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0년대 루카스아츠엔터테인먼트(루카스아츠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월 루카스필름에 병합되면서 사명을 루카스아츠로 변경했다)를 통해 발매됐던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들의 제작을 로렌스 홀랜들르 필두로 한 현재의 토탈리게임즈 소속 개발자들이 전담했었다는 것은 PC 게임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갖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토탈리게임즈는 루카스아츠엔터테인먼트의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 제작팀 출신개발자들이 1995년에 설립한 독립 개발사다).
<노르망디의 비밀병기>는 토탈리게임즈가 독립개발사의 명패를 내걸고 지난 2002년 7월부터 1년 여에 걸쳐 제작한 다섯 번째 게임으로 1991년 동서게임채널을 통해 국내 발매됐던 비행 시뮬레이션게임 <루프트바페의 비밀병기>를 전신으로 하고 있다. 일부 게이머들은 이 게임의 개발사가 토탈리게임즈이고 <루프트바페의 비밀병기>의 속편 격이라는 두 가지 사실만으로 섣불리 이 게임을 비행 시뮬레이션으로 판단하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르망디의 비밀병기>는 루카스아츠가 발표한 정교한 조작과 사실성에 무게를 둔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과는 거리가 먼, 단순히 적을 조준하고 사격하는 액션형 비행 시뮬레이션 형태를 취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의 가상 공중전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게임은 1939년부터 1954년까지 유럽 전 지역을 전화로 몰아넣었던 2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하고 있다. 플레이어는 영국공군에 파견된 미 공군의 전투기 조종사 ‘제임스 체이스’로서 최고의 성능을 갖춘 연합군의 비밀병기를 조종해 독일군과 일본군을 무찔러 2차 세계대전을 종전으로 이끌어야 한다.
게임의 스토리라인은 유럽과 태평양을 걸쳐 진행되며 작전과 관련된 전황은 임무수행 직전 주인공이 자신이 일기를 독백으로 읽어 내려가는 형식으로 전해진다. 미션은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주목표와 상황에 따라 선택해서 수행하는 보조목표로 나뉘어져 있으며 대부분 단선적인 구조로 짜여있다. 덕분에 플레이어는 눈에 보이는 적기나 적함 등을 파괴하는 것만으로 손쉽게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단순무식하게 적을 물리치고 기지로 귀환하는 식은 아니다. 미션은 중간에 아군기지에 착륙해 무기와 연료를 보급 받고 전투기를 수리하거나 아군과 합동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등의 전략적인 요소도 포함하고 잇다. 이는 다년간 비행시뮬레이션게임만을 전문으로 제작해온 토탈리게임즈의 역량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플레이어는 임무를 완수하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서 업그레이드 포인트를 얻고, 숨겨진 전투기 및 폭격기를 사용할 수 있으며, 제작에 참여했던 개발진의 인터뷰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이부분에서도 토탈리게임즈의 노련함을 확인할 수 있다. 토탈리게임즈는 그간 동종 게임들의 오랜 숙제 중 하나인 난이도 조절 문제를 업그레이드 포인트 시스템으로 매끄럽게 해결해냈다.
동종 게임들은 지금까지 옵션 메뉴에서 난이도 조절 옵션을 제공하는 방식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노르망디의 비밀병기>는 플레이어가 임무를 완수하고 수행 능력에 따라 보상으로 받는 업그레이드 포인트를 격납고에서 대기중인 전투기에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목표 완수가 수월해질 수도, 어려워질 수도 있게끔 해놓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마니아와 캐주얼 게이머냐에 따라 상반된 반응을 보이겠지만, 장단점을 따지기 전에 이러한 난이도 조절 방식을 도입한 토탈리게임즈의 능력은 높이 살만하다.
과거 전쟁을 소재로 한 게임을 개발한 경험이 풍부한 개발자들이 만든 게임답게 <노르망디의 비밀병기>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과 태평양 상공을 누볐던 다양한 병기들이 등장한다. 토탈리게임즈는 실제로 현존하는 역사자료와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해 그 당시 활약했던 무기와 전투의 주무대가 된 유럽과 태평양 지역을 3D 그래픽으로 훌륭하게 묘사해냈다.
토탈리게임즈는 각각 영국식 영어와 독일어, 일본어를 구사하는 성우를 기용해 음성을 녹음했으며 게임 내에서 제작에 참여한 개발자와 무기전문가 및 실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활약했던 파일럿의 육성 인터뷰를 담은 동영상을 제공하는 세심한 배려 또한 잊지 않았다. 게임의 배경음악은 <메달 오브 아너> 시리즈와 <콜 오브 듀티>의 배경음악을 담당한 바 있는 마이클 지아치노가 맡아 한층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멀티플랫폼 개발정책의 희생양?
2차 세계대전의 공중전의 재현이라는 본래의 목표를 충실히 완수하고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했다는 점에 있어서 <노르망디의 비밀병기>는 높은 평가를 받을만하다. 그러나 게임의 재미를 저해할만한 몇가지 단점은 적지 않은 아쉬움을 남긴다.
우선 게임의 조작이 난해하다. <노르망디의 비밀병기>는 최근 북미에서의 콘솔게임 강세 탓인지 Xbox 버전을 기준으로 개발된 흔적이 역력하다. 이 때문에 조작이 PC에 완벽하게 최적화되지 않아 키보드로 조작하기가 쉽지 않다. 불행 중 다행으로 비행시뮬레이션 전용스틱과 패드, 스로틀 및 페달까지 지원하지만 이러한 고가의 컨트롤러를 모두 갖춘 게이머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하드웨어 최적화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도 지적할만한 사항이다. 펜티엄 4와 128MB 3D 그래픽카드를 갖춘 시스템에서도 게임진행이 원활하지 못할뿐더러 그래픽 성능 옵션을 낮춰도 프레임레이트는 변한없어 보인다. 최근 발매된 리메디의 액션게임인 <맥스페인 2>를 같은 사양에서 원활하게 플레이할 수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토탈리게임즈의 노력에 의구심을 가질 만하다. 한편 Xbox 버전은 지원하는 5.1채널 사운드가 완전히 누락됐다는 점도 아쉽다.
자신이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비행전투게임의 팬이거나 토탈리게임즈의 역작 <윙 커맨더> 및 <스타워즈: X윙> 시리즈의 속편을 기대했던 게이머라면, <노르망디의 비밀병기>는 적어도 심심풀이로 즐길만한 게임은 될 것이다. 단 굳이 이 게임을 꼭 해보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필자는 여건이 되는 한 PS2 또는 Xbox 버전으로 플레이할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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