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고 번잡한 현대 사회에서, '힐링'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힐링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아마 많은 분들이 여행을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필자도 여행을 참 좋아하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여행을 떠나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에 캠핑이 트렌드가 되면서 불멍(캠핑장이나 벽난로의 모닥불을 피워놓고 멍 때리는 걸 의미), 물멍(물을 보며 멍 때리는 걸 의미) 등 ‘~멍’이라는 단어들까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업계에서도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니즈를 반영하여 여러 힐링 콘텐츠들이 출시되기 시작했고, 작년에는 수영장에 떠다니는 고무 오리 인형을 그저 구경하기만 할 뿐인 ‘플래시드 플라스틱 덕 시뮬레이터(Placid Plastic Duck Simulator)’가 나오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런 콘텐츠들이 각광받는 이유는, 쉴 새 없이 밀려드는 데이터의 세상에서 벗어나 잠시 마음의 여유를 찾는 휴식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가상세계에서 힐링할 수 있는 여러 독특한 콘텐츠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1. 돌이 되어 보는 세상, 락 라이프: 더 락 시뮬레이터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를 보신 분들이라면 돌이 나오는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고요함 그 자체인 돌이 된다는 것에 대해 꽤 깊게 생각해 봤는데, '락 라이프: 더 락 시뮬레이터(Rock Life: The Rock Simulator, 이하 락 라이프)'에서는 이것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은 이름 그대로 돌이 되어 돌의 생활을 해보는 것이 전부입니다. 돌이 점프한다거나 걸어다니거나 굴러다니며 적을 해치우고 하는 액션은 일체 없습니다. 그저 각종 땅 위에 놓여 있는 돌이 될 뿐입니다. 게임에 처음 접속하면 바람에 흩날리는 풀이 가득한 정원과 그 앞에 놓인 돌과 마주하게 됩니다. 근처에서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고개를 돌려서 주변을 둘러봐도 풀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락 라이프에서 플레이어는 그저 평범한 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앞에 있는 돌을 보거나 풍경을 감상하는 것 외에는 말이죠. 옵션에서는 돌 모양을 바꾸거나 총 4가지인 풍경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풍경은 처음의 풀이 가득한 정원, 일본식 정원, 계곡, 우주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선택할 수 있는 돌 모양 중에는 앞서 말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앤 원스에 등장했던 눈이 달려있던 돌도 존재합니다.
필자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소는 우주였습니다. 처음엔 그저 돌을 보는 게임이니 금세 질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우주에서 멀리 보이는 지구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앉아있자니 머릿속에 가득하던 잡념을 모두 지구에 두고 온 듯한 기분이 느껴졌습니다. 몰입형 VR게임의 특성상 우주에서 돌처럼 멍하니 앉아 있다가 살짝 고개를 돌려 봐도 여전히 그 장소이기 때문에, 눕거나 주변을 돌아보면서 꽤 오랜 시간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락 라이프의 도전과제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20시간, 100시간 플레이 과제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임에서 과연 이 시간을 채우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놀랍게도 100시간 도전과제를 달성한 사람이 전체의 2.6%나 됩니다. 락라이프는 현재 PC에서 멀티플레이 베타가 가능해 다른 유저들과 함께 돌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PC에서 접속하면 풍경 방향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바람에 흔들거리는 풀이 있는 풍경을 제외하고는 모두 멈춰진 이미지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락 라이프는 스팀에서 무료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2. 아무도 없는 자연 속으로 혼자 떠나요, 와카마리나 밸리 뉴질랜드
3D 아티스트인 매트 뉴웰이 제작한 '와카마리나 밸리 뉴질랜드(Wakamarina Valley, New Zealand, 이하 와카마리나 밸리)'는 실제 뉴질랜드의 ‘퀸 샬롯 트랙’을 촬영해 제작되었습니다. 처음 접속하면 화면이 뿌옇다가 점차 선명해지는데, 살짝 어두운 숲 속의 흔들거리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보실 수 있습니다. 3D 아티스트가 제작한 콘텐츠답게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뭇잎이며 풀들이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완전 저물지는 않으면서도 뉘엿한 햇빛 묘사가 매우 훌륭했습니다.
와카마리나 밸리는 앞서 소개한 락 라이프처럼 가만히 있는 게 아닙니다. 원하는 대로 이동해 산을 오르고, 강이나 먼 산을 구경하고, 테이블 위에 놓인 카메라를 들고 풍경을 촬영하는 등 소소한 행동들이 가능합니다. 필자는 길 닿는 대로 자연 풍경을 구경하면서 촬영을 하거나, 나무 밑에 앉아 가지 사이사이로 비춰지는 햇빛을 구경하고, 흐르는 강물 앞에 앉아서 '물멍'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나무가 우거진 곳에 있으면 정말 자연 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와카마리나 밸리는 옵션에서 화질 및 주사율 선택폭이 많기 때문에, 높은 사향으로 올리면 더욱 더 부드럽고 선명한 그래픽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자연의 소리가 ASMR과 함께 스포티파이의 뉴에이지 음악까지 자동 재생되도록 설정되어 있어, 조용하고 감미롭게 자연을 감상하기 좋습니다. 이 스포티파이는 개인적으로 플레이 리스트 설정이 가능하여,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와카마리나 밸리는 매트 뉴웰이 만든 콘텐츠 중 유일한 유료 콘텐츠로, 스팀에서 7,000원에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호주의 캐슬락 비치(Castle Rock Beach, West Australia), 일본의 후시미 이나리 신사(Explore Fushimi Inari), 아이슬란드의 남부 해안(Mýrdalssandur, Iceland) 등은 무료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3. 혼자 하는 여행이 싫다면? 겟 로스트 인 네이처 위드 루크
마지막으로 미국 동부의 해안에 있는 협곡, 해변, 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루크와 함께 자연 속에서 길을 잃다(Get Lost In Nature With Luke)’를 소개합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게임은 루크와 함께 자연 속을 탐방할 수 있는 콘텐츠입니다. 처음 접속하면 동굴 사진 배경 위로 환영인사와 함께 떠있는 원들을 볼 수 있는데, 이 원을 누르면 협곡, 해변, 강으로 이동할 수 있는 로비 역할을 하는 장소로 이동합니다.
이 로비에서 360도로 떠있는 작은 사진이 담겨있는 원들을 선택해 그 사진 속의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데요, 원이 워낙 작기 때문에 해당 사진이 무슨 장소인지 알아보기는 조금 힘듭니다. 이동된 각 장소에서도 허공에 떠있는 작은 원들이 나오고, 이 원을 누르면 또다시 해당 원이 있는 위치로 이동하는 식입니다. 이 원들 중 동영상 아이콘이 붙어 있는 원을 선택하게 되면 해당 장소에 대한 루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은 실제 장소를 3D 카메라로 영상 촬영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보지 못한 거대한 자연 풍경을 감상하는 데 최적화돼 있습니다. 여기에 잘 찾아보면 실제 관람 중인 사람들을 발견하는 묘미도 있습니다. 다만 각 부분마다 짧게 촬영돼 있고, 정/역방향 순으로 무한 반복되게 설정되어 있어 오래 보고 있다 보면 조금 거슬릴 수도 있습니다. 역시 스팀에서 무료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가상세계에서 힐링을 할 수 있는 3종류의 게임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면 초반 배경 설명에서 슬럼가 사람들이 가상세계로 휴가를 떠나는 장면이 있는데요, 이런 콘텐츠들을 보고 있자면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나온 미래가 허황된 사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슬럼가뿐 아니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밝은 미래였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소개한 것 외에도 VR 힐링 콘텐츠는 매우 많습니다. VR 챗에도 많은 테마의 장소들이 있으며, 별도의 콘텐츠를 설치하지 않아도 VR 내에서 유튜브 360 영상으로 다양한 자연 풍경들과 우주까지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단순 영상의 경우 필연적으로 멀미를 야기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멀미 걱정이 덜한 실제 체험형 게임 위주로 플레이하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오늘도 지치고 힘드셨다면, 별다른 여행 준비 없이 가상세계에서 쉼의 시간을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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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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