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만화 ‘드래곤볼’에서는 우주 최강의 적 앞에서도 굴하지않는 투기가. 해적왕이 되기 위한 루피의 모험 ‘원피스’에서는 극한의 상황을 함께 극복해가는 동료들의 우정이. "네가 믿는 널 믿어" 등 수많은 명대사를 남긴 '천원돌파 그렌라간'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열정이 담겨있죠. 이런 투기와 우정, 열정에는 뜨거운 피 '열혈'이 에너지의 근원이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열혈’이 미소녀게임에도 어울릴까요? 미소녀와의 연애를 중심으로 한 게임에서 조금은 엉뚱해 보이는 상상일지도 모르지만, 이미 일본의 미소녀게임 개발사 프로펠러는 이런 ‘열혈’ 가득한 스토리를 개발의 중심으로 삼고 그 결과물로 다양한 명작을 만들어낸 바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미소녀게임은 바로 프로펠러의 ‘열혈’...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대표작 ‘아야카시비토’입니다.
▲ 미소녀게임 '아야카시비토' 메인 이미지 (사진출처: 필자 직접 촬영)
미소녀게임에도 ‘열혈’은 통한다, 프로펠러
프로펠러는 주식회사 윌 산하의 미소녀게임 전문 개발사로, 2004년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테코이레프린세스’로 데뷔하였습니다. 첫 작품은 평범한 미소녀 연애물을 표방했는데, 결과적으로 시장에서는 큰 반향을 불러오지 못했죠.
하지만 좌절하지않은 프로펠러는 쉬지 않고 곧바로 다음 작품을 내놓는데요, 미소녀게임에 어울리지 않는 ‘열혈’이라는 색을 칠했죠. 그런데 그것이 크게 성공을 하는데요, 바로 ‘아야카시비토’입니다.
이런 혁신을 주도한 1등 공신이 바로 시나리오 작가 히가시데 유이치로와 원화가 츄오 히가시구치 콤비인데요. 특히 히가시데 유이치로가 작성한 게임 스토리는 높은 완성도뿐만 아니라, 미소녀게임에서 이질적으로 느낄 만한 ‘열혈’을 굉장히 잘 표현해 극찬을 받았죠.
이후 프로펠러는 이때의 ‘열혈’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2007년 ‘불릿 버틀러(Bullet Butlers)’와 2010년 ‘에보리미트’를 연달아 성공시키지만, 최고로 꼽히는 게임은 역시 첫 작인 ‘아야카시비토’입니다.
▲ 차기작 '불릿 버틀러'와...(사진출처: 공식 웹사이트)
▲ '에보리미트'도 좋은 평가를 이끌어낸 작품이다 (사진출처: 필자 직접 촬영)
요괴인간은 평범한 삶을 꿈꾼다, 아야카시비토
‘아야카시비토’는 일본어로 요괴와 사람을 의미하는 ‘아야카시’와 ‘히토’를 하나로 붙인 것으로, 요괴인간을 뜻합니다. 이런 제목처럼, 게임은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인해 요괴와 괴물의 힘을 다루게 된 ‘인요(人妖)’들의 이야기를 다루죠.
주인공 ‘키사라기 소우시치’도 이러한 인요 중 하나로, 금속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몸을 거리낌 없이 던지는 전형적인 호인이기도 합니다. 위험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병원에 격리된 그는 ‘스즈’라는 소녀를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됩니다.
▲ 주인공은 금속과 대화하는 능력을 지닌 '인요'다 (사진출처: 필자 직접 촬영)
감시 받고 실험 당하는 삶이 아닌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그는 고의적으로 사고를 일으켜 ‘스즈’와 함께 병원을 탈출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인요들이 모여 사는 도시 ‘카미사와’로 향하죠. 쫓아온 정부의 추격자를 떨쳐내고, 그토록 원하던 평온한 삶을 얻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야카시비토’ 줄거리입니다.
▲ 주인공이 꿈꾸는 평온한 삶, 과연 지킬 수 있을까? (사진출처: 필자 직접 촬영)
- 주요 캐릭터 소개
▲ 키사라기 소우시치: 본명은 ‘타케베 료우이치’지만, 자신과 같은 처지의 ‘스즈’와 병원에서 탈출하면서 가명을 쓰기 시작한다. 의협심이 강하고 상당한 호인이며, 동시에 눈물이 많은 성격이다. 작중에서 다른 인물들에게 이런 성격을 자주 지적 받지만, 끝까지 변함없는 모습을 보인다. 과거 ‘쿠키 요우코우’로부터 중국 권법을 전수받아, 능력 없이도 일반인 이상의 전투력을 자랑한다.
▲ 키사라기 스즈: 정부의 병원에 격리되어 있다가, 주인공 ‘소우시치’와 함께 탈출한 소녀. 천연덕스럽고 앞뒤 생각하지 않은 마이페이스의 인물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경계심을 품고 거리를 두고 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차 개선된다. 여우 꼬리를 가지고 있으며, 말에 힘을 실어서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
▲ 이치노타니 토우코: 카미사와 학원의 학생으로, 집이 신사라 무녀도 겸하고 있다. 하나의 몸에 2개의 영혼이 있지만,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그 때문인지, 성격도 너그럽고 온화한 편이다. 능력 덕분에 자고 있을 때도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 수 있지만, 나중에 한쪽의 영혼을 죽여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 쿠키 요우코우: 인요추적기관 ‘도미니온’의 부대장으로, 이 작품의 메인 악역이다. 인요를 상대하기 위해 중국무술을 기반으로 한 ‘쿠키류’를 만들었으며, 동시에 주인공의 스승이기도 하다. 특별한 능력이 없는 평범한 인간이지만, 수많은 인요를 압도하는 강함을 지니고 있다. 본래 남자답고 너그러운 성격이었으나, 모종의 사건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열혈’ 가득한 전투, 최소한의 묘사만으로 완벽하게 담아내다
‘아야카시비토’의 스토리는 주인공 ‘소우시치’가 자신을 추적해온 정부 요원 혹은 다른 인요들과 치열하게 싸우며, 점차 성장해나가는 전형적인 소년 만화의 구성을 띄고 있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히로인과의 연애보다는 ‘이능력 배틀’에 집중하고 있죠.
특히 ‘열혈’을 강조하기 위해, 게임에는 주인공에 비견할만한 무게감을 가진 남성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특히 조연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이들이 펼치는 전투와 틈틈이 날리는 명대사는 게임의 묘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이런 뜨거운 남자들의 분위기 때문에 미소녀게임 본연의 연애 요소가 방해된다는 평도 있었죠.
▲ 마치 소년 만화와 같은 뜨거운 장면이 많은 편이다 (사진출처: 필자 직접 촬영)
▲ CG가 적절하게 들어가, 분위기를 고조시켜준다 (사진출처: 필자 직접 촬영)
이런 대표적인 명장면으로는 교사 ‘카토 코타로’가 자동차를 박살내며 등장하는 장면을 꼽을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뭐든 적당히 하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위기의 순간 자동차를 맨주먹으로 일격에 박살내면서 뜨거운 남자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죠. 여기에 함께 들려오는 배경음악과 선생이 날리는 명대사는 남자에게 반하게 만들 정도입니다.
사실 전투 장면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페이트’와 ‘아야카시’에 비하면 CG와 연출 면에서 조금 밀리는 편입니다. 그 대신, 성우 연기, 효과음, 배경음악과 같은 음향적인 부분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있죠. 보는 장면은 적을지라도, 성우의 실감나는 연기는 마치 전투 장면이 눈에 절로 펼쳐진 것과 같은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덕분에 어떤 게임보다도 각 장면에 담긴 감동 혹은 전율이 더 뇌리에 남는 편입니다.
▲ 전투 CG는 적지만, 성우 연기가 이를 대신 채워준다 (사진출처: 필자 직접 촬영)
▲ 실감나는 연기 덕분에 전혀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진출처: 필자 직접 촬영)
인력 교체와 함께, 힘 빠져버린 ‘열혈’
‘아야카시비토’, ‘불릿 버틀러’, ‘에보리미트’를 거치면서 큰 성공을 거둔 프로펠러지만, 이후의 행보는 아쉬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전작의 호불호 갈리는 CG를 보완하기 위해 차기작 ‘도쿄 바벨’부터는 ‘슈타인즈 게이트’의 원화가 이시이 히사오를 새 멤버로 기용하였지만, 정작 시나리오에서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시장에서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맙니다.
그 다음 작품인 '소원의 조각과 백은의 계약자'에서는 기존 멤버를 모두 교체하고, 유명한 라이트노벨 작가 야마시타 타카시와와 대중적인 취향의 원화가 마나코를 팀에 영입하는 혁신을 시도했습니다. 당시 개발에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도 알아주는 유명 성우진이 참여해, 게이머들 관심을 모으기도 했죠.
▲ 차기작 '도쿄 바벨'과... (사진출처: 필자 직접 촬영)
▲ '소원의 조각과 백은의 계약자'는 큰 성과를 거두는데 실패한다
(사진출처: 필자 직접 촬영)
멤버 구성만 봐서는 역대 최고 규모의 프로젝트였으나, 안타깝게도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하며 프로펠러 최대의 흑역사로 남게 됩니다. 그래도 그나마 이 두 작품은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창격의 예거’는 많은 혹평을 받으며 처참하게 망했죠.
프로펠러의 문제는 작품이 나올 때마다 지적된 시나리오라고 볼 수 있는데요. 결과적으로 전성기를 이끌었던 히가시데 유이치로를 대체할만한 인원을 구하지 못하면서, 프로펠러가 핵심으로 내걸었던 ‘열혈’의 힘이 많이 빠지게 된 셈이죠.
작품을 연속으로 실패한 영향일까요? 현재 프로펠러는 2014년을 끝으로 공식 웹사이트조차 제대로 갱신하지 않은 채로 정지된 상태입니다. 과연 이 어려움을 딛고, 프로펠러가 다시 한 번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 그들의 행보를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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