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서 플롯(Plot)을 찾아보면, ‘소설 ·희곡 ·각본 등의 이야기를 형성하는 줄거리 또는 줄거리에 나오는 여러 사건을 하나로 짜는 작업과 그 수법.’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말하자면 ‘플롯’은 유기적으로 얽혀 하나의 완결을 이루는 줄거리를 의미하는데, ‘역할놀이’가 중시되는 RPG장르에서 이 ‘이야기’의 중요성은 두 번 말할 필요가 없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는 앞 뒤로 배치된 인상적 사건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엮어내느냐에 따라 달렸다. 속되게 말해 ‘구라를 잘 푸는’ 사람들이 이런 능력이 뛰어나다. 하다못해 친구와 술을 마시며 군대 이야기를 할 때도 중간중간 ‘구라’를 적절히 쳐주는 것이 신뢰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잡설이 길었다. 말하고 싶었던 것은 잘 짜여진 이야기는 RPG의 기본이자 필수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14~17일 첫 테스트를 실시한 ‘사일런트 플롯1(이하 SP1)’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 ‘SP1’의 플레이 동영상. 전반적인 게임의 내용이 담겨있다.
프로의 냄새가 나는 퀘스트 시스템
‘SP1’은 개발단계에서부터 전문 시나리오 작가 출신 스텝을 참여시켜 싱글플레이 부분까지 따로 기획할 만큼 줄거리 부분에서는 준비를 철저하게 해왔다. 퀘스트를 통해 단서를 확보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형식의 진행은 (당연히!) 게임에 대한 몰입감을 높여준다. 게임을 진행하면 할수록 조금씩 풀어지는 이야기 보따리에 앞으로 더 나아갈 동기를 부여 받는다.
첫 테스트에서는 주로 게임의 분위기와 배경을 알 수 있게 해주는 퀘스트들이 등장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이 도시에 얼마 전부터 이상한 분위기가 돌고 있다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의 정신상태가 이상해지고 있어. 어디어디로 가서 누구를 만나보게.” 그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그는 또 현상에 대한 단서를 슬쩍 흘리고 사소한 부탁을 한다. “난폭해진 주민들을 피해서 나오느라 중요한 내용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놓고 왔어. 자네가 좀 찾아주게.”
▲ 부탁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게임은 재미있다? |
글로 읽으면 별 것 아닌 듯 싶지만, 거의 모든 퀘스트들이 이런 식으로 그럴듯하게 이어지도록 디자인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또 퀘스트 중간중간 돌발적으로 이어지는 부수적인 보상 퀘스트들과 전화부스를 이용한 의뢰 퀘스트 역시 게임의 분위기와 전체 설정에 잘 녹아있다. 최근 선보인 한국게임에서 이 정도로 잘 짜여진 이야기 구조를 가진 게임은 드물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SP1’에서 이번에 선보인 퀘스트시스템은 크게 ‘일반퀘스트’와 ‘폰부스퀘스트’로 나눠졌다. 일반퀘스트 시스템은 ‘SP1’의 주요 줄거리를 따라가며, 어느정도 레벨이 오르게 되면 전화부스를 이용해 ‘의뢰’를 받는 ‘폰부스퀘스트’가 가능하다. 거리의 메신저로부터 전화번호를 받아 근처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면 의뢰인과 통화가 가능하며, 종류에 따라 메인 퀘스트 보다 짭짤한 보상도 받을 수 있다.
개발사에 따르면 ‘폰부스퀘스트’는 다시 메신저(Messenger), 언노운 넘버(Unknown Number), 벨(Bell)로 나뉘어지는데, 좀 더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기는 언노운 넘버와 벨은 이번 테스트에서 경험하지 못했다. ‘폰부스퀘스트’에는 일일히 성우의 목소리를 입혀 게임의 분위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도 돋보였다.
▲ 포탈을 이용해 각 지역으로 넘나들 수 있다 ▲ (위)메신저에게 전화번호를 받아 (아래)의뢰인에게 전화를 걸자 ▲ (위)아빠한테 데려달라는 꼬마숙녀의 부탁을 받았지만 (아래) 폭도들의 공격으로 소녀는 그만.. |
타격감은 좋으나 좀더 다양한 움직임 아쉬워
이번 테스트에서는 블레이더, 블래스터, 히트맨 등 3가지 직업을 선택할 수 있었다. 총기류를 쓰는 블래스터와 히트맨이 도검류를 주무기로 하는 블레이더에 비해 타격감이 월등히 높았다. 특히 두 자루의 리볼버를 주무기로 쓰는 히트맨은 연사에서 뛰어난 면모를 과시했다. 아마도 테스트 기간 중 가장 사랑 받은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SP1’의 게임음악은 ‘올드보이’ 등으로 잘 알려진 최승현씨가 담당했다. 때문에 전체적으로 사운드 부분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완성도를 보이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비주얼 부문은 손봐야 할 부분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첫 번째는 캐릭터의 타격 모션이 다양하지 않다는 점인데, 블래스터와 블레이더 캐릭터에서 이런 점이 뚜렷이 나타났다. 블래스터와 블레이더의 과장된 무기가 이런 느낌을 더욱 부추긴다. 두 번째는 몹의 움직임이 획일화 되어있다는 점이다. 특히 공중에서 한 바퀴 돌며 과장되게 죽는 모습에서 이런 문제점이 두드러졌다.
챕터별로 진행되는 게임, 온라인에 최적화된 콘텐츠 개발 기대
‘SP1’은 챕터별로 진행되는 게임이다. 개발진은 지난 인터뷰에서 6개 정도의 챕터로 ‘SP1: 시즌 1’을 마무리 지을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개발진의 설명대로라면 시즌1을 클리어하는데 평균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이쯤 되면 한가지 의문이 발생하는데, 과연 6개월을 버틸 수 있을만한 규모의 콘텐츠가 준비 되어있냐는 점이다. 또 정기적으로 업데이트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지 여부도 중요하다.
한번 클리어하고 마는 패키지 게임이 아닌 이상, 이 부분은 ‘SP1’의 운명을 결정 지을 수 있는 문제이다.
일단 첫 테스트를 해본 바로는 앞으로 더 흥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고, 또 그만큼 준비도 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항상 기대(?)를 뛰어넘는 한국게이머들의 사랑은 ‘SP1’의 콘텐츠를 생각보다 짧은 시간 안에 소모시킬 가능성도 있다.
물론 ‘SP1’에도 PvP, 인던 등 MMORPG 고유의 ‘무한 콘텐츠들’은 계획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이 그저 구색 맞추기인지 아니면 싱글플레이 이상의 노력을 들인 콘텐츠일지는 아직 표면적으로 나타난 바가 없다. 다만 지금까지 과정과 결과물을 봤을 때 아마도 준비를 철저히 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훌륭한 예고편! 퀄리티 높이려는 노력 돋보여
사실 세부묘사나 콘텐츠 양에 대한 문제점을 벌써부터 지적하는 것은 좀 가혹하다. (최근 들어 그 의미가 그 의미가 훼손되긴 했지만) 테스트의 목적은 개선의 여지를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SP1’은 첫 테스트를 치룬 게임치고는 꽤나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 예고편은 훌륭했다(짝짝짝!).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본편에서도 훌륭하게 방어전을 치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진득하게 하면 ‘되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SP1’이 증명하길 바라는 것은 과한 기대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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