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 같은 사무실 안에서 한 가닥 답답함을 느꼈을까. 처음에 그가 먼저 제안했다.
“답답한 사무실보다 탁 트인 곳에서 인터뷰하는 게 어떨까요? 넥타이도 풀고, 차도 한잔 하면서, 그래야 말이 잘 나올 것 같아요”
이관우 이사의 깜짝 제안에 약간 머쓱했지만,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았다. 무작정 그의 차를 얻어 타고 청와대 옆 삼청동 산책길에 도착했다. 늦가을이라 그런지, 삼청동 길은 과거의 여유와 현재의 감각을 아우르며 제법 고즈넉한 향기를 내뿜는다. 방금 전만 해도 고층빌딩이 즐비한 서울의 모습이 불과 5분 만에 이렇게 달라지다니, 도심의 `변신`이 새삼 놀랍다. 이관우 이사는 현재 액토즈소프트의 사업부분을 총괄하고 있다. 게임 퍼블리싱부터 마케팅, 홍보, 해외업무까지 액토즈의 살림살이는 대부분 그의 손을 거친다. 그와 함께 아담한 커피숍 벤치에 앉았다. 어디서부터 이야기의 매듭을 풀어볼까. 최근 액토즈소프트의 근황부터 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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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만해도 액토즈소프트 관련기사를 자주 썼는데, 요즘은 뜸했습니다
“그동안 해외시장 진출에 주력했습니다. 라테일은 국내서비스 후 일본, 중국 , 미국 시장까지 진출했죠. 탁구게임 ‘엑스업’도 중국에서 서비스 중입니다. 이제 슬슬 한국에도 액토즈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릴 참입니다”
그렇다면 액토즈의 신작 소식이 있겠군요.
"2009년에 3개의 신작을 국내 서비스 할 예정입니다. 일본개발사와 유명 게임 IP를 온라인게임으로 공동개발하고 있습니다. 국내 투자와 퍼블리싱도 가열차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마 2009년은 귀찮을 정도로 액토즈에 관한 뉴스를 많이 쓰게 될 겁니다"
▲ `변신`은 글로벌 게임의 필수조건
오후 3시만 되도 해가 뉘엿뉘엿하다. 울긋불긋한 은행나무 낙엽 사이로 붉그스레 충혈 된 오후 햇빛이 세어나온다. 그러고 보니 액토즈소프트도 올해로 창립 12주년을 맞는다. 연륜으로 따지면 업계 큰형님뻘이다. 액토즈소프트는 ‘미르의 전설’, ‘A3` 등 다양한 게임을 서비스하며 초창기 퍼블리셔의 틀을 잡았다. 지금도 좋은 게임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오래된 질그릇처럼, 완성된 틀에 참신한 게임을 부어 모양 좋은 글로벌게임을 만드는 게 액토즈소프트의 목표다.
요즘 신작들이 포털들로 몰리는 경향이 있는데, 퍼블리셔로써 액토즈소프트의 차별화 전략은 무엇인가요?
“간단합니다. 첫째, ‘선택은 치밀하되, 한번 선택하면 끝까지 밀어 주겠다’는 신뢰의 전략. 둘째, ‘한국에만 그치지 않고 해외에 진출 시키겠다는’는 글로벌 전략입니다. 액토즈는 1세대 개발사로써 한국 개발사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또, `미르의 전설`, `A3` 등 다양한 게임을 해외 진출시켜 성공시켰습니다. 작년에도 약 60개의 게임을 검토했고 그 중에 계약까지 참여한 게임이 10개 정도됩니다. 신중하게 준비한 만큼 이제 준비된 게임들을 열어 보일 차례입니다.”
해외사업에 탁월한 성과를 보이는데, 글로벌 전략의 비결은?
“액토즈가 생각하는 글로벌 전략의 핵심은 ‘변신’입니다. 여기저기 문어발식으로 해외진출 한다고 글로벌은 아닙니다. 해외 마케팅 이전에 게임부터 해외시장에 맞게 변신해야 합니다. 한국게임이 중국에 진출하려면 완벽히 중국게임이 되어야 합니다. 중국 옷만 걸쳤다고 중국유저가 좋아하진 않아요. 아예 그 나라게임을 만들어야 합니다.”
해외게임을 한국에 서비스 할 계획은 있나요?
“중국게임의 한국서비스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단, 기존에 한국에서 유행하는 장르가 아닌, 다른 종류의 게임을 가져올 계획입니다. 물론 완벽하게 한국식으로 변신시켜서 서비스 할 겁니다”
제법 쌀쌀한 날씨에 미리 시켜놓은 차가 금방 식었다. 미지근한 차를 음미하다보니 문득 액토즈소프트가 개발한 탁구게임 ‘엑스업’이 생각났다. 한때 국내 최초 탁구게임이란 타이틀로 한국서 기대를 모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게임에 대한 관심이 식은 차 마냥 미지근해 졌다.
엑스업 국내서비스는 왜 늦어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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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도 변신과 관련있습니다. 사실, 올해 베이징 올림픽 특수로 ‘엑스업’을 중국에서 먼저 서비스 했습니다. 그러나 중국버전을 한국에서 그대로 서비스할 수는 없었습니다. 한국시장은 중국과 달리 콘텐츠의 양과 질을 중시하죠. 콘텐츠를 보강해서 내놓지 않으면 바로 외면당해 버립니다. 그래서 한국에 서비스될 엑스업은 중국버전보다 훨씬 많은 콘텐츠를 내놓을 예정입니다. 캐릭터도 추가되고, 다양한 모드도 넣을 겁니다. |
완벽한 한국게임이 되기 위해 서비스가 늦어진 것이죠. 아마 내년 초에는 한국유저의 취향에 맞게 완벽히 변신한 ‘엑스업’을 볼 수 있을 겁니다”
▲ 중국게임의 경쟁력은 개방적 운영마인드
한때, 이관우 이사는 ‘세가차이나’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그래선지 중국 게임시장에 관해 풍부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는 중국게임에 대한 선입관부터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조악한 게임으로 치부하기엔 중국게임이 가진 매력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게임에 대해 “모든 유저에게 열려있는 개방적 운영이야 말로 중국게임의 장점”이라 지적했다.
“보통 중국게임은 ‘그래픽이 조잡하고, 게임성이 떨어진다’고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조악한 게임성을 변화무쌍한 운영마인드로 커버합니다. 중국게임은 한국과는 달리 개발에서 운영까지 상당히 개방적입니다. 기존에 금기시 되어 있던 것들을 많이 풀고 있어요.”
개방적인 온라인게임은 어떤 건가요?
“밸런싱이나 개발일정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한국 개발사는 유저가 어떤 것을 요구하면 게임 밸런싱을 해친다는 이유로 들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저는 게임이 변하길 바라는데, 개발자는 변신을 거부합니다.
밸런싱이나 일정에 차질을 준다는 이유 때문이죠. 그러나 중국게임은 웬만하면 유저들의 의견을 받아줍니다. 어떤 개발사는 유저들의 업데이트 요구사항을 하루 만에 처리해주죠. 그러다보니 기상천외한 아이템과 상황들이 등장합니다. 게임 속 길드장에게 월급 주는 정책도 중국에서 먼저 시도한 방식입니다. 이렇듯 변화를 거부하지 않는 개방적 운영은 중국게임의 가장 큰 경쟁력입니다.”
일일이 유저들의 요구사항에 맞춘다면 게임의 차별성을 해칠 우려도 있을 텐데요.
“우리도 차별화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개발자는 뭔가 새로운 것을 내놓지 않으면 불안해합니다. `내가 만드는 게임은 차별성은 있는데, 대중성은 없다`라는 인식자체가 딜레마죠. 그러니 개발이 폐쇄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게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요소가 있으면, 그것만 살리면 됩니다.”
늦은 오후, 따뜻한 온기를 품은 가을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갈 무렵, 날씨가 제법 쌀쌀해 졌다. 겨울이 바싹 다가오는 것 같다. 연일 언론을 강타하는 한국 경제위기, 대작들의 잇따른 실패, 위축된 투자유치, 올해 게임시장은 유난히 추운겨울을 보낼 듯 싶다.
12년 전 액토즈소프트가 창업했던 시기도 지금과 같았다. 그땐 IMF 한파로 나라 경제가 꽁꽁 얼어붙은 시절이었다. 그러나 유독 게임산업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액토즈소프트를 비롯해 엔씨소프트, 넥슨 등 굵직한 게임업체들이 변화의 주인공들이었다.
업계 큰형님으로써 이번 경제위기도 게임산업의 기회로 만들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지금까지 한국게임 산업은 불황을 몰랐습니다. IMF위기 이후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죠. 지금 위기도 게임산업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진 않습니다. 다른 산업이 ‘힘들어 죽겠다’고 할 때 게임산업은 늘 앞을 향해 달렸으니까요. 경기가 위축될수록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퍼블리셔들은 개발사를 발굴해 좋은 게임을 내놓아야 합니다. 액토즈도 내년부터 퍼블러싱에 집중 투자할 겁니다. 어렵다고 웅크리고 있느면 더 어려워지니까요.”
이관우 이사는 “2009년부터 액토즈소프트도 활발한 퍼블리싱과 투자로, 게임계 위기돌파의 선두에 나설 것”이라 자신했다. 12년 전, 위기를 기회로 바꾼 1세대 개발사의 `자신감`이 때마침 불어온 가을바람처럼 청명하게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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