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잇 최용석] 최근 엔비디아가 2세대 맥스웰(Maxwell) 아키텍처를 적용한 ‘지포스 900’시리즈 GTX 980과 GTX 970을 출시한 이후 그래픽카드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지포스 900시리즈가 당초 예상보다 우수한 성능과 뛰어난 전성비를 제공하는 것부터 이슈였지만, 그보다도 낮게 책정된 가격은 시장에 더 파장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900시리즈 중 상위 라인업으로 등장한 지포스 GTX 980과 GTX 970은 기존 세대에서 동일한 위치에 있던 GTX 780Ti 및 780에 비해 보다 나은 성능을 제공하면서도 가격은 오히려 저렴하게 출시됐다. 게다가 소비전력 역시 30% 이상 대폭 줄어들어 ‘가성비’는 물론 ‘전성비’까지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했다.
이는 기존 고급형 그래픽카드 시장에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보통 차세대 라인업의 고성능 제품이 출시되면 비싼 가격에 출시됨으로써 시간이 지난 후 안정화되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는데, 지포스 900시리즈가 이를 깨버린 것이다.
▲ 엔비디아 지포스 GTX 980/970의 등장은 단순히 성능 경쟁 뿐만이 아니라 본격적인 '가격 경쟁'의 서막을 예고하고 있다.(사진=엔비디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경쟁사 AMD는 기존 상위 모델인 라데온 R9 290X와 R9 290 등의 가격을 인하해 맞불을 놓기 시작했다. 외신에 따르면 주요 제조사의 이벤트 형식으로 진행하는 일시적인 가격 인하라지만, 업계에선 AMD가 직접 손을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60만원대에 판매되던 R9 290X는 40만원대로, 40만원대였던 R9 290은 30만원대 까지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성비 면에서 엔비디아의 지포스 GTX 980/970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경쟁사만이 아니다. 미처 대비를 못한 기존 지포스 700시리즈의 고급 제품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신제품으로 나온 지포스 GTX 980/970에 비해 가성비는 물론 전성비까지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순식간에 가격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포스 GTX 980/970 시리즈가 정식 출시된 이후 기존 지포스 GTX 780Ti/780/770/760 제품들은 판매량이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 구매 뿐만 아니라 중고시장에서도 가격이 폭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위 말하는 ‘팀킬(Team Kill)’을 당한 셈이다.
▲ 가격을 무기로 시장을 주도한 것은 AMD의 '200 시리즈'가 먼저였다.
사실 이러한 형태의 ‘가격 전쟁’의 시작은 AMD가 먼저였다. 매번 엔비디아가 더욱 성능이 향상된 신형 그래픽카드를 선보이면 기존 라인업의 가격들을 대폭 인하해버려 성능 경쟁이 아닌 ‘가성비’ 경쟁으로 분위기를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그 때 마다 엔비디아 GPU 탑재 그래픽카드들은 졸지에 경쟁사의 상위 모델과 같은 가격대에서 경쟁하게 되면서 경쟁력을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이에 엔비디아도 역시 가격을 낮추거나, 아예 차기 제품을 일찍 선보여 대체해 버리는 식으로 대처해 왔다.
가장 두드러졌던 것은 2013년 가을 경 라데온 200시리즈가 등장한 때다. 엔비디아가 다소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면서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었지만, AMD의 라데온 200 시리즈는 경쟁사의 동급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출시돼 ‘우수한 가성비’로 그래픽카드 시장을 휘어잡았다.
즉 엔비디아가 ‘팀킬’을 감수하면서까지 신형 지포스 900시리즈를 기존 대비 파격적인 가격에 선보인 것은 그동안 AMD에 당했던 것을 그대로 돌려주겠다는 계산도 깔린 셈이다. 게다가 엔비디아는 좀 더 하위 시장을 목표로 하는 ‘GTX 960’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성비 싸움’에 쐐기를 박을 기세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런 그래픽카드 제조사들 사이의 ‘가격 경쟁’이 반가울 수 밖에 없다. 경쟁이 심화될수록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고성능 제품을 장만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이 너무 일방적으로 몰리는 것도 곤란하다. 메모리 모듈 시장에서 벌어진 ‘치킨 게임’으로 인해 해외 경쟁사들이 죄다 나가 떨어지자 제품 가격이 되레 상승해버린 사례가 이미 존재한다.
AMD와 엔비디아는 지금까지 그래픽카드 시장을 놓고 주로 ‘성능’을 위시한 자존심 대결만 펼쳐왔었다. 이제부터 벌어지는 대결은 가격 경쟁까지 더해 더욱 치열한 ‘치킨 게임’이 될 공산이 높아 보인다.
최용석 기자 rpch@i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