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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게임계정, 자식에게 상속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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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자가 사망 시 유족들이 게임 계정 소유권을 넘겨받을 수 있을까? (사진출처: 픽사베이)
▲ 이용자가 사망 시 유족들이 게임 계정 소유권을 넘겨받을 수 있을까? (사진출처: 픽사베이)

일반적으로 게임사들은 게임 계정을 거래하거나 양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게임 계정을 비롯한 디지털 콘텐츠 소유권은 유저가 아닌 게임사가 가지고 있으며, 유저는 이를 사용할 수 있는 이용권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용권 이전에 대한 결정권한은 소유권자인 게임사에 있다. 게임 계정과 아이템 등을 자유롭게 거래 가능한 재산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법적 해석이 분분하지만, 아직까지는 기반 법안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상속은 어떨까? 상속과 증여는 엄밀히 다르다. 상속이란 게임 이용자의 의도 혹은 변심이 아니라, 이용자가 사망하여 해당 계정 이용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진 경우 유가족 등 상속권자가 이를 대신 이어받는 것을 말한다. 과연 국내에서 이러한 계정 상속은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뒤죽박죽이다.

게임사마다 중구난방인 상속 관련 정책

일단 국내 서비스되는 주요 게임 서비스사들의 약관을 살펴보면 계정 상속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양도 및 증여를 금지한다는 내용만 명시돼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회원은 게임 머니, 게임 데이터(계정, 캐릭터 등)를 유상으로 처분(양도, 매매 등) 하거나 권리 객체로 하는 행위(담보제공, 대여 등)을 하여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이에 넷마블, 펄어비스, 카카오게임즈 등 국내 주요 게임사들은 이 같은 양도금지 항목을 상속의 경우에도 확대 적용하고 있다.

계정 상속을 금지하고 있는 모 업체 관계자는 “현재는 국내법에 디지털 유산 상속에 대한 사항이 존재치 않기에, 게임사 입장에서도 상속과 일반 증여 및 양도를 하나로 취급해 금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재 이에 대한 논의가 국내외에서 조금씩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에 대해 구체적인 법적 조항이나 지침이 내려올 경우 적극적으로 이를 따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법과는 별도로 상속 시스템을 만들어 둔 업체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엔씨소프트와 넥슨이다. 위 두 회사는 다른 게임사에 비해 유저들의 디지털 자산 가치가 높은 게임을 다수 가지고 있는데다, 20년 이상 온라인게임 사업을 주도해 오며 상속 관련 문의를 오래 겪어 온 회사들이다. 이에 두 회사는 ‘사망자에 대한 계정 명의변경 동의서’를 작성해 보내면 검토 후 계정 명의변경을 진행해 준다. 사망자의 정보와 계정, 명의변경 대상자와의 관계 증명이 필수며, 이전 대상자는 상속순위에 따라 자신보다 상속순위가 우선순위거나 동순위인 인원 전원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사실이 모두 확인될 경우 계정 명의 의전이 가능하다.

엔씨소프트의 경우 사망자에 한해 계정이전을 신청할 수 있다 (사진출처: 엔씨소프트 CS 페이지)
▲ 엔씨소프트의 경우 사망자에 한해 계정이전을 신청할 수 있다 (사진출처: 엔씨소프트 CS 페이지)

해외 게임사들도 중구난방인 것은 마찬가지다. 약관에는 계정 이전이 불가능하다고 표기돼 있지만, 세부 정책은 각기 다르다. 예를 들어 리그 오브 레전드를 서비스하고 있는 라이엇게임즈의 경우 상속권자에 대한 계정 상속이 부분적으로 가능하다. 이 경우 신규 계정을 만든 후 상속시킬 계정의 챔피언과 스킨 등 재화를 옮겨 주는 방식이며, 기존 계정의 랭크, 업적, 시즌 보상, 숙련도, 명예 시스템, 마법공학 제작소 상품 등은 상속이 불가능하다. 즉 명의 이전이 아닌 재화 콘텐츠 상속에 가깝다.

한편, 블리자드의 경우 약관에서와 같이 명의 의전이나 상속을 아예 금지하고 있다. 블리자드 코리아 측은 공식 Q&A를 통해 계정 소유자가 사망한 경우 해당 계정의 라이선스나 기타 정보를 타 명의 계정으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 도움을 줄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가족이라도 타인 명의로 된 계정의 명의 이전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블리자드 측은 “우리나라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가능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PC게임 플랫폼 스팀 역시 명의 이전이나 계정 상속이 불가능하다. 스팀은 최대 10개 컴퓨터 5개 계정이 라이브러리를 공유할 수 있는 ‘가족 공유’ 기능을 운영하고 있지만 세이브 데이터나 도전과제 등은 공유가 불가능하며, 가족 공유나 계정/이메일 비밀번호 공유를 하지 않은 채 불시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경우 이를 활성화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에 대해 스팀 측은 “계정 및 라이선스는 양도할 수 없다. 서포팅 팀에는 이를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이 없으며, 사용자의 사망 시 취해야 할 조치에 대한 지원도 제공할 수 없다”라고 답하고 있다.

블리자드의 경우 어떠한 경우에도 계정 이전이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사진출처: 배틀넷)
▲ 블리자드의 경우 어떠한 경우에도 계정 이전이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사진출처: 배틀넷)

모바일게임 분야에서는 상황이 조금 낫다. 양대 모바일 플랫폼인 구글과 애플의 경우 가족에 한해 계정 상속이 가능하다. 다만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에 사망진단서나 가족관계 및 상속권 증명 서류 등을 영문으로 번역해 구글/애플에 메일로 보내야 한다. 이후 심사 과정을 거쳐 계정 소유권이 이전되고, 해당 계정에 담긴 콘텐츠들을 상속할 수 있다. 여기에는 유료 콘텐츠 및 계정에 귀속된 게임 데이터 권한 등이 모두 포함된다.

현재 원스토어의 전신이 된 티스토어를 운영한 SK플래닛 역시 콘텐츠 양도나 이전, 재판매 등은 불가능하지만, 사용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증빙이 된다면 여타 재화처럼 구매 내역들을 가족에게 이관하는 기능을 제공해왔다. 다만 플랫폼에서 계정을 양도했다 하더라도 별도의 서버를 두고 데이터를 관리하거나 SNS 등과 연동해 게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임의 경우 각 게임사 및 플랫폼에게 별도의 계정 상속 허가를 받야아 한다.

디지털 유산 상속에 대한 구체적 법령 없는 것이 원인

이 같이 게임 계정 상속에 대한 게임사들의 정책이 중구난방인 데는 디지털 유산 상속에 대해 구체적인 법령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이러한 디지털 유산 관련 법안이 여럿 시도됐으나 무산된 바 있다.

지난 2010년 18대 국회에서는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박대해, 유기준, 김금래 의원이 디지털 유산 상속 법안을 발의했다. 서비스 제공자가 상속인 요청에 따라 사망자 개인정보를 제공하거나 파기하도록 하고, 이용자가 사망 전에 지정한 자 등이 미니홈피나 블로그 관리에 접근할 수 있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당시 불거진 개인정보 보호 이슈에 막혀 법제화에는 실패했다.

김장실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결국 폐기됐다 (사진출처: 의안정보시스템)
▲ 김장실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결국 임기만료 폐기됐다 (사진출처: 의안정보시스템)

2013년 19대 국회에서도 당시 새누리당 소속 김장실 의원이 디지털 유산 상속에 대한 근거를 담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생전에 획득한 게임아이템, 작성한 게시물 등을 디지털 유산으로 정의하고, 소유/관리 권한을 유족이 승계할 수 있도록 해 디지털 유산에 대한 상속 근거를 마련하려는 법이었다. 비슷한 시기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도 인터넷 서비스 이용자가 사망한 이후 개인정보 처리방법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19대 국회가 역대 가장 낮은 법안처리 실적을 기록하고 쟁점이 선거구 획정에 집중되면서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게임 관련 정책들은 폐기됐다.

그렇다면 법정에서는 어떤 해석을 내리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아직 한국에서는 디지털 유산 상속에 대해 제대로 된 소송이 진행된 적이 없다. 대부분 한국인터넷진흥원이나 소비자보호원 선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전부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건도 2010년 천안함 순직 장병 유족들이 고인의 미니홈피 및 전자우편에 접근할 수 있도록 SK커뮤니케이션즈에 요청했지만, 회사 측에서 법적 근거를 들어 이를 거부한 것 정도다.

다만, 게임 아이템이나 게임머니를 재산으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한 판결들은 수 차례 내려져 있다. 이에 대해서는 게임머니를 부가가치세법상 재화로 인정하는 판례, 게임 아이템 절취 및 강취에 대한 절도죄 인정, 사기 및 불법적 정보 유출을 통해 아이템을 갈취한 사건에 대해 사기죄를 인정한 판례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게임 아이템의 재산상 이익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에서 이러한 게임머니 및 아이템이 이용자에 귀속된다는 소유권을 인정한 적은 없다. 즉, 법률적으로 게임 아이템과 계정의 저작권은 이를 제작하고 서비스하는 게임사에 귀속되며, 이는 상속할 수 있는 ‘재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신규 법안 기다리지 말고 업계 협의 이끌어내야

1990년대 싹을 틔운 한국 게임산업이 성숙해지고 장기화됨에 따라 이러한 사자(死者)의 디지털 유산을 두고 벌어지는 분쟁은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적으로 명확한 지침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이기에 게임사마다 각기 다른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애꿎은 이용자 뿐이다.

어떤 게임은 상속이 가능하고, 어떤 게임은 상속이 불가능한 혼란스러운 상황을 타개하려면 디지털 유산 상속과 관련한 법안이 신설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기에, 업계 스스로 디지털 유산에 대한 처리방법을 합리적으로 정하고 단체 캠페인에 나설 필요가 있다. 2020년을 불과 며칠 앞둔 지금, 한국게임산업협회나 한국모바일게임협회 등 대표성 있는 협회가 나서 이러한 디지털 유산 처리방법을 명문화하고 협의를 이끌어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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