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지인 한 명이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만나서 얘길 들어보니 슬램덩크 배경이 된 곳을 찾아 떠난 테마 여행이었다. 그보다 더 전에는 홍콩 여행을 가서 영웅본색 촬영지를 돌아보고 온 사람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게임메카에는 걸즈 앤 판처 애니메이션을 보고 핀란드에 갔던 기자도 있었고, 본 기자도 무한도전과 세 얼간이를 보고 인도 여행을 떠났었다. 반대로 한국 드라마와 K-POP을 본 외국인들이 한국에 관광을 오는 경우도 급속히 늘었다. 이처럼 미디어의 힘은 위대하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일본만 해도 용과 같이 시리즈에 나온 곳을 찾아다닌다거나, 페르소나 시리즈에 등장한 가게에 가보는 등 게임 속 장소를 테마로 한 여행이 활성화 돼 있다. 서구권으로 눈을 옮겨도 GTA에 나온 지형을 찾아 미국에 간다거나, 어쌔신 크리드에 나온 유럽 지역들을 탐방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게임 중에서는 고스트 오브 쓰시마와 일본 쓰시마 섬이 연계해 게임 내 등장했던 자연환경과 역사적 장소를 소개하는 관광 캠페인을 전개하기도 했다.
반면, 국내는 이런 게임-관광 융합 사례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실제 한국 도시를 기반으로 한 게임은 시티레이서나 레이시티 등 몇 개 있긴 했지만 현실 세계에서의 영향력은 거의 없었다. 게임과 관광이 연계된 사례는 기껏해야 2016년 국내에 출시되지 않았던 '포켓몬 고'를 할 수 있는 속초로 게이머들이 몰린 정도인데, 한국 특화형 게임도 아니었던데다 지역 제한이라는 독특한 상황이었던 터라 예외로 봐야 하겠다. 한국 게이머이자 게임 기자로서 이런 게임-관광 융합 사례들이 내심 부러웠는데, 최근 게임스컴에서 선보여진 펄어비스 신작 도깨비 신규 영상을 보고 한 줄기 희망이 생겼다.
도깨비 게임스컴 트레일러와 스크린샷을 보면, 한국 내 다양한 명소를 소재로 한 장소들이 나온다. 명확하게 어디라고 얘기한 적은 없지만, 부산 영도구에 위치한 흰여울마을을 비롯해, 낙화놀이가 열리는 함안 무진정, 부산 영도구 85광장, 해운대 청사포 마을 등이 끊임없이 화면에 비춰졌다. 게임 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꾸며진 이 장소들을 스케이드 보드로, 자전거로, 알파카로, 우산을 타고 공중으로 누비고 다니다 보면 익숙하면서도 낯선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실제로 기자는 흰여울마을에 방문한 적이 있지만, 바다 위 상공에서 내려다 본 적은 없었기에 굉장히 생경한 느낌을 받았다.
현재까지 공개된 장소는 대략 저 정도지만, 화면에 비춰지지 않은 세부 지역들도 아직 많을 것이다. 또한, 펄어비스에서 도깨비 제작을 맡고 있는 김상영 리드 프로듀서는 국내 매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에 공개된 맵은 전체의 1/10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공개 지역 중에는 실제 현실에서 영감을 받은 지역도 다수 섞여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먼저 예상되는 지역은 펄어비스가 위치한 안양이다. 실제로 스케이트 타는 장면 등에서 안양 평촌중앙공원을 참고했다고 하니, 안양에 위치한 주요 명소들이 게임 내에 구현될 가능성이 크다. 그 외에도 섬이라는 공간적 특색에 맞춰 제주도 등 유명 관광지의 자연명소가 등장할 수도 있겠다. 민속촌이나 각종 테마파크, 서울이나 지방 대도시 등의 빌딩숲도 유력 후보군이다.
지역에 더해 또 하나 기대되는 점은, 소환수로 등장하는 '도깨비' 들이다. 이들은 사람의 꿈과 욕망, 사념 등에 의해 탄생한 존재로, 일부 개체는 포켓몬을 연상시킬 정도로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귀여운 모습을 한 캐릭터들이 다수 존재하는데, 바로 지자체별 마스코트다.
1990년대 후반부터 유행을 타기 시작한 마스코트 경쟁은 2020년 현재 상당히 깔끔한 모습으로 재탄생해 지역별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중에는 그 모습 그대로 게임에 적용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캐릭터성이 확실한 것도 있다. 최근에는 강원도 마스코트로 평창 올림픽 마스코트였던 수호랑과 반다비의 2세 캐릭터인 '범이'와 '곰이'가 등장해 높은 인기를 얻고 있기도 하다. 이들이 게임에 '도깨비' 형태로 등장한다면 폭발적인 호응이 예상된다.
특정 지자체와 협업 하에 해당 지역의 명소와 마스코트 등을 게임 내에 차례차례 구현한다면,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고 수준의 관광형 게임 메타버스가 탄생하지 않을까? 제일 위에서 언급했듯 현실을 기반으로 한 AAA급 콘텐츠는 그 자체만으로도 관광자원 활성화를 선두에서 이끌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어디까지나 게임의 본래 재미를 추구하면서 부가적으로 얻는 효과겠지만, 기대감은 감출 수 없다.
이 같은 관광형 메타버스를 위해선 다소 과감한 결정이 필요하다. 현재 국내에서 대세로 떠오른, 이른바 '페이 투 윈' BM은 이런 콘셉트 게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어떻게든 우겨넣는다 해도 대중화는 어렵다. 이런 게임이 빛을 보기 위해서는 인게임 결제를 최소한으로 줄인 전통적 패키지 형식 BM이 필수적이다.
개인적인 이상향은 본편을 패키지 형태로 발매한 후 추가 지역과 스토리, 아이템이 한 데 묶인 확장팩이나 DLC를 주기적으로 선보이는 것이다. 이른바 심즈 스타일이다. 심즈 시리즈는 2019년 9월 기준 누적 매출 50억 달러(한화 약 5조 7,900억 원)을 기록한 바 있다. 도깨비 역시 이러한 전철을 밟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오픈월드 게임이기에 메타버스 관점에서 본다면 오히려 더욱 이점이 커 보인다.
조금 욕심을 부리자면 GTA 온라인으로 대표되는 락스타 스타일까지는 괜찮다. 기반이 되는 싱글플레이 본편을 출시한 후, 멀티플레이 모드를 온라인 게임화 시켜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업데이트 하는 방식 말이다. 물론 1안과 2안을 병행하는 선택지도 있겠지만, 인게임 결제 모델은 절대 기존 게임들을 따라가선 안 된다. 경쟁과 과시욕이 아닌 수집과 모험, 커뮤니케이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다행히도 MMO 장르를 액션 어드벤처로 바꾸고, 가족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말을 들어 보면 펄어비스 역시 이러한 점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아직 구체적인 서비스 형태가 결정되지 않아 단언은 어렵지만 말이다. 부디 도깨비가 한국의 명소들을 알리는 1호 게임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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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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