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라는 존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만한 존재이다. ‘대리만족’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게임산업이 이러한 존재들을 가만히 놔두었을 리가 없다. 과거에서부터 게임의 주인공은 어떤 형식으로든 ‘영웅’에 포커스를 맞추었고 최근 온라인게임들도 결국은 암묵적으로 “캐릭터를 키워서 영웅이 되어라!”정도의 느낌을 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영웅주의적인 발상을 게임 전면으로 끌어낸 온라인게임이 바로 ‘시티 오브 히어로즈’이다. 더 이상 온라인게임이라고 하면 칼질하며 장기간 동안 몬스터를 때려잡아야 어렵게 레벨이 오르는 그러한 판타지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슈퍼히어로가 되어 악당들을 물리치는 신선한 체험을 안겨줄 게임이 이제 막 등장했으니까.
▲영웅들의 향연, 시티 오브 히어로즈 |
활약무대의 설계는 수준급
시티 오브 히어로즈의 배경도시들은 굉장히 화려하다. 게임에 존재하는 여러
캐릭터들의 세밀함은 조금 미흡하지만 전체적으로 도시의 분위기는 굉장히 잘 살아있다.
도시의 구조나 높이 솟아있는 마천루들의 웅장함은 물론이고 거리의 표현이나 NPC들의
배치 하나까지 실제로 존재하는 도시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꼼꼼함에서
시티 오브 히어로즈의 무대는 충분히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물론 이것은 완벽하게
겉보기로 맞춰낸 생동감이라는 점에서 약점이 될 수 있다.
처음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전체적으로 활력이 넘치는 모습에 빠져들게 되지만 게임을 조금 더 진행해나가면 길거리를 활주하는 차들이 캐릭터를 뚫고 지나간다든지, 게이머가 구해준 시민을 뒤쫓다 보면 성급히 건물들로(심지어는 하수구로도) 들어가버리는 등 지나치게 연출된 느낌이라는 실망감도 있다.
물론 별로 대수롭지 않은 부분이지만 게임의 느낌이 온라인게임이라는 느낌보다 패키지쪽의 느낌에 가까워 억울하게도 게이머들의 머릿속에서 비교대상은 패키지가 된다. 단점이 아닌 부분을 단점으로 만드는 것도 시티 오브 히어로즈가 그만큼 패키지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교적 환한 색톤인데 색감이나 디자인 수준이 높다 |
▲도시는 실제로 살아 돌아가는 느낌을 준다 |
어쨌든 도시에서 영웅이 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훌륭하다. 일반 MMORPG에서 몬스터의 역할을 하는 악당들의 배치도 볼만하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시민들을 괴롭히는 악당들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의 악당들은 뒷골목이나 사람들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곳에 위치해있고 도시의 전체적인 디자인은 이런 배치와 간격을 고려하여 완성되어 있다는 점이 훌륭한 부분이다.
NPC들은 한 화면에 수십명이 표시될 정도로 많은 수를 자랑하며 저마다 대사를 가지고 있어서 게임의 몰입도를 높여준다. 이렇듯 시티 오브 히어로즈에서는 무리할 만큼 많은 NPC들을 시민으로 배치해두고 도시와 분위기들을 그럴싸하게 만들어 게이머가 슈퍼영웅으로 활약할만한 공간을 아주 잘 다듬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 정도의 배경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 도시의 영웅이 되고 싶다는 느낌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수많은 NPC들을 보라 |
▲영웅이 되고싶은 본성을 충분히 자극하고 있다 |
설정속에 조용히 묻힌 ‘레벨노가다’
새로운
온라인 게임을 갈구하는 게이머들은 늘 ‘노가다’없는 온라인게임은 없는 것인가를
질문한다. 그렇지만 그 어떤 뛰어난 게임제작자도 이런 질문에 대해서 “노가다 없는
온라인게임을 만들어주겠소”라고 답변해줄 수 있는 제작자는 없을 것이다.
온라인게임의 특성상 어떠한 형태로든 ‘노가다’라는 요소는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시티 오브 히어로즈에서도 특정한 미션을 클리어하거나 길거리에서 시민들을 괴롭히는 악당들을 무찌르는 것으로 자신의 레벨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온라인게임과 비슷한 구조라고 할 수 있겠다.
오히려 게임내에서 즐길 요소들이 다른 온라인게임에 비해서 특별히 많은 것도 아니어서 이 레벨노가다의 압력이 더 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시티 오브 히어로즈는 시스템도, 퀘스트 등도 아닌 ‘설정’하나로 노가다라는 느낌을 묻어버린다. 일반 온라인게임이 몬스터를 잡아서 레벨을 올릴 경우 “몇마리 잡아야 렙업하겠네”의 개념이 강하다면 시티 오브 히어로즈에서는 “몇 명을 구출해줬어”라는 개념이 통하기 때문이다.
즉, 제작자가 게이머를 자신이 영웅이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게임의 분위기나 몰입도를 구축해두기만 한다면 자연스럽게 개념의 전환효과를 노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분위기를 유도하는 것은 NPC들의 리얼한 연기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핸드백을 뺏긴다든지, 불쌍하게 맞고 있든지 하면 보호심리를 자극해서 게이머가 달려가게끔 만든다. 이러한 것들은 게이머가 스스로 영웅이되어 도시에서 ‘살아나간다’는 느낌을 만들어주고 있다.
다양한 캐릭터 창조와 스킬이 가진 이중성
시티
오브 히어로즈를 시작하면 게이머들은 오랜시간을 캐릭터를 생성하는데 투자할 것이다.
만약 캐릭터를 생성했다고 하더라도 얼마 후 다시 캐릭터를 멋지게 생성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 것이다. 그만큼 시티 오브 히어로즈의 커스터마이즈는 선택폭이 넓고 조합옵션이
많아서 ?다양하고 개성적으로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캐릭터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이 게임이 얼마나 흥미로운가를 게임이 시작되지 않은 시점에서부터 느끼게 해준다는 점도 훌륭하다. 게이머는 평범한 사람이나 악당 같은 느낌의 영웅을 만들 수도있고 매트릭스의 ‘트리니티’를 닮은 캐릭터도, ‘마블코믹스’에서 등장하던 슈퍼히어로들과 비슷한 느낌의 영웅들도 생성할 수 있다.
또 크게는 5가지 클래스를 선택할 수 있는데 판타지RPG와 비교해서 풀어보면 궁수에 해당하는 ‘블래스터(Blaster)’, 전사에 해당하는 ‘탱커(Tanker)’, 어쌔신에 해당하는 ‘스크래퍼(Scrapper)’, 힐러의 역할을 해주는 ‘디펜더(Defender)’, 게임리더의 역할을 하는 ‘컨트롤러(Controller)’가 있다. 클래스를 신중히 결정한 후 다양한 조합에 의해서 캐릭터의 최종 모습을 결정하는데 그래서 같은 클래스라고 할지라도 자신과 비슷한 캐릭터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스킬도 조합하는 것이 굉장히 재미나고 방대하다. 스킬시스템은 처음 접하면 복잡해보이지만 설명이 친절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스킬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다양성과 조합의 재미를 가지고 있는 매력들이 이 게임에 축복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시티 오브 히어로즈의 다양성은 다른 시각에서는 저주로 보여질 수 있다. 온라인게임에서의 중요한 요소인 ‘자기과시욕구’는 캐릭터생성시의 창조물로 만족시켜줄 수 있을지 모르나 지속적으로는 순기능을 해내지 못한다. 게임에서 초반에 생성된 모습은 게임이 진행되어나가도 변형되어가는 부분이 거의 없어 초반에 어떻게 조합을 했느냐에 따라서 ‘뽀대’가 결정되버리는 합리적이지 못한 부분도 존재한다.
▲?캐릭터의 뽀대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
스킬은 다양한 재미를 가지고 조합을 할 수 있지만 잘못 성장시킬 경우 캐릭터가 어정쩡해지기가 쉬워지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다른 온라인게임에서 지속적으로 게이머들의 목표점이 되주고 있던 것이 단계적으로 잡혀있는 ‘아이템’과 그로 인한 외모의 변경인데 이 부분에서 큰 손해를 보고있기 때문에 오히려 마이너스적인 시스템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온라인게임은 몇시간 즐기고 끝나는 패키지게임과는 달리 수백, 수천시간을 즐겨 나가야할 긴 여정이기 때문에 수명에 대한 부분을 너무 간과한 것이 아닌가 싶다. 만약 다양한 커스터마이즈를 추구했다면 그에 따른 다양한 변화도 함께 준비해놨어야 하는 것이 옳다.
퀘스트베이스의 진행, 신선함의 감속
초반에는
마치 패키지게임을 즐기는 것 처럼 신난다. 이것은 즐거운 경험이다. 게임은 크게
세가지의 형태로 진행이 되는데 첫번째는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일반적인 악당들을
물리치는 배틀이며 두번째는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미션, 세번째는 돌발적으로 생성되는
미션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미션은 상당히 흥미롭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비슷한 느낌의 미션들이 많고 전투적인 미션들이 많은 편. 또한 미션들은 설정과도 잘 어울리며 스토리들이 몰입도를 높여주는 것이 많아 게임이 통일감을 훌륭하게 유지해내고 있는 것도 사랑스럽다.
영웅물에 딱 맞는 것들이 많은데 악당을 길거리에서 물리치는 것 외에도 범죄현장을 잠입하여 마약의 발견이나 복제화를 발견한다든지 테러범으로부터 장악된 건물에서 시민을 구출한다든지하는 미션들은 독특하며 재미있다.
?▲다양한 미션들 |
▲스토리의 느낌은 훌륭하다 |
하지만 이런 퀘스트베이스의 진행도 결국은 영웅들의 수준을 높이는 것과 많은 연관을 가진다는 한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임진행은 독특한 맛을 보여주지만 결과적으로 진행이 단순하고 신선함을 끌어주는 장치들이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퀘스트베이스의 진행인데다가 패키지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게임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게임을 하다보면 신선함은 당연히 익숙함으로 바뀌게 되고 이 시점에서 게이머에게 또 다른 재미의 대안을 줄 부분이 약하다. 그만큼 시티 오브 히어로즈는 게이머에게 신선하고 즐거움을 보여주는 ‘퍼스트어필’이 강하지만 ‘라스트어필’이 너무 빈약해진다는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보자. 게이머가 악당들에게 당하고 있는 시민을 구출해주면 달려와서 “당신 같은 영웅이 있다니!”, “저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등의 맨트를 날린다. 게이머는 우쭐해하며 이것에 자신이 영웅이라는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이것도 수천가지 맨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비슷비슷한 맨트를 지속적으로 들으면 이것에 대한 ‘맛’이 물려버리게 된다.
즉, 시티 오브 히어로즈는 초반에 즐길 때는 여러가지 신선한 감각들과 잘 짜여진 구성과 분위기, 색다른 미션 등으로 게이머들을 즐겁게 해주지만 오래도록 즐길 목적성은 오히려 떨어진다. 여기서 이러한 부정이 나올 수 있다.
“꼭 온라인게임을 오래 즐겨야 하는가? 잠깐씩 즐기서 오래하면 되지 않는가?”
물론 맞는 얘기지만 시티 오브 히어로즈도 결국은 영웅들 중에서 영웅이 되는 것이 목적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방향성적인면을 검사해볼 때 잠깐씩 즐겨서는 궁극적으로 제작사가 주고자하는 재미를 게이머는 얻지 못한다. 만약 그럴꺼면 패키지 영웅물을 잠깐씩 하는 것이 낫다.
▲식상해지기 시작하는 대사들 |
▲이 게임도 온라인게임의 한계를 벗어나진 못하고 있다 |
패키지다운 것이 항상 플러스는 아니다
그저
재미의 양념일 뿐이다. 패키지 적이라는 것은. 오히려 온라인게임을 패키지처럼 만들겠어라는
제작자의 생각은 위험한 것일 수도 있다. 시티 오브 히어로즈는 패키지적이다. 또
과거의 온라인게임들을 부정한다. 단순히 부정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온라인게임들이
가지고 있던 단점들을 상당 수 보완하면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티 오브 히어로즈를 즐겨보면 다른 게임에서 느끼지 못했던 재미를 얻을 수 있고 설정 등에서 오는 신선한 감각들이 게이머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쉬워 기존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색다른 경험을 안겨준다. 마치 패키지 게임의 새로운 작품이 등장할 때마다 느끼는 흥분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고 있다.
다른 영웅들의 활약도 지켜볼 수 있으며 때때로는 더 거대한 적들을 물리치기 위해서 최대 8인까지 파티를 맺고 대규모 전투를 벌이며 슈퍼그룹 등을 결성해 영웅협회를 만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시티 오브 히어로즈가 주는 재미는 거기까지다.
패키지게임처럼 끝이 있었다면 신선하고 흥미로운 경험을 주고 게임에 대한 인상을 강하게 심어줄 수 있었겠지만 시티 오브 히어로즈는 기존 온라인게임이 많은 게이머들에게 사랑받게 해주었던 ‘장점’들을 무시하고 문제가 되었던 ‘단점’만을 개선했다.
▲경제체계는 온라인게임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다 |
▲지속적인 아이템욕구는 게이머를 오랫동안 게임에 붙잡아둔다 |
결국 시티 오브 히어로즈에는 경제, 아이템욕구 등의 중요한 요소들이 빠져버리면서 스스로 게임의 수명을 단축시켜버렸다. 어느 온라인게임이든 시작하고 몇일 정도를 즐겁게해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장르의 특성상 이 재미를 지속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느냐하는 것이 짧은 재미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시티 오브 히어로즈에서는 짧은 재미는 충분히 충족시켜주고 있지만 이 게임이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게 해주는 요소는 배척해버렸다.
자연히 아이템의 갈망이나 매매 등이 사라져버리면서 게이머들간의 조우도 줄어들어버리는 등 커뮤니티적으로도 손실을 낳는다. 이는 과거 온라인게임을 부정하는 것만이 게임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다. 시티 오브 히어로즈는 굉장히 뛰어난 게임이다. 지금까지의 온라인게임에서는 느끼지 못한 새로움과 영웅이 되보는 재미도 게임요소들을 통해 충분히 만끽하게 해준다.
하지만 역시 미션이나 전투환경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온라인게임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지는 못하다. 오히려 장시간 플레이를 하다보면 영웅을 조정하는 콘솔용 액션게임과 최고가 되기를 갈망하는 노가다게임 사이에서 어정쩡한 산물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짧게 즐기기엔 즐거운 게임이지만 오래도록 즐기기엔 온라인적인 요소들이 매우 빈약하다.
충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클립틱 스튜디오는 기존 온라인게임의 재미에 대한 충분한 고찰이 더 필요할 듯 하다. 그들이 추후 이 게임의 패치를 통해서 혹은 새로운 작품을 통해서 신선하고 발칙한 방향성을 보여주는, 그러면서도 ?기존에 있는 온라인게임의 장점들을 흡수한 ‘온라인게임 대작’이 만들어 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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