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을 맞아 게임메카에서 야심차게 보내드리는 연재기획 ‘납량특집’. 앞서 다른 게임메카 기자들은 「판타스마고리아」 시리즈와 「언다잉」처럼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게임들을 비롯해 내면의 공포를 강조한 「이터널 다크니스」, 「학교에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들을 통해 호러 게임의 재미를 설명해왔다.
이에 필자는 하나하나 뜯어놓고 보면 전혀 무섭지 않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오싹함과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색다른 타입의 게임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PS2용 게임으로 국내에도 한글화되어 발매된 바 있는 「그레고리 호러 쇼 소울 컬렉터」가 그것이다. 「그레고리 호러 쇼 소울 컬렉터」에는 잔혹하거나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연출이 없다. 으스스한 분위기를 통해 절로 무섭게 만드는 표현도 없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게임을 하면서 적을 만나고 그들을 상대하면서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위험에서 벗어났을 때의 크나 큰 안도감도 맛볼 수 있다. 「그레고리 호러 쇼 소울 컬렉터」는 그런 호러 게임이다. 제목 자체에도 ‘호러’라는 말이 들어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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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고리 호러 쇼 소울 컬렉터」의 패키지 사진. 묘~한 느낌이 든다 |
▲ 좀 더 알고 싶은 사람들은 코코캡콤 홈페이지(www.kokocapcom.com)를 참조하자 |
그레고리
호러 쇼…가 뭐야?
그레고리…라는 말을 듣고 왕년의 미남배우 ‘그레고리 팩’이 생각난다면 그대는 이미 중년~♥ 웃흥!
으음… 이 썰렁해지는 분위기는 뭐지? 어, 어쨌거나 이번에 소개할 「그레고리 호러 쇼 소울 컬렉터(이하 그레고리)」는 흔히들 생각할 수 있는 ‘그레고리’가 등장하는 ‘호러 쇼’가… 맞다(뭐, 뭐라고?). 맞긴 맞는데, 그레고리가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이 모험을 겪게 되는 호텔의 지배인일 뿐이며, 주인공은 따로 있다. 뭐, 게임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므로 그레고리 호러 쇼라는 타이틀이 완전히 얼토당토 않는 건 아니지만….
▲ 로마의 휴일이 그의 대표작. 오드리 햅번과 함께 출연했다 |
▲ 이렇게 잘 생겼던 배우였던 만큼 인기도 많았다. 아쉽게도 2003년 타계… |
코코캡콤을 통해 국내에 발매된 PS2용 호러 어드벤처 「그레고리 호러 쇼 소울 컬렉터」는 99년, 일본의 TV 아사히계 방송을 통해 심야시간대에 방영된 풀 3D CG 애니메이션 「그레고리 호러 쇼」를 게임으로 만든 것이다. 다른 차원에 위치한 호텔 ‘그레고리 하우스’를 우연찮게 방문하게 된 주인공이 사각형 모양의 기묘한 숙박객들이 갖고 있는 혼을 모아 호텔에서 탈출한다는 내용의 이 애니메이션은 기묘한 설정과 매력적인 캐릭터, 뛰어난 카메라 연출 등으로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게임 역시 그 완성도가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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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아저씨가 바로 호텔의 지배인인 그레고리 씨다 |
원작의
매력이 120% 재현된 게임내용
필자가 그레고리 호러 쇼를 접하게 된 건 운명이었다(이건 좀 과장이고, 솔직히 말하면 ‘우연’이었다). 일본에서 공부하다 온 필자의 후배 집에 놀러갔다가 운명과도 같게 「그레고리 호러 쇼」의 DVD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단지 후배의 “선배 취향에 꼭 맞을 겁니다”라는 단호함 어린 추천 덕분에 아직 케이스도 뜯지 않은 DVD를 무작정 빌려와 집에서 틀어본 순간! 혼이 육체에서 분리되는 듯한 충격을 맛보았다.
「그레고리 호러 쇼」는 TV에서 방영될 당시 매회 5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정해진 스토리를 보여주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치밀하게 준비된 세계관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 구성, 철저하게 계산된 카메라 연출 등은 필수적이었으리라. 그 놀라운 완성도에 필자는 소스라쳤던 것이다. 뭐, 그 이후야 뻔했다. 후배에게 강탈하다시피 DVD를 빼앗아 필자의 애장품으로 둔갑시켰으니…. 그때 후배의 절규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애도를…(-_-).
▲ 이것이 바로 그 문제의 DVD |
▲ 페이퍼 크래프트로 직접 캐릭터들을 |
스스로 마니아라고 표현하기엔 뭣하지만, 어쨌거나 원작을 재미있게 보았던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레고리 호러 쇼 소울 컬렉터」는 필자가 그토록 그리던 그레고리 하우스 내부를 지금까지처럼 애니메이션을 통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탐색해볼 수 있게 해주는 꿈의 선물과도 같은 게임이었다.
물론 게임성 면에서도 「그레고리」는 수작이다. TV판의 그로테스크하면서 매력적인 캐릭터 그래픽과 사운드 이펙트를 통한 공포감의 연출 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게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쫓기는 공포감’을 잘 배합시켰기 때문이다.
팬들을 감동시키는 가장 큰 연출을 꼽아보라면 카메라 위치를 주관시점으로 변경할 수 있는 시스템을 들고 싶다. 원작에서는 주인공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호텔 내부를 주관시점으로 비추는 카메라 워크가 사용됐다. 원작 그대로의 시점으로 호텔 내부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든 이 시스템은 팬에게 있어 눈물을 흘릴 정도로 고맙고 반가운 시스템이다.
다만 스토리가 TV판과 거의 같고, 무비나 대사들도 TV판 그대로 삽입된 장면이 많아 TV판을 모두 빠짐없이 탐독한 사람들에게는 신선미가 약간 부족한 게 사실. 캐릭터 역시 새롭게 등장하는 건 플레이어 캐릭터인 남, 녀 주인공 두 명뿐이다. 좀 더 매력 넘치는 캐릭터들이 게임에 많이 등장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뭐, PS2판의 신 캐릭터가 없다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만큼 그레고리 원작 자체가 게임 소재로서 적합한 작품이라는 뜻도 되고, 동시에 특별히 추가요소를 넣지 않아도 충분할 정도의 내용을 갖추고 있다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 게임에서 활약하게 되는 우리의 주인공. 어벙하게 생긴 게 마음에 든다 |
보는
것처럼 만만하지 않다. 머리를 써라
풀 3D CG 애니메이션이 원작이라 해서, 캐릭터들이 아동틱하고 귀엽다 해서 무작정 진행해도 클리어할 수 있는 만만한 게임이라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아까 말했듯 호러 어드벤처 게임으로서의 완성도 역시 대단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목적은 그레고리 하우스의 숙박객들이 갖고 있는 혼을 빼앗는 것이다. 주인공의 체력은 화면 왼쪽 위에 멘탈 게이지라는 이름으로 표시되는데, 이 멘탈 게이지는 시간의 경과나 추적상태의 숙박객들에게 붙잡혔을 경우 발생하는 호러 쇼 공격 등을 통해 감소하고 이 게이지가 0이 되면 게임 오버! 따라서 멘탈 게이지의 상황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멘탈 게이지는 호텔 내에 존재하는 회복 아이템, 책, 수면 등을 통해 회복시킬 수 있다.
숙박객들에게서 혼을 빼앗기 위해서는 아이템을 준다거나 지정된 시간 내에 특정 포인트로 숙박객을 유도하는 등 다양한 조건을 클리어해야 한다. 또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열쇠구멍을 통해 방 안에 있는 숙박객들을 엿보는 행동도 필요하고 이들이 말하는 쉽게 흘려들을 수 있는 한 마디가 최대의 힌트가 될 수도 있다. 즉, 통찰력과 추리력이 요구되는 게임인 만큼 게임을 진행할 때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호러 어드벤처 게임으로서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 왼쪽 위에 멘탈 게이지가 보인다 |
▲ 게임 진행에 도움이 되는 힌트를 놓치지 않고 체크하는 것도 중요 |
조건을 만족시켜 혼을 빼앗으면 거기서부터 「그레고리」의 본 재미가 시작된다. 혼을 빼앗긴 숙박객은 분노로 가득 찬 오오라를 내뿜으며 시계범위에 들어 온 플레이어를 맹렬히 추적해오는데, 그들에게 붙잡힐 경우 호러 쇼라는 공격이 시작되어 멘탈 게이지가 감소되므로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급박한 상황에서의 아슬아슬함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주인공은 이들 숙박객에 대한 공격수단이 없으므로(바나나 껍질로 넘어뜨리는 정도) 몇 번씩 맵을 바꿔가면서 자기 방 등 안전지대를 찾아 이들을 따돌려야 한다. 고생고생해서 얻은 혼은 자기 방의 침대를 통해 맡겨놓을 수 있으므로 숙박객에게 다시 빼앗기지 않도록 자주 들러 맡겨두는 것이 좋다.
이렇게 진행하다 보면 숙박객들의 수도 늘어나 올가미로 목을 조이는 것처럼 점차 포위망이 좁혀져 온다. 동사(캡콤)의 「클록타워」 시리즈처럼 도망을 주체로 한 액션요소가 강해지고, 추적해오는 적에게서 공포를 느끼게 되어 호러 어드벤처로서의 진수를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숙박객들의 이동루트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초 단위의 대처도 필수 |
▲ 혼을 빼앗은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시간이 포인트다
앞서 말했듯 주인공 이외의 등장인물은 기본적으로 타임 스케쥴에 맞춰 행동한다. 밤이 되면 잠을 자고, 일어난 후에는 규정된 포인트를 순서대로 이동하는 것이다. 각 캐릭터의 프로필은 호텔 내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그레고리에서 물어보면 들을 수 있다. 타임 테이블에 맞춰 자기 방의 메모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니 혼을 빼앗기 전에 준비를 확실히 갖춰두자.
「그레고리」는 단순한 도망 게임이 아니다. 공략에 세밀한 계획과 치밀한 준비가 요구되는 게임이다. 다른 숙박객들에게 들키지 않고 방을 엿보는 시간을 계산해 이를 기초로 초단위로 통로와 방을 이동하는 등 뇌세포를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 장면이 많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정신없이 복잡해 선뜻 손이 가지 않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제로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멘탈 게이지가 감소되긴 하지만, 그 양이 그렇게 많이 않고 회복 아이템도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 시간이 리얼타임으로 경과하긴 하지만 맵을 열어두고 있는 동안에는 시간이 멈추기 때문에 작전을 가다듬을 시간도 충분하다. 침착하고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는 인상마저 들 정도.
▲ 그레고리에게서 게임진행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을 구할 수 있다 |
▲ 타임 테이블을 이용해 사전준비를 확실히! |
페이퍼 크래프트를 연상시키는 캐릭터들
「그레고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매력은 어쨌거나 풀 3D CG로 그려진 캐릭터들일 것이다. 천칭을 연상시키는 ‘심판동자’, 눈과 입을 바느질로 박은 ‘좀비 고양이’, 하얀 유니폼에 식칼을 들고 다니는 ‘지옥 주방장’…. 페이퍼 크래프트를 연상시키는 이런 엽기적인 캐릭터들이 열 명 넘게 등장한다. 등장 캐릭터들의 조형을 맡은 이와타 나오미 씨(원작의 기획과 각본도 담당했다)의 독특한 센스에 동질감을 느낀 많은 플레이어들이 게임과 함께 ‘그레고리 호러 쇼’의 DVD도 샀다고….
▲ 왼쪽이 좀비 고양이, 오른쪽이 지옥 주방장이다. 하나같이 독특한 센스의 캐릭터들이 아닐 수 없다 |
필자의 「그레고리」 클리어 타임은 7시간 11분이다. 원작을 알고 있다는(즉, 숙박객들의 약점을 알고 있는) 장점도 있고, 몇 번인가 게임을 로드해서 진행했으므로 실제 플레이 시간은 대략 10시간 남짓 될 것이다. 호러라는 장르명이 붙은 만큼 게임은 시각과 청각을 통해 플레이어의 심리에 공포의 비트를 전해온다. 과장이 아니라 공격 수단이 없는 무력한 플레이어가 숙박객들의 추적을 받을 때의 긴장감과 겨우 따돌렸을 때의 안도감은 진짜 대단하다. 이 느낌은 놀이공원에서 맛볼 수 있는 호러 하우스와 비슷하다. 단, 진짜 호러 하우스에 있을법한 현실감은 없다. 비일상적인 캐릭터들이 엮어 가는 다른 차원의 호러 하우스. 그것이 바로 「그레고리 호러 쇼 소울 컬렉터」인 것이다.
TV판 「그레고리 호러 쇼」의 제 26화 이후도 게임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긴, 전철 내에서는 통로가 하나밖에 없으니 도망치기에는 무리겠지…?
▲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캐서린이다. 말투와 행동이 참으로 엽기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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