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의 발전 방향은 과거 브라운관을 사용하던 구면에서 LED를 사용하는 평면으로, 그리고 다시 곡면으로 바뀌고 있다. 중간에 3D 모니터가 아주 잠깐 대세가 될 것 같았던 때가 있었지만, 콘텐츠의 부재로 흑역사가 된 지 오래다. 예전처럼 볼록한 것이 아니라 좌우로 휘어져 시야각의 차이로 인한 왜곡을 줄여주는 커브드 디스플레이가 지금의 대세 자리를 넘보고 있다. 휘어진 화면이 어떤 것인지,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무엇인지, 꼭 필요한 것인지 알아보자.
■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현재 PC 모니터에서 구현된 가장 높은 해상도는 5K로, 5120X2880 해상도를 구현한 DELL의 27인치 울트라샤프와 애플의 아이맥 레티나 5K 제품이다. FHD는 당연하고 WQHD나 4K UHD도 놀라운 성능이 아니게 됐다. PC 모니터로 사용하는 정도의 크기에서 구현할 수 있는 해상도는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어, 성능의 향상을 위해 발전 방향이 바뀌어야 할 시기다.
현재의 디스플레이는 1세대 CRT, 2세대 LCD에 이어 3세대다.(또다른 차세대 기술로 일컫는 투명 디스플레이는 2세대에 포함된 개념으로 보는 것이 중론이다) 소위 ‘휘어지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는 네덜란드의 ‘폴리머 비전’에서 2007년 특허를 출원한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휘는 디스플레이 기술 자체는 아니고 해당 기술을 실물로 구현하기 위한 디자인이다. 이후 2012년 실제로 휘는 디스플레이가 적용된 전자책 ‘Readius’를 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처럼 휘어지는 것은 아니었고 2회 접히는 형태였으며, 크기도 전자책으로 사용하기엔 약간 작아서 시장에선 실패했다.
이후 삼성과 LG 등 대기업에서 실제로 방향에 관계없이 휠 수 있는 디스플레이를 공개했다. 그리고 LG는 약간이지만 실제로 휘었다 펼 수 있는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스마트폰 ‘G Flex’를 출시했다. 여기에는 기기 전체가 약간의 유연성을 유지해야 하는 특성을 위해 하우징과 배터리 등에 새로운 기술들이 대거 적용되기도 했다. 다만 디스플레이가 휘어진다는 특징보다 퀄컴 스냅드래곤 810에 대한 단점이 더 크게 작용해 시장에선 철저하게 외면을 받았다. 삼성전자도 ‘갤럭시 라운드’를 시작으로 측면이 휘어져 있는 ‘엣지’ 디스플레이 기술을 자사 스마트폰에 꾸준히 적용하고 있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는 SF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기술로, 이젠 미래의 기술이 아니게 됐다. 영화 ‘어벤져스’에 등장하는 공중 항공모함 ‘헬리캐리어’의 조타 시스템에는 플렉시블 터치 디스플레이가 적용돼 있다.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수트 헬멧에도 적용돼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휘어진 채로 고정된 형태가 대부분이다.
‘꿈의 기술’로 불리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기술의 관건은, 디스플레이 자체보다는 그 주변의 하드웨어에 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자유자재로 휠 수 있는 디스플레이는 구현이 됐지만, ‘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LG G Flex처럼 기기 자체를 휠 수 있어야 활용도에 제한이 사라지게 된다. LG도 G Flex를 위해 스마트폰의 가장 큰 하드웨어인 배터리를 세계 최초 커브드 배터리로 탑재했다. 하지만 프로세서를 비롯해 자사 제품이 아닌 다른 하드웨어들은 이를 적용하지 못해, 스마트폰의 휘는 정도가 큰 의미가 없는 것이 아이러니다.
G Flex 2의 디스플레이 곡률은 700R이고, 이를 평평하게 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하지만 반대로 더 휘어지는 것은 어렵고, 좌우로 비틀리면 뒤틀린 채로 고정되기도 해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 2015년 초 이후로 LG에서 새로운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스마트폰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소비자들은 처음 플렉시블 디스플레이가 공개됐을 때 많은 기대를 했다. 모 브랜드의 TV CM처럼 넓은 디스플레이로 신문을 보거나 손목에 감는 등의 행위가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디스플레이는 어디까지나 출력장치의 일종으로, 그 자체로 하나의 제품이 될 수는 없다. 게다가 아직은 ‘휘어져 있는’ 것보다 ‘휘어지는’ 화면의 필요성도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커브드 디스플레이가 2세대와 3세대의 사이에서 조금씩 제자리를 넓혀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커브드 모니터의 이해
다나와의 모니터 항목에서 커브드 모니터를 선택하면 70개가 넘는 제품들이 판매 중이고, 이중 해외구매와 사업자 대상, 중고 제품을 빼고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제품은 50여 개 정도다. 삼성전자 제품이 30여 개로 가장 많고, LG전자와 중소기업 제품들이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다. 아직은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지만, 꾸준히 늘고 있어 머지않아 모니터 시장의 일부분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브랜드마다 내세우고 있는 커브드 모니터의 곡률은 삼성전자가 1800R로 가장 작고, LG전자가 1900R, 와사비망고가 2000R 정도다. 숫자가 작을수록 더 많이 휘어진 것이니 삼성전자의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기술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커브드 모니터는 단어 그대로 좌우로 휘어져 있는 디스플레이가 적용된 제품을 뜻한다. 가장 큰 특징으로 사람의 시점에서 가까운 곳과 먼 곳을 볼 때의 왜곡을 줄여주는 것이고, 이는 디스플레이에 적용된 ‘곡률’(curvature)로 휘어진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브랜드마다, 제품마다 적용되는 곡률이 조금씩 다르고, 곡률이 클 수록 더 많이 휘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곡률이란 곡선에 가장 근접한 원의 반지름을 말하는데, 아래의 그림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모 커브드 모니터의 곡률이 2000R이라면, 그 모니터는 반지름 2000mm인 원의 곡선만큼 휘어져 있다는 뜻이다. 자연히 숫자가 낮을수록 곡률이 큰 것이며, 자칫 혼동할 수 있으니 곡률 수치가 낮은 것을 ‘좋다’보다는 ‘높다’로 표현하는 것이 옳은 듯하다.(화면이 더 많이 휘어져 있는 것이 더 좋은 제품인지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악한 그림이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곡률 단위인 XR은 반지름 Xmm인 원의 곡선이 휜 정도를 나타낸다. 커브드 TV에 많이 적용되는 4200R은 반지름 4.2m인 원의 곡선을 생각하면 된다.
모니터의 크기에 따라 휘어진 정도가 다를 것이라 생각하는 사용자들이 많다. 결론적으로는 커브드 모니터의 휘어짐 정도는 화면 크기보다는 곡률에 따라 다르다. 작게는 22인치부터 크게 40인치까지 다양한 크기의 제품들이 있는데, 화면이 크다 해서 더 휘어진 것도 아니고 작다고 덜 휘어진 것도 아니다. 같은 곡률이라면 22인치든 40인치든 휘어진 정도는 같다.
커브드 모니터의 곡률을 실제로 알아보는 것도 간단히 할 수 있다. 대세인 27인치 커브드 모니터인 삼성전자 ‘C27F581F’ 제품을 기준으로 알아보자. C27F581F의 곡률은 1800R이니, 길이 1.8m의 끈이나 줄자를 준비한다. 27인치 화면의 가로 길이는 약 60cm 정도이니, 한 쪽을 고정시킨 뒤 다른 한 쪽을 고정된 점을 기준으로 60cm의 곡선을 긋는다. 그리고 다른 모니터의 곡률을 보려면 끈의 길이를 1.9m, 2m 정도로 잡고 같은 길이로 곡선을 그려 보면 된다.
그려보면 알겠지만 1800R과 2000R의 차이는 겉보기엔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 차이는 직접 사용해볼 때 아주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화면의 크기가 클수록, 그리고 화면과 눈 사이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그 속도가 빨라진다. 영상보다 게임에서 그 차이가 좀 더 명확해지는데, 화면이 안쪽으로 휘어져 있다 보니, 게임 화면에서 가장자리 부분을 인식하는 것이 커브드 모니터가 좀 더 빠르다. 40인치 일반 모니터와 커브드 모니터를 각각 사용해 본 기자의 개인적인 경험적인 차이다. 이것이 거리에 의한 왜곡이 줄어서 나타난 현상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 곡률보다는 패널의 성능과 가격
사실 커브드 모니터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에게 기자가 해주고 싶은 조언은, 커브드 디스플레이 자체에 대한 것은 거의 없다. 어떤 패널을 사용했는지, 응답 속도는 괜찮은지, 제품의 마감이 나쁘진 않은지 등등, 게이밍 모니터가 아니라면 일반 모니터를 살 때와 커브드 모니터를 살 때 고려해야 할 점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가장 큰 차이이자 커브드 모니터의 존재 증거인 곡률이 차이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대부분 1800R로 커브드 모니터 중 곡률이 가장 높고, LG전자가 1900R, 알파스캔이나 다른 중소기업 제품들은 2000R이 대부분이다. 같은 크기라면 곡률이 높은 제품이 커브드 모니터의 진가를 확인하기에 더 좋지만, 같은 크기의 일반 모니터 대비 가격대가 다소 높은 점은 감안해야 한다.
앞서 예를 든 삼성전자 ‘C27F581F’의 현재 가격은 약 33만 원대인데, 같은 크기의 일반 모니터 ‘S27F350’이 21만 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다른 브랜드의 27인치 일반 모니터도 가격대는 비슷하며, 심지어 33만 원대로 중소기업의 27인치 WQHD 해상도 모니터도 구입할 수 있다.
중소기업 제품도 상황은 비슷하다. 와사비망고의 ‘340UC REAL HDMI 2.0 커브드 재은이’의 현재 가격은 80만 원대 중반인데, 이 가격으로 같은 브랜드의 49인치 4K UHD 해상도의 제품(UHD490 REAL4K HDMI 2.0 엣지)을 구매해도 치킨 값이 남는다. 확실히 커브드 디스플레이라는 신문물을 접하기 위해선 지갑 사정이 넉넉해야 할 듯하다.
▶ 마치며...
기자가 최근 자주 가는 PC방에 얼마 전 40인치 커브드 모니터가 다수 배치됐다. 예전에도 사용해 보긴 했지만 큰 의미가 있을까 싶었던 차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새 확장팩이 나온 김에 한동안 사용해 봤다. 부서진 섬에 처음 발을 딛고 105레벨이 될 때까지 사용해보니, 무한도전을 볼 때보다는 게임을 즐길 때 커브드 모니터의 장점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커브드 디스플레이의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아래 사진은 중국에 놀러 갔다가 들른 샤오미 매장에서 본 ‘Mi TV 3S’인데, 곡률이 4000R인 커브드 TV다. 옆에서 보고 얇은 두께와 더불어 휘어진 정도를 알 수 있었는데, 문제는 정면에서 봤을 때엔 평면과 커브드 디스플레이의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모니터는 아무리 멀어도 화면과 눈의 거리가 약 80cm 정도다. 반면 TV는 적어도 1.5m 이상은 떨어져서 시청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정도 거리에선 시야가 가까운 부분과 먼 부분의 왜곡이 줄어든다고 해도 그 차이를 느끼기가 어렵다. 실제로 매장의 TV 전시대에서 2m 정도 떨어져서 약 5분간 화면을 봤는데, 4K UHD의 해상도와는 별개로 옆에 있던 평면 TV와도 크게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실제로 4m 길이의 끈 한 쪽을 고정시키고 다른 쪽 끝을 약 1.3m 정도 움직이며 선을 그으면, 60인치 커브드 TV의 곡률을 알 수 있다. 아마 ‘이만큼 휘어진 게 시야의 왜곡을 줄여준다고?’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기자도 처음 커브드 TV나 모니터를 볼 때 이런 생각이 들었고, 지금도 그 의문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사실 화면과 눈과의 거리가 2m 이상으로 멀어지면 4000R 정도의 곡률은 큰 의미가 없다. 화면이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의 눈은 그리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리의 차이로 생기는 왜곡에 대한 정보는 이미 눈에서 뇌로 전달되고 있기에, 광고하는 것처럼 왜곡 현상을 크게 체감하진 않는다. 게다가 화면을 안쪽으로 휘어 놓으면 시청자의 위치는 평면 TV보다 더욱 제한된다. 또한, 조금 옆에서 보게 되면 화면의 일부분은 오히려 평면 TV보다 왜곡이 더 심하게 보인다.
커브드 TV보다 커브드 모니터의 제품 보급이 좀 더 빠른 이유는 만드는 쪽에서도 알고 있는 듯하다. TV보다 모니터가 화면과 눈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 왜곡 현상을 체험하기 더 쉽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판매 전략인 셈이다. 물론 커브드 디스플레이의 효과가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물리적으로 화면의 좌우를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고, 이것이 익숙해지면 평면보다 휘어진 화면이 더 좋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커브드 디스플레이의 효과를 눈에 띄는 차이로 체감하려면 화면이 시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화면과 눈 사이가 가까워야 한다.
기획, 편집 / 다나와 홍석표 (hongdev@danawa.com)
글, 사진 / 테크니컬라이터 정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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