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리뷰 > 리뷰 >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시계(페르시아의 왕자: 샌드 오브 타임)

/ 1

빛과 모래의 향연, 페르시아의 왕자

2003년은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서 유달리 복고의 바람이 거센 한해인 것 같다. 새로운 장르에서 더 이상 새로운 느낌을 받지 못하는 세대가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되는 시점에서, 확실한 수익을 약속받아야 하는 문화 컨텐츠 산업으로서는 자연스럽게 과거의 프랜차이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함정이 설치되 있는 미궁을 지나 목적지에 도달하는 게임, 이른바 난관 돌파형 장르는 게임 중에서도 고전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초창기 닌텐도의 동킹콩이나 캥거루 복싱, 왕가의 계곡(King's Valley)등 수많은 게임들은 게임 내에 설치된 다양한 장치들을 효과적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말이다. 물론 초창기의 이러한 장르는 기술적 한계로 인해 각 함정이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각 함정이 보다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게임은 퍼즐 장르로 이전되었고 난관 돌파형 게임은 점차 전투 위주의 액션으로 발매되게 된다.

이러한 와중에 발매된 페르시아의 왕자는 게임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유기적인 퍼즐 위주의 자연스러운 액션과 단순하지만 나름대로 심오한 전투는 이제까지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졌었던 가장 고전적인 장르의 부활선언이었다.

페르시아의 왕자는 이후 발매된 다양한 액션게임(툼레이더 등)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시계는 분명 전편을 계승하고 있지만 난관돌파형 액션게임이라는 점과 배경 설정을 제외하곤 전혀 새로운 게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난관돌파형 액션게임 자체가 드문 상황에선 이러한 시도가 무척이나 ‘페르시아의 왕자’스러운 느낌을 주긴 하지만 말이다.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시계는 권력에 눈이 먼 궁중마법사의 계략으로 인해 황폐해진 성과, 이를 배경으로 주인공이 펼치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시간의 모래시계가 폭주해 궁궐안의 사람들을 괴물로 변화시키고, 생존자중 한 사람이자 왕자인 주인공이 복수를 위해 마법사를 찾아가는 것이 게임의 전반적인 흐름이다.

스토리에서 뭔가 대단한 드라마를 기대해볼 수도 있을 테지만, 이 게임을 기획한 사람은 적어도 스토리 면에선 분명 ‘단순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원칙에 무척이나 충실했던 것 같다. 플레이스테이션 2의 이코(ICO)를 철저히 밴치마킹해 세계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일본 특유의 감성은 철저히 배제하는 한편, 적막한 성체를 무대로 액션을 펼치는 부분은 최대한 부각시켰다.

어찌 보면 이코가 페르시아의 왕자를 먼저 따라한 것이겠지만 ‘어둠속의 나홀로’ 최신작이 ‘바이오 하자드’를 다시 벤치마킹 했듯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시계 역시 이코라는 대작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서양인의 시각에서 요르다라는 소극적 히로인은 답답하게 느껴진 탓일까.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시계의 여주인공은 전투에도 참가하고 한사람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적극적인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다.

빛과 모래의 향연

이 게임을 평가하면서 그래픽에 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시계의 그래픽은 무척 아름답다. 엔비디아에서 수개월에 걸쳐 연구한 ‘빛의 형광효과 라이브러리’를 최대한 응용하여 사막 한가운데의 적막한 고성 분위기를 훌륭하게 연출하고 있다. 이 게임의 시각적인 구성요소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요소는 바로 ‘빛과 모래’다. 뿌연 모래먼지와 이를 가르는 빛의 표현은 황폐하고 적막한 고성에서 일순 평화로운 느낌마저 들게 한다.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웅장한 페르시아 양식의 건축물을 배경으로 금방이라도 부서져 나갈 것 같은 퍼즐 장치에 구차한 목숨을 의존한 모습은 분명 플레이어에게 독특한 느낌을 들게 할 것이다.

특히 세이브 포인트나 각 퍼즐의 목적지에서는 신비한-마치 그곳에 도달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만 같은 희망적인-광체가 흘러넘치기 때문에 절망적인 상황에서 너무도 뚜렷이 보이는 명확한 답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다만 문제라면 어둠속에서 멀리 보이는 빛의 방향이 너무도 뚜렷해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빛으로부터 등을 돌리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해답이 너무도 명쾌하게 보이면, 오직 그것을 향해 똑바로 걸어가는 것만이 옳은 방법인 것처럼 느껴지게 마련이다. 페르시아의 왕자 : 시간의 모래시계에서 ‘빛’은 게임의 분위기를 살려줌과 동시에 플레이어에게 임무를 부여해주는 두 가지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어두운 통로를 걷는 와중에 무너진 벽 틈사이로 들어오는 한줄기 빛은 게이머에게 여러 가지 복잡한 감회를 줄 것이다.

모래는 이 게임을 꿰뚫고 지나가는 중요한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의 모래시계가 파괴되면서 성 곳곳에 퍼진 모래는 빛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게임 전반의 분위기를 살려주고 있다. 또한 모래는 주인공의 가장 든든한 아군이면서 동시에 최악의 적이기도 하다. 모래는 물리쳐야 할 대상이자 모아야 할 귀중한 아이템이다. 때문에 모래는 때론 불쾌한 먼지처럼, 때론 빛나는 황금처럼 묘사된다.

아크로베틱은 왕자의 필수교양?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시계를 진행하다보면 주인공의 직업이 왕자인지 체조선수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어쩌면 페르시아의 왕가 교육과정엔 아크로베틱이 필수로 포함되어있는지도 모르겠다. 몇 단계에 이르는 기둥사이를 원숭이처럼 돌아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각종 철봉과 외다리 타기, 벽타고 걷기, 공중 도약 등 평범한 인간은 범접할 수도 없는 고난이도의 테크닉을 게임 내내 구사한다(게다가 체력이 떨어져도 물 한모금만 마시면 완전 회복).

이쯤 되면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퍼즐도 능히 해쳐나갈 수 있는 기본 요건은 갖춘 셈이다. 게다가 초중반부터 함께 다니게 될 공주는 벽의 갈라진 틈이나 개구멍 등 덩치 큰 왕자는 지나갈 수 없는 부분에 접근하여 게임을 풀어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때문에 더 이상 게임을 진행할 수 없을 때는 공주의 역할을 염두에 두자.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시간의 단검이라는 맥스 페인과 매트릭스를 섞어놓은 듯 한 아이템이 등장하는데, 이를 이용하여 게이머는 시간을 뒤로 돌리거나 느리게 할 수 있으며 일시적으로 정지시킬수도 있다. 시간의 단검은 충전된 모래를 이용하기 때문에 이 게임에서 모래의 확보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전반적으로 낮은 게임 난이도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시계는 시간의 단검 때문에 난이도가 크게 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물만 먹으면 체력이 회복되는 왕자의 왕성한 체력과 세이브 포인트에서 제공되는 게임 힌트 때문에 난이도는 더더욱 떨어졌다. 액션도 까다로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정밀한 손놀림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시간을 충분히 투자한다면 누구든 엔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선하지 않지만 신선한 게임

엄밀히 말해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시계는 새로울 것이 없는 게임이다. 난관돌파형 액션게임이 새로운 장르도 아닌데다가 게임 자체가 속편이다. 또한 게임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장치나 요소, 설정이 이미 다른 게임에서 등장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요소를 아름다운 그래픽과 뛰어난 조작성으로 포장해 근래에 보기 힘든 장르로 담아냈다는 것은 게이머에게 충분히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갈 것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공유해 주세요
게임잡지
2006년 8월호
2006년 7월호
2005년 8월호
2004년 10월호
2004년 4월호
게임일정
2024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