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2에서
되살아난 야수의 힘
프리뷰를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 게임은 옛날 옛적에 발매된 수왕기와 같은 타이틀명을 가지고 있다. 필자와 같이 80년대부터 게임을 해온 유저들이라면 동물을 잡아먹은 뒤에 흉폭하게 변신, 그 뒤에 호쾌하게 적들을 물리치는 ‘수왕기’라는 게임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보면 초등학생들 눈에도 들지 않을 게임이지만 당시에는 다른 게임들과 달리 인간이 야수로 변한다는 매력적인(?) 설정과 2P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많은 인기를 끌었다. 아쉽게도 이후의 시리즈는 발매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PS2의 힘을 빌어 수왕기가 돌아왔다. 하지만 세가의 리메이크 욕심이 과했는지 아니면 부담이 컸는지 예전의 수왕기 모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현대판 수왕기는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자.
▲ 이런 추억의 장면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
▲ 인간의 게놈 지도가 배경을 이루는 타이틀 화면 |
곰 같은 힘이여 솟아라!
수왕기에 관심이 있는 대부분의 유저들은 필자와 같이 원조 수왕기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또 여러 경로를 통해 미리 접했던 스크린샷이나 동영상에서 다소 충격적인 변신 장면들을 보고 더욱 기대가 높아졌을 것이다.
이번 수왕기도 인간이 야수로 변한다는 설정은 건재하다. 주인공 루크는 진행에 따라 웨어울프, 머맨, 웬디고, 가루다, 미노타우루스, 드래곤으로 변신이 가능하며 숨겨진 3개의 야수까지 합하면 총 9가지의 야수로 변신할 수 있다. 전작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이 야수들은 원작에서도 등장했던 야수들이기 때문에 올드팬들의 추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할 것이다. 또 등장하는 몬스터도 많은 수가 3D로 재구성된 이전의 그 녀석들이기 때문에 감회에 젖어 신나게 공격할 수 있다.
특히 액션 게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타격감도 시원한 편이고 특정 야수를 제외하면 시야확보와 카메라 앵글도 괜찮은 수준. 각 야수별 개성도 확실하고 게놈칩과 강화칩으로 인한 자기 나름대로의 개조(?)가 가능하며, 진행하는 차례에 맞춰 새로운 기술이나 야수를 사용해야하기 때문에 특정 야수만을 사용하게 되는 딜레마를 없앴다. 또 기존의 단순 액션 게임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총 15개의 지역을 탐사하는 모험의 재미도 갖추고 있으며 숨겨진 유니크 몬스터라던가 적들의 데이터를 얻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외에도 보스와 벌이는 타임어택, 클리어 후에 도전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 오브 둠과 같이 부록적인 요소들도 충분하다.
▲ 충격적인 변신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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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션성은 뛰어나다 |
▲ 숨겨진 요소를 찾는 재미도 쏠쏠~ |
세가의
고집
닌텐도와 함께 게임계의 대부로 자리매김 해온 세가. 하지만 이번에 욕심이 지나쳤는지 앞의 야수 변신을 제외하면 전작의 느낌은 어디에도 없다. 물론 원작을 리메이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꼭 완벽히 재연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면 새로운 세계관이라도 재미있어야 하지 않을까?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조금씩 연계되는 스토리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고(누구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그런 내용) 캐릭터들도 흡인력이 부족하다. 액션 게임이지만 꽤나 오래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 부실한 스토리는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 가장 불만인 것은 변신 동영상의 스킵이 안 된다는 것이다.
충격적이면서 엽기적이기도 한 변신 동영상은 처음에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자주 변신을 해야 하는 중반 이후에는 매우 귀찮은 존재로 전락해버린다. 옵션에서 동영상을 스킵하는 설정 하나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을 텐데 작은 배려가 아쉽기 짝이 없다(필자는 개인적으로 변신하는 시간이 격투 게임의 캔슬기처럼 무적 시간이 있어서 훌륭한 활용이 가능할 거라 기대했거늘 변신하는 중에도 신나게 적들에게 두들겨 맞게 된다).
이외에도 적들의 데이터를 입수하면 일일이 클릭해서 확인해야 하는 등 게이머들의 편의는 고려하지 않은 부분이 많아 아쉬움이 커진다. 큰 부분은 아니지만 유저들의 편의를 생각하는 제작사의 배려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플레이 내내 지울 수가 없었다.
▲ 어정쩡한 캐릭터들 |
▲ 콤보라던가 야수의 개조는 괜찮은 아이디어다 |
어렵다,
너무 어려워!
수왕기는 요즘 나오는 액션 게임들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 졸개들과 싸울 때도 17:1은 기본이며 지속적인 체력과 스피릿 관리도 필요하다. 특히 보스전이 상당히 어려운 편이라 패턴을 파악하지 못하면 게임오버 화면 보기에 바쁠 것이다.
필자가 개인 사정으로 약 3개월 정도 게임과는 떨어져 살았지만 ‘스프린터 셀’ 이후로 이렇게 많이 죽은 게임은 처음일 정도. 기록된 플레이 타임은 10시간 정도지만 실제 걸린 시간은 30시간이었다. 이런 난이도 문제는 플레이어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차이가 있겠지만 요즘 게임들에 비하면 지나치게 높은 난이도는 마이너스 요소로 보인다.
또 이런 난이도 상승에 한 몫 하는 것이 바로 머맨과 가루다다. 머맨은 물속에서 변신하여 활동하고 가루다는 공중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이 두 가지 야수는 수중과 공중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전제로 사용하는 야수들. 따라서 다른 야수들과는 달리 맵의 고도 개념이 존재하며(물속이라면 수심) 공격도 원거리 공격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제는 이들의 특수한 모드가 조작이 상당히 어렵다는 데에 있다. 캐릭터의 높낮이는 조정할 수 있지만 과연 내가 적과 같은 선상에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우며 공격도 빗나가기 쉽다. 액션 게임을 하다가 난데없이 레이더가 없는 3D 슈팅 게임을 하는 느낌이랄까?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는 적들의 고도를 표시해주거나 적들을 자동으로 조준할 수 있는 시스템을 탑재해줬으면 아쉬움이 남는다. 이로 인해 수중이나 공중에서 벌이게 되는 보스전은 가뜩이나 어려운 난이도로 치솟으며 맘대로 되지 않는 조작으로 인해 패드를 던지는 사람도 생길지 모른다.
▲ 다시는 조작하고 싶지 않은 머맨 |
▲ 가루다 역시 정말 조작이 힘들다 |
▲ 이틀 내내 시달렸던 라스트 보스 |
미완성의 작품
액션성만 가지고 본다면 괜찮은 게임이지만 빈약한 스토리와 캐릭터, 불편한 시스템 등으로 인해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게임이라는 게 단적인 느낌이다. 또 데빌 메이 크라이나 바이오 해저드처럼 기존에 존재하는 비슷한 부류의 3D 액션 게임들에 비해 뚜렷한 차이가 있기 보다는 오히려 시스템의 단점이 많아 차별화된 느낌을 주기에는 어렵다. 또 이번 작품의 성격상 굉장히 과격하고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지나치게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이런 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걱정되는 부분이다. 어느 정도 사실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은 게임의 몰두에 도움을 주지만 지나치게 접하면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니 말이다.
독특한 개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단점으로 인해 제 빛을 다 발휘하지 못한 수왕기. 세가의 의욕적인 작품이었지만 기대에는 못 미친 점이 아쉽다. 다음에는 좀 더 나은 세가의 작품을 기대한다.
▲ 클리어 후에 숨겨진 야수를 찾아보자 |
▲ 지나친 선혈이 낭자하는 점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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