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스트어웨이'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렇게 적적한 섬이 아니다 |
정복되지 않은 땅에 첫발을 내딛은 사람이 깃발을 꽂으면 제 땅이 되던 시절이 있었듯 1인칭 액션이라는 명함을 달고 나온다는 이유만으로도 언론과 게이머들의 주목을 집중시키던 때가 있었다. 무엇이든 희소가치를 발하고 있을 때 도전장을 내민 개척자들이 주목을 받는 것이 이 바닥의 논리이듯이 1인칭 액션게임계에는 id소프트와 에픽메가게임즈라는 거대한 양대산맥이 있었고, 어쩌면 영원히 넘어설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이 산을 오르기 위해 수많은 개발사들은 끝없이 등정과 추락을 거듭했다.
무엇이되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자가 있을 땐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틈새시장공략이 주효한 법. 메달 오브 아너를 비롯 시리어스 샘, 카운터스트라이크 등등 이름을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의 수많은 게임이 뚫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양대산맥의 틈새를 공략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렇게 하드코어 액션, 현대전, 2차세계대전이라는 유행과 함께 시류를 타고 내려온 1인칭 액션게임은 올해 개최된 E3를 기점으로 ‘광활한 지역을 배경으로한 서바이벌 액션’이라는 틈새시장으로 분위기가 전환되기 시작했다.
그 시발점은 체르노빌 원전폭파사고를 배경으로 한 ‘스토커’와 열대섬에 혼자 남겨진 주인공이 혈투를 벌이는 내용의 ‘파크라이’였다. 크라이텍스튜디오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개발사가 만든 이 게임은 대중에겐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2004년의 틈새시장을 주도할 작품으로 수많은 게임언론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장미엔 가시가 있다
전직
특수요원으로 근무하던 잭 카버는 과거의 시절을 청산하고 보트대여업으로 한가로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씀씀이가 헤픈 탓인지 돈벌이 문제로 궁리하던 잭은 어느
작은 산호섬에 데려달라는 여기자의 요청을 받고 죽음의 그림자가 눈앞에 닥친 것도
모른 채 남태평양으로의 여정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산호초 섬은 이름 모를 무장단체들이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장소. 잭과 함께 섬에 당도한 여기자는 이 무장세력들이 꾸미고 있는 일을 취재하기 위해 정보수집을 시작하나 결국 이들에 의해 납치된 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잭은 섬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자신의 보트로 돌아가나 보트는 이미 무장단체의 추격대에 의해 파괴되어 버린 후였다. 아무도 살지 않는 산호초 섬에서 잭은 이름 모를 무장단체의 추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시금 총을 빼들고 음모의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때로는 스네이크처럼, 때로는 람보처럼
파
크라이의 장르는 크게 보자면 FPS라는 범주에 들 수 있겠지만 ‘잠입’이라는 요소를
적절히 조화한 지능형 액션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1인칭 액션게임이 단순히
치고박는 전투를 지양하는 추세긴 하지만 파 크라이는 ▶광대한 지역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상호작용 ▶NPC의 뛰어난 인공지능을 특징으로 내세워 이들과의 차별을
선언하고 있다.
자체엔진으로 제작되고 있는 파 크라이는 ‘레드팩션’이라는 액션게임의 특징이기도 한 파괴가능한 지형시스템을 비롯, 물리엔진을 충실하게 도입한 캐릭터와 주변환경의 사실적인 움직임, 폴리범프 매핑으로 정글의 표현을 실제와 최대한 가깝게 구현해내고 있다. 그래픽카드의 발전으로 지금은 보편화된 수준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반투명으로 처리된 물에서 지상 위의 각종 배경을 부드럽게 반사해내고 있는 수준은 현존하는 어떤 게임보다도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한다.
섬 곳곳에 존재하는 NPC와 야자수와 같은 배경이 실시간으로 움직이며 게이머의 시각에 따라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 역시 앞서 설명한 ‘상호작용’의 메리트를 살려내고 있는 부분이다. 이는 망원경을 이용한 광범위한 시야체계를 게이머로 하여금 보다 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고 있다. 크라이텍스튜디오는 이와 같은 사실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각각의 매핑소스에 따라 질감정보를 입력해 정글의 풀밭이나 백사장의 모래, 자갈밭을 걷는 발자국 소리를 다르게 표현하고 있으며 탄환이 특정 물체의 어떤 부분에 맞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입체음향을 체험할 수 있다.
특히 NPC들의 영리한 인공지능은 잠입액션의 묘미를 한층 업그레이드 해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의 묘미를 위해 제작사는 NPC들에게 특정한 루트로 순찰을 다니는 수준의 스크립트는 걸어뒀지만 게이머의 행동에 따라 반응하는 이들의 움직임은 천차만별이다. 이것이 바로 크라이텍스튜디오가 파크라이의 가장 큰 특징으로 내세우는 컨셉인 ‘전술적 액션’을 가능케 만드는 요소인데 가령 게이머가 화기를 이용했을 때 총성을 들은 NPC가 무전기를 이용해 동료를 부르는가 하면, 포위작전을 구사하며 주인공을 죄여 들어온다는 식이다.
왠지 어려울 것 같다고?
앞서
파크라이가 ‘잠입액션’의 성격을 강하게 띤 작품이라고 표현했지만 게임자체는
카운터스트라이크에 못지않은 빠른 속도감과 익히기 쉬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파크라이의 멀티플레이에 제작사가 자신감을 보이고 있겠지만.
어쨌든 맨 몸으로 호랑이굴에 뛰어든 것이나 다름없는 게이머는 폭파된 건물에서 기어나와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망원경의 사용법을 익히는 것으로 게임을 시작한다. 광활한 맵에서 모험을 벌여야하는 게이머의 입장으로선 망원경의 사용법을 제대로 익히는 것이 곧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 또한 적의 순찰병으로부터 입수한 추적장치(Tracking Tool)는 게이머가 이동해야할 방향과 근접해 있는 적의 위치를 알려줌으로서 생존확률을 극대화시켜준다.
물론 싱글플레이를 즐기는 시종일관 게이머가 뛰어다닐 일보다는 포복이나 숙인 자세를 갖추는 경우가 많지만 망원경을 이용한 전략구상과 장거리 화기로 벌이는 전투는 보다 편리하게 게임을 익힐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구실로 작용한다.
제 2의 하프라이프가 되겠다
잘
만들어진 게임 한편이 모든 성공을 거머쥐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하프라이프나 스타크래프트/워크래프트,
배틀필드 1942 등의 작품이 그랬던 것처럼 무엇보다 게이머들의 활발한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게임이 가장 많은 인지도와 판매량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강력하고 익히기 쉬운 에디팅 툴과 함께 출시될 파크라이는 대작의 빛에 가려지는 불운만 피할 수 있다면 ‘생명연장의 꿈’을 실현할 기회가 다분한 작품이다. 유통사가 의도한 바이든, 아니든 간에 2003년 홀리데이 시즌에 등장할 예정이었던 파크라이가 2004년 1/4분기로 출시가 연기된 문제는 인지도가 전무한 크라이텍스튜디오로선 어쩌면 황금과 같은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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