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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비전 정현예 디자이너 “나만의 몬스터 디자인으로 최고 노린다”

펜타비전의 컨셉 디자이너 정현예씨(27)를 2009 도미넨스워 마감이 끝난 아침에 만났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도미넨스 워에 참여한 그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도미넨스 워는 그래픽 아티스트들의 축제와 마찬가지에요. 올림픽처럼 우승권에 들어가기 위하여 경쟁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의미는 한 팀으로서 서로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정을 쌓고, 자신의 실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있어요.” 그는 실제로 도미넨스 워에 참여하면서 또 한 번 자신의 작업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전세계 그래픽 아티스트들의 축제 도미넨스 워

‘도미넨스 워’는 미국의 CG 커뮤니티인 ‘게임아티산(www.gameartisan.org)’주최로 지난 2006년 처음 시작되어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하는 아티스트들을 위한 대회로, 참여하고 싶은 아티스트들이 도미넨스 워에 참가하는 여러 팀 중 반드시 한곳에 속해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 각 팀마다 주어진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 본인이 속한 팀을 승리로 이끌게 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같은 CG 사이트의 참가자들끼리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의 작품 완성에 도움을 주는 협력 플레이가 필요하다. 즉 ‘경쟁 속의 협력’이라는 모티브로 진행되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새로이 2D 컨셉트 아트 부문을 신설해 3D와 2D 분야에 걸쳐 총 100명에게 시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재능이 뛰어난 분들이 많은데 대체로 3D보다는 2D 부문에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죠. 디자인 분야가 한국이 체계적인 산업화가 덜 되어서 그렇지, 감각 있는 분들은 한국에도 많아요.” 라고 말했다. 실제로 ‘프리우스 온라인’의 원화로 유명한 한국팀 박중민 작가는 지난해 처음 신설된 2D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6위에 입상한 정현예 디자이너 역시 과찬의 인사는 사양했다. 그는 자신을 보통의 노력하는 그래픽 아티스트로 봐주길 바랬다.

 ▲ 도미넨스 워 참가작품. 위의 이미지가 2008년, 아래 이미지가 2009년

하지만, 이미 십대시절부터 게임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의 재능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초창기 엔씨소프트에서 ‘리니지2’ 몬스터 디자인을 담당했던 그가 약관을 조금 넘은 나이에 내놓았던 것이 안타라스, 리니지2 최초의 용이었다. 그러나 군대를 다녀오고, 제대 후에 가장 먼저 그를 부른 사람은 다름 아닌 펜타비전의 신봉건 이사였다. 그는 일찍이 게임업계에 뛰어든 친형 덕분에 십대 시절부터 신봉건 이사와 교류하고 있었다. 당시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디제이맥스 작업의 일부를 외주로 받아 진행하기도 했다.

 ▲ 그가 작업했던 리니지2 당시 컨셉 원화

신봉건 이사와의 인연이 맺어준 펜타비전 입사

“신봉건 이사님과의 인연으로 제대 후 펜타비전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군대 시절에도 새로운 게임이 나오면 보내주시고 계속 지켜봐 주셨어요. 펜타비전만의 장점이라면, 분업화된 대기업에서는 배울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이 가능하다는 거죠. 아마 제가 대기업을 경험해보지 못 하고 바로 펜타비전에 왔다면, 대기업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있었을 거에요. 하지만 전 이미 경험해봤고, 펜타비전의 방법이 제게 더 맞는 것 같아요.”

그는 펜타비전의 스타일에 대해 한 마디로 ‘세련됨’이라고 정의했다. 당대의 유행을 반영하고 누가 봐도 일정 수준 이상이라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는 것. 대충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신봉건 이사님이 우리 게임을 하는 사람은 유치하고 수준 낮은 사람이 아니라 특별하다고 느껴질 수 있어야 한다고 항상 강조하세요.”

마찬가지로 펜타비전에서 맡은 역할의 난이도도 날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분업화된 하나의 반복 작업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 참여하면서, 그것이 수박 겉 핥기 식의 배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 그는 펜타비전의 비밀 프로젝트(?)에서 새로운 임무를 맡고 있다.

정현예 디자이너는 실제로 펜타비전 내부의 작업에 두루 참여했다. 옛날 온라인부터 시작하여 포터블1, 2, 클래지콰이 에디션(CE), 블랙스퀘어(BS)의 백그라운드애니메이션(BGA)에서, 온라인 게임 프로젝트 ‘S4’리그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특히, 메트로 프로젝트에 해당하는 아케이드게임 ‘테크니카’에서는 메인 컨셉 디자이너로 참여했다. “그 동안 작업해오던 화면에서 배 이상으로 커지는 덕분에 작은 오점 하나도 없어야 했죠.”

 ▲ 몬스터만 그린다고 미소녀를 못 그리는 것은 아니다! 메트로 프로젝트 이미지

내가 사랑한 ‘몬스터’, 정현예식 몬스터 디자인?

다양한 작업에서 재능을 발휘하고 있지만, 정현예 디자이너가 특히 애착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독특하게도 ‘몬스터 디자인’이다. “유치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강력한 캐릭터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있었어요. 만화 드래곤볼을 보면서도 악역 캐릭터에 먼저 매력을 느꼈어요.”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사람을 그리는 것보다 상상 속의 어떤 동물이나 판타지 속 오브젝트를 그리는 게 더 익숙하고 즐거웠다.

“저는 제가 그리는 몬스터가 꽃이랑 비슷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해요. 꽃이 복잡하지만, 정형화되지 않고 흐트러져 있는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잖아요. 마찬가지로 무조건 외형적으로 기괴한 몬스터가 아니라 나름의 사연을 가진 서정적인 분위기의 몬스터를 지향하죠. 가끔 미소녀를 못 그리니까(웃음), 저런 몬스터를 그리는 게 아니냐 라고 말하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그건 아니고, 저는 몬스터도 아름답고 멋있게 느껴지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만약, 가장 그리고 싶어하는 대상이 몬스터라면 일상생활에서 그 소재나 영감을 찾기 어려울 것처럼 보였다. 혹시 그에게 판타지 영화나 만화 등을 즐겨 보는 지 물어보았다.

“아니에요. 저는 되도록이면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같은 비슷한 동종업계에서는 소재나 모델을 찾지 않으려고 해요. 그것 역시 이미 현실에서 찾아낸 2차 재생산물인데, 다시 여기서 소재를 얻으면 3차 재생산물이 되는 거죠. 그렇게 되면 본래의 사물이 가지고 있던 순수성이 많이 퇴색하거든요. 되도록이면 현실이나 주변에서 찾으려고 해요. 마찬가지로 몬스터 디자인도 현실성을 가지려면 3D화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뼈라든지 움직임도 생각해야 하죠. 해부학이나 동물의 습성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 좋아요. 아무리 판타지라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해낼 수는 없으니까요.”

정현예 디자이너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즈음, 만화가로 데뷔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 그림 그리기 좋아하고 재능 있는 친구들의 꿈은 모두 만화가였다. 고등학생의 나이로 전국만화대회에 대상으로 입상했고, 실제로 출판사를 통해 데뷔 제안을 받고 원고도 작업했다. 하지만 극심한 만화, 출판계 불황은 그의 운명을 게임 쪽으로 바꾸어 놓았다. “만화가의 꿈이 게임 아트 디자이너로 바뀐 건 오히려 제게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게임도 하고 싶었지만 오히려 당시에는 게임 쪽 시장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으니까요.”

 ▲ 개인 작업 이미지, 특히 `개` 이미지는 군대 시절 경험에서 만들어졌다.

‘아트 디렉터’의 꿈, 그리고 아티스트와 관리자의 기로에서

그는 이제 경력을 쌓아가는 중견 디자이너로서 성장에 대한 실험과 동시에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먼저 익숙했던 작업에서 나아가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그 동안 상대적으로 낯설었던 3D 그래픽이나 영상 작업에도 손을 댔다.

“궁극적으로 게임의 모든 비주얼을 책임지는 아트 디렉터가 되고 싶어요. 내가 주방장인데 어떤 조미료가 무슨 맛을 내고, 어떤 요리법인지도 모르고 조언을 해 줄 수는 없잖아요. 안 해봤던 것은 다 해봐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죠.”

이번에는 그의 고민을 살짝 들어보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진짜 재능있는 아티스트들이 회사를 다니기 어려운 구조에요. 그림 그리는 사람이 10년을 그림만 그릴 수 없고 어느 순간 관리자가 되어야만 하죠. 만약 그림만 그린다면 회사 내에서도 도태될 수 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관리자가 되어버리면, 어느 순간 아무리 유능한 아티스트라도 그림에 대한 감각이 사라져버려요. 반대로 외국에는 시니어 아티스트, 이른바 기술고문이라는 역할이 있어서 ‘그림에 대한 것은 모두 그 사람에게 물어봐라’라고 말하죠. 장인을 만들고, 대접하는 분위기가 되어있어요. 상대적으로 아쉬운 부분이에요.”

그의 이야기는 게임업계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이 갈 만한 이야기였다. 20여 년 이상을 그림만 그려 온 젊은 아티스트에게 여전히 ‘그림’은 손에서 떼놓을 수 없는 탐구의 대상이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이제 막 게임업계에 진입했거나 게임 그래픽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조언을 부탁했다. 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도 요즘 들어 내가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고민해봤어요. 단순하게 말하면, 책을 많이 읽고, 그림을 정말 많이 그리라고 하겠죠. 천재보다는 노력하는 사람이 더 뛰어나고, 노력하는 사람보다는 즐기는 사람이 더 낫다는 말처럼 그림 그리는 일 자체를 즐겨야 해요. 즐기지 못하고 그림 그리는 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느 순간 그걸 놓게 돼요. 왜 그림을 시작했고, 내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즐거운 지 잊으면 안 돼요. 누구처럼 유명해지겠다고 생각하고, 환상만 가지고 있으면 힘들어요. 기술보다는 마음의 문제에요. 사물이나 사람을 바라볼 때도 자세하게 관찰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중요해요. 열린 눈으로 보아야 성장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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