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는 얘기는 사실인 것 같다. 얼마 전 PS2용 ‘3학년 B반 킨파치 선생님 전설의 교단에 서서!(이하 킨파치)’를 플레이하며 오랜만에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이건 나이가 들어 눈물샘이 약해졌다거나 눈이 침침해졌다거나 팬티에 오줌을 지리는 등 나이에서 오는 기관의 노후화와는 관계가 없다. 어른이 되면 사회생활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겪게 되므로 그만큼 다른 사람들의 진심이나 기쁨, 괴로움 들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더욱 감정이입이 쉬워져 울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백화점 등지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쓰며 엉엉 울고 있는 꼬마들이 수십 년 만에 만난 이산가족의 모습을 보고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지금은 이미 돌아가시고 안 계신 할머니가 별 이야기도 아닌 평범한 드라마를 보는 도중에 감정이 복받쳐 올라 우시는 모습을 이제는 조금 이해할 것 같다. 그렇다고 필자가 이미 머리가 희끗희끗해질 정도로 나이를 먹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떼를 쓸 때 이외에도 울 수 있게 됐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킨파치’에서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잘됐네’라는 말이 플레이하는 사람들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하는 마력을 발휘한다. ‘킨파치’는 더 이상 동화를 읽지 않게 된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같은 존재인 것이다.
감정이입은 ‘킨파치’를 말하는데 더 없이 중요한 키워드다. 플레이하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하는 남이었던 학생들과 어디까지나 설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선생님으로 표현되는 플레이어의 입장. 그러나 감정이입을 통해 플레이를 해가면서 학생들은 조금은 밉살스럽지만 더없이 사랑스러운 녀석들로 바뀌어 가고, 사사건건 부딪히던 선생님들도 좋은 동료로 바뀌어 간다. 사건이 터지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해결하고 싶어지고, 학생들의 웃는 모습에 생각지도 못한 감동을 받게 된다.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회초리를 난무하는 생활지도 타입의 선생님인 내가 단지 아이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몇 번씩 찾아 가곤 한다.
▲ 프린세스 메이커가 딸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을 자극했다면 킨파치 선생은 학생들에 대한 선생님의 애정을 자극한다. 교사를 지망하는 게이머에게 강추! |
▲ 왼쪽이 츠키야마 미사키, 오른쪽이 히야마 타이요우. 학생들 중에서 유난히 정이 많이 갔던 캐릭터다 |
스토리는 각 화마다 다른 선생님이나 학생들이 주인공이 되어 진행된다. 각 화의 스토리가 진행되면 그들의 개성이 전해져오고 의외로 좋은 녀석이라 이해하며 친근감이 느껴진다. 처음 만났을 때의 학생과 졸업할 때의 학생 사이에는 엄청난 갭이 있어 마치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토리가 좋은 것뿐이라면 애니메이션 형태로 만들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킨파치 선생’의 좋은 점은 게임으로서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아이디어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어드벤처 게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선택지에 의한 단순한 스토리 분기나 그림 연극 같은 부분이 ‘킨파치 선생’에는 없다. 맵 내에 산재하고 있는 인물 중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골라 만나러 가고, 키워드를 던짐으로써 대화를 이끌어낸다. 이로 인해 스토리의 진전이나 분기, 재핑이 생겨난다. 메인 줄거리와는 관계가 없지만 빙 돌아감으로써만 들을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나 설정 등도 있기 때문에 굳이 답을 찾기 위해서 플레이를 할 필요가 없다. 이 도중에 학생 한 명 한명의 재능을 키워줘 직업을 개화시키는 요소도 있기 때문에 선생이라는 직업은 무지하게 바쁘다. 이 마을에서 살고 있(는 걸로 보이)는 선생님은 다양한 형태로 학생들과 만나고 이들에 대한 플레이어의 감정이입은 높아진다. 게임과 스토리가 절묘하게 융합한 새로운 스타일의 게임이라 평하고 싶다.
▲ 이것이 재능개화 시스템. 입수한 재능개화 카드를 이용해 칸을 매워 나가면 숨겨졌던 재증이 꽃을 피운다. 사진은 아야카의 재능 중 ‘댄서’를 개화시킨 모습이다 |
‘킨파치’에는 여러 명의 담당자가 퇴고를 거듭하며 썼던 스토리 중에서 더욱 엄선한 작품만이 수록됐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에는 ‘고양이의 보은’의 캐릭터 디자이너, 작화감독, 색지정 담당, 촬영 담당을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이 모여 만들었다. 우연히도 제작사 츈 소프트 근처에 있는 성우 프로덕션에 놀랍게도 드라마에서 이누이 선생님 역을 연기한 모리타 씨가 있었다는 등 ‘킨파치’의 제작과 관련한 화제거리도 많았다. 제작면에서도 게임에 지지 않을 정도의 드라마틱한 요소가 있었던 것이다.
▲ 정지화면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표현이 게임 곳곳에 등장한다. 그것도 고 퀄리티로 |
|
▲ 아이돌 스타 우에토 아야가 주제가를 불렀다. 오른쪽은 메모리카드 오리지널 세트로 학생들의 프로필이 담긴 학생증이 동봉되어 있다. 꽤 인기를 얻은 제품 |
사실 필자는 원작이 있는 게임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원작의 인기에 편승해 돈을 벌어보려는 상술이 대부분이라 게임을 하면서 정말로 재미있다고 느껴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킨파치’ 역시 원작(드라마)이 있는 작품이라 플레이에 망설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게임계의 천재 중 한 명인 나카무라 사장(츈 소프트의 대표)이 츈 소프트 창립 10주년 기념으로 이 작품을 만든 만큼 믿고 플레이했던 것이 정말 행운이었다.
필자의 지론 중에 감동해서 우는 것과 아무 생각 없이 폭소를 터뜨릴 수 있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말자는 것이 있다. 감정을 자극하는, 그럼으로써 카타르시스를 주는 엔터테인먼트는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이런 의미를 담아 많은 사람들께 이 게임을 권하고자 지금 리뷰를 쓰고 있다. 어른들에게도 물론 권하고 싶지만 중학생 또래의 학생들이 이 게임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가 정말 궁금하다. 만약 내가 중학생 때 이 게임을 해보았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마 별 생각 없이 그냥 시간 가는 대로 중학생 시절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 무렵의 시간들, 친구들, 선생님들, 이런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알지 못한 채 지냈을 것이다. 지금 중학생이 이 게임을 해보면 최소한 중학생 시절을 무의미하게 보내지는 않으리라고 믿는다. 인생은 여러분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짧다. 훨씬…. 훠~얼씬.
▲ 교사의 길을 멀고도 험하다. 배드 엔딩에 포기하지 말고 더욱 정진하자 |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