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가 'VR 게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은 가상현실 세계를 자유롭게 탐험하며 만지고, 던지고, 부수고,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일을 실감 나게 즐기는 자신의 모습이다.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VR 게임을 흔히 ‘체감형 게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체감형의 기준을 충족하는 VR 게임은 얼마 없다. 대부분 정해진 물체만 만질 수 있고, 부술 수 있는 등 제한된 규칙 안에서 행동해야 한다. 이런 문제는 특히 RPG나 액션 게임에서 크게 느껴진다. 예를 들면 머그잔을 잡을 수 있고 던질 수도 있는데, 정작 때리거나 부서지진 않는 식이다. 결과적으로 게이머는 “이건 당연히 돼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괴리감에 답답함과 갈증을 느끼고, 심하면 VR 플랫폼 자체를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지난 11일, 그런 답답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진정한 체감형 VR 게임이 하나 출시됐다. 그간 VR 게임이 보여준 한계에 실망하고 떠났던 게이머라면 당장 돌아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VR 물리 액션게임 ‘본웍스’에서는 ‘상상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종합선물세트, VR 샀다면 가장 먼저 이 게임을 하자
게임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종합선물세트’다. 모험, 퍼즐, FPS, 액션 등 VR로 즐겨볼 수 있는 모든 체감형 콘텐츠를 한자리에 모아놓은 것이다.
게임 초반, 플레이어는 박물관 같은 시설에 들어가게 되는데, 물건 던지고 놀기, 장애물 돌파, 사격장 등 다양한 형태로 꾸며진 VR 어트랙션들이 플레이어를 반겨준다. 어트랙션마다 배치되어 있는 빨간 버튼을 누르면 간단한 작동원리와 즐기는 법을 안내해준다. 너무 노골적으로 힌트가 제공되니 더 재미있게 즐기고 싶다면 안내를 듣지 않고 무작정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
사격장에서는 돌격소총, 권총 등 총기와 수리검, 도끼, 나이프, 투 핸드 소드 등 날붙이를 사용해볼 수 있다. 총기는 탄알집 결합, 탄알 일발 장전 등 실제 사용법을 그대로 따른다. 날붙이도 날 부분을 사용하면 베거나 박히고, 손잡이 부분을 사용하면 타격이 된다. 특히 집어 던졌을 때 운 좋게 날 부분이 해당돼 경쾌하게 박힐 때 손맛이 상당하다. 재미있게도 이 무기들은 등에 매거나 주머니에 넣는 동작을 취하면 인벤토리에 수납된다. 반대로 역동작을 취하면 손 쉽게 꺼낼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다면 장애물을 돌파해야 하는 구간이다. 마치 2000년도 인기 예능 프로그램 ‘출발 드림팀’ 같은 구조로 진행을 가로막는 다양한 장애물을 넘어 골인 지점으로 향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상당히 깜찍하다. 중간마다 경로가 끊어져 있는데, 그걸 잇기 위해 블록을 밀고 당겨서 퍼즐을 풀고 벽에 매달려 아슬아슬한 줄타기 액션을 펼쳐야 한다.
물리엔진 데모게임인 줄 알았는데, 액션게임이었네?
앞서 진행한 박물관 스테이지를 진행할 때까지만 해도 이 게임을 단순한 VR 물리엔진을 시연하기 위한 데모게임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물체를 집어 던지는 과정, 충돌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 총을 쏠 때 반동은 어떤지, 장애물은 어떤 식인지, 심지어 VR 기술의 발전과 역사를 설명하기까지, VR에 대해 알아가고, 여러가지 체험해보는 듯한 전개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게임 중반, 박물관 스테이지가 끝나고 넘어간 곳이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쓰러져 있는 사람들, 나무판자로 막아둔 격리구역,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는 것을 느끼지만 리뷰를 위해서 꾹 참고 진행했다. 마침내 살아있는 사람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니 갑자기 확 달라 드는 것이 아닌가?
사실 본웍스는 VR 물리엔진 데모게임이 아니라 액션게임이었던 것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쇠 지렛대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프라이프 느낌이다. 각종 장애물과 퍼즐, 그리고 괴물들이 플레이어의 앞을 가로막는데, 이때까지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체험했던 VR 기술로 난관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여기서 만약 앞서 박물관 스테이지에서 펼쳐진 훈련과정을 소홀이 이행했다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때 했던 모든 것이 본격적인 게임에 앞서 진행을 돕기 위한 튜토리얼이었던 것이다. 더 어려워진 퍼즐과 장애물이 등장하는데, 거기에 곳곳에서 문을 벌컥 열고 등장하는 괴물들이 더해져 긴장감이 상당하다. 괴물은 생김새가 대략적이라 무섭지는 않으나, 아무래도 VR이다 보니 덤벼오는 모습이 실감나서 뒷걸음치게 된다.
괴물을 쓰러뜨릴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주먹으로 때리거나, 잡아서 바닥에 패대기 치거나, 주변에 널려 있는 물건을 던지거나 휘둘러도 좋다. 총을 사용할 시 머리를 맞추면 한 방이나, 초반에는 총이 없기 때문에 긴장감 넘치는 근접전투를 이어나가야 한다.
체감형 게임의 기준, VR 게임 교과서 ‘본웍스’
본웍스는 일반적으로 게이머가 VR에 기대하는 것, 아니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이 가능했다. 충실한 물리 엔진을 기반으로 등장하는 모든 사물에 상호 작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일단 만지거나 잡거나 부수는 것은 기본으로, 힘에 따라 부숴지지 않거나, 조금만 부숴지거나, 완전히 부숴지는 등 행동에 대한 결과도 다양하다.
특히 쇠 지렛대를 이용한 액션이 일품이다. 보통 플레이어는 게임 극초반에 주어지는 쇠 지렛대를 통해 “과연 이 게임은 어디까지 구현됐는가”에 대해 탐구하게 되는데, 상상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 휘둘러서 물체를 날려버리거나 부술 수 있는 것은 물론, 날카로운 끝 부분으로 관통해 끌고 다닐 수도 있다. 만약 박혔을 경우 흔들어서 빼내기도 해야 한다.
가장 놀랐던 것은 쇠 지렛대 상단 휘어진 부분으로 무언가를 걸어 봤을 때다. 멀리서 문고리를 걸어 당겨보기도 했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할 때 손 대신 쇠 지렛대를 이용해 매달리기도 했다. “이건 안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시도한 행동이 전부 가능해 크게 당황했을 정도다.
사실 이런 상호작용은 현실을 생각하면 되는 것이 당연한 부분들이다. 하지만 기존 체감형 VR 게임은 이런 ‘당연함’을 보여주지 못해왔다. 기껏해야 정해진 몇 가지 물체를 잡고, 휘두르고, 부술 수 있는 정도다. 반면 본웍스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플레이어의 장난감이다. 게임을 진행하지 않고 주변 물체만 가지고 놀아도 재미있을 정도로 많은 것이 가능하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본웍스는 밸브가 개발한 인덱스 컨트롤러를 기준으로 만들어 졌다. 바이브나 오큘러스로도 즐길 수 있지만, 컨트롤러가 제대로 호환되지 않아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구체적으로는 표현하자면 버튼 위치가 인체공학적이지 않아 손 아귀가 매우 아프다. 또 스토리가 다소 밋밋하다. 큰 의미 없이 퍼즐 풀고 괴물 패면서 시설을 탈출하는 내용인데, 상호작용 기본기가 탄탄해서 즐길 거리가 많기 때문에 크게 부각되지 않을 뿐이다.
종합하자면 본웍스는 앞으로 출시될 체감형 VR 게임의 기준이 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가상현실이 현실에서 체험하기 힘든 것들을 즐기는데 의의가 있다고 해도, 현실에서도 가능한 ‘당연함’을 도외시 여긴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본웍스가 보여준 ‘당연함’에 좀 더 흥미로운 스토리를 씌운다면 재미있는 게임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데드스페이스나 하프라이프 같은 게임이 기대된다. 아무튼, 앞으로 나올 VR 게임은 꼭 본웍스를 참고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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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 안민균 기자입니다. VR 및 하드웨어 관련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열린 자세로 소통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잘부탁드립니다.ahnmg@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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