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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하자드의 그늘에 가려 멸종한 공룡이야기(다이노 크라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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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신비와 공포의 대상, 공룡
지금까지 우리가 본 공룡영화는 몇편이나 될까? 또한 만화나 여러가지 캐릭터에 공룡이 언제나 단골소재로 쓰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공룡이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주는 신비감과 한번도 본적이 없는 거대한 생물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때문일 것이다. 공룡은 인간이 살기 이전에 지구를 지배했던 종족이었다. 그 크기 또한 사람의 몇 십배나 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우리는 공룡에 대해 신비함과 공포를 느낀다. 마치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귀신에 대해 신비함과 공포를 느끼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공포에 대해 두려워하면서도 자꾸 그 공포를 접하려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공포의 이면에 자리한 쾌감 때문일 것이다. 극도의 긴장감으로 인해 마음졸이며 공포를 접해도 그것이 다 끝나고 나서 밀려오는 쾌감과 시원한 느낌이 우리를 공포에 미치게 만들고, 여러가지 호러물들이 여름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공룡이라는 공포의 대상이 올 여름에 색다른 쾌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좀비와 공룡은 엄연히 다르다구!
다이노 크라이시스는 바이오 하자드를 만든 캡콤에서 만든 작품이다. 제작사가 같아서인지 다이노 크라이시스는 전체적으로 바이오 하자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을 준다. 비슷비슷한 아이템들과 비슷비슷한 무기, 그리고 주인공과 함께 작전수행에 나선 2명의 대원들의 스토리 전개에 따른 행동설정 또한 바이오 하자드와 비슷하다. 특히 아쉬웠던 점은 시나리오까지 비슷하다는 것이다. 라쿤시 외곽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 조사를 나서다가 좀비와 만나게 된다는 바이오 하자드 1편이나, 박사를 구하러 간 군사시설에서 공룡을 만난다는 디이노 크라이시스의 설정은 이해하고 넘어간다 할 지라도, 전체적인 이야기의 전개 또한 바이오 하자드와 너무도 흡사하다. 물론 대부분의 호러물들이 미지의 장소에서 처음 보는 위험에 대항한다는 스토리가 하나의 공식이 되어버렸다고는 하지만 이런 비슷한 공식 속에서도 `조금 더 개성있게 게임의 시나리오를 연출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게임 속의 세부적인 연출 또한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복도를 걷다가 갑자기 창을 깨고 나오는 좀비의 공격에 머리가 쭈뼛하고 놀란 게이머들은 똑같이 창을 부수고 덮치는 공룡의 진지함에 실소를 터뜨릴 것이다(실제로 필자는 복도를 걸으면서 이쯤에서 유리창을 깨고 공룡이 튀어나올 것을 예상했는데, 그 예상이 적중한 적이 있었다).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에 익숙한 게이머라면, 이 어설픈 쥬라기 공원에 시설된 모든 장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다이노 크라이시스만의 개성적인 시나리오와 구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비슷하지만 결코 아류작은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다이노 크라이시스는 바이오 하자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이노 크라이시스는 바이오 하자드의 아류작이라고 말할 수 없는 큰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차이점이야말로 다이노 크라이시스를 가장 빛내는 요소이자 바이오 하자드의 긴장감을 뛰어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 차이점이란 바로 카메라 시점의 차이에 있다. 바이오 하자드 카메라의 시점은 느려 터진 좀비의 움직임을 배려해서인지 어느 장소에서나 고정된 카메라 시점을 보여준다. 반면 다이노 크라이시스는 캐릭터의 움직임에 따라 카메라도 같이 움직인다. 이 미세하지만 큰 차이가 게임의 긴장감을 극도로 높여주는 작용을 한다. 실제로 게임초반에 랩터가 주인공 뒤를 추격하는 장면을 카메라가 뒤에서 따라다니며 연출한 효과는 마치 영화 쥬라기공원 중반부에서 자동차를 타고 도망가는 주인공들을 아슬아슬하게 쫓아가는 거대한 티라노사우르스를 보는 것과도 같은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카메라가 같이 움직임에 따라 그래픽이 약간 출렁(?)이는 단점은 있지만, 역시 캐릭터의 왕국이라는 일본답게 공룡이라는 캐릭터의 특징을 가장 잘 살리는 카메라 시점을 사용함으로써 바이오 하자드와의 차별화에 성공한 것이다(좀비들은 너무 느려서 이러한 카메라의 움직임에 따라 가지도 못할 것이다). 그리고 다이노 크라이시스는 게임 중간 중간에 분기점을 두어서 게임의 자유도를 높였다. 각각의 분기점에서 선택한 사항에 따라 게임이 더 어려워 질 수도 혹은 게임의 흐름이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이것은 그저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게 만드는 바이오 하자드와는 또 다른 색다른 맛을 제공한다.

피곤한 게임 속의 여전사들
다이노 크라이시스를 플레이하면서 내내 머릿속에 맴도는 않는 한가지 단상이 있다. 그것은 게임 속에 등장하는 여전사들에 대한 게이머들의 시선이다. 툼레이더 이후로 각 게임에서 두드러지게 활약하고 있는 여전사들. 남자보다 더 강인한 체력과 인내, 거기에다 여성만의 섬세함으로 지금은 웬만한 남자 캐릭터 뺨치는 인기를 구가하는 그야말로 여전사들의 전성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남자캐릭터들과는 다른 것은 전사로서의 본연의 임무 외에 해야 할 일이 또 한가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툼레이더의 라라는 손바닥만한 핫팬츠를 입고 다녀야 했고, 헤비메탈의 여주인공은 바닥을 뒹굴 때마다 옷의 일부를 찢어서 속살을 보여야만 했다. 무시무시한 공룡을 상대하는 다이노 크라이시스의 주인공 레지나 또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처음 시작하기 전에 등장하는 주인공 복장 고르기(코스튬 모드)는 레지나가 게임 속의 여전사로서 그 역량을 보이기도 전에 남성 게이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부터 받아야 한다. 그저 시작과 동시에 여자 주인공에게 어떤 옷을 입힐 지를 고르게 하는 것은 여자 주인공에게 야한 의상(의상들은 대체적으로 야하게 디자인되어 있다)을 입히게 해서 게임의 상품성만을 높이자는 의도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게임 속의 캐릭터로서 평가받기 보다는 하나의 상품으로서 취급되어야 하는 게임 속 여전사들의 이중적인 모습, 이것이 다이노 크라이시스를 하면서 느껴지는 또 한가지 씁쓸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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