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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앙의 M&M 히어로즈킹덤즈 기행기 2부, 제2크앙월드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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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앙의 '마이트앤매직 히어로즈킹덤즈' 기행기 전편 보기]
▶ 크앙의 M&M 히어로즈킹덤즈 기행기 1부, 매맞는 군주
▶ 크앙의 M&M 히어로즈킹덤즈 기행기 2부, 제2 크앙월드 건설
▶ 크앙의 M&M 히어로즈킹덤즈 기행기 3부, 전쟁 그 처절한 아픔

크앙, 옅선생님 뭔가 재미있는게 하고 싶어요

‘M&M’ 의 세계에서 군주짓(?)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훌쩍 지나갔다. 크앙과 영웅들의 노력 덕에 영지 내에 바글바글대던 몬스터들도 조금씩 사라져갔고, 내성에도 각종 시설물들이 연달아 지어져 군사력과 경제력도 상승했다. 영웅들은 쉴 틈도 없이 야근을 해 가며 각종 일에 투입되었고, 시민들은 새마을 운동 노래를 부르며 열심히 영지를 발전시켰다. 심지어는 몬스터들도 신나서 꽥꽥거렸다. 유토피아가 멀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오직 크앙만 홀로 한가했다. 광산 개발이나 건물 짓기, 심지어 전투까지 영웅들이 뚝딱뚝딱 알아서 잘만 해주니 지시만 내리고 나면 할 게 없는 것이다. 하다못해 전투 구경이나 광산 지도감독이라도 하면 덜 심심할 텐데 그것마저 옅느에게 가로막혔다. 군주가 그런 곳에 나가서 일반인들과 어울리는 게 천박하다는 것이다. 당연히 크앙은 생떼를 쓰기 시작했고, 오늘도 크앙의 집무실에서는 그 안건에 대한 진지한 토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 나도 전투 하게 해달라고!”

“뭐, 전투? 지휘는 개뿔도 모르는게! 왕국 망하는 꼴 보고 싶어?”

“그럼 구경이라도…”

“전쟁 구경하다가 오발된 아이스 볼트 맞고 죽는 민간인이 몇이나 되는 줄 알아?”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그럼 난 뭘 하냐고?”

“우리한테 지시 하잖아 지시.”

그 동안 참고 간직하고 억눌러왔던 크앙의 설움이 마침내 폭발했다.

“지시? 언제적 얘길 하고 있어!? 요즘엔 뭐 개발 하나 하라고 하면 몇 시간은 기본이고 열 시간도 넘게 걸리잖아. 거기다가 요즘엔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아서 내 마음대로 지시도 못 내리고 있다고! 하루 동안 꼴랑 10분 지시 내리고 나머지 시간은 줄곧 여기 앉아만 있는데, 그 동안 내가 얼마나 심심한 줄 알아? 내가 올드보이 주인공이야? 가만 있으면 16년간 가둬 놓을 기세네? 맘대로 해 나 군만두 좋아하니까!
야! 신난다!”

“…….”

“지시! 지시! 제주도 사투리로 장아찌를 지시라고 말하고, 중국 흑룡강성 동북쪽에 있는 도시를 칭하는 지명이기도 하지. 조선 시대에는 ‘짓다’ 를 지시라고 발음했고, 프랑스어로 달맞이꽃을 지시라고 한다고 하더군. 하지만 여기서 지시는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일러서 시킨다는 뜻의 명사이지. 영어로는 디렉션, 일본어로는 지시, 한자로는 지시…….”

“…… 그렇게 심심해?”

“옅선생님. 전투가.. 전투가 하고 싶어요…”

“휴… 그래, 할 일 줄게.”

부하 영웅이 군주에게 일거리를 주다니, 뭔가 위아래가 바뀐 상황 같지만 크앙은 순수하게 행복했다. PS3도 Xbox360도 Wii도 윌슨도 없는 삭막한 집무실에서 마냥 앉아 기다리다가 몇 시간에 한 번씩 결재나 해 주는 인생. 이건 크앙이 꿈꿔오던 제왕의 삶이 아니었다. 크앙은 말 한 마디로 천하를 좌지우지하고 삼천궁녀와 함께 오리가 가득한 풀장에서 바캉스를 즐기는 멋쟁이 라이프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적어도 세계를 손에 넣기 위해 각종 권모술수를 펼치는 마왕 정도는 되고 싶었다.


▲ 삼천궁녀와 오리 따위 CG로 만들어주겠어! / 하지 마!

아무튼 크앙의 생떼는 나름대로 성공적인 결과를 냈다. 이전까진 모험의 ‘모’, 전투의 ‘전’ 자만 꺼내도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라는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하던 옅느에게 할 일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전설적인 승리에 버금가는 결과인 것이다. 물론 점차 군주와 부하 영웅의 관계가 이상하게 꼬여가고 있다는 건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있는 크앙이었다.

삐뚤어지고 있던 크앙을 위해 옅느가 내놓은 방안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일일 퀘스트 수행이다. 초반에는 잠잠하던 크앙이 최근 들어 징징대기 시작한 이유가 지시를 내리는 빈도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면, 일일 퀘스트라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수행하면서 심심함을 타파하라는 것이다. 옅느는 거기에 더해 일일 퀘스트는 2시간마다 새로 갱신되므로 계속해서 새로운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는데다가, 결정적으로 퀘스트의 난이도에 비해 돌아오는 수익이 짭짤하기 때문에 영지 운영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다양한 일일 퀘스트들, 2시간마다 한 번씩 계속해서 업데이트 된다

두 번째는 다른 왕국과 교류를 하는 것이다. 옅느의 말에 따르면 현재 아샨 대륙은 춘추전국시대 이상으로 엄청나게 많은 군주들이 들고 일어난 형세라고 한다(크앙도 왕이 되는 세상이니 왕 되기 참 쉽다는 말도 덧붙였다). 자연스럽게 크앙월드 주변에도 몇 개인가의 왕국이 존재하고, 저 멀리에는 엄청난 세력을 가진 대군주와 그를 중심으로 한 연맹도 창설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들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며 공동으로 영지를 발전시키는 역할은 오직 군주인 크앙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 세 번째는 새로운 성을 세워 왕국의 규모를 키우는 멀티 정책이다. 크앙의 세력권 하에는 아직도 수 많은 불모지가 존재한다. 그곳들을 자세히 살펴 보면 크앙월드와 같이 금이나 광석, 나무, 특수금속 등의 자원이 풍부한 광산도 존재한다고 한다. 옅느의 말에 따르면, 이 곳에 새로운 도시 ‘제2 크앙월드’ 를 세워서 그 자원들을 소유하고, 두 개의 도시에서 모집되는 병력은 지금의 두 배에 다다르기 때문에 세계 정복으로의 여정이 두 배는 빨라진다고 했다.


▲ 이런 식으로 앞마당 멀티가 필요하다

“음… 이런 중대 사안은 쉽사리 결정하면 안 되지. 꼼꼼한 검토와 신중한 판단을 거쳐야...”

“이럴 때만 진지한 척이네?”

“진지해야 할 땐 진지해야 하지 않겠어? 맨날 영웅들만 고생시켰는데 이제 나도 할 일이 생겼잖아. 그러니 당연히 열심히 고민해봐야지.”

“오, 크앙 님이 옳은 말을 하시는 건 처음 보네요.”

“(끄덕끄덕)”

소시지와 제왕이 옆에서 마치 ‘명절날 아무것도 안 하고 이것저것 참견하는 시동생’ 처럼 깐죽거렸지만 크앙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옅느가 내 놓은 세 가지의 방안 중 무엇을 채택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느라 무아지경에 빠진 크앙의 모습은 세속의 즐거움은 접어둔 채 오직 학문에만 열중하는 학자를 연상키셨다. 물론 그 목적이 자신의 세속적 즐거움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크앙은 각 방안의 장단점을 꼼꼼히 짚어 보았다. 먼저 일일 퀘스트 수행은 실패하더라도 딱히 손해는 없다. 기껏해야 각종 자원을 사고팔거나 운송하고, 쳐들어오는 적을 막고, 다른 군주들의 지역을 정찰, 약탈하는 정도의 쉬운 퀘스트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2시간마다 계속해서 새로운 퀘스트들이 추가되기 때문에 일이 떨어질 염려도 없다. 그 과정에서 돈이나 자원, 경험치를 얻을 수도 있으니 영지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일일 퀘스트는 위에 언급한 것이 거의 전부이기 문에 크앙의 성격 상 이것만 붙잡고 있다가는 또 그방 질려할 것이 뻔하다. 크앙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처음 퀘스트를 할 때는 재미있겠지만 그 다음, 또 그 다음, 하루, 이틀 후면 ‘일일퀘스트 질렸어! 다른 거!’ 라고 외치는 자신의 모습이 눈 앞에 훤히 보였다.


▲ 이런 식으로 겹치는 게 많기 때문에 질리기도 쉽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필수!

두 번째 방안인 주변 왕국과의 교류는 말 그대로 사람들과의 소통이다. 왕국 운영에 대한 노하우도 공유하고, 영웅 다루는 법에 대해 심각한 토론을 즐길 수도 있다. 연맹에 가입하면 그러한 정보를 보다 손쉽게 얻을 수 있으며, 각종 도움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혼자 수행하기 어려운 고급 퀘스트의 경우 연맹원이나 지인과 함께 클리어 하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다만 이 작전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존재했다. 이미 크앙이 자리잡고 있는 아샨 대륙의 엘라스 지역은 이미 수 많은 군주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재야에 묻혀 있는 크앙의 지인들을 진출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조금 있는 크앙의 지인들은 말라사, 아르카스 등 다른 지역에서 군주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엘라스 지역과의 소통이 원활치 않았다.

게다가 다른 군주들을 사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연맹에 가입하면 비교적 손쉽게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지만,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연맹에 가입한다는 것 자체가 크앙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홀홀단신의 크앙이 연맹을 창설한다고 누가 흔쾌히 가입해 주겠는가! 연맹원을 끌어모으려면 적극적인 홍보 정책이 필요한데 그것 또한 군주의 자존심이 인정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 유명 길드에 들어가는 것도 인맥을 쌓는 한 방법이겠지


▲ 세상 밖의 친구를 데려오기엔 이미 이 세계가 꽉 찼다
현재는 6개 서버 중 5개가 캐릭터 생성 제한이 걸린 상태

마지막 두 번째 도시 설립. 이는 세계 정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도시가 두 개가 되면 자연히 자원 획득량도 두 배가 되고, 각종 시설을 지어 추가적으로 군사를 소집하거나 시장과 선술집을 이용하는 등 보다 든든한 왕국 경영이 가능해진다.

문제는 도시 설립에는 천문학적인 돈과 자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장 도시를 설립하는 데만 수 만 골드와 수십 개의 나무, 광석이 소모되며, 도시 주변의 광산 개발, 시설 설립, 몬스터 정벌, 그것들을 수행할 추가 영웅 고용까지… 400원짜리 커맨드 센터 하나 앞마당에 뚝딱 하고 지으면 끝나는 간단한 멀티가 아니다. 병력 고용을 포기하고 시설과 광산 개발도 아끼며 돈과 자원을 차곡차곡 모으지 않으면 설립 자체도 힘들다.


▲ 처음 새 도시를 건설할 때 드는 비용, 만만해 보이지만 의외로 쉽게 모이질 않는다
제 3, 제 4 도시의 경우 더 비싸다

크앙은 세 가지의 방법을 놓고 끝없이 고민했다. 대체 뭘 먼저 시도해야 할 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단순히 재미로 따지면 두 번째 도시를 설립해서 바쁘게 움직이는 게 가장 좋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며칠 동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자원만 모아야 할 정도의 돈이 필요했다. 연맹 가입이나 인맥 생성은 혼자서만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일일 퀘스트만 부담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크앙 한 명의 불편만 감수하면 자연스레 돈과 자원을 모을 수 있다.

“그래, 일일 퀘스트를 계속 진행하면서 돈을 모으자. 그리고 최대한 돈을 아껴서 두 번째 도시를 건설하는거야. 그러면서 세상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채팅창도 시간 날 때마다 확인하고. 이야, 할 게 많으니까 점점 바빠지는데?”

이러고 있을 틈이 없었다. 어서 일일 퀘스트를 확인하고 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한다. 크앙은 영웅들에게 명령을 내려 놓고 곧바로 집무실로 뛰어올라갔다.

“이거야 원, 우리도 바빠지겠네.”

“새로운 영웅이 더 들어올 지도 모르겠어요.”

“흠.”

크앙은 자신도 모르는 새 조금씩 군주다운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 그래도 조~금은 군주다워진 크앙(실제로 저런 대사를 하진 않습니다)

크앙, 새 성을 짓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이제 조금만 모으면…”

크앙은 조마조마하며 무언가를 열심히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멍하니 앉아 한 두시간씩 보내곤 하던 평소의 모습과는 뭔가 달랐다. 뭐가 그리 기대되는지 다리는 털레털레 떨고 손톱은 잘근잘근 씹고 있다. 하루 담배 2갑을 피우던 사람이 금연 개시 3일째 되는 날 점심을 먹고 나와서 화장실에 갔을 때의 모습이 이럴까 싶을 정도였다.

“크앙님, 금연하셨어요?”

“……”

“금연이라, 좋지.”

“무슨 소리야, 크앙은 원래부터 담배 안 펴.”

“그럼 이건 뭐지? 아무리 봐도 금단 현상같은데…? 담배가 아니라면 설마 약인가.”

“약이요? 설마 크앙님의 평소 정신없는 모습이 마마마마….. 마…야..”

“… 이상한 약물 얘기로 이 기행기를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으로 만들진 말자, 우리.”


▲ 기행기 앞에 이런 것 붙어 있고 성인인증 해야 할 지도 몰라!

옆에서 지켜보던 영웅 삼인방이 이런 소릴 할 정도로 크앙은 매우 초조해 보였다. 영웅들의 이야기는 약물 중독에서 실연, 3차 성징, 정신 질환, 치매 증세, 심지어는 무서운 부인 몰래 바람 피운걸 들킨 거라는(결혼도 안 했는데!) 상황까지 전개되었다. 그리고 2분 후, 크앙이 힘차게 일어섰다.

“왔다!”

“헉! 진짜였어?”

“시시시... 실제 상황이에요 이거? 어쩌지... 우리도 도망쳐야 하는 거에요? 아니면 크앙님을 잡아다가..”

“무슨 헛소리야! 왔어! 끝났다고!”

“벌써 온 거야!? 야단났네.. 어쩌자고 그런 짓을!”

“민간인을 상대로 한 그런 끔찍한테러는 어떤 이유에서건 용서받을 수 없어욧! 크앙님 나빠!”

“얘네들 아까부터 뭐래는 거야?”

“얼마 전에 일어난 러시아 공항 폭파 테러범의 배후가 크앙 군주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왔다. 그게 들켜서 FBI에게 i기며 여기 숨어 있다는 거였지. 그러던 와중에 크앙 군주가 벌떡 일어섰다.”

“아주 소설을 쓰는구나…… 너희들 평소에 날 그렇게 보고 있었냐?”

“그럼 뭐가 왔다는 거야? 이 상황에서?”

“돈 말야 돈! 제2 크앙월드를 짓기 위한 마지막 자금이 드디어 성으로 운송됐다고!”

그렇다. 근 며칠 간의 노력으로 크앙은 새로운 도시, 제2 크앙월드를 짓기 위한 돈과 자원을 모은 것이다. 물론 그 동안 건물도 짓지 않고 유닛도 모집하지 않고 광산 개발도 최소한으로 해 가며 돈을 모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저, 정말? 정말 그 거금을 다 모은거야?”

“와아~ 진짜요?”

“축하한다.”

“하하하 짐의 능력을 보았느냐! 내가 바로 크앙! 한다면 하는 남자 크앙이다! 캬캬캬캭”

“아주 조금 존경스러워 질 뻔 했는데, 저 웃음소리 때문에 취소.”

“그러게요. 조금 띄워주면 자기가 새가 된 줄 알아요. 싸이 닮아서 그런가?”

“싸이보다는 유민상을 닮은 것 같다.”

“시끄러!”

크앙은 울컥했다. 사실 크앙의 실제 얼굴은 살이 아주 약간 붙은 조인성에 가까웠… 화제를 돌리자. 아무튼 그 동안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덕에 크앙은 아주 약간 우쭐해졌다. 덕분에 잠깐 얻었던 약간의 신뢰도를 잃기는 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돈이 모였으니 다음 일은 땅을 보러 가는 일이다.


▲ 어느 지역의 그린벨트를 풀어볼까... 이 곳?

“좋아, 이제 제2 롯데월드를 지을 땅을 알아보러 가자. 다들 준비 되었나?”

“저기 크앙, 내 생각엔 저기 저 근처가 좋은 것 같아. 거긴 배산임수 지형인데다 광물도 무지 많아서 제2 크앙월드를 짓기엔 딱이야.”

“무슨 소릴 하시는 거에요? 뭐니뭐니해도 이쪽 지점이 좋아요. 거긴 유황 광산이 두 개나 있는데다 수은, 보석까지… 자원 종류가 얼마나 많은데요?”

“…… 저쪽 근처가 나무가 많아 좋다.”

“무슨 소리를 해대는 거야? 옅느, 네가 말한 곳은 쓸데없이 광물만 많은 곳이잖아, 그리고 이 근처에 배산임수가 어딨어? 다 평진데. 소시지, 넌 임마 돈하고 나무하고 광물은 안 모을거냐? 그리고 제왕 너까지 왜 이래? 나무만 많으면 뭐해 돈하고 광석이 없는데.”

“헉! 어떻게 그 사실을…”

“너희들… 설마 나 돈 모으는 동안 몰래 뒷돈 받은 건 아니겠지?”

“뜨끔!”

어디선가 양심이라는 이름의 허수아비를 뾰족한 무언가로 사정없이 찌르는 소리가 들렸다. 영혼이 깃든 도로시의 허수아비가 아파 우는 소리가 아주 크앙월드 전체에 메아리친다.

“이놈들이… 뒷돈 받은거 전부 토해 내.”

“도, 돈이라니! 그런거 없어요.”

평소와는 다르게 존댓말을 쓰는 옅느.

“제가 돈 받을 사람처럼 보여요? 실망이에요 흑흑”

크앙 왼쪽 눈 밤탱이로 만들어 놓을 땐 언제고 우는 척 하는 소시지.

“돈은 아니고 이런 걸 받았다.”

역시 영웅답게 순순히 자백하는 제왕, 그런데 뜻밖에도 제왕이 건넨 것은 성내 철물점의 갑옷 광내기 10회 무료 이용권이었다. 아마도 저 갑옷의 번쩍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듯 했다(사실 적의 피나 영혼 뭐 그런 것을 빨아들여서 스스로 광을 내는 악마의 갑옷 같은 걸 생각했던 크앙은 진이 조금 빠졌다).


▲ 이 갑옷... 나름대로 열심히 손질하는 거였구나

뭐든 처음이 어렵지 일단 물꼬가 트이면 순순히 불 수밖에 없다. 크앙은 이 기세를 몰아 비자금 모두를 회수하기로 마음먹었다.

“너희들도 얼른 안 꺼내놔?”

“… 여기…요……. 그래도 옅느 언니에 비하면 많이 받은 거 아니에요.”

“세상에! 이렇게나 많이 받았어? 그러면 옅느는 대체 얼마나 받은거야! 어? 야! 야! 옅느 잡아!”

옅느는 쏜살같이 도망치려다가 마침 문 앞에 서 있던 제왕의 손에 붙들렸다. 발버둥치는 옅느, 하지만 차가운 도시 군주 크앙의 사전에는 자비심같은 따뜻한 단어란 없었다. 간단한 몸수색을 하자 허리에 차고 있던 주머니와 벨트 안쪽에서 소시지가 받은 돈 정도의 액수가 나왔다. 옅느는 아쉬운 듯 '쳇' 소리를 냈지만 자세히 보면 뭔가 더 숨기고 있는 티가 역력했다.

“그런데, 이걸로는 뭔가 부족하단 말씀이야?”

“뭐… 뭐가? 정말이야 그게 전부라고!”

“속주머니.”

“헉, 나한테 속주머니가 어디 있다고!”

“그 옷 안쪽에 커다란 공기주머니 있는 거 다 알아. 직접 수색하기 전에 얼른 불어.”


▲ 이 옷에 속주머니가 있다면... 으흐흐

“고고고 공기주머니라니 무슨 그런 심한 말을!”

“소시지.”

“네!”

“크앙! 니가 이럴 수 있어? 소시지 너도 그러면 안돼 이 배신… 꺅! 거.. 거기는 안돼…..꺄흣?”

소시지는 자신의 비상금을 뺏긴 것에 대한 반발심인지 뭔지 엄청나게 열심히 몸수색을 도왔고, 덕분에 뭔가 보기 좋은 광경이 펼쳐졌다. 이후, 옅느의 속주머니에서 나온 돈까지 모두 합치자 도시를 건설한 비용의 절반 이상이 채워졌다. 크앙이 일 하고 있는 동안에 정말 징하게도 받아먹은 것 같다. 이래서 공공 부지 선정에는 공정을 기해야 한다. 크앙이 조금만 욕심이 많고 국민에게 무관심한 무능한 군주였다면 아마도 저 세 지점, 혹은 더 많은 돈을 주는 싸구려 땅을 비싸게 주고 매입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크앙에게는 왕국에 대한 주인의식이 있었다. 적어도 극동 지역에 위치한 K모 국가의 몇몇 인간들(그들은 딱히 하는 일도 없이 하늘색 지붕 밑에 모여 여기저기서 돈을 만들어내는 궁극마법을 쓴다고 한다)과는 사뭇 달랐다. 이 어찌 모범적인 군주가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어쨌든 크앙은 황금 광산이 두 개 딸려 있고 목재와 광석을 채취할 수 있으면서 크앙월드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적당한 터에 제2 크앙월드를 세웠다. 광산에 머물러있던 어중이 떠중이 몬스터들은 제왕의 악마군단 앞에 속절없이 무릎을 꿇었다. 이제 제2 크앙월드를 기존의 성과 비슷할 정도로 끌어올리는 일만 남았다. 바야흐로 크앙의 전성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 제 2 크앙월드가 눈부신 자태를 드러냈다
아, 이름과 달리 항공기 운항을 방해하진 않는다

크앙, 아무거나 막 지었던 당신! 그게 최선이었습니까?

제2 크앙월드. 크앙의 두 번째 성이 그 찬란한 모습을 드러냈다. 크앙월드로부터 약 20분 거리에 위치한 이 도시는 두 개의 금광과 한 개씩의 목재, 광석 광산을 가지고 있었다. 기본 자원을 바탕으로 군비를 늘리겠다는 목표에 딱 들어맞는 도시 환경이었다.

“자, 나도 이제 두 개의 성을 가진 군주라 이거지? 어디, 뭘 먼저 해 볼까… 시설을 지을까, 광산을 개발할까, 몬스터를 정벌할까, 창고를 마련해야 하나, 아니면…”


▲ 신나는 크앙의 치킨 댄스! 손에 꼬치산적 하나씩 들고 따라해 보아요

그러고 보니 당장 해야 할 것이 상당히 많았다. 신생 도시인 제2 크앙월드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손을 댈 수는 없는 법! 크앙은 영웅회의를 소집했다.

“그런 이유에서 오늘은 제2 크앙월드 개발 정책에 대해 논의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누구 좋은 아이디어 없나요?”

“일단 우리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영웅이 둘, 아니 적어도 한 명은 필요하다.”

“그러니까요.. 저도 언제까지나 광산만 파고 있을 순 없잖아요. 일단 군수 확보를 위해서 대량의 인력을 투입, 광산을 개발하는 게 중요해요.”

“맘대로 해...”

아직 비자금(?)을 뺏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 한 옅느를 제외하고는 제각기 건설적인 의견을 내 놓았다. 왠지 옅느 주변만 흑백으로 보이는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크앙은 일단 광산 개발에 빨간 별표를 두 개 그렸다.

“그리고 시설 말인데, 효율적으로 일을 하려면 뭘 먼저 짓는 게 좋을까?”

“군수물자를 확보하려면 창고와 고급 유닛 시설을 먼저 지어야겠죠.”

“일단 기본 건물인 시장은 꼭 필요하다. 뭐, 선술집의 경우에는 크앙월드에도 있으니 굳이 지을 필요는 없지만, 시장은 크앙월드와 별개적으로 운영될 뿐 아니라 도시 간의 자원 교환을 담당하는 캐러밴을 이용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해.”

“돈 벌려면... 마을회관... 지어... 시간 날 때마다...”

“마법 길드는 워낙 비싸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크앙월드에 이미 마법길드가 있으니까요. 제2 크앙월드에는 필요가 없겠네요.”

“공성을 하지 않을 거라면 대장간도 아직 필요 없다. 다른 성을 공격할 만큼의 여력을 갖춘 후 지어도 충분하다.”

“유닛 모집 시설은... 계속 지어야 해...”

“그리고 주거지는...”

"드래곤의 축복은..."

“자.. 잠깐! 천천히, 천천히 한 명씩 말 해봐!”

회의를 시작하자 엄청나게 많은 의견이 10단 콤보처럼 쏟아져 나왔다. 영웅들이 내 놓은 정보는 그동안 왜 입들을 다물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피와 살이 되는 고급 정보들이었다. 실제로 크앙월드를 지은 직후에는 뭘 먼저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짓다 보니 효율이 좋지 않았었다. 크앙은 그 때의 전적을 교훈삼아 이번에는 철저한 계획 하에 건물을 짓고 광산을 개발하고 주거지를 건설하겠다고 다짐했다.


▲ 아직 백지와도 같은 제2 크앙월드, 뭘 먼저 지어야 빠르고 신속한 개발이 가능할까?

영웅들에게서 수집한 정보들을 종합해서 마련한 ‘제2 크앙월드의 효율적인 시설 마련을 위한 지침’ 은 다음과 같았다.

1. 광산은 히어로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연구를 하도록 해야 한다. 연구는 개발보다 최대 50%까지 자원을 더 생산할 수 있으니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금 비싸더라도 연구에 초점을 맞추자. 한 번이라도 개발을 진행하면 더 이상 연구를 할 수 없으니 주의하자.

2. 도시 기반 시설 중에서는 창고와 마을회관을 우선적으로 짓고 업그레이드 한다.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마을회관은 틈 날때마다 업그레이드를 하고, 자원 최대 저장량을 늘려 주는 창고는 자원 생산량에 따라 업그레이드를 조절하도록 하자. 마법 회관과 대장간, 성벽 등의 시설은 아직 시기상조인 듯 하며, 선술집도 딱히 필요는 없어 보인다.

3. 유닛 모집 시설은 틈 날 때마다 업그레이드 하자. 다만, 크앙월드에서의 유닛 생산량을 참고하여 별로 필요하지 않은 유닛 생산 시설은 업그레이드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고급 보병 유닛이 아직 없으므로 보병의 물량 확보를 우선시하는 것이 좋겠다.

4. 성 주변에 주거지를 지으려면 광산 외에도 다른 필드의 몬스터들을 퇴치해야 한다. 몬스터를 퇴치하고 주거지를 짓고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서는 영웅들이 필요하다. 주거지는 특정 유닛의 모집량이나 광산의 생산량, 영웅의 경험치 획득량 등을 크게 늘려주는 등 매우 유용하지만 그만큼 비싸다.

5. 도시 시설은 한 번에 하나 밖에 짓지 못하니 드래곤의 축복인 ‘시설 대열’ 을 사용해서 예약을 해 두면 편리하다. 그 외에도 자원 생산을 늘려 주거나 건설 속도를 빠르게 해 주는 축복도 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으니, 그 동안 모은 쿠폰 팍팍 쓰자!

크앙은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세운 후 제2 크앙월드를 쑥쑥 키워갈 인재를 뽑기 시작했다. 일단 옅느와 소시지, 그리고 제왕은 마법을 쓸 줄 모르는 생판 전사였다. 그렇지만 크앙월드에는 이미 레벨 2의 마법 길드가 완공되어 있었다. 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지어 놓은 건물이었다.


▲ 마법사 캐릭도 없는 주제에 무리해서 지어 놓은 마법 길드를 써먹어야 할 텐데...


▲ 마법사 캐릭터가 길드를 방문하면 이렇게 좋은 마법들을 얻을 수 있다


▲ 도시에 각종 드래곤의 축복을 걸어 놓은 상태, 특히 맨 아래쪽의 시설대열 축복은 참 쓸만하다

이러한 이유에서 크앙이 이번에 모집한 영웅은 마법사였다. 마침 크앙이 선술집에 가자 바보 커플의 타로 점을 봐 주고 있던 마법사가 눈에 띄었다.

“호호호 정말 멋진 점괘가 나왔네요.”

“정말요? 자기야 우린 정말 천생연분인가봐~”

“네, 천 분의 일 확률로 나오는 최악의 궁합이에요. 계속 만나게 되면 남자분은 회사에서 짤리고 재산 다 잃고 교통사고 나고 암에 걸릴 거에요. 축하합니다~”

“뭐? 이 미친 여자가 뭐라고 나불대는 거야?”

“무슨 소리! 제 점괘는 확실해요. 그것도 곧 일어날 일만을 예언하죠.”

“헛소리 집어 쳐! 에잇, 재수가 없으려니!”

“어.. 복채는?”

“없어!”


▲ 뭔가 몽환적이고 섹시한 분위기의 여마법사

점괘를 지켜보던 크앙은 혀를 내둘렀다. 아무래도 저 마법사는 커플에 대해 안 좋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슨 저런 점괘가 나올 수 있을까. 마법사가 필요하긴 하지만 저런 사이비는 필요없다는 생각을 굳힌 크앙은 선술집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이었다. 크앙의 뒤에서 뭔가 미묘한 마력의 흐름이 감지되었다. 그리고...

“앗! 사람이 마차에 치었다! 의사 불러!”

“저 사람, 방금 자기가 다니던 회사가 망했다는 소식을 전해듣더라구. 아마도 제2 크앙월드 건설 관련 회사에 근무하던 사람 같은데, 옅느 님에게 줄을 대다가 그만... 쯧쯧”

“아, 그래서 비틀대다가 마차에 치었구만.”

“어허.. 다친 상처는 심각하지 않은데 담관에서 시작된 암이 복막 전체를 덮고 있군. 아무래도 오래 살기는 힘들겠어.”

“앗! 저 사람은 초인 의사라 불리는 닥터 K_Ang! 저런 진단을 받은 걸 보니 정말 암이겠군.”


▲ 아샨 대륙에서 전설적 의사로 불리우는 닥터 K_Ang

“뭐 저렇게 운 없는 사람이 다 있지?”

선술집 바깥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 왔다. 순간 방금 그 중얼거림이 저주 마법이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만약 저 비극이 저주로 인한 것이라면 저 마법사는 진짜다! 크앙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마법사를 붙잡았다. 저 정도의 마력이면 영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좋아요, 요즘 들어 할 일도 없고. 기꺼이 일해 드리죠.”

“아 고마워. 그럼 성으로 가자. 다른 영웅들에게 정식으로 소개해야지.”

크앙은 새로 영입한 마법사를 데리고 성으로 향했다. 이번 모집은 옅느와 소시지, 제왕 때하고는 달랐다. 아직 주도권을 뺏기지 않은 것이다. 영웅과 군주의 관계에서 일단 한 번이라도 영웅이 주도권을 쥐게 되면 그것을 돌이키는 데 얼마나 힘든지는 그 동안의 고생으로 충분히 느꼈다. 게다가 저 마법사 영웅은 저주까지 사용한다. 여기서 확실히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

“아 맞다. 우리 영지에는 독특한 룰이 있거든?”

“룰이요? 무슨..?”

“우린 영웅에게 코드네임을 부여하고 그 이름으로 부르곤 해. 적에게 본명이 노출되면 안되니까. 그래서 너도 이름 대신 코드네임으로 부를게. 괜찮지?”

“아, 그런 이유에서라면 얼마든지요.”

“좋아, 그럼 넌 이제부터 마법사다.”

“네?”

“마법사라고.”

“직업 말고.. 이름을 대신 할 코드네임을 지어주신다고...”

“그러니까 마법사. 앞으로 네 이름은 마법사.”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 마침 다 모여 있네? 인사해 이쪽은 이번에 우리 영지의 새로운 영웅이 된 마법사야. 아, 직업도 마법사고 이름도 마법사니까 그렇게 부르면 될거야.”

“아! 아녜요 제 이름은 마법사가 아니라 세ㄹ....”

“잘 부탁해요 마법사 씨.”

이렇게 크앙의 영지에는 영웅이 또 한 명 늘어났다. 크앙은 역시 초반에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이왕 이름 짓는거 오징어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크앙이었다.


▲ 이상한 이름을 가지고 광순이가 되어 버린 비운의 두 영웅

크앙, 다른 왕국과 접촉 시도!

제2 크앙월드는 엄청난 속도로 발전을 거듭했다. 크앙월드가 1주일 걸려 이룩한 발전 단게를 고작 3일만에 따라잡을 정도였다. 금광에서는 매일같이 수만 골드의 금이 쏟아져 나왔고, 그 덕에 수도인 크앙월드도 발전에 탄력이 붙어 6, 7레벨의 유닛 생산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다른 왕국과의 접촉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 연맹에서 크앙을 초대하긴 했으나 일면식조차 없는 인물들이 모여 있는 연맹은 크앙에게 별 매력을 주지 못했다. 심지어 연맹원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얼굴 한 번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서로 간의 정보 공유와 퀘스트 협력 등을 기대했던 크앙으로서는 진이 빠질 정도였다.


▲ 어찌저찌 연맹에 가입하긴 했지만 재미가 없다

연맹의 지루함에 크앙이 눈을 돌린 곳은 크앙월드 옆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한 왕국이었다. 헤이븐 종족으로 보이는 이 왕국은 분명 크앙월드보다 나중에 세워졌다. 분명히 크앙이 여기에 자리를 잡았을 때는 이런 왕국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옆에다 왕국 세워 놓고 떡을 돌리기는커녕 인사 한 번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다. 딱히 해를 끼친 것은 아니지만 며칠 전부터 자꾸 크앙월드 근처에서 이방인이 목격되었다는 보고가 들려오는데, 아무래도 이놈들이 보낸 스파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크앙은 여지껏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참았다. 약탈은커녕 정찰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크앙이 너그러워서가 아니라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병력이 모이면 성 주변의 몬스터 몰아내고 땅 개척하는 데 다 써버리고, 정찰자 직업을 가진 옅느로 하여금 정찰을 보내자니 제2 크앙월드 일이 너무 바빴다. 여러모로 사정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어느덧 제2 크앙월드 개발도 궤도에 올랐고, 서서히 영웅들에게도 여유가 찾아왔다. 저 거슬리는 옆 왕국을 찝적거려 볼 수 있을 형편이 된 것이다. 크앙은 옅느를 불렀다.


▲ 옆 왕국이(가) 나타났다! 가라 피카.. 아니 옅느!

“아, 잘 왔어 옅느. 자, 여기 앉아.”

“...... 왜?”

“아휴 아직도 흑백 모드네. 커피나 한 잔 할래? 마침 최고급 커피가...”

“용건만 간단히.”

“쯧, 오래 가네. 아무튼 정찰 좀 다녀오지 않을래?”

“정찰?”

“응. 옆 왕국이 왠지 눈에 거슬려서 말야. 한 번 경고라도 주고 싶은데 강한지 약한지 통 구분이 안 가는거 있지.”

“정찰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데... 뭘 정찰하면 돼?”

“대충 쟤네 병력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최대한 빠르게 좀 알아봐줘. 궁금해서 그래.”

“...한번 해 볼게.”

지난번 제2 크앙월드 뇌물수수 압수 건 이후 옅느는 늘 기운 없는 표정의 흑백 모드였다. 그런데 왠지 오늘은 조금 더 그런 것 같다. 여장을 챙기고 정찰을 떠나는 옅느의 어깨가 축 처져있는 것을 확인하니 크앙도 왠지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사실 인간 사회에서 뇌물이나 비리는 법에 저촉되는 행동이지만 인페르노 종족에게 그건 비난받을 거리도 되지 못했다. 욕망과 쾌락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종족 특성 상 옅느가 뇌물을 받았다가 내게 뺏긴 것은 나름 억울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 동안 몸바쳐 일한 것에 대한 보너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일테니 말이다.


▲ 인페르노 종족 특성이 원래 이런데 말이지...

“쩝, 명절이기도 하니 옅느 돌아오면 보너스라도 따로 두둑히 줘야지.”

생각해 보니 크앙에게 옅느의 존재는 단순한 수하 영웅이 아니었다. 첫 번째로 자신을 따른 영웅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모르던 초보 군주 시절에 많은 도움을 받으며 함께 왕국을 발전시킨 추억도 있다. 비록 열심히 투닥거리며 싸우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싸움은 크앙 자신의 어리숙함에서 비롯되었다. 왠지 흐뭇해진 크앙은 어떻게 하면 다른 영웅들 모르게 옅느에게만 특별 보너스를 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 때 마법사가 찾아왔다.

“똑똑~ 전하, 옅느 님 어디 계세요?”

"어, 지금 좀 나갔는데?“

“아, 그럼 옅느 님 돌아오시면 오늘은 괜히 어디 나돌아 다니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운수가 좀 나쁘네요.”

“운수? 지난번 그 바보커플 남자놈처럼?”

“아, 그것보단 약한데 그래도 꽤 나빠요.”

마법사는 할 말만 다 하고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그나저나 옅느가 운수가 나쁘다고? 그래서 아까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었나?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순간, 소시지와 제왕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크.. 크앙 님! 큰일 났어요!”

“이 광경 얼마 전에도 겪은 것 같은데? 설마 또 쿠폰이 없어졌어?”

“쿠폰은 무사하다. 옅느가 다쳤다.”


▲ 적에게 발각 당한 여자 포로의 운명은!? 설마 워싱턴 조약을 어기진 않겠지

“아.. 쿠폰은 무사... 뭐? 옅느가 다쳐?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때문에 어떻게 왜 그렇게 됐는지 육하원칙에 의거해서 정확히 설명해!”

“옅느가 옆 왕국에서 정찰하다가 적에게 들켜서 도망치다가 심각한 부상을 입고 방금 도망쳐왔다.”

“거 참 알아듣기 쉽구만! 빨리 응급실로 안내해!”

크앙은 소시지와 제왕과 함께 성 내 의무실로 달려갔다. 의무실이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괜히 정찰을 보내서! 서둘러서 최대한 빨리 다녀오라고 해서! 억지로 무리를 하다 발각된 것 같아 더욱 그랬다. 죄책감을 제대로 느낄 틈도 없이 크앙은 의무실 앞에 도달했다. 의무실 입구에는 긴급 수술을 알리는 경보등이 반짝이고 있었다. 크앙은 문을 열었다.

“석션! 젠장 동맥 출혈이다. 빨리 수혈액 가져와!”

“혈압이 점점 떨어집니다. 30! 28!”

“젠장. 닥터 K_Ang 선생은 아직인가!”

“혈관 봉합 완료! 계속해서 동맥 접합에 들어갑니다.”


▲ 수술실은 언제나 급박하다

의무실 안은 또 하나의 전쟁을 방불케 했다. 수많은 의사가 달라붙어 각종 수술을 진행하고 있었고, 상황은 더욱 심각해져 가고 있었다. 기껏해야 어깨에 화살이나 한 방 맞고 돌아왔을 거라 생각했던 예상과는 달리 생사가 오가는 중상을 입은 것이 확실하다. 수술대 위는 피바다가 되어 있었고, 옅느의 얼굴은 알아보지도 못 할 만큼 일그러져 있었다.

“이런! 심장 박동이 정지됐습니다! 제세동기! 빨리요!”

“하나, 둘, 쇼크! 젠장, 늑골을 열고 직접 마사지한다.”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크앙은 오열했다. 그 동안 옅느와 함께 했던 추억들이 눈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의사들의 당황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아니, 그 전에 일을 저렇게 만든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크앙은 울며 소리쳤다.

“제발! 제발 옅느를 살려줘! 미안해, 일어나 옅느! 일어나기만 하면 네가 좋아하는 보너스 잔뜩 줄게! 누가 옅느좀 살려 주세요 빨리!”

“보너스? 얼마나 주실 건데요?”

“지금 액수가 문제야! 살아만 난다면 얼마든지... 엥?”

“와~ 지금 모두 들었지? 얼마든지라고!”

크앙은 뒤를 돌아봤다. 어깨에 붕대를 동여맨 옅느가 커튼 사이로 몸을 내밀고 있었다. 중상 치고는 엄청나게 멀쩡해 보였다. 아니, 보너스라는 단어로 인해 그 동안의 흑백 오오라도 없어지고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었다. 손에는 병문안 선물의 대표주자 델몬X 오렌지주스에 빨대를 꽃고 쪽쪽 빨아먹고 있는 것이 아무리 봐도 중상 환자 같지는 않다.

크앙은 다시 수술실을 들여다봤다. 얼굴이 일그러진 옅느인 줄 알았던 환자는 실제로 얼굴이 일그러진 몬스터 서큐버스였다. 심지어 의사들은 서큐버스를 회복시킨 뒤 ‘와~ 살아났다!’, ‘역시 서큐버스는 생명력이 끈질겨~’ 라며 축하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어, 그러니까... 다쳤다더니?”

“와 진짜, 괜히 정찰 나가서 서두르다가 들켜서 어깨에 화살 맞았잖아. 나였기에 무사히 살아 돌아왔지, 다른 영웅들이었으면 죽었을 걸?”


▲ 화살도 나름 아프긴 아프다

“어깨에... 화살... 맞은 것 뿐이라고...?”

순간 안심이 되면서 긴장이 풀린 크앙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옅느는 여전히 자신의 무용담을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나름 독화살이긴 했는데 뭐 동물에게나 통하는 독이더라고. 뭐 나에게는 통하지 않... 으잉? 크앙, 설마 운 거야? 저게 나인 줄 알고?”

“울긴 뭘 울었다는 거야! 이 손 치워!”

“어? 정말로 눈물 자국이!”

“아냐! 아까 달려와서 땀이 눈에 들어간거야! 아니, 눈꺼풀에서 땀이 나서 그래!”

“오호, 내가 걱정돼서 후다닥 달려오셨어? 귀여운 데가 있는데?”

“뭐, 뭐라는거야! 나 간다!”

“어? 보너스 얘기는 왜 하다 말아! 이봐 크앙!"

크앙은 몸을 휙 돌려 의무실을 뛰쳐나갔고, 그 뒤를 옅느가 황급히 뒤따라 나갔다. 복도 저 편에서는 ‘보너스~’, ‘시끄러!’ 하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소시지와 제왕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옅느 언니도 크게 다치지 않았고, 결과도 좋고. 훈훈하네요.”

“부모의 마음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

옅느의 부상은 2시간 후 완치(원래 영웅들은 회복이 빠르다)되었다. 그러나 크앙은 두 가지의 교훈을 얻었다. 아무리 급해도 환자 확인은 필수라는 것, 그리고 옆 나라도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정보였다. 어느 새 크앙의 머릿 속에는 적에 대한 공포심이 자리잡고 있었다.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말처럼 섣불리 정찰이라도 나갔다가 영웅을 영영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병원에 입원한 옅느, 그러나 마족 특유의 회복력으로 꽤 금방 나았다

“역시 세상은 러브&피스. 전쟁은 없어져야 해.”

"보너스는? 언제 줄거야? 응?"

"......."

이렇게 크앙월드의 시끌벅적했던 하루가 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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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트 앤 매직 히어로즈 킹덤즈'는 '마이트 앤 매직 히어로즈' 시리즈를 기반으로 개발된 전략 시뮬레이션 웹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원작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자신의 세력을 키워 다른 유저와 경쟁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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