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옛 애인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야.’
이번 지스타에 길드워2가 출품된다는 소식을 들은 지인이 넌지시 필자에게 던진 말이다. 실제로 이 친구는 전작 길드워의 골수 코어 유저였다. 당시 성행했던 MMORPG의 틀을 벗어나 CORPG(Competitive Online RPG, 경쟁을 기반으로 삼는 RPG)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길드워를 열렬히 지지했으며,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거나 연락이 닿지 않으면 십중팔구 게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길드워2가 국내에 공개되며 직접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소식은 적지 않은 충격과 기대를 주었을 터이다.
끊임없이 귀가 아플 정도로 계속 열변을 토하던 그에게 한 마디 짧은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미안, 나 지금 길드워2 시연회 때문에 가봐야겠네.’ 물론 자신도 데려가라는 그 친구의 간절한 애원을 야멸차게 뿌리치는 건 잊지 않았다. ‘그 애인, 내가 대신 만나줄께’는 말과 함께 말이다.
첫 만남
길드워2는 전작에서 채택했던 MORPG와 CORPG 방식에서 벗어나 MMORPG라는 조금은 흔하고 평범한 외투를 입고 있었다. 게임비가 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 게임시장을 생각해 보았을 때 굳이 개성 없는 장르를 선택한 것,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인기몰이를 하기 충분한 경쟁작 모두가 MMORPG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길드워2의 선택이 과연 자신감일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 지 그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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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 당시 새로운 장르 개척으로 호평을 받았던 길드워1
이유야 어떻든 일단 만나봐야 상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잡다한 머릿속을 싹 비우고 게임을 실행해 보았다. 이내 지난 3월에 진행된 엔씨소프트의 아레나넷 시연회 버전과는 조금 다른 화면이 필자를 맞이했다. 큰 토대는 변하지 않았으나 지난 버전에서 구현되지 않았던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기능이 추가된 것. 시연회 시작 전부터 득의의 미소를 짓고 있던 관계자의 표정이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커스터마이징은 상당히 충실했다. 전작에서 지적 받았던 캐릭터 외형에 대해 충분히 고민한 듯 머리부터 발끝, 심지어 코의 높낮이와 두께까지 설정할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다. 게다가 캐릭터 베이스가 동양인에 맞춰있어 국내 유저들의 취향을 충분히 고려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이번 버전에서 즐길 수 있는 종족이 휴먼(인간)에 한정되었다는 것. 내심 반인반수의 야성미가 느껴지는 챠르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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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연회에서는 인간 종족만을 선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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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스터마이징 화면 모습. 여기까지는 일반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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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내 깜짝! 코의 두께는 물론 높낮이 까지 조절이 가능하다
이후 진행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드래곤 에이지’가 연상되는 캐릭터의 배경 설정부터 성향을 결정짓는 질문은 역시나 인상적이었다. 선택지에 따라 캐릭터에게 성격이 부여되고, 남들과는 다른 배경을 가지게 되어 자신만의 스토리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은 유저에게 게임에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셈이다. 그리고 캐릭터에게 부여된 설정에 따라 앞으로 진행될 스토리에도 차이가 있다고 하니 필자는 그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외형을 설정한 후 NPC가 시키는 대로 여정을 떠나는 ‘일반적인’ 타 게임들과의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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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지 결과에 따라 설정된 캐릭터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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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된 캐릭터는 그들만의 스토리를 가진다
전개, 놀랍지만 복잡하다
오래 전부터 길드워2가 자신 있게 내세운 콘텐츠가 바로 전투와 퀘스트 시스템이다. 특정 트리를 정하지 않고 장비하고 있는 무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는 스킬 시스템은 키보드와 마우스만을 연타하는 단조로움을 방지했다. 그리고 숙련도에 따라 자동으로 다음 스킬이 활성화되는 시스템 역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전투 모션의 경우 조금 경직된 듯한 인상을 주지만 타격감과 액션성은 이를 충분히 보완할 정도로 훌륭했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이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혁신은 신선한 충격을 주지만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불편함을 필연적으로 야기한다. 또한, 단순한 버튼 연타에서 탈피, 다양한 판단을 요구하는 길드워2이기에 그 진입장벽은 결코 낮다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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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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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를 사용함에 따라 자동으로 다음 스킬이 활성화되는 시스템
걱정거리가 있는 전투에 비해 퀘스트 시스템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특정 지역에 들어섰을 때 자동으로 미션이 주어지는 ‘다이나믹 이벤트’는 새로운 지역을 탐험하는 묘미를 제공했다. 주어진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 미리 함께할 파티를 구할 필요 없이, 그 지역 안에 있는 모든 유저는 자동으로 한 가지 목표해결을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이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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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지역에 들어서면 위와 같은 '다이나믹 이벤트' 알림 메세지가 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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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퀘스트도 존재하며, 맵 상에 위치가 표시되어 큰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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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목표 또한 사냥에 국한되지 않고 생활, 구호활동 등 다양하다
불타고 있는 마을에 진입하기 전 입구에서 ‘전사 모십니다. 사제 한 분 오시면 바로 퀘스트 시작합니다!’라고 외치며 기다리는 유저들, 괴로워하는 NPC 입장에서 그들은 영웅이 아닌 원수에 가까울 것이다. 이런 기존 MMORPG의 모습과 달리 길드워2의 다이나믹 이벤트는 그야말로 현실적이다. 그뿐이 아니다. 미션을 해결하게 되면 그 지역의 환경이 변화된다. 일례로 유저들이 머물고 있는 성에 드래곤이 공격해 왔다고 치자. 그럼 그 지역 유저들에게 자동으로 이를 격퇴하라는 다이나믹 이벤트가 부여된다. 그리고 드래곤 격퇴에 성공하면 전투에 참여한 유저들은 큰 업적을 달성함과 동시에 성은 온전히 유지된다. 하지만, 미션에 실패한다면? 성은 파괴되고 수복하지 않는 한 성은 지도 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물론 이번 시연회에는 이정도 스케일의 미션이 구현되지 않았지만, 충분히 상상 가능한 일이다. 얼마나 멋진, 그리고 진정한 모험이 될지 말이다.
레이드, 정말로 잡아보고 싶은 녀석들의 등장
시연회에서는 레이드 보스 세 마리를 접할 수 있었다. 각각 거대한 위용을 뽐내며 필자를 기다린 몬스터들은 실로 장엄했다. 간만에 ‘정말로 저 녀석을 잡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 정도였지만 역시 공략은 쉽지 않았다. 몬스터의 다양한 공격 패턴은 기본이며, 주변 사물을 적절히 이용해야만 처치가 가능한 점은 영웅을 꿈꾸는 도전자들의 호승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결론적으로 시연회를 통해 단 한 마리의 몬스터도 잡지 못했으나 마음은 후련했다. ‘지금은 실패했지만, 언젠간 널 꼭 잡고 말 테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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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 보스 몬스터의 모습. 보기만 해도 호승심이 일어난다!
끝으로
제공된 모든 콘텐츠를 경험해 보고 돌아오는 길에 지난해 8월, 마이크 오브라이언 대표가 밝힌 선언문을 검색해 보았다. “현존하는 모든 관례의 틀을 깨는 작품을 만들겠다.” 멋진 말이다. 헌데, 솔직히 그 당시에는 반신반의 했다. 틀을 깨기 위해 노력한 작품들은 계속 출시되고 있었으며, 유저들의 좋은 반응 역시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길드워2 역시 그러한 작품들 중 하나가 아닐까라고 생각한 것이 시연회 전에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직접 체험하고 느낀 후 조금 달라졌다. 짧은 시연 시간으로 길드워2라는 녀석의 모든 것을 겪어본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많은 것을 시도한, 그리고 MMORPG의 새로운 틀을 제시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감이 든 것이다.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본래 혁신은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작은 것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잦다. 이제 길드워2에서 준비해야 할 것은 하나다. 인간과 NPC, 그리고 게임을 구성하고 있는 세계와의 연계. 이 모든 것이 충족된다면 게이머들은 전과는 다른 새로운 모험을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MMORPG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목표, 바로 실제와 같은 ‘가상현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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