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 파이터4’를 이야기 하기 전에 어릴 적 이야기 하나. 아주 어렸을 때, 100원짜리 동전을 주머니에 불룩하게 집어넣고 부모님 몰래 오락실에 다닌 적이 있었다. 지린내가 나는 계단을 내려가 지하실로 들어서면, 뿌연 담배 연기와 흐리멍텅 한 형광등이 켜져 있던 그런 ‘나쁜’ 오락실이었다.
▲ 라데꾸 vs 아도겐
그 곳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들려오던 소리는 역시 ‘아도겐~’,’워류겐~’이었다. 당시 오락실의 대세이던 ‘스트리트 파이터2’ 게임기 옆에 서서,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형들의 플레이를 멍하니 바라보던 기억이 오락실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하지만 대세도 잠시 잠깐일 뿐. ‘스트리트 파이터’ 이후 수많은 격투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스트리트 파이터2’는 서서히 잊혀져 갔고, 오락실에서도 점점 보기 드문 존재가 되었다. ‘스트리트 파이터3’ 등의 후속작이 계속 나왔지만, 의외로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 때도 지금도 격투 게임 마니아가 아니라 게임의 어떤 부분이 문제였는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그런 식으로 ‘스트리트 파이터’는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추억과 현실의 교차점에 들어서다
그리고 10여년 만에 ‘스트리트 파이터4’가 다시 돌아왔다. 격투 게임의 전설이자 추억인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가 다시 돌아왔다는 말에 카메라 하나 챙겨 들고 부랴부랴 노량진 '정인 오락실'로 출동했다.
저녁 시간의 인파를 뚫고 골목 안에 있는 오락실에 들어섰을 때, 그 곳에는 추억과 현실이 교차하는 모습이 있었다. 흐릿한 형광등 불빛 아래 오락기 앞에 앉아 게임에 몰두하는 사람들. 담배 연기가 없다는 점만 빼면 어렸을 때 봤던 바로 그 오락실의 풍경이었다.
놀랍게도 오락실 안에 있는 게임기의 대부분은 격투 게임이었다. 아니 99%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2D 격투 게임의 거장(?)인 ‘KOF’시리즈부터 격투 게임의 현재를 상징하는 ‘소울칼리버’와 ‘철권’까지 갖춰져 있었다. 심지어 어렸을 때 봤던 ‘스트리트 파이터2’ 오락기들도 갖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스트리트 파이터2’ 옆에 ‘스트리트 파이터4’ 게임기 4대가 들어와 있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확 달라진 ‘스트리트 파이터4’
‘스트리트 파이터4’의 첫 인상은 ‘철권’과 참 닮아있다라는 느낌이었다. 물론 게임이 닮았다는 것이 아니고, 아케이드 기계의 모습 이야기다. 널찍한 와이드 모니터와 널찍한 기계 한 가운데에 배치되어 있는 스틱. 카드 투입구가 없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철권6’ 기계와 흡사해 보였다.
‘스트리트 파이터2’ 기계가 많이 깔려 있는 오락실이어서 그런지, (이 오락실에서 ‘스트리트 파이터2’ 대회도 열렸었다고 한다.) 아니면 신작 게임이라서 그런지 ‘스트리트 파이터4’ 게임기 주위에 서서 대전 중인 게이머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게이머들이 꽤 많았다. 어렸을 적 보았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그런 풍경을 보며 감회(?)에 젖어 있을 틈은 별로 없었다. ‘스트리트 파이터4’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우렁찬 소리에 눈을 돌리지 않을 게이머는 없을 테니까. 다른 건 다 제쳐두더라도 ‘스트리트 파이터4’ 기계에서 뿜어지는 박력 있는 효과음은 확실히 일품이었다. 격투 게임에서 중요한(?) ‘때리는’ 효과음이 너무나 실감나게 들려왔다. 좀 과장해서 웬만한 액션 영화보다 훨씬 더 실감난다고 해야할까.
‘스트리트 파이터4’의 배경이나 캐릭터 그래픽은, 역시 시대의 흐름에 맞춰 3D로 제작된 모습이었다. 그런데 조금 독특한 점이 있었다. 3D 특유의 차가운 느낌이 물씬 나는 ‘철권’ 등의 다른 3D 게임과는 달리, ‘스트리트 파이터4’는 2D 고유의 진한 색감과 굵은 선이 드러나는 3D였다는 점이다. 게임을 좀 했다고 자부하는데도 불구하고, 마땅히 비교할 게임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이런 ‘스트리트 파이터4’의 그래픽은 독특했다.
실제 게임 플레이에서 볼 수 있는 ‘스트리트 파이터4’의 화면 효과도 멋지다. ‘류’가 ‘아도겐(파동권)~’라는 대사를 연발하며 쏘는 장풍의 모습이나 ‘가일’의 ‘썸머솔트킥’을 쓸 때의 이펙트 역시 훌륭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특히 ‘류’가 필살기인 ‘진공파동권’을 쓸 때 얼굴이 수묵화 형식으로 (다시 말하지만, 3D다!) 크게 확대되어 보이는 연출은 전율마저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배경 그래픽 역시 훌륭했다. 나룻배 위에서 격투를 벌이는 스테이지에서 캐릭터가 점프 후 착지할 때 배 뒤로 물보라가 이는 모습,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는 석양의 모습 등은 보는 이에게 절로 감탄이 나올 만한 부분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스트리트 파이터4’의 그래픽은 내노라 하는 격투 게임들과 비교해도 모자랄 것이 없는 훌륭한 수준이었다.
그 때 그 캐릭터들 그대로
모름지기 오락실에 왔으면 동전을 직접 넣고 즐겨봐야 하는 법이다. 12연승, 17연승 하는 고수(?)들이 이미 몇 시간 째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지만, 당당하게 300원을 넣고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스트리트 파이터4’ 에서 고를 수 있는 캐릭터는 다소 적어 보였다. 화면 상으로 ‘스트리트 파이터2’의 간판 캐릭터가 12명, 그리고 ‘스트리트 파이터4’의 오리지널 캐릭터가 4명. 도합 16명의 캐릭터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다. (숨겨진 캐릭터가 2명 더 있다고 하는데, 직접 골라보진 못했다.)
▲ 신 캐릭터인 '바이퍼'
최근 나오는 격투 게임들이 20명에서 많게는 30명 넘는 캐릭을 고를 수 있다는 점에 비춰 본다면 ‘스트리트 파이터4’의 등장 캐릭터 숫자는 다소 아쉬운 부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옛날 오락실에서 즐기던 ‘스트리트 파이터2’의 캐릭터들이 그대로 등장한다는 점은 엄청난 매력이었다. (특히 어렸을 적 침을 흘리며 보던(?) ‘춘리’ 언니의 허벅지가 더욱 업그레이드 되어서 등장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 허..허벅지가!
옛 것과 새로운 것의 만남
캐릭터를 고르면 이제 본격적으로 대전할 차례. 그런데 ‘스트리트 파이터4’의 대전 시스템에는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 ‘링크 시스템’이 바로 그것인데, 대전시 어떤 게임기에 앉은 게이머와 대전할 지 알 수 없는 일종의 랜덤 대전 시스템이다. 방문했던 오락실에는 ‘스트리트 파이터4’가 4대 배치되어 있었는데, 이 링크 시스템에 따라 자기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대전을 벌이기도 하고 옆에 있는 사람과 대전을 벌이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누군가 난입해왔다! 근데 화면 밑 버튼 5개의 정체는 대체?
본격적으로 ‘스트리트 파이터4’의 플레이를 이야기해보자. ‘스트리트 파이터4’의 플레이는 한 마디로 요약해 심플 그 자체다. ‘Z-ISM에 따라 기술이 바뀌고 어쩌고 저쩌고…’ 하던 ‘스트리트 파이터3’의 복잡한 시스템은 없어졌다. 그냥 싸우다가 기가 모이면 초필살기를 쓰면 되는 간단한 시스템이다. 다른 3D 격투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악한(?) 횡이동 시스템도 ‘스트리트 파이터4’에는 없다. ‘스트리트 파이터2’의 그 느낌 그대로다.
그렇다고 ‘스트리트 파이터4’가 ‘스트리트 파이터2’를 단순히 리메이크한 게임은 아니다. ‘닥치고 아도겐’이던 ‘스트리트 파이터2’방식으로는 절대 ‘스트리트 파이터4’에 적응할 수 없다. ‘스트리트 파이터4’만의 특징인 ‘세이빙 어택’과 ‘울트라 콤보’가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세이빙 어택’이란 ‘KOF’의 가드 캔슬과 C+D 공격을 섞어 놓은 듯한 모습의 공방일체 기술이다. 중손과 중발을 같이 누르면 캐릭터 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모으기 공격 모션을 취한다. 이 상태에서 공격을 받으면 적의 1타는 가드할 수 있고, 이 상태에서 버튼을 떼면 바로 반격을 취한다. ‘세이빙 어택’은 다른 기술로 캔슬할 수 있기 때문에, 콤보로 연결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세이빙 어택’이란 적의 공격을 방어하고 틈을 만들어 공격 기회를 갖는 반격 기술인 셈이다.
▲ 춘리의 세이빙 어택이 작렬!
‘울트라 콤보’란 ‘분노 게이지’가 쌓였을 때 발동할 수 있는 기술이다. ‘스트리트 파이터4’에는 상대에게 두들겨 맞으면 차오르는 ‘분노 게이지’(‘사무라이 스피릿츠’시리즈의 그것을 생각하면 된다.)와 자기가 공격을 하면서 채울 수 있는 ‘EX 게이지’ 이 두 종류가 있다. 일반적인 초필살기인 ‘슈퍼 콤보’는 ‘EX 게이지’를 4개 사용해서 발동하는 반면, ‘울트라 콤보’는 ‘분노 게이지’가 모두 찼을 때 사용이 가능하다. 당연히 ‘울트라 콤보’는 엄청나게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며, 위에서 언급했던 ‘세이빙 어택’과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
▲ 요거이 바로 '분노 게이지'. 넌 이제 죽었어~
결국 ‘스트리트 파이터4’에서는 심리전이 더욱 중요해졌다. 게임이 전체적으로 기술로 시작해 기술로 끝내는 것 보다는, 진리의 하단 킥 등으로 견제를 하다가 ‘세이빙 어택’을 가해 틈이 보이면 초필살기나 ‘울트라 콤보’로 바로 한탕 털어버리는 방식이었다. 덕분에 자신의 에너지가 얼마 남지 않은 절망적인 상태에서, 반격 한 방으로 상대를 ‘털어버리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여전히 강한 류와 불쌍한 가일
아무리 노력을 해도 초보와 숙련자의 차이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결국 고수들에게 10번 털린 후 얌전히 뒤에서 고수들의 플레이를 감상했다. 그런데, 캐릭터 사용 빈도를 지켜보자니 류의 사용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물론 류가 ‘스트리트 파이터’시리즈의 간판 캐릭 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것 보다는 류가 다른 캐릭터들 보다 훨씬 더 강력한 캐릭터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 어째 류가 좀 순박하게 생겼다.
실제로 구경하는 동안 가장 연승을 많이 한 게이머의 캐릭터는 류였다. 류의 경우 주인공인 만큼 기본기 자체가 강하고, ‘스트리트 파이터2’ 전통의 콤보인 ‘파동권 쏘고 점프 중킥 후 앉아 강킥 이후 기술’이 그대로 적용되는 몇 안 되는 캐릭터였다. 슈퍼 콤보인 ‘진공파동권’이나 울트라 콤보인 ‘멸 파동권’도 상당히 강력해 보였다.
▲ 그런거 없고 라데꾸~ 하지만 SF4에서는...
‘스트리트 파이터4’에서 이런 류와 대비되어 상당히 약해 보이는 캐릭터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가일’. 위에서 언급했던 ‘17연승 류’가 가장 손쉽게 이긴 캐릭터가 다름 아닌 ‘가일’이다. 물론 게이머가 초보자인 탓도 있었겠지만, ‘가일’의 기술 입력 자체가 상당히 까다로운 것도 큰 요인이다. ‘슈퍼 콤보’ 한 번 쓰려면 ‘↙↗↙↗+킥’ 같은 황당한 커맨드를 입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라데꾸’ 하나로 ‘스트리트 파이터2’ 시절 이름을 날렸던 ‘가일’의 몰락(?) 이었다.
▲ 가일: 어헝헝 언니 아파요 ㅜㅜ
‘스트리트 파이터4’,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스트리트 파이터4’는 분명 잘 만든 격투 게임이다. 하지만, ‘스트리트 파이터4’의 갈 길은 멀어만 보인다. 아쉽게도 ‘스트리트 파이터4’ 같은 명작 격투 게임을 뒷받침 해줄 ‘오락실’이 점점 사라져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동네 골목마다 들어서 있던 오락실은 차츰 사라지고, 이제는 ‘스트리트 파이터4’를 하기 위해서 먼 곳에 있는 오락실까지 ‘찾아가야 하는’ 형편이다. 게다가 남아 있는 오락실들도 대부분 ‘철권’으로 가게를 채우는 형편이라, ‘스트리트 파이터4’가 들어설 자리는 더욱 좁아만 보인다.
▲ 켄, 너 너무 순박하게 생긴거 아녀? 어디서 감자농사 짓다 왔음?
물론 그런 현실이 ‘스트리트 파이터4’의 명성에 흠집을 내진 못한다. ‘스트리트 파이터4’는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옛 명성을 되찾기에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시스템들을 버리고 ‘스트리트 파이터2’의 감각을 그대로 가져온 심플한 게임 플레이, 2D 특유의 느낌이 물씬 나는 미려한 그래픽, 강렬한 타격음 등등. ‘스트리트 파이터2’를 추억하는 게이머나 신선한 느낌의 격투 게임을 찾는 게이머 모두에게 적합한 격투 게임이다. 만약의 경우지만, ‘스트리트 파이터4’ 덕분에 우리나라에 오락실붐이 다시 한 번 일어나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보너스: 수도권 '스트리트 파이터4' 가동 게임장
'스트리트 파이터4'는 지난 9월 12일 각 게임장에 정식 투입되었다. 마침 추석 연휴가 낀 터라 아직까지는 많은 게임장에 '스트리트 파이터4'가 보급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스트리트 파이터4'를 가동 중인 게임장을 간략히 언급한다. (일반적으로 게임장에는 전화가 가설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업소명만 표기함)
지역 |
업소명 |
노량진 |
정인 오락실 |
연신내 |
짱 오락실 |
연신내 |
빌리지 오락실 |
방학동 |
우리들 게임장 |
수원 |
아주대학교 앞 오락실 |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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