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쌔신크리드’는 ‘페르시아왕자: 시간의 모래’, ‘레인보우식스: 베가스’ 등을 개발한 UBI소프트 몬트리올 스튜디오에서 차세대 시장을 노려 야심차게 준비한 게임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흥행 게임의 후속작들이 발매게임 리스트를 가득 메우는 요즘 어쌔신 크리드는 어떤 굴레에도 얽매이지 않는 완전 신작으로 발매되었다. 12세기 유럽을 활보하는 암살자의 이야기를 그린 ‘어쌔신 크리드’는 발매 1주일 만에 전세계 100만장 판매고를 달성하며 명가 몬트리올 스튜디오의 업적에 또 하나의 결과물을 더하였다.
▲ 중세복장에 디지털 기호. 어쌔신크리드는 어떤 게임일까?
선조의 기억을 더듬는 시간여행
‘어쌔신 크리드’는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12세기 예루살렘 지역의 암살자 이야기다. 이른바 암살 액션게임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이 실제로 그 시대에 살던 사람은 아니다. 현재 또는 근미래의 배경에 살고 있던 주인공은 영문도 모른 채 실험실로 끌려오게 된다. 주인공은 DNA속의 기억을 재생할 수 있는 기계를 통해 알테어라 불리는 암살자가 겪었던 일들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체험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대체 주인공을 왜 이런 곳에 끌려온 것일까? 이런 물음들은 알테어의 암살 미션을 모두 마치면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현실 세계의 주인공
▲ 눈을 떠보니 예루살람이…
길에서 달리면 의심받는 사회
십자군 전쟁이 한창인 예루살렘 지역에서는 어떤 삶의 현장이 펼쳐지고 있을까? 지배 계급이 하층민을 벌레잡듯이 난도질하고 배신자들은 창에 찔린 채 길거리에 방치되고 있는 흉흉한 세계속에서 사람들은 되도록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생활하려고 노력한다. 목소리를 크게 내거나, 빨리 달리는 일은 이 세계에서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치부된다. 그런 행동들은 주민을 꼬드기려 하는 선동자, 죄를 짓고 도망가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 사람 목숨이 벌레모다 못한 세상
처음 게임을 접하면 이런 세계관은 게이머에게 큰 제약이 된다. 빠르게 이동하고 싶은데 좁아터진 골목에 사람은 넘쳐나고, 조금 달려보려고 하면 사람과 부딪혀 길바닥에 구르기도 한다. 암살 좀 해보려는데 거지가 동전 좀 달라고 들러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아편 중독자가 길을 막고 주먹질을 하기도 한다. 늘 이렇게 사람들을 손으로 밀어내면서 천천히 걸어가야만 한다면 짜증을 느낄 수 있다.
▲ 마을에 들어가려 하면 문전박대를 당한다. 칼을 빼들던가 다른 방법을 택해야한다
이러한 이유로 게이머는 뛰어다닐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곧 건물 위를 활보하는 편리한 길을 찾아낸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거리와 달리 건물 위는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어지간한 거리는 전부 넘나들 수 있게 디자인되어 있다. 가끔 건물 위로 올라갈 때 목격자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목격자가 경비병만 아니라면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제약이 따르던 거리와는 달리 건물 위에서의 움직임은 자유롭다. 건물 사이의 오브젝트를 뛰어넘거나 더 높은 건물로 올라갈 때 ‘저기에 손이 닿겠군’ 하고 생각이 드는 공간은 대부분 손으로 움켜잡고, 발판으로 사용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이것은 마치 윈도우 화면 구석에 찰싹찰싹 달라붙는 WINAMP의 스냅 기능을 떠올리게 한다. 게이머가 ‘어쌔신 크리드’에 좀더 익숙해진다면 건물 위가 더 쉽고, 편안하게 느껴질 것이다.
▲ 손 닿는 곳은 대부분 올라갈 수 있다
암살 허가를 위해선 조사가 필요
알테어는 집단 내에서 최고의 암살자지만 그 교만함 때문에 게임 초반 지위를 박탈당한다. 그리고 그는 다시 원래의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집단이 원하는 목표물을 암살하러 다닌다. 하지만 왜 죽여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일을 진행할 수 없으므로 암살 대상의 주변을 조사한다. 조사의 대상은 암살 목표의 집에 출입하는 상인일 수도 있고, 친구이거나, 병사일 때도 있다.
▲ 알테어는 암살 목표를 죽임으로써 지위를 회복해나간다
각 마을의 암살자 본부를 통해 조사 대상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그보다는 역시 직접 찾아보는 것이 더 확실하다. 성루나 탑 등의 높은 건물은 ‘뷰 포인트’로 제격이다. 뷰 포인트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면 지도에 뷰 포인트 주변에 있는 조사 대상의 위치가 표시된다.
▲ 뷰 포인트를 오르긴 귀찮지만, 내려갈 땐 간단하게 점프! 내려올 걱정은 하지 않는다
게이머는 이 조사 대상을 살펴보고 그에 걸맞은 행동으로 조사를 실행한다. 주먹으로 해결될 일이라면 으슥한 곳에서 두들겨패 실토하게 만들고, 물건이라면 훔친다. 단순히 엿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면 근처 벤치에 앉아 도청을 할 수도 있다. 보통 2~3가지의 정보라면 충분히 암살을 시작할 수 있지만 더 많은 조사를 하면 간단하게 암살할 수 있는 특급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암살 대상이 혼자 있게 되는 때를 알 수 있다면 당연히 암살은 좀 더 수월해진다.
▲ 조사 과정은 가급적이면 피를 부르지 않는다
전투는 기대 이하, 암살은 훌륭하다
완성도 높은 세계관 구성 및 암살 미션과 달리 전투는 호불호가 확연히 갈리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어쌔신 크리드’의 주인공은 암살자라는 설정상 다 대 다 전투에 꽤 불리하다는 것이 설정이다. 하지만 실제 게임에서는 방어에 굉장히 능숙하다. 오른쪽 트리거를 누르고 있으면 적들의 공격을 대부분 받아넘길 수 있고, 타이밍에 맞춰 누르면 필살기의 위력에 준하는 반격기를 사용해 적을 해치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적이 주인공의 멱살을 잡더라도 B버튼으로 반격할 수 있다.
▲ 반격기에 능한 암살자. 일 대 다수 전투도 커버한다
그런데 이 같이 뛰어난 방어기술을 적도 가지고 있다. 생각 없이 무작정 칼을 휘두르면 적들도 게이머의 공격을 능숙하게 받아낸다. 마치 IBM 시절 ‘페르시아 왕자’가 떠오른다.
‘페르시아 왕자’의 막고 찌르기에 향수를 느끼는 게이머라면 다행이겠지만, ‘데빌 메이 크라이’, ‘갓 오브 워’와 같이 적을 어떻게 더 멋지게 해치울 것인가에 포커스가 맞춰진 게임을 주로 해왔다면 다소 답답함이 느껴질 것이다.
▲ 다양한 방법으로 전투를 피할 수 있으니 가급적 싸우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대신 암살은 이야기가 다르다. 암살 목표 주위의 경비원을 하나씩 처리해두고 대상이 밖으로 나올 때를 기다릴 때의 긴장감, 암살 대상을 바짝 따라가며 민간인들을 스치면서 다가가는 스릴은 이제까지 나온 어떤 게임보다도 뛰어나다. 그리고 목표를 해치우고 유유히 걸어서 도망쳐나오는데 성공하면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임무를 완수하고 긴장이 확 풀리는 느낌은 굉장히 기분이 좋다.
▲ 암살 목표의 뒤에 바짝 붙었다. 긴장되는 순간
버그, 자막 미지원, 그리고 다소의 문제들
‘어쌔신 크리드’의 게임성은 유저를 좀 더 쾌적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지만 게임 도중 몇 가지 거슬리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첫 번째는 간혹 발생하는 버그다. 사다리를 내려가지 못하는 경비병 버그, 주인공의 행동을 따라하는 버그 등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눈살을 찌뿌리게 하는 버그가 분명히 존재한다.
자막이 없다는 점도 약간의 문제다. 대부분의 게임들은 최고의 성우들을 쓰더라도 성우의 목소리를 듣지못했을 경우를 대비해 별도의 자막이 화면 하단에 뿌려진다. 그리고 게이머들은 늘 그 자막을 보면서 목소리를 들으며 플레이하는 방법에 익숙해져 있다. 아울러 볼륨을 크게 틀고 게임할 수 없는 게이머들이 아직도 무수히 존재한다.
Xbox360과 PC판의 국내 발매를 맡고 있는 인트라링스에서는 최고급의 성우를 사용해 음성까지 완벽 한글화를 실시했으나, 자막은 북미판과 마찬가지로 존재하지 않는다. 게임에 집중하고자 하는 의도 자체는 좋으나 자막을 지원하지 않음으로써 대화의 내용을 정확히 듣지 못했거나, 잠시 집중하지 못했을 때는 ‘방금 뭐라고 했지?’하는 상황도 제법 발생한다.
▲ 환풍구에서 소리를 엿듣는 장면. TV리모컨이 바로 옆에 없다면 대화를 놓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영어음성과 한글자막을 통해 게임을 즐기고 싶은 게이머의 욕구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화자들의 위치는 변함이 없는데 갑자기 음량이 확 줄어든다거나 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다양한 게이머의 경우를 고려해 영어음성과 자막을 삽입했다면 훨씬 더 좋은 한글화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짜배기 암살 액션을 원한다면 권장
처음 ‘어쌔신 크리드’에 관심을 가지는 게이머는 ‘어쌔신 크리드’를 ‘메탈기어 솔리드’나 ‘스프린터 쉘’ 등의 잠입액션 게임과 같은 부류로 판단한다. 그러나 ‘어쌔신 크리드’는 절대 잠입액션 게임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특수부대 출신과는 달리 ‘어쌔신 크리드’는 벌건 대낮에 주민들 사이를 자유롭게 거닐 수 있고, 목표의 정면에서 걸어가 복부를 찌를 수 있다. 부자연스럽게 행동하지만 않는다면 그 누구도 주인공을 의심하는 자는 없다. 밝은 햇살 아래 활보하는 암살자를 체험해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반드시 ‘어쌔신 크리드’를 해보기를 권한다. 지금까지 이런 스타일의 게임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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