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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뜨거] 포항공대 셧다운제로 보는 게임 규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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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뜨거]는 지난주 가장 뜨거웠던 게임계 이슈를 누구나 알기 쉽고 자세하게 풀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지난 21일, 포항공대가 시시비비가 분분했던 교내 게임 셧다운제를 전면 중단키로 결정했습니다. 문제가 된 것은 일부 학생의 게임 과몰입 문제를 토대로 전체 학생의 심야 게임 접속을 차단한 점, 우회접속을 막을 수 없는 점 등, 당위성과 실효성이 모두 부족하다는 이유에섭니다. 이에 학교 측은 게임 셧다운제를 폐지하는 대신 게임 과몰입이 의심되는 일부 학생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입니다. 게임을 과용하는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것으로 방향이 선회한 것이죠.
 
포항공대 사례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지금도 시행 중인 강제적 셧다운제와 지적된 문제점이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16세 이하 청소년 전원이 0시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게임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하는 강제적 셧다운제는 시행 전부터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지적되어 왔습니다. 청소년의 게임을 막는 것만으로 '게임'을 둘러싼 갈등은 해소할 수 없으며, 우회접속을 100% 차단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여기에 해외에서 서비스되는 게임은 '강제적 셧다운제' 범주 안에 들지 않아 심야 접속을 차단할 수 없다는 역차별 문제까지 불거졌죠.
 
기숙사에 머무는 학생들의 심야 게임을 전면 차단한 포항공대의 강제적 셧다운제는 학생들의 꾸준한 지적과 이를 받아들인 학교가 합의를 이루며 폐지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시행된 지 4년차에 접어든 강제적 셧다운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과연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 당위성, 실효성 부족을 이유로 교내 게임 셧다운제를 폐지한 포항공대

정부와 게임업계, 기나긴 갈등의 시작

오늘날 국회에서 벌어지는 게임 규제에 대한 논의는 가정불화에서 출발했습니다. 90년대 PC 및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등장한 게임은 청소년에게는 최고의 놀이였으나, 부모에게는 학습을 방해하는 새로운 골칫거리로 떠올랐죠. 컴퓨터 앞에 몇 시간이고 앉아 있는 것은 밖에서 뛰노는 것을 '놀이'라 생각하는 기존 인식에 부합하지도 않을뿐더러, 교육열이 절정에 달했던 당시 실정과도 맞지 않았거든요. 자연히 각 가정에서는 게임을 하려는 자녀와 이를 막으려는 부모의 갈등이 시작됐습니다.

이 갈등에 정부가 개입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2004년, 청소년보호위원회 주도 하에 최초로 강제적 셧다운제 입법 요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듬해 8월에는 한나라당 김재경 의원이 청소년보호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되며 좀 더 적극적인 입법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아이들의 게임을 법으로까지 막아야 하나’는 인식이 주를 이뤘고, 업계와 문체부도 크게 반대해 실제 통과까지는 가지 못했습니다.

이후 몇 차례 입법 시도가 이어진 후에, 2008년 현재 시행 중인 '강제적 셧다운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됩니다. 2005년에 법을 대표 발의했던 김재경 의원이 새롭게 내놓은 개정법률안은 ‘밤 12시부터 오전 6시까지 온라인게임 업체의 게임 서비스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시 해당 업체를 1,000만원 벌금 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엄청난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청소년 유해물도 아닌 게임을 강제로 금지하는 것은 청소년의 행복추구권을 제한하는 행위이라는 지적이 이어졌죠. 업계는 ‘바다이야기’를 위시한 도박과 일반적인 온라인게임의 선을 분명히 긋고, 시장이 혼탁화되지 않도록 자율규제에 힘쓸 것이라며 정부 개입을 막았습니다.


▲ 2006년 도박성 게임 '바다이야기'로 인해 게임에 대한 인식이 악화됐다

여성가족부의 셧다운제 강행, 악화되는 게임에 대한 인식

청소년 관련 업무가 보건복지부에서 여성가족부로 이관된 것도 이즈음입니다. 2010년 여성가족부는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게임 규제에 손을 뻗기 시작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강제적 셧다운제'입니다. 여성가족부는 게임을 청소년에게 해를 주는 중독적인 매체라 주장하며, 정부가 이를 적극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해를 넘어서도 여성가족부의 맹공은 계속됐습니다. 당시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최영희 여성가족위원장은 인터넷 중독 예방 및 치료를 위해서라며 게임업계에 4,000억 원 규모 기금 조성을 촉구하기까지 했죠. 이미 각 업체가 출원한 100억 원 가량의 게임문화기금이 운영되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 게임중독에 대한 면죄부를 얻으려 하느냐'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미 정부는 게임 서비스 자체가 죄이며, 게임업계는 죄인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한 방어선이 허물어지며 2011년 4월 29일, 강제적 셧다운제를 골자로 한 청소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여기에 '셧다운제'를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한 문체부와 여성가족부의 의견 차이로 인해 '셧다운제' 역시 여성가족부의 '강제적 셧다운제'와 문체부의 '선택적 셧다운제(가족시간선택제)', 2개로 갈라졌죠.


▲ 게임이 마약과 똑같다고 강변한 최영희 여성가족위원장

강제적 셧다운제 시행이 현실로 다가왔지만 게임업계도 여기서 포기하진 않았습니다. 셧다운제에 대한 위헌소송을 바로 제기하고, 최소한 치명적인 조항은 개정시키겠다는 각오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크게 위축됩니다.

2011년 12월, 13세 소년이 대구 수성구 7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버렸습니다. 소년이 남긴 유서에는, 오랫동안 또래에게 모진 괴롭힘을 당해왔으며 그 중에는 그들의 온라인게임 캐릭터를 강제로 육성하는 것도 포함됐다고 적혔습니다. 여론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여성가족부는 게임중독의 폐단을 지적하고, 강제적 셧다운제의 순기능을 역설하며 여론을 설득했죠.

여론이 게임으로부터 등을 돌리자, 업계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게임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마약으로 매도 당했습니다. 대통령도 공석에서 게임의 ‘공해적인 측면’에 대해 우려를 표할 정도였으니까요. 더는 시장 규모가 얼마니 연간 수출액이 얼마나 하는 얘기도 성난 부모에게는 무의미한 수치였습니다. 여성가족부의 강제적 셧다운제가 시행된 후 2012년에 교과부에서도 게임을 2시간마다 강제로 끄게 만드는 '쿨링오프제'를 내놓으며 여러 부처가 '게임' 하나를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 연출됐습니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으로 국무총리까지 나서 게임중독을 문제삼았다

문화산업의 총아 게임, 마약이 되다

셧다운제를 시작으로 수많은 게임 규제 법안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1월 9일, ‘손인춘 게임규제법’으로 잘 알려진 인터넷게임중독치유예방에 관한 법률안 2종이 발의됐죠. 셧다운제 적용 시간과 연령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각 게임에 중독유발지수를 측정해 수치가 높게 나온 게임을 국내에 유통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 각 게임사 매출 1%를 여성가족부 장관이 게임중독치유기금으로 징수하겠다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게임업계 매출 1% 강제 징수는 게임업계가 '게임중독'에 책임을 지고 세금을 내란 겁니다. 주류 0.05%, 도박 0.03%를 아득히 뛰어넘어, 게임을 사행산업이라 천명한 셈입니다. 2008년 강제적 셧다운제 입법 시도를 방어해낸 게임업계는 '손인춘 게임규제법'으로 또 한 차례 거대한 세파에 휩쓸렸습니다.

이러한 ‘게임 죽이기’는, 2014년 10월 대두된 '게임중독법'에서 절정에 달합니다. 게임을, 마약과 같은 중독 물질로 지정하자는 겁니다. 법안을 발의한 신의진 의원은 부정했지만 '마약과 같은 중독 물질'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는 법으로 인해 게임 개발자는 마약 생산자로, 게이머는 마약중독자로 전락할 우려가 커졌죠.


▲ 게임을 완벽하게 마약과 동급으로 전락시킨 '게임중독법'

더욱 아쉬운 부분은 한국에서 게임 규제에 대한 논의가 가속화되던 시점에 맞춰 국내 게임업계 역시 침체기로 돌아섰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바일로의 세대 교체 시기가 겹치며 국내 게임업계는 규제와 트렌드 변화, 2가지 요건을 이겨내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잘 적응하지 못한 업체들이 떨어져 나가며 업체 간 양극화는 심해졌고, 정부의 보호 하에 성장한 중국 업체들의 본격적인 시장 진입이 시작되며 국내 게임업계의 경쟁력도 악화됐죠. 한국 게임 경쟁력 악화가 100% 규제 탓은 아니지만, 트렌드에 민감한 게임업계가 모바일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앞두고 '규제'에 발목이 잡혀 대응책을 발 빠르게 마련하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중소기업을 시작으로 게임산업 침체가 두드러지자 정치권에서도 '일단을 살리고 봐야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모양입니다. 지난 11일에 진행된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게임 살리기’에 방점이 찍혔습니다. 침체에 빠진 국내 게임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과 함께 중국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는 질의도 있었죠. ‘모바일게임 결제취소’의 맹점을 악용해 그 피해가 고스란히 개발사에 돌아오고 있다는 구체적인 지적도 잇달았습니다.

이처럼 '게임산업 위기론'이 대두된 이 때가 소가 완전히 사라져버리기 전에 외양간을 고치는 현명함을 보여줘야 할 타이밍입니다. 당위성과 실효성 부족을 인정한 포항공대가 교내 게임 셧다운제를 폐지한 것처럼 게임업계에 족쇄처럼 채워진 강제적 셧다운제도 과연 이 제도가 온당한가를 다시 한번 신중히 재고해봐야 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요?


▲ 게임산업의 부고를 듣고 싶지 않다면 지금이야말로 족쇄를 풀어줘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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