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기대작 반열에 이름을 올린 이블 웨스트. 당초 9월 발매 예정이었으나 한 차례 출시 연기를 감행한 끝에 지난 11월 22일 정식 출시됐다. 이 게임이 기대를 받은 이유는 화려한 하드보일드 액션이 돋보이는 트레일러나, 쉐도우 워리어 리부트를 성공적으로 개발한 개발사의 전적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뱀파이어를 사냥하는 미 서부의 카우보이!' 라는 로망 가득한 세계관이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지가 관심을 모았다.
다만, 이블 웨스트에 대한 반응은 전반적으로 그리 좋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딱히 부정적이지도 않다. 정리하자면 기대 이하 평작 수준의 반응이다. 정가 5만 3,800원이라는 풀프라이스에 근접한 게임인데다 한국어까지 지원하지만, 스팀 평가는 77% '대체로 긍정적'에 머물러 있으며 메타크리틱에서도 70점의 평범한 점수를 기록 중이다. 이는 게임에서 뱀파이어와 카우보이라는 매력적 소재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화려한 눈요기 속, 빈약한 액션 뼈대
게임을 하나하나 분석해 보자. 일단 가장 최대 장점으로 내세우는 액션이다. 일단 이블 웨스트의 장르는 RPG나 어드벤처가 아닌 '액션'이다. 데빌 메이 크라이나 베요네타처럼 길을 가다가 적을 만나 싸우고, 조금씩 강해지다가 보스를 해치우는 그런 게임 말이다. 카우보이답게 피스톨과 라이플을 포함해 다양한 총기를 다루며, 그 밖에도 어마무시하게 생긴 전격 글러브를 통해 다양한 근접 공격을 할 수 있다. 상대에 따라 이를 조합해 가며 화력을 뽐내는 것이 기본 골자다.
이 게임의 액션적 비주얼이 어떤지는 백 마디 말보다는 위 영상을 보는 것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뭔가가 빵빵 터지고, 날아가고, 다양한 무기로 적을 학살한다. 분명히 비주얼적으로는 AAA급, 혹은 그에 근접한 정도의 맛을 내는 것은 확실하다. 이러한 매력은 게임을 진행하면 할 수록 더욱 커진다. 스킬을 잠금 해제하고, 다양한 무기를 구매할수록 영상에서처럼 화려한 액션을 뽐낼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치명적 약점이 하나 있다. 저런 화려하고 경쾌한 액션을 맛보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꽤 길고 지루하다는 것이다. 난이도 보통으로 플레이 한 기자는, 초반 두 시간 이상을 약해빠진 주인공으로 열심히 굴러가며 싸워야 했다. 몇 번씩 쏴도 적의 피가 깎이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운 타격감의 라이플과 피스톨, 쓰기도 불편하고 몰이 사냥도 어려운 라이트닝 건틀렛, 사용 조건이 까다로운 일부 스킬과 샷건 정도만으로 몰려오는 적을 해치우려니 답답함이 아주 크게 느껴졌다. 리뷰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아니었다면, 스팀 환불 기준인 플레이 2시간 이내에 환불했을 가능성이 100%다.
물론 저 구간을 지나고 나면 새총 같던 리볼버에 라이트닝 볼트 같은 범위 공격 효과를 부여하거나, 적을 태워버리는 화염 방사기나 갈아버리는 샷건을 냅다 갈기거나, 전기전기 열매를 먹은 갓 에넬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 적 사이를 마구 옮겨다니는 등 위력적인 기술들을 여럿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 일부는 연계가 되기에, 이러한 기술들을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게임의 본격적인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지루한 초중반 구간을 뛰어넘은 용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성장하더라도 쾌감이 딱히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하겠다.
게임을 플레이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차차 레벨 업을 하고 돈을 모으게 되는데, 이 과정 역시 별다른 성취감이 없다. 그저 미리 짜여진 레일을 따라가다 보면 이쯤에서 뭔가를 준다는 느낌이 강하다. 길은 철저한 외길이고, 가다 보면 돈이나 에너지 포인트 등이 떡하니 놓여 있다. 아주 약간의 퍼즐이 있긴 하지만 초반 30분을 넘어가면 비슷한 액션의 반복이며, 넓은 광장이 나오면 적과의 전투가 시작된다. 전투를 끝내면 가끔 레벨 업 표시가 뜨고, 일정 포인트마다 새 무기를 구매하는 등 쉬어가는 맵이 나온다. 이것이 게임 내내 반복된다. 내가 플레이하나, 다른 친구가 플레이하나 거의 변화가 없다. 어느 테크를 끝까지 탈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 외엔 자유도나 갈림길, 선택지, 숨김 요소가 거의 없기에, 얼핏 워킹 시뮬레이터 느낌까지 들 정도다.
반복 부분을 조금 더 짚자면, 게임 내 99%의 전투는 넓은 광장에서 진행되며 2~3페이즈 정도 적이 쏟아져 나오면 끝난다. 매력적으로 만들어 놓은 배경이나 통로, 절벽 등의 장소에서는 절대 전투가 일어나지 않고, 운동장 같은 공간이 나오면 그제서야 전투가 시작된다. 참고로 저 운동장 같은 공간에 들어서지 않으면 전투가 시작되지 않기에, 그 안에 미리 서 있는 적을 저격으로 먼저 처치한다던가 시선을 끌어 미리 유도하는 등의 작전도 통하지 않는다. 링 안에 들어가 '레디, 액션!'을 외쳐야만 전투가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고전적이기 보다는 시대에 뒤쳐진 전투 방식에 가깝다. 이러한 경로 구성은 전반적인 게임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부작용까지 낳는다.
어찌저찌 초반을 넘겨 새 무기와 스킬을 얻더라도, 그 대부분이 겉보기에 비해 은근히 약한 데다 쾌감도 덜하다. 적이 강한 건지 무기나 스킬이 약한 건지는 몰라도, 중급 졸개 하나를 해치우는 데 걸리는 시간과 품이 꽤나 크게 든다. 화려한 액션 콤보를 노린 것 같은 느낌이 없진 않지만, 대부분의 스테이지에서 적이 떼거지로 나오는 데다 보스 등에겐 콤보가 통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 이러한 의도는 빛이 바랜다. 방금 전까지 어렵게 처치한 적을 새 스킬과 무기로 쉽게 처리하거나 예전엔 할 수 없던 대규모 무리를 처치하는 등의 쾌감적 포상이 있어야 하는데, 적당히 강해질 때면 적당히 더 강한 졸개들이 나오다 보니 이런 쾌감을 느끼기가 영 힘들다.
사실 이러한 부분은 액션게임으로서 기본 뼈대에 해당하는 레벨 디자인 측면 문제다. 구조만 살펴보면 90년대 중후반 흔히 나오던 3D 아케이드 액션게임과 같은 일자형 구조를 띄고 있음에도, 완성도는 그보다 더 낮다. 적 유닛의 종류나 패턴도 적은데 머릿수로만 때우는 장면을 보면 더욱 이러한 비판에 힘이 실린다. 핵심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다 보니 기껏 만든 스타일리쉬한 액션을 위한 노력(번쩍대는 이펙트, 다양한 처형 액션, 버튼 하나만으로도 장애물을 넘나드는 이동 모션 등)들도 겉멋처럼 느껴진다. 사실 비주얼적 매력마저도 게임 플레이 한 시간이 넘어가면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어 서서히 지루해진다.
뱀파이어 잡는 카우보이, 콘셉트는 잘 살렸나?
앞서 언급했듯, 이블 웨스트는 '뱀파이어 잡는 서부의 카우보이'라는 매력적인 콘셉트를 내세웠다. 다만, 실제 게임 내에서는 이러한 장면이 딱히 매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일단 뱀파이어다. 사실 별다른 사전 지식 없이 이블 웨스트 게임 플레이를 보면, 바이오하자드 서부 버전이라고 오해할 법하다. 사람처럼 생긴 으스스한 뱀파이어가 없는 것은 아닌데, 주로 싸우는 것은 뱀파이어가 수족처럼 부리는 괴생명체들이다. 이들은 좀비나 몬스터 이상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요즘 들어 뱀파이어와 괴물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나도 괴물에 가깝다.
난해한 스토리와 스토리텔링도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세계관 자체는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쓴 것 같고, 이야기도 뭔가 짜임새 있게 전개되고 있다는 느낌은 든다. 그러나 이를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매우 불친절하다.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들이나 앨런 웨이크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의도된 불친절'이 결코 아니다. 그저 서사가 부족할 뿐이다.
게임을 시작하면 처음부터 뭔가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도중인 듯 한데, 이를 따라가며 누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파악하기란 영 쉽지 않다. 제시가 주인공인지 에드가가 주인공인지도 잘 모르겠고, 도중에 등장하는 뱀파이어 캐릭터는 어떤 위치이며 소녀 뱀파이어는 무슨 존재인지조차 설명 없이 짐작에 의지해야 한다. 오죽하면 내가 놓친 원작이나 배경 스토리 설명 같은게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스토리가 흥미를 돋구지 못하다 보니, 나중엔 컷신 스킵 버튼의 존재가 고마워질 정도였다.
액션 자체도 카우보이 하면 기대하는 액션과는 살짝 거리가 있다. 각종 총기 외에도 라이트닝 건틀렛을 이용한 근접전투 비중이 굉장히 높은데, 이블 웨스트만의 고유한 색깔이라고 하면 나름 괜찮게 보일 지 모르겠으나 말을 타고 다니는 서부개척시대임을 감안하면 이러한 최첨단 무기들의 존재가 살짝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새로운 콘셉트에 대한 선호도는 호불호의 영역이겠지만, 적어도 기자는 불호를 뛰어넘을 '쩐다!' 포인트를 찾지 못했다.
이러한 새로운 콘셉트의 카우보이가 펼치는 액션이 영 시원시원하지 못하다는 것도 세계관에 대한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소 중 하나다. 초반에는 몬스터 헌터 시리즈를 보는 듯 굴러다니며 적의 공격을 피하기 바쁜데다 광역 공격이나 무적기도 적은 편이라, 적이 무더기로 나오면 별로 즐겁지 않은 치고 빠지기 식 전투가 이어진다. 심지어 조작에 사용되는 키도 상당히 많고 조작법도 키보드+마우스 기준으로 결코 경쾌하거나 직관적이지 않아 답답함을 배가시킨다.
실제로 앞서 예로 든 데빌 메이 크라이나 베요네타 시리즈의 경우 조작을 최대한 단순화하고 적을 쓰러뜨릴 때 쾌감을 극대화하면서, 스타일리쉬함과 다양한 기믹이나 환경, 패턴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반면 이블 웨스트는 조작은 상당히 어렵고, 이펙트에 비해 쾌감은 적은 편인데다, 기믹이나 환경, 패턴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심지어 맨 위에 서술했듯 초반 2시간 가량은 주인공의 능력이 너무 약해 답답함까지 느껴진다.
결론적으로, 이블 웨스트는 새로운 IP로서 게이머들을 매혹시키는 데 실패했다. 중반 이후 액션은 그럭저럭 합격점이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는데 느껴지는 답답함이 커다란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며, 레벨 디자인이나 스토리 몰입도 측면에서는 낙제점에 가깝다. 12시간 정도 게임을 플레이하고 엔딩을 보고 나면, 반복 플레이나 협동 모드로 이를 다시 경험하고픈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게임 자체가 아주 망작은 아니고 액션 위주로 가볍게 즐길 정도는 되기에 후속작이 나올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에선 별로 기대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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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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