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팅 게임은 ‘게임’이라는 오락이 처음 정립될 때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게임 장르이다. 캐릭터를 조작해 미사일을 쏘면서 앞으로 나가는 간단한 방식을 자랑하기에, 사전 지식 없이도 누구든지 쉽게 즐길 수 있다. 잘 쏘고 잘 피하기만 하면 된다.
▲이
시절만 해도 게임=슈팅이었다.
그러나 ‘스페이스 인베이더’, ‘갤러그’로 인기를 끌었던 슈팅게임은 대전액션게임과 리듬게임에 밀려 아케이드에서 설 자리를 잃었고, 콘솔과 PC에서도 RPG와 FPS의 인기를 따라잡지 못했다. 이제 슈팅게임은 매니아들만 하는 게임으로 인식이 잡힌지 오래다. 그러나 슈팅게임은 제작 과정이 (다른 게임에 비해) 단순하기에, 아마추어 제작자들이 가장 많이 만드는 게임 장르이기도 하다. 그런 아마추어 게임(동인게임)중에서 가장 성공한 게임으로 평가받는 것이 바로 일본의 ‘동방 프로젝트’ 인데, 본 기사에서는 ‘동방 프로젝트’ 에 대해 완벽히 분석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탄막 슈팅이 뭐길래?
‘동방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다시 한번 슈팅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다른 장르의 게임에 밀려 사양세를 타던 슈팅게임은 변화를 모색했다. ‘탄막 슈팅’ 이라는 세부장르가 그것이다. ‘탄막 슈팅’은 기존의 슈팅게임과 전반적인 진행은 같지만, 화면을 가득 메우는 총알과 적은 피탄판정을 특징으로 가진다. 이는 그래픽과 하드웨어가 발전과도 연관이 깊다. 예전에는 오브젝트(총알)가 많아지면 게임이 느려졌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수많은 오브젝트(총알)을 화면에 뿌려도 게임에 지장이 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렵게
보여도 자꾸 하다 보면 는다.
총알이 화면을 꽉 메우다 보니 초심자가 보기에는 엄청 어려워 보이지만, 캐릭터가 총알을 맞는(피탄) 범위가 적기 때문에 겁만 먹지 않으면 비교적 쉽게 클리어할 수 있다.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동방 프로젝트 역시 탄막 슈팅 게임으로, 화면을 아름답게 수놓는 탄막(문자 그대로 총알이 커튼을 치는 것처럼 나온다)을 구경할 수 있다.
이 시리즈의 제작자 ‘ZUN’(오오타 준야太田 順也)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게임에 써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동방 프로젝트'를 제작했는데, 꼼꼼한 성격 탓에 자신이 프로그램과 음악, 세계관까지 모두 만들어냈다고 한다. 게임의 배포 역시 자신이 코믹마켓(일본의 애니메이션, 게임 팬들의 창작품 판매회)에서 배포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동방
프로젝트의 팬들이 만든 만화와 음반들.
음반은 주로 원곡을 어레인지하거나
직접 작곡하기도.
일본 현지의 '동방 프로젝트'의 인기는 다른 상업 게임의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팬들은 자신들이 직접 이 게임을 소재로 한 만화나 음악을 만들어냈으며, 최근에는 자신들이 직접 애니메이션을 만들기까지 했다. 게다가 일본의 동영상사이트 ‘니코니코 동화(ニコニコ動畵)’ 에서는 업로드되는 동영상 세 개중 하나가 '동방 프로젝트' 관련 창작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정도면 다른 상업 게임에 맞먹는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방 프로젝트’는 왜 이렇게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걸까? 그 인기는 슈팅 게임 그 자체의 재미도 있겠지만, ‘동방 프로젝트’만의 독특한 세계관과 캐릭터에서 찾을 수 있다. 동서양의 요괴와 설화들을 조합하여 만든 ‘환상향’ 이라는 세계관은 매번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새로운 캐릭터와 설정이 추가되어 팬들의 상상력이 개입될 여지를 만들어 주고 있으며, 여태까지 나온 캐릭터(’동방지령전’ 기준으로 이미 100명이 넘는다)중 겹치는 속성이 거의 없을 정도로 각각의 개성을 자랑하고 있다. ZUN의 능력에 매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캐릭터가 나오지만 이 캐릭터들이 한두번 쓰다가 잊혀지지 않고 계속 쓰인다는 점이
놀랍다.
동방 프로젝트 게임 간단리뷰
정확히 말하자면 ‘동방프로젝트’는 특정 게임을 부르는 명칭이 아니다. ‘동방 프로젝트’는 원작자 ZUN이 직접 만든 탄막 슈팅 게임의 시리즈를 이르는 말이다. '동방 프로젝트'를 이루는 게임은 여럿 있지만, 여기서는 PC98(일본 전용의 운영체제)로 나온 '동방영이전'(벽돌파괴게임), '동방봉마록'(여기서부터 슈팅 게임이다), '동방몽시공', '동방환상향', '동방괴기담' (여기까지 구작이라 부른다)은 제외하고, 윈도우용으로 개발된 '동방홍마향'(여기서부터 신작이라 부른다)부터 소개하도록 하겠다.
동방홍마향 ~ the Embodiment of Scarlet Devil
동방괴기담 이후 새로 시작된 '동방 프로젝트' 시리즈. 구작부터 계산하면 6번째 작품이다. (실행파일의 이름은 th06) 환상향에 해가 뜨지 않는 이변을 해결하기 위해 주인공 ‘하쿠레이 레이무’와 ‘키리사메 마리사’가 나서는 내용이다. 다른 슈팅 게임의 ‘폭탄’ 에 해당하는 ‘스펠카드’ 시스템이 처음으로 정립된 작품으로, 스펠카드는 플레이어만 쓰는 것이 아니라 보스 또한 '스펠카드'를 이용해 다양한 탄막을 뿌린다. 물론 다른 슈팅 게임의 보스도 탄막을 뿌려대는 건 똑같지만, 이런 패턴을 '스펠카드' 로 명명한것은 '동방 프로젝트'만의 특징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한편 '동방홍마향'은 현재까지의 '동방 프로젝트' 사상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관계로, 초보자에게는 이 작품보다는 아래 설명할 '동방영야초'를 추천한다.
동방요요몽 ~ Perfect Cherry Blossom
'동방홍마향'에서 지적되었던 버그와 난이도를 개선한 시리즈. (th07) 총알을 피하는데 집중하다보면 보스의 위치를 놓치기 쉬운데, 보스의 위치가 화면 하단에 표시가 되어 게임하기 한결 편해졌다. 난이도가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초보자들은 이지와 노말에서 수련하도록 하자. 참고로 이 작품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동방 프로젝트'의 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동방췌몽상 ~ Immaterial and Missing Power
'동방 프로젝트'중 외전격에 해당하는 시리즈. (th7.5) ZUN과 아마추어 제작팀(동인서클) '황혼 프론티어'가 같이 제작하였다. 캐릭터들의 일러스트 또한 ZUN이 아닌 '황혼 프론티어'에서 그려 기존과는 다른 매력을 준다. 또한 슈팅게임이었던 전작과는 달리, ‘탄막 액션 게임’ 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 전반적인 진행은 대전격투게임과 비슷하지만, 서로의 탄을 막거나 피하고 받아치면서 대전을 하는 것이 특징. 이후 '동방췌몽상'의 후속작으로 '동방비상천'(th10.5)이 나왔다.
동방영야초 ~ Imperishable Night
'동방 프로젝트'중 난이도가 가장 쉬운 시리즈(th08). 인간과 요괴가 콤비가 되어, 환상향의 보름달이 가짜로 바뀐 이변을 해결하게 된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상황에 따라 인간과 요괴 캐릭터를 적절히 바꿔서 쓸 수 있어야 하며, 게임은 캐릭터와 플레이 내용에 따라 스토리가 변하기도 한다. 물론 난이도는 언제까지나 다른 시리즈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운 것이므로, 이지모드라고 해서 방심하지는 말자.
동방화영총 ~ Phantasmagoria of Flower View
‘탄막 슈팅’ 게임이 아닌 ‘대전 탄막 슈팅 게임’(th09). 퍼즐 게임 ‘뿌요뿌요’를 탄막 슈팅버전으로 해석한 것 같은 느낌이다. 서로의 진영에 나오는 흰색 총알을 많이 지워서, 이것을 상대방 진영으로 보내는 것이 주된 게임 방식이다. 전작에 비해 상당히 많은 캐릭터를 사용할 수 있고, 네트워크 플레이도 되므로 혼자서 하기 보다는 같이 하기를 추천한다.
동방문화첩 ~ Shoot the bullet
'동방췌몽상'에 이은 외전격 게임(th9.5). 이번에는 공격을 해서 보스를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 직접 대상에 접근해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 주인공은 '샤메이마루 아야'로, '하쿠레이 레이무'가 주인공으로 나오지 않는 유일한 작품이다. 대상까지 접근해야 하는 관계로 난이도는 다른 '동방 프로젝트' 게임보다 상대적으로 어렵다.
동방풍신록 ~ Mountain of Faith
여태까지의 '동방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던 ‘스펠카드’ 시스템이 변화한 작품(th10). '스펠카드'가 파워게이지랑 통합되고 명칭도 ‘영격’으로 바뀌었다. '영격'을 사용하면 무기의 파워가 떨어져, 이를 남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플레이할 수 있는 캐릭터는 '하쿠레이 레이무'와 '키리사메 마리사' 단 둘로 줄어버렸고, 의외로 버그가 많다. ‘키리사메 마리사’(B타입) 로 레이저를 쏘면(이때 파워는 3.00이상 4미만) 화력이 ‘킹왕짱’ 이 되는 ‘초마리사’ 버그가 유명하다.
동방지령전 ~ Subterranean Animism
08년 8월 코믹마켓에서 공개된 '동방 프로젝트'의 최신작(th11). 환상향에 간헐천이 생기고 지령(地靈)들이 튀어나오자 이를 해결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캐릭터('하쿠레이 레이무', '키리사메 마리사')와 파트너가 되는 요괴를 선택해 플레이한다. '동방영야초'와 다른 점은 파트너가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주인공에게 힘을 빌려준다는 것이다. 난이도는 전작보다 상승해 '동방홍마향'과 비슷한 수준.
아마추어 개발자는 곧 게임시장의 개발역량
▲'동방
프로젝트' 외에도 계속 퀄리티 높은 아마추어 게임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일본
시장의 저력을 알 수 있다. (사진은 일본의 유명 아마추어 게임 '쓰르라미
울적에')
아마 '동방 프로젝트'가 이렇게 인기를 모을 줄은 ZUN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이정도 인기를 확인했라면 보통은 프로로 전향하여 게임 그 자체에 더 집중했을 텐데, ZUN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아마추어 활동을 고집하고 있다. '동방 프로젝트'는 언제까지나 자신의 취미활동이므로, 자신이 재미없어질때면 언제든지 그만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타인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할수 있을만큼의 선을 그어두고 지나치지 않는 다는 점에서 필자는 그저 부러워할 뿐이다.
어쩌면 ZUN같은 사람이 바로 옆 나라에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불행인지도 모른다. 한국에는 ZUN같은 능력을 가진 아마추어 개발자도 없고, 그런 사람을 지지해출 팬층도 굉장히 얇다. 슈팅게임의 마니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추어들이 만든 게임을 즐기고 평가해줄 사람이 적다는 말이다. 재미는 상용화되는 것보다 덜하겠지만, 아마추어의 게임들을 직접 찾아내어 즐겨본다면 언젠가는 그들이 프로의 무대에서 실력을 발휘하지 않을까. 이런 아마추어 개발자들의 존재가 그 나라 게임시장의 ‘개발역량’을 보여주는 거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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