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앙의 펀몬기행기 전편 보기]
▶크앙의
펀치몬스터 기행기 1부, 의심쟁이 애어른 등장
▶크앙의
펀치몬스터 기행기 2부, 강화하다 노숙자 신세
▶크앙의
펀치몬스터 기행기 3부, 여신 따위 필요없어
“이제 소울브레이커가 될 때인가?”
‘펀치몬스터’ 에서는 15레벨이 되면 상위 직업으로 전직을 할 수 있다. 크앙은 초절정 멋쟁이 파워풀 용사 직업인 소울브레이커로 전직을 하기 위해 결투장에 있다는 전사 교관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크앙, 드래곤나이트 말고 소울브레이커가 되고 싶어요
크앙은 결투장에 도착하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저 멀리 결투장 구석에 굉장히 심심해 보이는 전사와 마법사, 궁수가 우두커니 서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저기 있는 전사가 나를 소울브레이커로 전직시켜 줄 전사교관 루카스인 것 같다.
“중얼중얼.. 소울브레이커 지망생이 더 필요해.. 중얼중얼중얼..”
“어이 아저씨, 나 전직하러 왔어요.”
“어, 어!? 아, 으흠! 어서 오시게. 아니, 크앙 아닌가.”
“저 아세요?”
“알다마다, 여신님의 용사로 군단 선봉에서 활약하던 네 모습은 나도 본 적이 있지.”
“데헷~”
▲ 전사들의 멘토인 전사교관이 나를 알아주다니!
크앙은 기분이 좋아졌다. 비록 기억엔 없는 리즈 용사시절이지만 저렙의 설움을 과거의 영광으로 보상받는 기분이랄까? ‘펀치몬스터’ 세계의 모든 전사들을 전직시켜주고 고급 스킬을 가르쳐 주는 전사교관이 날 멋진 모습으로 기억해 주다니.
“하핫, 그나저나 저 전직 시켜주세요.”
“아, 그래. 드래곤나이트는 방패를 사용하여 가장 높은 방어력을 자랑하는 직업으로, 적을 기절시키는 능력도 뛰어나지.”
“네에.”
“그것뿐인줄 아는가? 방어 상태에서 힘을 충전할 수도 있고, 다수를 상대로 관통형 공격을 퍼부을 수도 있다네. 적들을 도발하여 자신에게 공격을 집중시키기도 하지.”
“아, 네에.”
“드래곤나이트로 전직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다네. 일단 먼저 내 옆에 있는 사납게 생긴 아가씨 있지? 마법사 교관 캐리라고 하는 아가씨인데 그녀에게 가면 자네 안에 잠든 힘을…….”
“근데요”
“음? 무슨 질문이라도?”
“저 드래곤 나이트 안 할건데요?”
“뭐라고? 잘 안 들리네만..”
“저 소울브레이커 할거에요. 소울브레이커요”
“뭐!?”
▲ 자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건가? 응?
갑자기 전사교관 루카스의 표정이 굳었다. 묻지도 않은 드래곤나이트의 전직 조건을 말할 때는 재잘재잘 잘도 떠들더니 소울브레이커로의 전직에 대해서는 왠지 말하기 싫어하는 눈치다. 이거 뭔가 이상한데?
“하아.. 그것만은 말하지 않길 바랬는데..”
“아까 전에 소울브레이커 지망생이 더 필요하다고 중얼거리지 않으셨나요?”
“그랬었지. 하지만 자네에게 한 얘기는 아니었어. 적을 일격에 섬멸하는 소울브레이커의 힘은 분명히 매력적이지. 하지만 그 힘은 사신에게서 나오는 힘이라네.”
“그딴 건 상관 없어요. 방패 뒤에 숨어있는 드래곤나이트 보다는 순수한 힘의 결정체 소울브레이커가 더 좋아요.”
▲ 거센 공격력을 자랑하는 소울브레이커가 되고 싶어요
사신의 힘이니 어쩌고 하는 것은 크앙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신도 힘없이 봉인되는 마당에(봉인된 것 치고는 찔끔찔끔 힘을 써대긴 하지만) 사신이라고 두렵겠는가? 혹시라도 영혼을 달라느니 하는 헛소리를 하면 때려눕혀 버리면 된다. 일단은 강해지는 것이 우선이니까.
소울브레이커로의 전직을 말리는 사람은 루카스 뿐만이 아니었다. 연금술사 아저씨도, 바질 선장 할아버지도 소울브레이커라는 직업에 대해 악담을 늘어놓았다. 아니! 이 사람들, 열심히 강해져서 여신 구하겠다는데 그깟 사신의 힘 따위가 두려운건가?
결국 크앙은 수많은 겁쟁이 아저씨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신과 계약을 하기 위해 지옥동굴 내에 있는 사신의 방으로 이동했다. 사신이라… 설마 데스노트 같은걸 들고 있지는 않겠지?
크앙, 나 사신에게 인정받은 남자야!
사신의 방에는 당연하게도 사신이 있었다. 처음 만난 사신의 인상은 보라색 로브로 온 몸을 덮고 있는 유령 검사같은 느낌이었는데, 로브 안쪽이 텅 빈 어둠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솔직히 생각보다 무서운 이미지는 아니었고, 오히려 오랜만에 찾아온 사람이 반가운 듯 온 몸으로 ‘괜찮아요 해지지 않아요 말을 걸어 주세요’ 라는 기운를 뿜고 있었다.
“크크큭… 다시 한 번 힘을 얻고 싶은 것이냐? 그렇다면 내 시험을 통과해라.”
다시 한 번이라.. 왠지 사신도 내 과거와 지금 상태를 아는 것 같았다. 여신이 얘기해줬나? 설마 신들끼리 모여서 반상회라도 열며 내 얘기를 한 건 아니겠지? 아냐, 그 여신이라면 할 수도 있어. 지금쯤 그랄이랑 사이좋게 내 뒷담화를 하며 놀고 있을지도…?
▲ 여신님에게 내 얘기 들은거야?
이상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사신의 부하 해골 군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명목이 사신의 시험인지라 긴장하고 있었는데 생각 외로 손쉽게 해치울 수 있었다. 해골 전사의 슈퍼 아머와 헬 워리어의 돌진 공격을 사뿐히 피해주며 몇 대 쳐주니 어느 새 소환된 해골들은 한 줌의 뼈다귀로 돌아갔다. 부하들을 모두 해치우자 사신이 재차 말을 걸었다.
“쳇, 저주를 받았다더니 괴물 같은 힘은 여전하군!”
“응? 나 저주받은 적 없는데?”
“용사가 레벨 1로 돌아간 것 자체가 저주다.”
“아, 그걸 저주라고 표현하나?”
“크크큭, 아무튼 그랄을 해치우고 반드시 여신을 구하겠다는 네 의지는 잘 알았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너라면 또 모르겠군.”
“그러니까 얼른 소울브레이커의 힘을 줘.”
“원하는 게 내 힘이라면 얼마든지 빌려주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 힘은 양날의 검이다.”
“양방향으로 휘두르긴 좋겠군.”
“계약은 성립됐다. 내 힘을 잘 사용해라. 언젠가 지옥에서 다시 만나자!”
▲ 창피하긴, 네 이름이 전 세계에 널리 퍼질거다! 아니, 지금도 그런가?
이렇게 사신과의 만남은 끝났다. 그리고, 크앙의 몸 속에서 알 수 없는 힘이 샘솟…지는 않았다. 전사교관 루카스에게 가서 사신을 만나고 왔다는 얘기를 하자 그제서야 몸 속에서 사신의 힘이 느껴졌다. 드디어 소울브레이커가 된 것이다!
▲ 드디어 진정한 소울브레이커가 되었다!
크앙, 사신의 힘 발동! 어머 몬스터가 수수깡 같아요
소울브레이커가 되자 사냥 방식도 바뀌었다. 이전에는 단순히 일반 공격 사이에 스킬을 섞어가며 한 두명의 적을 상대로 싸웠지만, 이제는 거기에 ‘소울 오브’ 와 ‘소울 크래셔’ 라는 두 가지 스킬이 더해져 더욱 파워풀하고 매력적인 전투를 펼치게 되었다.
‘소울 오브’ 스킬은 발동 시 발 밑에 보라색을 띄는 빛이 나타난다. 이 상태에서 적을 공격하거나 쓰러뜨리면 일정 확률로 적의 영혼을 담은 ‘소울 오브’ 를 빼앗아 올 수 있다. ‘소울 오브’ 는 3개까지 모을 수 있으며, 많이 모을수록 콤보 어택의 대미지가 증가하는 버프 효과를 받을 수 있다. 단, ‘소울 오브’ 스킬이 발동하고 있을 때에는 일정 시간마다 HP가 줄어든다. 내 살을 깎아 적의 뼈를 취하는 스킬인 것이다.
▲ 보라색 기가 쭈욱~ 왠지 '슈퍼 스파4' 의 '주리' 기술이 생각난다
▲ 적을 때려서 영혼을 뺏자! 영혼! 영혼! 몸에 좋고 소화도 잘되는 영혼!
▲ 영혼의 양을 항상 3개로 유지해가며 사냥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소울 크래셔’ 는 사신을 소환, 사신의 힘을 이용하여 전방의 적 전체에게 강력한 대미지와 다운 효과를 주는 공격 기술이다. ‘소울 크래셔’ 를 사용하면 ‘소울 오브’ 1개를 소비하게 되며, ‘소울 오브’ 가 떨어지면 발동이 불가능하다.
이 두 스킬 덕분에 크앙의 사냥 방식은 ‘소울 오브’ 를 획득하고 적을 끌어모아 ‘소울 크래셔’ 로 단번에 날려버리는 식으로 바뀌었다. 더욱 강해진 파워와 넓은 범위공격으로 사냥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으나, ‘소울 오브’ 의 반작용으로 HP 소모량이 많아져 이전에는 돈 주고 사 본적이 없는 HP 포션을 가득 채우고 다녀야 했다. 어차피 돈 쓸 곳도 없는 크앙에게 포션 값은 큰 부담이 아니었다. 포션 100개의 가격은 약 3만 몬 정도인데 그 동안 모아온 돈이 약 8만 몬 가량 있었고, 포션 100개면 상당히 오래 쓸 수 있기 때문이다.
▲ 소울 크래셔의 넓은 공격범위, 강제 다운을 시키는 것 또한 매력이다
“으하하하, 이거 너무 쉽구만! 나 너무 강한거 아녀? 캬하하하하!”
크앙은 부처님의 미소로 몬스터들을 도륙하고 다녔다. 이대로라면 만랩은 시간 문제일 것 같은 느낌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그 때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얼마 안 있어 고작 1000 몬 때문에 개고생을 하게 될 줄은…
크앙, 날쌘 꼬꼬닭을 얻다
소울브레이커의 힘으로 미칠 듯한 레벨업을 하다 보니 어느 새 탈 것을 얻을 수 있는 18레벨이 되었다. 그 동안 소용돌이 해안 지역에서 탈 것을 타고 쏜살같이 지나다니는 고렙 유저들을 볼 때마다 어찌나 부러웠던가!
크앙은 탈 것을 얻기 위해 싸이클론하버의 채광채집 전문가(닭장지기) 허클베리에게 향했다. 탈 것을 얻으려면 분명히 힘들고 난이도 높은 퀘스트를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 크앙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여신의 능력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허클베리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나 탈 것 구하려고 왔는데..”
“그래? 그럼 저 닭장에 가서 달걀 하나만 가져와.”
“음! 일단은 달걀부터 시작하는건가!”
그러고 보니 싸이클론 하버에 도착하자마자 닭장에 들어가서 달걀을 채집했던 기억이 났다. 혹시나 해서 가방을 뒤져보니 가방 구석에서 용케도 깨지지 않고 버틴 달걀 몇 개가 보였다. 크앙은 빛의 속도로 허클베리에게 달걀을 건네주었다. 앞으로 꽤 긴 퀘스트를 거쳐야 하니 이런 곳에서 시간 낭비할 여유가 없다.
▲ 어이, 꼬꼬닭 내놔!
▲ 닭 X구멍을 잘 뒤지다 보면 달걀이 나온다...(-_-;;)
“달걀을 가져왔구나?”
“그래. 다음번엔 어디서 뭘 하면 되지? 빨리 알려줘!”
“뭘 하긴? 자, 여기 ‘날쌘 닭의 상징’ 이야.”
“음, 이 상징을 가지고 누구에게 가면 되는거야?”
“어딜 그렇게 가려고 해? 굳이 가려면 말리진 않겠는데, 탈 것 사용법은 듣고 가는게 좋지 않아?”
“그러니까 탈 것 사용법을 들으러 가란…. 뭐?”
그렇다. 닭 두세 마리 뒤지면 나오는 계란 한 개로 바로 얻을 수 있는 ‘날쌘 닭의 상징’ 은 바로 크앙이 그리도 원하던 탈 것이었다. 내심 몬스터를 수 십 마리 잡거나 닭 수 백 마리를 뒤질 각오를 하고 있던 크앙은 그 얘기를 듣자마자 뭔가 힘이 빠지는 느낌이 났다.
“자, 그럼 탈 것을 이용해볼까?”
크앙은 두근대는 마음으로 ‘날쌘 닭의 상징’ 을 조심스레 흔들었다. 그러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 멍청해 보이는 닭 한 마리가 나타났다. 함정 카드가 아니었구나! 닭을 자세히 보니 눈은 휘둥그레하고 묘하게 눈빛이 흐렸다. 그래도 나름 보다 보니 정이 드는데?
▲ 날쌘 닭의 증표를 손에 쥐고 흔들흔들~
▲ 깍꾸악~ 하고 나타나는 꼬꼬닭
“오, 이걸 타고 다니면 되는건가?”
“깍”
“오케이, 달려라! 말아! 아니, 닭아!”
“깍꾸악!”
독특한 울음소리와 함께 닭이 달리기 시작했다. 흐리멍텅한 눈과 달리 이 닭은 크앙이 달리는 속도의 두 배 가까운 속도를 냈다. 마을 안에서 하이퍼 무브(대쉬) 를 사용하지 못했던 까닭에 그 동안 꽤나 답답했는데, 닭을 타고 달리니 하이퍼 무브 부럽지 않은 스피드를 자랑하며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탈 것은 일반 필드에서도 사용 가능하지만, 공격을 받거나 공격을 하면 강제로 소환이 취소된다. 내심 탈 것을 타고 검을 휘두르는 멋진 상상을 했던 크앙은 약간 실망했지만, 굳이 백마를 타고 싸우지 않아도 용사는 그 자체로 빛이 나는 법! 이대로 여신을 구하기 위해 직행이다. 가자 꼬꼬닭아!
“깍꾸악!”
▲ 오리가 난다면 닭도 날 수 있어야 하는데.. 날진 못하네
크앙, 점점 지능적으로 변해가는 몹들과 사투를 벌이다!
어느덧 크앙의 레벨도 21이 되었다. 펀펀빙고에서도 22레벨 몬스터를 잡으라고 하는 것을 보니 슬슬 관문을 넘어 더 강한 몬스터가 있는 해적소굴로 진입해야 할 것 같았다. 사실, 해적소굴로 진입하기 전까지 크앙은 ‘펀치몬스터’ 세계의 몬스터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몬스터가 레벨이 높아 봤자 체력하고 공격력이나 조금 더 세겠지, 별거 있겠어?’
그러나 해적 소굴의 몬스터들을 상대해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다가와서 근접 공격 정도만 해대던 몬스터들이 슬슬 독특한 공격 방식으로 다방면에서 공격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높이 점프해서 내리찍거나, 백스텝을 사용해 거리를 벌린 후 원거리 공격을 가하고, 일반 몬스터 주제에 슈퍼아머를 사용하는 등 각양각색의 몬스터가 다양한 진형으로 공격을 해 왔다.
▲ 옥토 앞잡이의 공격 방식, 일단 착지 지점을 정하고
▲ 냅다 그쪽으로 점프하며 깔아뭉갠다. 피하자!
▲ 폭풍비늘 공병은 백스텝을 밟으며 폭탄을 뿌려댄다
게다가 이 곳의 몬스터들은 여러 마리가 무리지어 진형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아 더욱 힘들었다. 다수를 공격하는 기술 ‘소울 크래셔’ 를 사용하더라도 적의 수를 한 번에 확실히 줄이지 못하면 깨어난 몬스터들의 집중 공격에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몬스터의 Hp도 높아져서 서너 번의 공격으로는 잘 죽지도 않았다. 이전 사냥터인 선박하역장에선 서너 번의 공격만으로 몬스터를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난이도가 높아지긴 했다. 그러던 와중 어렵게 쓰러뜨린 몬스터가 무기를 떨어뜨렸다. 20레벨부터 쓸 수 있는 둔기류, 아이언 해머였다.
“망치라.. 이런 건 폼이 안 나! 용사의 생명은 뭐니뭐니해도 검 아니겠어?”
30분 후
“거 참, 이놈들 사람 힘들게 만드네. 대미지가 조금만 더 나왔어도… 그런데 이 망치 대미지 꽤 괜찮네?”
또 다시 30분 후
“용사는 검이다.. 용사는 검이다.. 용사는 검… 에라이! 그냥 망치 쓸거야! 어차피 25레벨 30레벨 되면 무기 바꿀거잖아, 그때 검 쓰지 뭐.”
자존심을 버리고 해머를 선택하자 사냥이 좀더 편리해졌다. 망치는 비록 공격 속도가 검에 비해 느리긴 했으나 크게 답답할 정도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대미지가 훨씬 많이 나왔다. 역시, 사람은 검만으로는 살 수 없는 거다. 자존심이 렙업 시켜주진 않는다.
▲ 그래서 망치로 바꿨습니다
크앙, 강화의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다
그렇게 아이언해머를 들고 열심히 사냥을 하던 크앙은 퀘스트 완료를 위해 마을에 들렀다. 이전까지는 신경을 쓰지 않아서 몰랐는데, 마을을 보니 크앙과 같은 망치 유저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지나다니던 망치 유저들을 보며 왠지 모를 동질감에 기뻐하던 중, 크앙은 뭔가 희한한 광경을 보게 된다. 분명히 크앙과 같은 무기를 들고 있는 유저인데, 망치 끝부분에서 뭔가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크앙의 무기가 그냥 무기라면 그 무기는 티오피 수준이었다.
“저기요.”
“……”
“저기..”
역시 냉정한 ‘펀치몬스터’ 의 세계! 빛나는 무기를 든 유저는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많은 사람들이 빛나는 무기를 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건 어디서 구하는거지? 탐문 조사결과 빛나는 무기의 정체는 ‘강화’ 였다. 무기를 강화하면 할수록 무기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다는 것이었다.
▲ 강화 단계에 따른 무기의 이펙트 변화, 15단계까지 가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거야!?
사실 크앙은 강화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강화를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아이템이나 재료,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기껏 힘들게 돈과 노력을 투자하여 강화해 놓은 무기도 레벨이 오르면 더 좋은 무기로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자칫 잘못하면 열심히 강화해 놓은 무기가 송두리째 깨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크앙에게 강화란 만렙이 된 후 더 강해지기 위해 선택하는 추가 컨텐츠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무기에서 나오는 반짝반짝 빛나는 빛은 도무지 포기하기 어려웠다. 주변인들이 아이폰을 들고 다니며 자랑할 때도, 친구가 부페 갔다왔다고 사진을 보여주며 염장을 지를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어? 여기가 어디지?”
잠시 다른 생각을 하며 멍하니 보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크앙은 어느 새 싸이클론하버의 강화 전문가 유스 앞에 서 있었다. 무의식 중에 강화 인셉션이라도 당했나? 어차피 여기까지 온 것, 무기 강화에 뭐가 필요한지 확인이나 해 보자는 심정으로 유스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무기 강화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 금단의 문을 열었다
“오, 어떤 무기를 강화하려고 하는건가?”
“여기 이 아이언해머요. 각종 재료나 보석, 주문서 같은걸 구해와야 하나요?”
“15 몬이라네. 강화할텐가?”
“그런 아이템은 본 적도 들은 적도…. 네? 15 몬이요?”
15 몬이라고 한다. 회복약 한 개가 약 300 몬이고, 기타 장비류는 몇 천 몬이다. 그런데 그 이름도 찬란한 무기강화가 고작 15 몬? 게다가 강화 성공확률이 100%라니? 이게 말이 돼?
“사기치는거 아니에요?”
“왼손으로 맞을래? 오른손으로 맞을래? 가운데 손으로 맞을래?”
“아뇨 농담이었어요. 이거 강화해주세요.”
진짜 15 몬밖에 들지 않았다. 두두둥 하는 효과음과 함께 내 눈 앞에 나타난 것은 ‘아이언해머’ 가 아닌 ‘+1 아이언해머’, 그러나 무기 공격력은 고작 1밖에 오르지 않았다. 역시, 강화란 건 겨우 이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 뭐든지 초반엔 부담없이 시작하는 법이지
▲ 심지어 초반엔 재미도 볼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이 중독의 첫 단계
“강화는 여러 번 할수록 더 강한 힘을 갖게 되지. 또 하겠는가? 2단계 강화는 63 몬이네.”
“63 몬이요? 푼돈이네?”
결국 3단계, 4단계까지 손쉽게 강화에 성공했다. 그리고 마침내 5단계! 강화가 5단계 이상 진행되면 그 때부터 빛이 나기 시작한다. 크앙은 주저없이 5단계 강화를 수락했다. 50%의 확률이지만 단번에 5단계 강화를 성공했다. 드디어 무기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해냈다!
“아하하하하 빛이다 빛! 드디어 내 무기에서도 빛이.. 나긴 하는데 안 밝아…”
“10레벨이 되면 좀 더 밝은 빛을 내뿜을 수 있을 것이네.”
“10레벨이요..?
▲ 아직 덜 밝아..
크앙은 약간 망설였다. 이제부터는 아주 약간이지만 무기가 파괴될 확률도 있고, 성공 확률도 절반에 약간 못 미치기 때문이었다. 슬슬 강화 비용도 1000 몬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애초에 원하던 빛나는 무기는 이미 손에 넣었다. 더 강화해 봐야 그리 좋아질 것 같지도 않고, 슬슬 강화를 그만둬야겠다는 말을 하려던 크앙의 눈에 우연히 강화된 무기 능력치가 보였다.
“뭐.. 뭐야, 5레벨 강화는 공격력 +5가 아니고 +9네? 거기다 힘까지 올라갔어?”
“그게 강화의 힘이지. 강화 레벨이 올라갈수록 리스크도 커지고 돈도 많이 들지만 그만큼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다네.”
“그.. 그러면 10레벨까지 강화하면..?”
“넌 더 좋은 무기를 얻게 되겠지.”
▲ 마치 이런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이후의 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넌 더 이상 자유의 몸이 아냐’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크앙은 어느 새 강화의 마력에 푹 빠져 한없이 강화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강화 정도에 비례해서 강화 비용은 점점 올라갔다. 마침내 8단계 무기를 얻고 9단계 강화에 도전하자 15 몬에서 시작된 강화 비용은 어느 새 2224 몬까지 상승해 있었다. 이제 강화 성공 확률은 20%, 장비 파괴확률은 1%도 안 되니 무시하고, 확률상 11000 몬 정도면 9단계 강화를 할 수 있겠군!
그리고 크앙은 9단계 강화에서 연거푸 12번이나 실패했다. 어느 새 8만 몬에 가깝던 잔고는 5000 몬도 안 될 정도로 줄었고, 10단계 강화를 위한 허들은 너무나도 높았다.
“헉,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 내 돈.. 내 돈!! (술렁술렁)
▲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공격력이 22(+2)나 상승하고 힘 10을 추가로 상승시켜주는 +9 아이언해머를 얻었으나, 그 대가는 포션 10개 사는데도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의 생활고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포션이 50개나 남아 있다는 것 정도? 다음 단계로의 강화를 위해서는 돈을 더 벌어야 한다.
“좋아, 강화도 했겠다 본격적으로 사냥을 하면 얼마든지 돈을 모을 수 있을거야!”
결국 크앙은 남은 돈을 모조리 쏟아부어 갑옷과 글러브, 신발 등의 장비 일체를 4~5 단계까지 강화했다. 그 결과 크앙의 능력치는 골고루 상승했고, 사냥은 더욱 수월해졌다. 그러나 크앙은 앞으로 나올 적들은 더욱 강해지고, 그만큼 물약 값도 많이 들어가게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 결국 남은 돈을 모두 강화에 쏟아부었다. 그러고도 금새 회복할 거라고 믿는 중독단계
크앙, 재료라도 모아 볼까… 뭐 이리 복잡해!
열심히 사냥을 시작하자고 다짐하긴 했지만, 여전히 크앙은 강화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도박에 빠지면 이렇게 되는 걸까? 지금은 돈이 없어서 강화를 못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던 와중 전 재산을 투자한 크앙의 +9 아이언해머 정보창에 있는 ‘소켓’ 이 눈에 들어왔다.
“어라? 이건 뭐지? 마법유물을 박으라고?”
마침 여행을 하다 얻은 마법유물이 가방 안에 있기에 끼워넣어 보았다. 그러자 체력 최대치가 순식간에 오르는 것이 아닌가?
“좋아, 이거다! 이건 돈도 안 들고 쓸만하겠어!”
▲ 마법유물을 장착하면 강화와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
다만 만들기가 짜증나서 그렇지..
좋은 보석을 끼워넣으면 강화한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난다는 것을 깨달은 크앙은 본격적으로 마법유물을 제작해보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마법유물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25레벨 이상이 되어야 하고, 하다못해 귀걸이, 목걸이, 반지 같은 장신구를 제작하려면 다양한 광물과 재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광물을 얻기 위해서는 필드에서 채광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필드에는 다양한 광석이 널려 있는데, 광석에 다가가 스페이스 바를 누르면 채광이 시작되며, 채광이 끝나면 광물 원석을 얻을 수 있다. 광물 외의 기타 재료는 닭장, 목장 등에서의 채집을 통해 얻을 수 있으며, 여기서 얻은 재료는 채집채광 전문가를 통해 무기나 소비 아이템으로 교환할 수 있다.
▲ 맵 곳곳에 널려 있는 광물을 채광하다 보면 금속들이 나온다
▲ 닭이나 양 목장에서는 이러한 방식의 채집이 가능하다
당연하겠지만 채집과 채광, 장비 제작은 다양한 아이템을 준비하고, 조합하는 과정을 필수로 거쳐야 한다. 그러나 크앙이 누구인가! 복잡해 보인다는 이유로 궁수도 마법사도 포기한 초단순무식 애어른이다.
"아이씨, 이거 뭐 이리 복잡해! 그냥 이거 할 시간에 레벨업 하고 말지! 안해!"
역시 물품제조는 크앙에게 먼 미래의 일이었다. 크앙은 팽팽 도는 머리를 감싸안고 단순무식한 사냥을 하기 위해 출발했다.
▲ 제조건 세공이건 난 그런거 어려워서 흥미 없어!
▲ 그냥 이런게 최고다! 덤벼라 이것들아!
크앙, 죽다!
비록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이전보다 훨씬 업그레이드 한 장비로 돌아온 크앙은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런 크앙이 눈독을 들인 곳은 ‘산호초섬 외각’ 끝자락에 있는 ‘죽은자의 안식처’ 라는 곳이었다. 펀펀빙고에서 자꾸 잡으라고 징징대는 24레벨의 몬스터가 바글거리고, 이전과는 다른 마법사 해골들이 등장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죽은자의 안식처’ 는 네임드 몬스터인 선더버트의 안마당이다. 그러나 높은 레벨의 몬스터를 잡으면 그만큼 보상도 크고, 무엇보다 좋은 무기를 획득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앞섰다. 마침 ‘죽은자의 무덤’ 은 한 방에 4마리 정도의 몬스터가 위치하고 있는 분할 형태의 필드였고, 강한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고작 4마리가 위협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실제로 평소보다 강한 공격에 포션을 많이 소비하긴 했지만 크앙은 수월하게 해치워나갔다. 그리고, 크앙은 결국 선더버트의 방에 도달했다.
▲ 첫 죽음을 경험한 장소, 죽은자의 안식처
“네놈이 이 곳의 보스냐! 어서 고급 아이템을 내놓아라!”
“그르륵?”
선더버트와 해골 마법사들이 크앙을 향해 다가왔다.
“좋아, 이렇게 인해전술로 나온다면 나에게는 ‘소울 크래셔’ 가 있다구! 한 방에 해치워주지! 간다!”
크앙은 기합과 함께 소울 크래셔를 날렸다. 역시나 적들은 한 방에 다운당했고 크앙은 넘어진 몬스터들에게 다가가서 추가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 분리된 방 형태로 되어 있길래 만만할 줄 알았지
“크르르르륵”
“어..? 얘네 왜 이래..?”
크앙의 다운 공격은 기껏해야 한 번에 두세 마리의 몬스터만을 공격할 수 있었고, 어느 새 일어난 해골 마법사들이 크앙을 향해 각종 원소마법을 퍼붓기 시작했다. 얼음과 냉기 마법은 크앙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고, 화염 마법은 지속적이고 강한 대미지를 주었다.
무엇보다 선더버트가 내뿜는 강력한 전격 마법이 피할 곳도 주지 않은 채 크앙을 덮쳐왔다. 여신의 의지라도 사용해야겠다고 다짐했으나, 여신의 힘을 발동할 틈도 없이 눈 앞이 캄캄해졌다.
‘으악 이거 뭐야!? 죽었잖아?’
▲ 이게 무슨 꼴이야!
‘펀치몬스터’ 의 세계에 들어온 후 처음 겪는 죽음이었다. 그랄의 손에서도 빠져나왔는데 여신도 구하지 못하고 고작 이런 몬스터 따위에게 죽다니! 그러던 와중 예전에 솔리스 씨가 준 부활용 응급팩이 보였다.
‘그래, 이걸 사용하면..’
응급팩을 사용하자 눈부신 빛과 함께 몸 안에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퍼져나왔다. 화려하게 부활한 크앙은 재빨리 여신의 의지를 발동시켰고, 그렇게 강하던 선더볼트와 마법사들은 여신과 사신의 콜라보레이션 어택에 힘도 못 쓰고 자리에 누웠다. 그야말로 호쾌한 복수였다.
그러나 처음으로 경험한 죽음이라는 감각은 크앙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우습게만 보았던 몬스터들이 더 이상 먹잇감이 아니라는 것, 한 순간의 방심이 죽음을 가져온다는 교통공익광고 문구 비스무레한 교훈을 가슴에 묻고 크앙은 자신의 레벨에 맞는 사냥터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 화려한 부활!
▲ 죽어라 이놈들아!
▲ 이게 내 복수다! 알았냐!
크앙, 내가 미아라니! 거지라니! 강화 이놈!
어느 새 크앙의 레벨도 25가 되었다. 얼마 전 업데이트로 ‘펀치몬스터’ 의 만렙이 50이 되었다는 것을 감안해 볼 때 딱 절반 지점에 도달한 것이다. 25레벨이 되자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새로운 지역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싸이클론하버 마을 서쪽에는 조그마한 비행장이 하나 있다. 비행기를 타면 바람의 협곡 등의 각종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데, 바람의 협곡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해보고 싶었으나 그 동안은 비행에 필요한 최소 레벨이 되지 않아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25레벨이 되었으니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셈이다. 크앙은 의기양양해서 비행장에 갔다.
▲ 공항으로 o웅~
▲ 공항에 도착, 왜 이리 높은 곳에 지어놓은거야?
“바람의 협곡으로 데려다 달라고? 요금은 1000 몬이야.”
“자, 여기… 없네?”
크앙의 주머니는 텅 비어 있었다. 얼마 전 강화를 하느라 날려버린 전 재산을 아직 회복하지 못 한 것이다. 비행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그 동안 사냥을 하며 모은 각종 재료와 장비를 팔았다. 그 결과 약 8000 몬에 달하는 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비행 요금 1000 몬을 제외하더라도 약 7000 몬이 남는다.
마침 25레벨이 되며 좋은 검을 손에 넣었는데, 강화나 해 볼까?
▲ 이 놈은 틀렸어, 평생 강화나 하다 죽을거야
결국 크앙은 아슬아슬하게 새로운 검의 5단계 강화에 성공했고, 나머지 1000 몬으로 비행 요금을 지불했다. 드디어 바람의 협곡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이 여행이 고생길을 활짝 여는 시발점이라는 것을 이 때는 미처 몰랐다.
▲ 마지막 남은 돈을 강화에 투자..
▲ 이 1000 몬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나 바람의 협곡은 상당한 위험지대였다. 이제 갓 25레벨에 도달한 크앙의 앞에는 28~29 레벨의 몬스터가 우글거렸고, 방어력과 체력, 공격력 등이 크앙보다 월등히 높아서 도저히 제대로 된 사냥은 불가능했다. 기본적으로 레벨이 3~4가 넘게 차이나기 때문에 억지로 10여 마리는 잡았으나 그 이상은 비효율적이었다.
“쳇, 레벨 좀 키우고 다시 와야겠군. 다시 싸이클론하버로 이동하자. 빛나라 이동마법의 돌!”
크앙은 싸이클론 하버의 25레벨 사냥터를 선택하고 이동마법의 돌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동마법의 돌이 어째 잠잠하다. 고장난건가 싶어 몇 번을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 결과는 무응답이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메시지가 들려왔다.
‘다른 지역으로는 이동할 수 없습니다. 지역 이동은 각 마을의 비행장을 이용 바랍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돌 양반, 내가 이동할 수 없다니! 비행장을 이용하라니! 돈이 없는데!”
애초에 이동마법의 돌을 사용하려고 작정하고 온 크앙이었다. 가진 물건 중 돈이 될 만한 것은 다 팔아서 이 곳에 온 크앙에게 1000 몬에 달하는 비행 요금이 있을 리가 없었고, 결국 크앙은 이 곳에 갇혀버리게 된 것이다.
▲ 겨우 25레벨 문턱에 다다른 크앙에겐 결코 좋은 사냥터가 아니다
▲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없다니! 이동마법의 돌이 나에게 모욕감을 줬다
바람의 협곡에 갇혀버린 크앙에게는 세 곳의 선택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이 곳에 남아 어떻게든 사냥을 해서 돈을 모아 탈출하는 것으로 상당히 비효율적인 방법이다. 두 번째는 물약이라도 팔아 1000몬을 마련하는 것인데, 개당 400몬 가량을 지불하고 구입한 물약은 팔 땐 1/10도 못 되는 가격에 팔렸다. 중고의 가격이 이렇게 적다니! 그리고 세 번째는… 구걸이었다. 이건 크앙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했다.
결국 크앙은 한 시간 동안이나 자신의 레벨보다 높은 사냥터에서 힘겨운 전투를 벌였다. 물약 값을 아끼기 위해 ‘소울 오브’ 도 발동하지 않았고, 몬스터가 세 마리만 i아와도 줄행랑쳤다. 그렇게 한 시간을 사냥했지만 변변한 물건 하나 떨어지지 않았다. 1000 몬 모으기가 이렇게 어려웠던가?
▲ 때려도 얼마 달지도 않고..
▲ 맞으면 아프고..
▲ 싸이클론하버 가고 싶어요 엄마
그렇게 힘겹게 사냥하다 보니 집중력도 흐트러지고 손도 부들부들 떨렸다. 설마 이 곳에서 이렇게 며칠동안 보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결국 거지가 되어 구걸을 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떠올랐다. 점점 기분이 암울해졌다. 바람의 협곡의 몬스터가 세건 말건 상관없다. 중요한 건 크앙은 이 빌어먹을 곳 한가운데 떨어져 꿈도 희망도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꼬꼬닭이라도 불러낼까..?”
멍충하게 생긴 꼬꼬닭을 불러내면 이 기분이 조금이나마 나아질까 하는 생각에 크앙은 꼬꼬닭을 불러내기 위해 단축키 F6을 눌렀다. 그런데 갑자기 주변이 환해지며 빛나는 메시지가 표시되었다.
‘서쪽 간이선착장’ 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이건.. 설마? 크앙의 흐트러진 집중력은 F6 대신 F5를 눌렀고, 그 곳에 저장되어 있던 부엉이 기록관 귀환 포탈 스크롤이 발동한 것이다. 귀환 포탈 스크롤의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이동마법의 돌과 같이 발동되지 않을 것이라고 막연히 짐작하고 있었기에 미처 시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귀환 스크롤은 타 지역간의 순간이동에서도 유효한 것이었다.
▲ 너무 심심해서 꼬꼬닭을 부르다가
▲ 우연히 눌러진 F5 단축키, 귀환 포털 스크롤의
힘으로 되돌아왔다
살았어, 이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어!
우여곡절 끝에 크앙은 싸이클론하버 지역으로 복귀할 수 있었고, 괜히 이것저것 기웃거리지 말고 열심히 사냥하자는 교훈을 얻었다. 강화는 정도껏, 주 목적은 사냥! 이것이 바로 앞으로의 라이프스타일이다!
▲ 다음 주에는 초절정 인스턴스 던전 '풍차의 탑' 탐험이 다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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