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싱게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 필수요소는 사실성과 아케이드성이다. 한쪽을 너무 강조하면 다른 하나가 아쉬운, 어쩌면 드라이빙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의 고질적인 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두 가지 필수요소에서의 줄타기는 항상 개발사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로 남아온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이 줄타기의 가장 어설픈 사례를 보여준 작품이 바로 ‘니드 포 스피드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비록 원작은 창대하였으나 태어나는 자식마다 속을 썩이는 통에 결국 개발사의 해체까지 부른 저주받은 명작. EA의 가장 큰 무기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자본력을 이용한 차량 라이센스의 획득으로 슈퍼카를 안방에서 몰아볼 수 있다는 매력은 그나마 게임성이 받쳐준 니드포스피드 1편과 포르쉐 언리쉬드에서만 빛을 발했을 뿐, 그다지 사실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아케이드성이 뛰어나지도 않은 시리즈들은 2002년에 출시된 ‘무한질주 2’에서 종말을 맞고야 만다.
그러나 시리즈 제작중단 위기에서 캐나다에서 신설된 EA블랙박스가 새로이 만들어낸 ‘니드 포 스피드: 언더그라운드(이하 언더그라운드)’는 포르쉐 언리쉬드에서 끊긴 시리즈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은 물론, 레이싱게임에서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어설픈 줄타기를 버리고 완전히 ‘아케이드’를 선택한 EA의 새로운 도전은 스트리트 레이싱이라는 하나의 문화코드를 최고의 센스로 마무리했다.
미친 젊음의 질주
언더그라운드를
가로지르는 핵심은 바로 ‘스피드’다. 니트로 가스를 켜고 엄청난 스피드로 도시를
질주할 때 모션블러(화면이 부옇게 흐려지는 효과)로 지나쳐가는 배경은 게이머로
하여금 실제 스포츠카에서 달리고 있는 듯한 속도쾌감을 부여한다.
이러한 효과는 ‘드래그 레이싱’이라는 직선도로에서의 가속을 다투는 경주모드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데, 적절한 타이밍에서 니트로 가스를 발산하며 최고 속력으로 달리는 기분이란 방안에서조차 머리카락이 날릴 정도의 강렬한 느낌을 준다. 물론 뛰어난 기어변속 능력과 적절히 받쳐준 튜닝만이 1위의 영예를 안겨주겠지만 말이다.
이 외에도 언더그라운드는 다양한 게임모드의 제공으로 전작에서 느낄 수 없었던 신선한 재미를 주고 있다. 일반적인 레이싱장르에서 볼 수 있는 랩 타임(코스를 한바퀴 돈 시간) 합산개념의 서킷 레이싱과 특정 도시에서 지정된 지점을 가장 최단 시간내에 달려야하는 스프린트 레이싱, 원형의 트랙에서 드리프트를 시험하는 드래프트 레이싱, 서킷 레이싱에서 선두와 뒤쳐진 차량을 가차없이 탈락시키는 넉 아웃 등 다양한 종류의 모드를 제공한다. 코스 역시 리버스코스를 포함하면 반복된다는 느낌은 들지 않을 만큼 충분한 양이다.
전작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모드의 지원이라지만 무엇보다도 게이머를 이 작품에 끌어당기는 가장 큰 매력은 게임의 제목이기도 한 ‘언더그라운드’ 모드다. 영화 패스트&퓨리어스(분노의 질주)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언더그라운드 모드는 그동안 니드 포 스피드의 팬들이 아쉬움을 느껴왔던 일종의 스토리 모드라고 할 수 있다.
무려 111개의 코스를 밟아올라가는 언더그라운드 모드에서는 스타일리쉬한 레이스를 펼쳤을 때 게이머가 얻는 스타일 포인트와 경주 우승시에 얻는 자금으로 자신의 차량을 튜닝해나가며 스트리트 레이싱 대부의 꿈을 펼쳐나가게 된다. 180km로 질주하는 컴퓨터 레이서들이 중앙분리대에 부딪치고도 금새 게이머의 차량 뒤를 추격하는 황당한 인공지능이 거슬리긴 하지만 어찌하랴 언더그라운드의 컨셉이 이와 같은 비현실적인 스피드에 맞춰져 있는 것을… 단 한번의 실수 때문에 꼴찌로 추락하는 장면을 보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경우가 많겠지만 그 또한 111 고개의 산을 넘는 언더그라운드의 묘미라고 생각하는 게 차라리 속편하다.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이전의 시리즈에서 볼 수 있었던 프로토타입이나 슈퍼카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실제 튜닝매니아들에게 인기를 끄는 ‘값싸고 호환성(?)이 높은’ 토요타, 스바루, 미츠비시와 같은 일본자동차들이 대거 등장한다. 비록 레이싱자체는 비현실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언더그라운드의 또 다른 묘미 중의 하나인 ‘튜닝’만큼은 높은 현실성을 보여준다. 차량 한대를 꾸밀 수 있는 조합이 710억가지라고 하니, 그란투리스모 수준까진 못되더라도 튜닝매니아들에게 제법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레벨이 아닌가. 금호타이어 등 국내업체를 비롯 MOMO, 뉴스피드, 나이트로스 익스플레스, 터보네틱스, 오디오반 등 유수의 애프터마켓 부품을 활용한 튜닝모드는 언더그라운드를 색다른 레이싱게임으로 만드는 데 일조를 하는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나름대로 자신의 색깔을 찾은 게임
게임을
접하지 못한 게이머를 위해 언더그라운드를 다르게 표현하자면 영화 패스트&퓨리어스를
배경으로 한 ‘미드나잇 클럽 2 + 스트리트 리갈 레이싱’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시리즈 초기에 보여줬던 시뮬레이션적인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대신 아케이드라는
묘미를 ?EA 특유의 센스로 깔끔하게 마무리 한 언더그라운드는 맛을 보면 볼수록
명품의 향기가 진하게 묻어나오는 작품이다.
강렬한 하드코어풍의 힙합사운드와 함께하는 스트리트 레이싱. 비록 피파2004만큼 잘 짜여진 네트워크 시스템은 아니지만 PC유저와 PS2유저가 맞붙을 수 있는 온라인 매치 플레이와 함께 늦은 가을 저녁의 밤거리를 달려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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