에는 75, 160, 180Hz를 지원하는 모니터가 새롭게 추가되면서 점유율 확보에 일조했다. 무엇보다 두각을 나타낸 건 144Hz 모니터. 약 10.4%까지 점유율을 늘리는 추세다. 참고로 오버워치가 지원하는 최대 주사율이 바로 144Hz다.
물론 전체로 보면 아직은 미비한 수준이지만 성장률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12월 판매량이 1월에 비해 354.6%나 늘어났다. 2016년 전체 판매량 역시 2015년보다 약 328.2% 많아졌다. 대부분 고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 출처: 다나와리서치(2016년 판매량 기준)
2016년에는 144Hz 모니터를 생산하는 곳도 전년도 10개에서 26개로 늘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건 경성GK. 34.8%로 1위를 차지했다. 큐닉스 QX2414, QX3214 등의 모델을 앞세워 좋은 반응을 끌어낸 것. 그 뒤에는 벤큐와 크로스오버, 디스플레이랜드가 각각 16.4, 13.9, 7.3%의 점유율로 쫓고 있다. 5위를 차지한 알파스캔은 2015년 7위에서 두 계단 상승했다. 2015년 1위를 차지하던 와사비망고는 고해상도 모니터와 TV에 좀 더 비중을 두더니 20위로 밀려났다.
■ SSD, 가격 떨어지며 보급화 가속
2016년 SSD 시장에서는 3D낸드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 여럿 나오고 웨스턴디지털이 새롭게 뛰어드는 등 다양한 이슈가 있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격이 내려가고 있다는 점이 소비자에게는 가장 반가운 일이다.
▲ 출처: 다나와리서치(단위: 만 원)
다나와리서치에서 SSD의 평균 단가를 따져보면 2016년 약 8만 3,625원으로 지난해 9만 9,055원에 비해 약 1만 6,000원가량 내려간 것으로 나타났다. 월별로 따져보면 2015년 1월 11만 원에 근접하던 것이 2016년 7월 7만 원대까지 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지금은 256GB를 10만 원 안쪽에서도 살 수 있을 정도다. 최근 낸드 플래시 제조사가 모바일용 낸드 플래시 수량을 늘리면서 물량이 부족해 가격이 다소 오르는 추세지만 전반적으로 지난해보다 많이 내려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출처: 다나와리서치(2016년 판매량 기준)
용량별로 보면 120GB와 128GB가 잘 나갔다.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할 정도. 단 9월 이후에는 128GB 용량의 판매량이 240, 256GB보다 떨어지는 추세다. 마이크론과 에이데이타, 샌디스크 제품이 인기를 얻으면서 순위가 뒤바뀌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 출처: 다나와리서치(2016년 판매량 기준)
SSD 시장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제조사별 순위다. 월별 판매량을 따져보면 올해 6월까지는 샌디스크가 상승세를 타면서 1위 자리를 고수하더니 하반기 들어 급격히 떨어졌다. 12월 샌디스크의 시장 점유율은 13.4%에 그쳤다. 심지어 9월에는 에이데이타에게 2위 자리마저 내어 주기도 했다. 에이데이타 역시 상반기에는 저조한 성적으로 마이크론에 3위를 내어주기도 했지만 하반기 들어서는 격차를 벌리면서 샌디스크를 뒤쫓고 있다.
2016년 전체 판매량을 제조사별로 나누면 삼성전자가 27.4%로 1위를 차지했다. 샌디스크는 0.2% 적은 27.2%로 2위에 머물렀다. 에이데이타와 마이크론은 각각 15.1, 7.4%의 점유율을 확보했다.
■ 이제 살 만하다, 기계식 키보드
지난해 키보드 시장은 여전히 멤브레인 방식이 많이 나갔다. 저렴한 가격과 대량 생산의 편의성을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것. 하지만 키보드 전체 판매량을 연간으로 뽑아보면 점유율이 오히려 하락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출처: 다나와리서치(2016년 판매량 기준)
대신 기계식 키보드가 잘 나간다. 지난해 판매된 키보드를 접점방식별로 나누면 기계식 키보드의 성장세를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1년간 판매된 기계식 키보드는 2015년보다 약 211.5%나 많았다.
▲ 출처: 다나와리서치(단위: 만 원)
가장 큰 이유는 가격 하락이다. 키 스위치에 대한 특허가 풀리면서 가격 장벽이 허물어진 것. 지난해 판매된 기계식 키보드의 평균 단가를 계산해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꾸준히 내려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015년까지 유지하던 10만 원대 마저 무너지고 10월에는 약 6만 9,854원까지 떨어졌다. 지금은 다나와 최저가 기준으로 3만 원대까지 내려간 제품도 나왔다.
▲ 출처: 다나와리서치(2016년 판매량 기준)
지난해 기계식 키보드 시장에서는 앱코가 두각을 나타냈다. 22.2%의 점유율을 확보하면서 2015년 9위에서 1위로 단숨에 차고 올라왔다. 그 뒤에는 스카이디지탈과 한성컴퓨터가 다소 격차를 보이면서 뒤따르는 모양새다. 제닉스의 경우 2015년까지만 해도 1, 2위를 다투더니 2016년에는 4위까지 밀려났다. 점유율은 8.8%.
■ 노트북, 선호하는 무게가 줄어든다
노트북 시장 역시 전반적으로 상승세를 탔다. 판매량만 봤을 때는 지난해보다 약 33.8%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전반적인 트렌드는 2015년과 비슷한 분위기다. 여전히 인텔 CPU가 잘 나가고 화면 크기는 15.6인치, 13.1인치, 14인치 순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SSD 용량 역시 128, 256, 120GB 순으로 많이 팔렸다.
▲ 출처: 다나와리서치(2016년 판매량 기준)
다만 소비자가 선호하는 노트북의 무게에는 변화가 있었다. 2015년만 해도 상위권에 있던 2kg 이상의 노트북이 모두 3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가장 많이 팔린 건 1.7~2.0kg. 2015년에는 5위에 있었지만 2016년에는 20.4%의 점유율을 확보하며 1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LG전자 그램이나 삼성전자 노트북9 메탈 등 많은 주목을 받은 1kg 미만 노트북은 15.6%로 3위에 그쳤다. 아무래도 다소 높은 가격 때문. 하지만 전반적으로 소비자가 선호하는 노트북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출처: 다나와리서치(2016년 판매량 기준)
노트북용 CPU는 2015년 4분기부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인텔 6세대(스카이레이크) 코어 CPU가 1~3위를 차지하고 있다. 완벽한 세대교체를 이룬 것. 2016년 9월에 출시한 7세대 제품도 아직은 하위권에 있지만 무서운 기세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올해 세대교체 역시 무리가 없을 정도.
▲ 출처: 다나와리서치(2016년 판매량 기준)
GPU 순위는 여느 때와 같다. 인텔이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그다음이 엔비디아, AMD 순이다. 외장 GPU의 경우 엔비디아 GTX950M이 2015년 가장 많은 판매량을 보였던 840M을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 전반적으로 8시리즈가 물러나고 9시리즈가 세력을 키우는 모양새다. 올해 새로 출시한 GTX1060은 7위에 자리했다. 6위에는 AMD 라데온 R9 M370X가 올라섰다. 2015년 10위에 라데온 HD8330을 겨우 올렸던 AMD지만 지난해에는 나름대로 선방했다. 참고로 2016년 노트북 외장 GPU 시장에서 엔비디아와 AMD는 9:1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 출처: 다나와리서치(2016년 판매량 기준)
2016년에도 역시 노트북 시장에서는 LG전자가 삼성전자보다 한 수 위다. 울트라PC와 그램 시리즈를 앞세워 26.3%의 점유율을 확보했다. 삼성전자는 약 19.9% 수준. 외산 브랜드 중에서는 레노버가 좋은 성적을 거뒀다. 물론 전반적인 판매량은 모두 늘어난 상태.
■ 2017년, PC 시장은?
지금까지 다나와리서치를 통해 2016년 PC 시장의 흐름을 살펴봤다. 예상치 못한 오버워치의 인기는 PC 시장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노트북 시장 역시 초경량과 하이엔드 노트북이 좋은 반응을 보이면서 상승세를 탔다. 화려한 LED와 독특한 디자인을 곁들여 한껏 멋을 낸 PC 부품도 많이 나왔다. 기울어져 간다던 전문가들의 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반적으로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그래프가 즐비하다.
올해 역시 지난해 PC 시장 붐을 이어갈 만한 요소가 많다. 일단 출사표를 던지고 대기 중인 신제품이 즐비하다. 새해부터 포문을 열기 시작한 인텔 7세대(카비레이크) 코어 CPU와 다시 한번 사기충천한 모습으로 출시일만을 기다리고 있는 AMD 라이젠이 대표적이다. 비록 인텔 7세대 CPU의 성능이 기대만큼은 아니고 AMD 역시 실망만 안겼던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일단 지금까지의 반응은 기대해 봄 직하다. 덕분에 지난해 조용했던 CPU와 메인보드 시장이 요동칠 전망이다.
그래픽카드 쪽도 마찬가지다. 엔비디아 지포스 GTX1080 후속 모델과 AMD 베가 등 하이엔드 라인업이 보강될 예정이어서 소비자의 선택폭은 더욱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오버워치의 영향이 올해도 이어지고 GTX1050과 GTX1050 Ti 등 보급형 라인업도 꾸준한 수량을 유지할 것으로 관련 업계는 예측하고 있다.
모니터 업계에서는 올해도 고주사율 모니터의 상승세를 점쳤다. 소비자가 주사율에 따른 확실한 차이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수요는 꾸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PC 주변기기 업계도 게이밍 기어 쪽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물론 SSD의 보급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고 튜닝 효과를 더한 제품도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트북 시장은 올해도 게이밍에 초점을 맞춘 고사양과 휴대성에 비중을 둔 신제품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흔들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배터리 수명 경쟁이 치열하다. 일각에서는 AR과 VR이 게임을 넘어 교육이나 제조 등으로 확대되고 보다 저렴한 디바이스가 등장하면서 PC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고 마냥 낙관적으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한쪽에서는 지난해의 상승세가 올해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오히려 지난해보다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 지금은 하드웨어보다 콘텐츠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시장에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시대기 때문에 아무리 신제품이 많이 나온다 한들 이렇다 할 대작 게임이 없는 상황에서는 지난해만큼 소비자의 구매욕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오버워치의 영향이 올해도 이어지겠지만 지난해에는 못 미치는 수준일 것이라고.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지난해에 대한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시장을 지켜볼 차례. 내년 이맘때 새롭게 그려질 그래프를 기대해 본다.
한만혁 기자 mhan@dana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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