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기 에반게리온’. 하나의 신드롬을 일으킨 이 전설적인 애니메이션의 시작은 그리 순탄치 만은 않았다. 난해한 이야기 구조와 복잡한 심리묘사, 세기말적인 암울한 분위기로 인해 도쿄TV에서 95년 첫 방영 당시 매우 저조한 시청률을 보이면서 제작사인 가이낙스와 감독인 안노 히데야키에게 엄청난 액수의 빚을 떠안긴다.
▲ 2003년에 출시된 HD급 영상으로 다시 리뉴얼된 DVD. 과거 작품을 DVD로 리뉴얼해서 판매하는 상술... 아니 시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만큼 에반게리온의 인기는 지금도 대단하다 |
▲ 리뉴얼 DVD출시와 동시에 헐리우드에서 영화화하기로 한 에반게리온 실사판. 영화 반지의 제왕의 특수효과를 담당한 웨타 워크샵에서 제작된다 |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감독의 근성에 하늘도 감동한 탓일까? 자칫 어둠 속으로 사라질뻔한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방영을 거듭할수록 시청률이 상승, 작품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경이로울 정도의 시청률을 보이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시청자들의 쇄도하는 요청으로 인한 재방영 후에도 경이적인 시청률과 인기는 더해 에바신드롬이라고 불리는 사회현상까지 불러오기에 이른다.
작품이 완결된 이후에도 그 인기는 식을 줄을 몰라 다양한 관련상품들이 나왔는데 PC게임분야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강철의 걸프렌드’, ‘육성계획’ 과도 같은 걸출한(?) 시리즈를 출시하게 된다.
▲ 강철의 걸프렌드의 히로인 마나(미나) |
▲ 최초의 육성계획 시리즈인 레이육성계획 |
이번에 다룰 작품은 육성계획 시리즈의 최신작 ‘신세기 에반게리온: 신지 육성계획’으로 ‘레이’, ‘아스카’에 이어 주인공인 ‘신지’를 육성하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무려 남자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_-).
What If…
육성계획 시리즈의 매력은 무엇일까? 바로 ‘만약에’일 것이다. 원작과 동일한 내용의 흐름을 갖고 있는 육성계획 시리즈는 원작과 동일한 흐름을 따라갈 수도 있지만 게이머의 선택에 따라 좀 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이 가능하다.
가령 게이머가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미사토에게 원작에서는 화를 내는 부분을 게임에서는 따뜻한 말을 건내게 하는 부분으로 변경하는 것만으로 원작에서는 가출했던 신지가 방안에서 친구들과 전화통화를 하는 내용으로 바뀌는 식이다.
신지의 스케줄과 육성방향 역시 원작의 내용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부분. 스케줄을 조정하여 특정인물과의 호감도를 높여주면 원작에서 볼 수 없었던 스토리의 변화가 나타날 뿐만 아니라 육성방향에 따라 같은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반응을 볼 수 있다.
새롭게 게임을 시작해도 조금씩 다른 이야기로 게임을 즐겨볼 수 있고 원작의 염세적인 분위기도 상당히 순화됐기 때문에 육성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들 역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원작과 동일한 결말 혹은 완전히 다른 결말을 볼 수도 있다 |
국내환경에는 다소 이질적일 수 있는
레이, 아스카 육성계획에 이은 3번째 작품에서 남성 주인공인 신지가 등장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덕분에 3편의 육성계획 시리즈 중 가장 원작에 가까운 느낌으로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게임을 주로 즐기는 층인 남성게이머들에게는 묘한 거부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동성캐릭터에 대한 거부감의 차이는 남성과 여성의 심리적인 구조차이로 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남성캐릭터인 ‘카오루’와의 이벤트들은 동인작품에 관심이 없는 남성게이머(이 작품의 타겟층을 감안한다면 매우 드물겠지만)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 여기까지는 양호하다... |
물론 많은 여성캐릭터들과 이벤트가 등장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피한다면 피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특전인 ‘카오루 양성계획’은 다분히 동인활동을 하는 층을 노렸다고 볼 수 없는 내용으로 보인다.
▲ 특전인 카오루 양성계획에서 이 게임의 본격적인 실체가 들어나기 시작한다(-_-;;) |
다행인 것은 일반적인 게이머가 허용할 수 있는 부분과 동인 게이머들이 허용할 수 있는 한도가 어느정도 적정선을 긋고 있어서 프린세스 메이커(이하: 프메)를 즐겨하는 게이머들과 에반게리온 마니아, 동인 게이머들 모두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 남성게이머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지는 않으니 너무 실망말도록...-_-; |
제 3 자의 시각
한가지 흠은 육성시뮬레이션임에도 불구하고 큰 감정몰입도가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주인공이 남자라 그렇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_-).
몰입도가 생기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게이머의 시점이 이전 육성시리즈, 혹은 프린세스메이커의 육성하는 자가 아닌 육성하는 자인 미사토와 떨어져있다는 느낌을 많이 주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국내에도 발매된 바가 있는 ‘레이 육성계획’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게이머는 레이를 가르치는 교관의 입장에서 여러가지 이벤트를 겪으면서 자신이 직접 그 이벤트들을 즐기는 기분으로 큰 몰입도를 얻을 수 있었던 반면 신지육성계획은 게이머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미사토라는 캐릭터가 완벽한 게이머의 분신이 아닌 원작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육성자가 자기 자신이라는 몰입도를 얻기가 쉽지 않다.
어찌보면 미사토&신지 육성계획이라는 형태에 가까워 단지 제 3자의 입장에서 이야기의 흐름에 조금씩 영향을 준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아쉬움을 남기는 부분이다.
▲ 게이머가 레이의 담당자가 되어 1:1로 마주하던 레이육성계획과 달리 |
▲ 신지 육성계획의 경우 미사토를 조작해 신지를 키우는 방식이라 오히려 비주얼 노벨같은 느낌을 준다. 장점은 원작의 느낌을 크게 해치지 않는다는 점 |
오랜만에 즐겨 볼만한 프메식 육성시뮬레이션
신지가 육성의 대상이라는 점이 다소 남성게이머들에게 부담스러운 점이 없잖아 있지만 조금만 거부감을 억누르고 게임을 진행하면 아기자기한 게임 구성에 쉽게 흥미를 느낄 수 있다.
프메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교육방식과 스케줄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캐릭터간의 호감도가 변해가는 점은 마치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와 흡사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다소 출시가 뜸했던 일본식 육성시뮬레이션을 그리워한 게이머들에게 신지육성계획은 오랜만에 재미있게 즐길만한 게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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