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또래 남자아이들은 저녁을 먹을 시간도 잊고 혹은 학원에 가는 것도 잊고 사라지곤 했다. 물론 우리 집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오빠가 사라졌을 때면 으레 엄마의 명을 받고 탈주범을 찾으러 가는 것은 내 몫이었다. 오빠가 숨어 있을만한 곳은 딱 한곳. 집에서 몇 걸음만 가면 있는 동네 오락실이다.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어린 남자아이들은 백원만 있으면 30분은 보낼 수 있던 오락실에 모여들었다. 시공간을 초월한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마법의 장소 ‘지역구 오락실’에 모여 앉아 ‘게임’으로 세계를 제패하고자 하는 순수한 의지를 나누기도 했다. 비록 그들은 이제 ‘소년’이라고 소개할 수 없는 연륜을 가진 아저씨들이지만, 어느 누군가는 아직도 게임을 즐기는 ‘마음만은 소년’으로 머물러 있기도 하고, 누군가는 바쁜 삶에 지쳐 버린 ‘피곤한 가장’의 탈을 쓰고 있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다 알겠지만 남자들이란 그렇다. 쉰이 넘어 가는 아빠도 게임만 하자고 하면 소년처럼 두 눈을 반짝이며 오시니 말이다. 그리고 여기, 아직도 ‘게임으로 세계 제패’라는 순수한 플랜카드를 내건 열정맨들이 있다. 오락실에서 맺은 인연으로 ‘루니아 전기’라는 게임을 만든 이들이, 2012년 초액션 MORPG ‘크리티카’로 못다 이룬 꿈, 세계 제패에 다시 한 번 도전할 예정이라고 한다니까. 오락실에서 만난 자유로운 소년들이 있는 개발사 올엠. 그중에서도 김영국 이사를 만나 신작 ‘크리티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깔끔한 회의실, 세련된 양복. 그리고 오른쪽 날개, 왼쪽 날개에 홍보팀의 호위까지. 김영국 이사는 조용하지만 기합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간단한 소감부터 말하자면, 갑옷으로 무장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속내를 금방 들켜버리는 영락없이 순수한 액션 게임 덕후였다. 게임 개발자 중 게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만은, 스스럼없이 ‘나는 겜덕이다’라고 웃어넘기다가도 고개를 돌려보면, 어느새 진지한 눈빛으로 ‘좋아하는 마음만 앞서 만든 게임이 아니다’라는 피날레 스킬까지 선보이는 베테랑이 바로 김 이사다.
고액션, 폭주 액션, 미친 액션, 파격 액션, 액션중의 액션, 그야말로 내가 바로 액션이다 등 요즘 게임들이 액션 게임을 치장하는 말이 너무 많다. 그러다보니 ‘크리티카’가 내세우는 초액션이 대체 무엇인지 감을 잡기 힘들었다. 액션 게임이란 으레 화끈한 전투 스타일을 지향하는 것은 당연지사니까. 김 이사에게 그 정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개발사 올엠의 김영국 이사
초액션이란, 무엇보다 강력한 액션으로 게이머를 ‘자극’하는 것
“올엠의 개발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극점’을 찾는 것입니다. MORPG에서는 유저들을 ‘자극’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죠. 세기가 약한 것들은 쉽게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강한 자극에 노출되는 순간 그보다 약한 것에는 더이상 특이성을 찾지 못한다는 이야기죠. 게임 개발단계에서 우린 이러한 자극에 가장 큰 중점을 두었습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렇다. ‘크리티카’를 한번 해본 게이머가 다른 게임을 플레이할 경우 심심하다고 느끼게 만들자, 그래서 다시 ‘크리티카’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만들자. 이것이 김 이사가 전하는 게임의 생존 전략이다.
조용한 말투와 달리 그의 말 기저엔 ‘크리티카’로 액션 MORPG계를 평정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깔려 있다. 초액션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결국 말 그대로 초(超)액션(액션을 초월한 액션)이었다. 긴 시간 의자에 앉아서 몬스터를 기다리네 마네 할 것도 없이, 짧은 시간이라도 집중력 높은 고강도 액션활극을 선보여 게이머들을 자극하는 것, ‘크리티카’의 지향점이 바로 그것이다.
▲ 초액션을 추구하는 `크리티카` 스크린샷
그런거 있잖아요, 말도 안되게 과장된 게 분명한데 자연스러운 그런거
‘크리티카’의 초액션성을 가장 잘 포장하는 방법으로 김 이사가 뽑은 것은 첫 번째 ‘과장성’이었다.
“극한의 액션을 선보이다보니 과장되게 표현된 것이 가장 자연스러웠습니다. 카툰렌더링 방식을 선택한 것도 그때문입니다. 실사풍 그래픽에서 구현된 초액션은 게이머를 어색하게 할 뿐이거든요. 만화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들, 분명 사람이 할 수 없는 동작들인데, 사람이 한다는 것. 그런데 다 그럴 듯하고 멋져 보인다는 사실. 이것이 ‘크리티카’의 액션입니다. 피를 뿌린다든지 하는 고어적인 방법으론 액션성을 살리기 힘들다고 봅니다. 스피디한 전투와 스킬 커맨드와 템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헐리우드 액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통쾌감을 선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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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이사가 말하는 ‘크리티카’는 굳이 영화로 따지자면 ‘본 시리즈’보다는 ‘다이하드’에 가깝다. 치밀하고 세심하게 적의 허를 찌르는 것은 임팩트가 덜하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다이하드’의 존 맥클레인처럼 자동차를 던져서 헬리콥터를 격파시키기도 하고 바주카포에 맞짱 뜨는 담력을 선보이는 것이 미덕이다. ‘크리티카’는 얽히고 설킨 복잡한 플롯으로 영화관을 나올 때까지 머리를 싸메게 만드는 영화가 아니다. 오로지 액션성에 초점을 맞추어 플레이 타임 동안은 다른 생각도 할 것 없이 오로지 화면에만 빠질 수 있게 하는 ‘다이하드’같은 스타일을 지향한다. |
“헐리우드 영화의 과장되고 유치한 느낌은 가지되, 플레이 방식은 쉽게 갈 것입니다. 오토 타겟팅을 선택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FPS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지점을 조준하는 지는 중요치 않다고 봅니다. 액션 게임에서 조준에 따른 스트레스를 줘선 안쨈募것이 우리의 기본 마인드죠. 캐릭터의 시선에 맞춰 자동으로 상대를 선택하되, 스킬에 따른 효과 범위를 조절하여 난이도를 맞출 것입니다. 하드코어하게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액션 게임에선 조준보다 스킬 커맨드가 훨씬 중요하다고 봅니다. 쉬운 조작법 그러나 화려한 액션, 이것이 ‘크리티카’의 메인 포인트입니다.”
▲ 작년
한게임EX 2011을 통해 공개된
`크리티카` PT 영상
찌질한 게임은 만들지 않는다- 적어도 헐리우드급 액셔니스타 정도는 돼야
게임 플레이 영상을 보면 화면이 갑자기 슬로우 모션으로 바뀌면서 캐릭터가 강조되는 부분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스페셜 기술 이펙트인지 그로기 스테이지인지 정체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김 이사는 굉장히 호쾌한 답변을 들려주었다.
그 정체는 캐릭터가 특수기술을 사용하는 어떤 조건을 완수했을 때, 발동되는 이펙트 효과였다. 게임의 포인트가 스피디한 전개에 있다 보니 플레이 흐름을 끊지 않는 한에서 선보일 예정이라고. 어찌 보면 귀찮은 스테이지처럼 느껴질 수 있는 상황. 이런 스테이지를 굳이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했다. 이렇게 보니 캐릭터가 속된 말로 ‘간지’나지 않냐는 것이다.
“저는 찌질한 게임이 싫어합니다. 액션 게임의 주인공들이라면 말 그대로 ‘간지’ 나야 하지 않나요? 게임의 생명성은 유저들이 캐릭터에 애착을 가져야 살아납니다. 난이도 높은 기술을 완수했을 때 영화처럼 카메라가 줌인되면서, 슬로우 모션으로 캐릭터를 강조해줍니다. 유저들이 느끼기에 `캬! 내 캐릭터가 이렇게 멋져, 내 기술 멋지지?, 이런 기술 쓰는 거 보니까 진짜 괜찮은데 자주 좀 보고 싶지 않냐?` 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해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는 찌질한 게임은 만들지 않습니다.”
‘찌질한’이라는 표현에 필자는 상당한 감동을 받았다. 김 이사의 야심에 가득 찬 눈빛 뒤로 존 맥클레인 급 정도 되는 캐릭터가 서 있는 듯 보였다면 필자의 착각이었을까. 인터뷰 내내 김 이사는 캐릭터가 ‘살아 있는’ 게임, 영화 같은 게임을 강조했다. 애니메이션을 즐겨본다는 그는 ‘원피스’ 정도가 게임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했다. 이런 액션 게임의 매력을 살리는 것은 결국 캐릭터의 생명력에서 결정 난다며 말이다.
▲ KOF의 이오리가 떠올리기만 해도 `어떤 캐릭터`인지 감잡을 수 있듯,
`크리티카`도 캐릭터만 봐도 `어떤 캐릭터`인지 느낌이 오는 그런 걸 지향하겠다고
그렇기 때문에 ‘크리티카’의 두 번째 강점은 활력 넘치는 캐릭터성에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냥 서 있는 동작에서부터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모션이라던지
표정까지, 아주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세분화되서 캐릭터를 표현했다고. 마치 한
명의 액션 스타를 플레이하는 느낌을 전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을 그대로
전하자면 게이머의 입에서 ‘이 자식 마음에 드는데?’라고 말하면 모든 일은 성공일
것이다.
“물론 혼자만 이렇게 자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백업 멤버들은 물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액션 아카이브에서 비롯된 자신감이죠. ‘크리티카’의 개발진은 자타공인 액션 게임광들로 가득합니다. 애니메이터 상도준 실장이 기획팀에서 전달하는 무수히 많은 아이디어를 콘셉과 게임에 걸맞는 뉘앙스로 필터링해서 기획을 발달시킵니다. 여기에 액션 게임을 만드는 것을 사명처럼 받드는 이준호 액션 파트장도 있죠. 주성치 매니아인 이준호 파트장이 소장하고 있는 액션 아카이브는 엄청난 수준입니다. 각종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따온 액션 동작 모션 클립 등 수많은 자료를 보유하고 있죠. 게다가 모두 ‘루니아 전기’의 초기 멤버들이니,호흡도 척척 맞을 것은 두말할 나위 없죠.”
▲ 직업은 크게 3종으로 분류돼 있다고
‘크리티카’의 차밍 포인트- 마을에서도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는 시스템
“다른 게임과 차별화 되는 부분으로는 캐릭터의 성장 방식에 있습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마을에서도 캐릭터가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부가하는 것입니다. 인스턴스 던전에서 이루어지는 액션과 다른 방식으로 ‘자극’을 줄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보스 몬스터의 경우 패턴 다각화에 가장 큰 신경을 쏟고 있다. 올엠은 과거 ‘루니아 전기’로 쌓은 노하우와 경험이 많고, 다른 개발사들보다 훨씬 많은 경험, 그로 인해 축적된 노하우가 있다. 물론 김 이사는 몬스터의 개성도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가 아는 당연한 사실이다. 유저들이 좋아하는 보스는 멋만이 아니라, 다양한 패턴으로 유저들을 자극할 줄 아는 두뇌 플레이어여야 한다는 점이다. 김 이사는 게이머들이 원하는 보스 몬스터는 전략적인 두뇌 플레이를 요구하거나, 게이머의 순간 반응을 노리는 타입, 여러 명이 힘을 합쳐야 완료할 수 있는 최강 체력이라던지, 각각 역할 분담이 나뉘어야 깰 수 있는 몬스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극’해주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초반부터 높은 난이도로 게이머를 압박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캐릭터가 성장하듯 유저들도 학습 복사를 따라서 차근차근 레벨을 올려 나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이사는 게임을 가리켜 유희를 주는 카드 게임이라고 정의했다. 보스 몬스터를 만났을 때의 상황을 카드 게임이라고 설정한다면, 게이머는 어떤 액션 카드를 낼 것인지 고민하다 적합해 보이는 카드를 내밀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상대 몬스터가 내미는 카드와의 상성을 맞춰보고 승부가 결정나게 된다. 게임은 이처럼 두뇌 유희를 통한 장난감과 같다며, 액션 별로 다양한 효과와 기능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야 재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 작년 한게임EX에 공개된 `크리티카` 스크린샷
게임으로 세계 정복- 지금도 포기하지 않았다
김 이사는 ‘루니아 전기’를 내놓을 당시 자신감에 가득 차 이 게임으로 세계 정복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속된 말로 겜덕후가 게임을 만들었기에 그만한 프라이드가 작용하지 않겠냐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게임을 만들어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이제 김 이사는 예전에 거만했던 자신감 모드에서 겸손함이 무장된 연륜있는 만학도(?)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기분이라며 자신을 감추었지만, 개발자로서 세계 정복의 꿈은 아직도 가지고 있다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원래는 새로운 장르를 질러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루니아 전기’가 그랬듯이 유저를 이해하고 재미의 원리를 파악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장 자신이 있는 액션 MORPG. 그리고 액션 MORPG의 모든 재미를 집대성한 게임을 만들고 싶어진거죠.”
욕심을 부리는 것은 중요하다. 개발자라면 당연히 품어야 할 야망이다. 김영국 이사는 ‘게임으로 세계 제패’라는 원대한 야망을 가지고 있지만 우선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 베테랑이었다. 올엠이 설정한 목표는 1차 CBT를 통해 크리티카의 액션을 선보이고, 그 후 차근차근 하나씩 얹어서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것이라 했다. 올해 서비스를 목표로, 상반기 안에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는 것. 그래 차근차근 시작부터 끝까지 완성도 있게 만드는 것. 우선은 그것을 첫 번째로 한다고 말이다.
“진정한 웰메이드 액션 게임은 기존 법칙을 깨뜨리는 신규 콘텐츠들을 마구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검증된 액션의 모든 요소들을 제대로 한번 정렬해서 선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 시간만 봐도 스트레스가 풀리는 헐리우드 액션 영화 같은 작품을 만들어 보는 것, 그게 바로 ‘크리티카’가 추구하는 목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크리티카의 캐릭터를 강조한 만큼 김 이사의 캐릭터성(?)도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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