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몰리뉴의 새로운 방향전환
‘더 무비’는 2005년에 출시된 피터 몰리뉴의 3번째 작품이다. 피터 몰리뉴의 작품은 ‘파퓰러스’, ‘던전키퍼’, ‘블랙&화이트’ 등에서 볼 수 있듯 게임을 진행하는 사람의 도덕성과 자율성에 영향을 받아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게임 환경을 중요시한다.
▲ 선과 악. 게이머가 추구하는 게임방식에 따라 변화하는 게임 환경이 피터 몰리뉴 작품의 특징 |
‘선’과 ‘악’에 따라 변화하는 이야기의 구조는 게이머의 자율성에 맞춰 같은 게임을 하더라도 각기 다른 유사체험을 하도록 추구했는데, 이는 게이머의 행동이 NPC 그리고 게임의 스토리에 변화를 주는 ‘페이블’의 기획과 게이머의 교육방식에 따라 변화하는 ‘블랙&화이트’ 시리즈의 크리쳐 인공지능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 누군가를 죽이고 살리느냐에 따라 특정 NPC와 은인 혹은 원수의 관계가 돼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즐길 수 있었던 페이블. 게이머의 행동에 따라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만드는 컨셉이었지만,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정해진 플롯에 따라 좀 더 많은 이야기 분기를 갖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
‘더 무비’는 진행하는 방법에 따라 차곡차곡 쌓인 정보가 게임 내 환경을 점차 변화시키는 기존의 방식에서 직접 게이머가 영화를 제작하고 그것을 온라인상에 공유할 수 있게 함으로써 어떤 의미로는 게임을 접하는 게이머마다 완전히 다른 유사체험을 겪고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게임으로 방향을 바꿨다.
게임의 진행은 일반적인 타이쿤(경영) 방식의 게임과 흡사하다. 1920년의 헐리우드를 기점으로 시작되는 싱글 시나리오는 다른 영화사들과 경쟁하며 자신의 영화사를 헐리우드 최고의 영화사로 만드는 목표로 진행되며, 1990년대까지 분기별로 존재하는 영화제에 우승하고 새로운 기술들을 다른 영화사보다 빨리 습득해 발전시켜야 한다.
건축사와 관리인처럼 스튜디오를 운영하기 위한 기본적인 직원, 영화를 찍기 위한 배우와 감독, 엑스트라는 기본이고 시나리오 작가, 기술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연구원까지 매우 다양한 직원들을 이용해 게임을 진행해야 한다.
영화의 제작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의 시나리오와 세트장을 준비하고 완성된 시나리오에 맞는 배우를 물색하고 촬영을 시작하면 OK. 그 과정은 매우 단순하지만 완성된 영화가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신경써야한다. 배우의 컨디션과 명성, 해당 장르에 대한 경험은 기본이고 해마다 바뀌는 특정장르의 붐을 미리미리 파악해 작품을 준비해야 한다.
▲ 시대상황에 맞는 영화장르를 파악해야 한다. 화면상단에 위치한 시대 바를 유심히 살피는 것만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
스튜디오의 순위와 배우의 유명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경 쓸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단순한 조경 문제부터 시작해 시간이 지나면서 노후화되는 건물의 유지 또한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명성이 올라감에 따라 함께 상승하는 스타의 요구사항들과 중독증상 같이 신경써야할 일이 지속적으로 늘어간다.
이러한 사항들과 더불어 게임의 난이도를 올리는 것은 매우 제한적인 인력수요다. 스튜디오의 직원들은 단지 돈을 주고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과 같이 양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때그때 지원하는 제한된 직원들을 고용해야 한다. 그것도 초반부터 스튜디오의 명성이 낮으면 지원자도 적기 때문에 초반의 부진은 후반부에도 지속적인 부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매우 높다. 장르에 대한 경험은 기본이고 해마다 바뀌는 특정장르의 붐을 미리미리 파악해 작품을 준비해야 한다.
▲ 어디는 인력공급이 과잉이라 문제인데 여긴 인력공급이 부족해서 문제다 |
사실 이런 타이쿤 적인 재미요소는 ‘더 무비’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가장 큰 요소기도 하다. 후반부로 진행해도 크게 변하지 않는 경영요소는 오히려 게이머가 신경을 써야할 부분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영화의 주된 재미가 되는 영화제작보다 그 외적인 요소들로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부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 블랙&화이트 시리즈와 유사한 인터페이스는 편리하지만 일일이 인부를 들어서 건물근처에 놓아 건물을 옮기고 파괴해야하는 기능은 ‘짜증’을 유발시킨다 |
그렇다고 다른 타이쿤이나 혹은 ‘심즈’ 시리즈와 같이 다양한 이벤트가 발생해 재미를 주는 것도 아닌 단순한 패턴반복에 지나지 않아 게임을 지루하게 만드는 것에도 일조한다.
▲ 비슷한 시기에 출시한 블랙&화이트 2와 비교하면 굉장히 쾌적한 플레이가 가능한 ‘더 무비’. 겉만 번드르르하고 속은 텅 빈 건물 탓도 있겠지만 NPC들의 인공지능 자체가 매우 단순하다는 부분도 한몫하고 있다(애완동물과 개미의 차이) |
모래상자
모드, 그리고 커스텀 영화제작
이런 부진한 타이쿤 요소는 모래상자 모드를 통해 어느 정도 해결책을 구하고 있다. 프리 플레이 모드인 모래상자 모드는 게이머가 원하는 시대배경과 자금력을 갖추고 게임을 시작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 또한 지루한 영화촬영 과정 역시 인스턴트 기능을 사용하면 스킵할 수 있어 게임의 주된 재미인 ‘영화제작’에 온 힘을 다할 수 있다.
게임의 제목 그대로 더 무비는 매우 특별하고 매우 세세한 영화제작 모드를 지원하고 있다. 물론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은 굉장한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단순히 타이쿤 게임을 즐기고 싶은 유저들은 NPC 작가들이 만들어 내는 작품을 감상하는 것으로 충분하겠지만 조금만 신경 쓰면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
▲ 번거로운 걸 싫어하는 게이머들에게는 본래 재미의 50%도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 단점. 말이 좋아서 게임이지 어떻게 보면 영화제작용 교육프로그램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기 앞서 사전에 제작되는 콘티북을 본적이 있는가? 흔히 말하는 막대인간(?)들이 나와 각종 자세를 잡으며 배우들의 연기나 촬영시의 카메라 앵글 등을 지시해주는 일종의 매뉴얼인데, 영화제작의 가장 기본은 바로 그 콘티 컷을 짜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고급 영화 제작툴을 이용해 배우와 장르를 결정하면 기승전결의 기본 4컷으로 구성된 일종의 비어있는 필름을 볼 수 있다. 그 안에 사전에 만들어진 컷을 넣음으로써 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
각 컷들은 자신이 직접 지시해 만드는 것이 아닌 미리 만들어진 컷들을 연결해 넣음으로써 만들어지는데, 상황과 장르에 따라 상당히 많은 컷들이 준비돼있기 때문에 조금만 신경 쓰면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집어넣은 컷 안에서 배우의 행동(살살 때리기, 과격하게 때리기 같은 식의)과 여러 가지 연출효과 역시 조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상당히 번거로운 작업이지만 조금만 시간을 투자해보면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을 투자해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렇게 제작된 영화는 이후 편집 작업을 통해 자막과 음성, 배경음악 등을 삽입할 수 있고 라이온헤드에서 준비한 더 무비 온라인이라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직접 올리거나 따로 동영상 파일로 추출해 자신의 친구에게 자랑할 수도 있다.
▲ 제작한 영화는 무비메이커를 통해 감상 및 추출이 가능하다 |
양날의
검을 지녔지만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
더 무비가 추구하는 재미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자신이 가진 생각을 표현하고자 시간을 투자하고 영화를 제작하는 것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게이머에게는 굉장히 멋진 게임이 될 수 있지만, 단순히 타이쿤(경영) 게임을 즐기는 것에 만족하는 게이머에게는 다소 부족하거나 비슷한 장르의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작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굉장한 노력을 요구하는 고급 영화 제작 툴은 게임의 재미를 반감시키거나 게임을 그만둘 때까지 거의 만지지 않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더 무비는 과거 광활했던 서부개척시대의 황야와 비슷한 점을 갖고 있다. 겉만 보면 그냥 지루하게 끝없이 펼쳐진 황야와 같지만 그 안에 감춰진 황금을 찾기 위해서는 끝없는 개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게임이 매우 매력적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단순한 소비자의 역할에서 직접 개발자의 역할에 참여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 시점을 시작으로 좀 더 편리하고 쉽게 게이머들이 갖고 있는 끼를 표출시킬 있는 제 2의 ‘더 무비’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 단순히 타이쿤 + 영화 만들기(쯔꾸르) 콤보셋트라고 말해도 할 말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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