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벽두에 접어들면서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판타지가 가지는 대중적 한계를 극복하고 최고의 프랜차이즈 상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피터잭슨의 3부작 영화로 인해 일부 판타지 팬들의 바이블에서 일반 대중의 무협지로 변신한 것이다.
성공한 프랜차이즈의 대부분의 그렇듯이 고가에 라이센스를 팔아 넘겼고 비싼 값에 라이센스를 사들인 업체들은 그 돈을 뽑기 위해서 게임과 영화 등 손댈 수 있는 모든 2차 컨텐츠로 다시 원작을 재생산하고 있다. 원작을 보물처럼 여기는 원조팬들에게는 멋대로 난도질당하고 어설프게 윤색된 라이센스 컨텐츠들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으나 뭐, 인기란 그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지의 제왕으로 돈을 버는 컨텐츠가 아무리 많아도 반지의 제왕이 2~3년내 ‘빤짝가수’로 끝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어떻게 보자면 EA의 반지의 제왕은 상업성의 정점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프랜차이즈 게임제작 대장정의 시작을 여는 것일 수도 있다.
▶ 아직 개봉되지 않은 3편의 내용을 맛보기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 중간중간 CG로 표현된 애니메이션은 게임의 분위기를 잘 설명해 보다 쉽게 게임에 몰입하도록 한다 |
공식 영화 라이센스 게임은 무엇이 다른가
‘EA표 반지의 제왕’이 다른 반지의 제왕과 다른 점을 한가지만 꼽으라면 아주 간단하다. 뉴라인시네마의 동명 영화의 라이센스를 얻은 게임답게 많은 부분에서 영화와의 연결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게임 중에 영화가 삽입되는 건지 영화를 보는 도중에 게임이 끼어드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영화컨텐츠의 양이 많다. 애초에 알려진 대로 영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내용을 다 파악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나 DVD 스타일의 풍부한 동영상 제공은 게임 자체에 대한 몰입을 쉽게 해준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만하고 이안 맥켈런(간달프), 크리스토퍼 리(사루만) 등 배우들의 게임제작 인터뷰, 영화제작장면 등 풍부한 서플먼트로 인해서 소장의 가치도 높다.
대부분의 EA게임들이 그렇듯, 아니 대부분의 요즘 게임들이 그렇듯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은 그래픽적인 면에서는 별다른 약점을 찾을 수 없는 게임이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간달프, 아라곤, 레골라스, 김리, 샘 등의 캐릭터들은 물론이고 전투에서 무의미하게 쓰러져가는 일개 병사들의 묘사도 훌륭하다. 특히 마법과 폭발 등의 광원효과도 뛰어나고 게임의 배경이 되는 곳들도 배경이 바뀔 때마다 분위기 조성에 힘써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음향효과 또한 마찬가지다. 전투시에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와 고함소리는 물론이고 실제 배우들이 성우로 참여했기 때문에 현실감을 살려주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은 적어도 눈과 귀를 실망시키는 게임은 아니다.
▶ 게임의 대부분은 이렇게 쉴새없이 쏟아지는 적을 베고,베고,베고,베고 또 베는 일로 보낸다 |
▶ 캐릭터들의 묘사는 아주 뛰어나다. 프로도의 충실한 동반자 샘 |
순도 100% 짜리 액션
영화 반지의 제왕이 절대악에 대항하는 용기와 탐욕에 저항하는 의지를 시험하는
내용이라면 게임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은 복잡한 암시나 복선이 없는, 그야말로
순도 100%짜리 액션게임이다. 물론 레벨업 개념도 있고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쓸
수 있는 기술이 다양해지는 등 롤플레잉의 개념도 약간 있기는 하지만 엄청난 액션에
묻혀 다른 요소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액션게임이니만큼 빠른 공격과 강한 공격,
원거리 공격, 마법 공격 등의 타격감 등의 필수요소도 괜찮다. 전작인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이 콘솔게임기용으로만 제작되어 PC버전에서는 캐릭터를 컨트롤하거나
콤보를 쓰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키보드와 마우스뿐만 아니라 일반
사이드와인더 게임패드로도 게임조작은 별로 불편하지 않다. 특히 콤보를 쓰는 것은
더할 수 없을 정도로 간편하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카메라시점이다. 카메라 변환모드를 켜거나 끄거나 어떤 것을 선택해도 게임에서 시야의 불편함을 사라지지 않는다. 캐릭터가 어떤 위치로 이동하더라도 자신이 위치해 있는 정확한 정보를 한눈에 알기 힘들다. 이런 카메라 시점의 불편함은 무너지는 동굴을 탈출하는 ‘죽은자들의 왕’ 미션이나 좌우 언덕을 부지런히 오가며 적을 해치워야 하는 ‘뺄랜놀 평원’ 미션에서는 미션 클리어가 짜증날 정도로 불편하다.
죽이고 또 죽여 일백번 고쳐죽여
자 이제 미션구성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게임 전체의 구성은 보스전을 제외하고는 진삼국무쌍의 캐릭터들이 옷만 갈아입은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하드코어한 핵 앤 슬래쉬(Hack & Slash)의 형태를 띄고 있다. 쉴새없이 쏟아지는 오크와 우르크하이를 죽이고 또 죽여 일백번 고쳐죽이는 게임이어서 공격기 연타 이외에는 머리를 쓰면서 게임을 풀어나갈 일이 별로 없다(콤보키가 강력하기는 하지만 속칭 ‘다구리’ 상황에서는 별 쓸모가 없다).
▶ DVD 스타일의 서플먼트로 인해 소장용으로도 나쁘지 않다 |
▶ 여러 캐릭터로 플레이할 수 있지만 미션구성이 일직선이라 캐릭터들간에 차이가 많지 않다. 간달프의 특수능력 |
난이도를 고려한 미션의 디자인도 나쁘지 않다. 반복되는 미션실패와 ‘쌩노가다’에 지칠 즈음이면 자연적으로 미션 파해법이 떠오르도록 해 놓았고 전체적인 미션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액션게임 시나리오의 큰 단점인 ‘미션이 따로따로 논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다만 캐릭터들 자체에 별다른 차이점이 없고 경험치 포인트로 업그레이드를 구매해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별로 쓸 일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
전체적으로 볼 때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은 액션자체의 구성으로 볼 때 잘 만든 게임이다. 유명 영화의 프랜차이즈라고 해서 좋은 점수를 줄 필요도 없지만 똑같은 이유로 평가절하될 이유도 없는 게임이다. 반지의 제왕의 팬이든 아니든 핵 앤 슬래쉬 액션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추천이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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