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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군들. 내가 꼭 RPG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 (던전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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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리가 액션 영화인가 공포영화인가?
미국형 RPG라는 테마를 가지고 나온 게임으로는 국내에 널리 알려진 울티마나 발더스 게이트 류의 작품을 대표로 들 수 있다. 시나리오 중심의 직선형 구성방식 RPG를 일본형 게임이라 지칭하고 자유도 높은 게임을 미국형 RPG로 구분 짓는 잣대가 과연 어디서부터 탄생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릇 ‘RPG는 이래야 한다’라는 구분만큼 바보스러운 주장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말 그대로 게임은 게이머가 직접 참여하고 즐기는 분야인 만큼 어떤 장르에 있어서도 이러한 잣대에 얽매여 작품을 평가절하 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쉬리`를 보고 공포를 느꼈다면 공포영화가 될 수 있는 것이고 손에 땀을 쥐는 흥분을 느꼈다면 액션영화도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RPG의 정통 공식을 위반(?)하고 있는 던전시즈 역시 이러한 저러한 경로로 게임을 구입한 게이머들에게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또 각자개인의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의 평가가 매겨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허나 북미권에서 출시된 던전시즈이기 때문에 그만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며 악평을 드높이는 게이머들에겐 필자는 다소 삐딱한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다. 크리스 테일러가 제작한 `던전시즈‘는 결코 발더스 게이트나 디아블로, 울티마와 동급선상에 있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작사인 개스 파워드 게임즈가 추구한 또 하나의 새로운 게임일 뿐, 머리 아프도록 그 이상이나 이하의 의미를 강제로 부여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던전시즈는 이런 게임
서두에 밝혔듯이 던전시즈는 플레이 방식에 있어 상당히 자유분방한 형태를 띄고 있다. 게임을 시작하면 게이머는 성별과 머리색깔 그리고 옷매무새 등 캐릭터의 외양만을 지정한 채 던전시즈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게임에 대한 어떠한 사전정보와 시나리오도 없이 쓰러진 노인 앞에 놓여진 괭이 하나만을 들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모험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압도적인 3D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한다. 멀리서 떨어지는 폭포수와 키 큰 소나무 사이로 아련하게 걸쳐 있는 안개, 깎아질 듯한 벼랑과 눈보라치는 계곡까지 자유자재의 시점변환과 확대축소가 가능한 세계가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점차 게임의 중독성이 높아지면 보통 그래픽 옵션을 낮추고서라도 원활한 진행을 원하는 것이 진리이건만 던전시즈는 어느 장소를 가더라도 100% 풀옵션의 그래픽을 맛보고 싶은 유혹이 너무나도 진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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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게이머는 옆에 떨어진 괭이를 집어든 채 게임을 진행하기 시작한다. 이 괭이를 들고 몬스터를 때려잡는 것이 즐거워지기 시작하면 전사의 소질이 다분한 것이고, 옆에 놓인 활을 들고 다니면 궁수가 되며, 마법만을 즐겨 사용할 땐 마법사로 탄생할 수 있다. 던전시즈에서는 이처럼 무기적응형 캐릭터 성장방식을 채택, 게이머가 사용하는 무기, 마법에 따라 캐릭터의 직업이 결정된다. 이는 캐릭터 성장과정에서 스탯을 일일이 분배해야하는 복잡한 과정을 생략한 진행방식으로서 기존의 RPG에 익숙한 게이머라면 다소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상관없지 않은가? 누차 이야기하기에도 입이 아프지만 던전시즈는 디아블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던전시즈의 전투는 총 8명의 동료를 게임에서 만나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근접공격 보병이 장거리 유니트의 지원을 받으며 전투를 벌이는 RTS처럼 던전시즈의 전투방식은 RTS의 그것과 상당히 닮아있다. 마우스로 유니트를 드래그한 상태에서 적군에게 공격명령을 내리거나 일부는 그룹을 지정해서 다양한 전략을 연출하는 등 마치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을 RPG로 즐기는 느낌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느낌이 든다. 사실 전투방식에 있어서는 디아블로나 녹스 등의 게임을 철저히 벤치마킹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지만 기존의 RPG에서 느낄 수 없었던 전략과 액션성을 자연스럽게 융화시킨 점이 인상적이었다.


던전시즈의 싱글플레이는 말 그대로 완전한 일직선 방향의 퀘스트 해결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때문에 왔던 길을 또다시 왔다가는 일은 던전시즈에서 결코 일어날 수가 없다. 죽은 캐릭터는 언제든지 제자리에서 되살릴 수 있으며 설령 마법주문서가 없다 해도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부활장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퀘스트 역시 앞으로 겪어야 할 일을 미리 알려주는 가이드일 뿐 골머리를 앓고 모든 지도를 이잡듯 뒤져야할 필요가 없다. 굳이 비교하자면 옛날 오락실에서 100원 넣고 즐기던 캡콤사의 던전&드래곤이 연상되는 진행방식이라고 할까?. 무조건 앞으로… 앞으로… 뒤를 돌아볼 필요 없이 전진만이 필요할 뿐, 노트를 펴고 대화의 단서를 집어가며 게임을 진행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던전시즈의 장점. 시스템에서 디벼보자
던전시즈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게임 발표 전부터 무척이나 관심을 끌었던 부분인 심리스 월드(Seamless World), 즉 ‘로딩’이 전혀 없는 게임 진행을 꼽을 수 있다. 던전시즈의 세계는 직선방향으로 이동할 때 약 3~4시간이 넘게 소요되는 거대한 대륙이 단 1초의 로딩 없이 완벽하게 재현되어 있다. 이는 어지간한 온라인 게임에서도 엄두를 낼 수 없는 커다란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스 월드는 하나의 작은 세계를 화면에 구현할 때 다른 지역을 계산에 넣지 않는 일종의 눈 속임수와 같은 기법으로서 마치 과거에 자동차를 타고 가던 장면을 찍기 위해 차창 바깥의 배경만 조금씩 움직이는 영화촬영 방법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게이머는 지도의 어디를 가더라도 게임의 진행을 멈추는 로딩을 느낄 수가 없으며 덕분에 보다 진지한 자세(?)로 게임에 심취할 수가 있다. 이는 로딩시간을 개념치 않았던 게이머라고 해도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혁신적인 기법으로 평가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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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제군들이 걱정하는 일이라는 것은…
입이 마르도록 칭찬만을 퍼부은 게임이지만 던전시즈의 멀티플레이 방식에는 적지 않은 문제점이 산재하고 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던전시즈의 멀티플레이는 캐릭터 정보를 하드디스크에 저장시킨다는, 국내 게이머들에겐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기능으로 설계되어 있다. 이는 곧 캐릭터의 에디트에 아무런 문제점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블리자드의 클로즈 배틀넷 형식에 익숙한 국내 게이머 외에는 이를 아무도 의아하게 생각할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발더스 게이트의 예도 그랬고 던전시즈 또한 레벨업과 아이템 찾기에 중점을 맞춘 단순한 구조의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배틀넷이 훌륭한 시스템이긴 하지만 이것이 곧 멀티플레이의 ‘정석(定石)’이라고는 할 수 없다.


던전시즈의 멀티플레이에서는 싱글 플레이를 즐기던 세이브 파일을 불러낼 수도 있고 또 치트가 적용된 캐릭터까지 운용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즉 캐릭터의 성장과 아이템 수집이 멀티플레이에서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상당히 미미해지게 된 셈이다. 개스 파워드 게임즈가 싱글플레이를 제작한 툴과 동일한 ‘시즈 에디터’를 자세한 튜토리얼과 함께 제공하려는 이유도 이곳에 있다. 단순히 멀티플레이는 거대한 대륙을 동료와 함께 모험을 떠나자는 목적만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까지 배틀넷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탓일까? 아니면 던전시즈의 게임구성에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일까? 캐릭터가 서버에 저장되는 방식만 제공된다면 적어도 국내에서는 혁신적인 반응을 일으키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크다.


눈 앞에 보이는 사실이 전부가 아니다
던전시즈의 싱글플레이를 즐기면서 가슴 한켠에 계속 남아 있던 말은 ‘왜 싸워야하나?’였다. 농부가 단순히 동료의 죽음으로 악의 음모를 파헤치고 또 한 왕국을 구한다는 설정은 이 게임을 즐겨야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기에 부족한 면이 많았다. 이러한 단순한 스토리 때문에 파티에 참가한 동료에도 별다른 애착이 가지 않았다는 점 역시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는 심도있는 스토리와 중독성을 기대한 게이머에게 다소 실망감을 안겨줄 수도 있는 구성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던전시즈의 ‘시즈 에디터’라는 무한한 확장가능성에 싱글플레이에서 느낀 단조로움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프라이프라는 1인칭 액션 게임은 싱글플레이 자체도 훌륭했지만 출시 이후에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MOD 덕에 약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좋은 선례처럼 던전시즈의 MOD 역시 울티마에서부터 신디케이트와 같은 게임까지 장르의 구분을 막론하고 다양한 종류가 개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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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은 물론 게이머에게 맡겨야할 몫이다. 그러나 롤플레잉 게임의 새로운 길을 창시하고 그래픽적인 부분이나 확장성에 있어서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이 작품을 즐겨보지 못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게이머로서 상당히 커다란 손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액션이나 전략시뮬레이션 혹은 어드벤처에 이르기까지 이 게임이 어떠한 모습으로 다시 변모하여 게이머에게 나타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거의 단종되다시피 한 하프라이프를 찾아나서는 이들이 얼마나 많던가?


<게임메카 윤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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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PC
장르
롤플레잉
제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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