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게이머들이 인식하고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지난 1987년에 발매된 ‘해적!(Pirates!)'이라는 게임은 여러모로 게임발전사에 영향을 미친 타이틀이다. PC게임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을 때 천재개발자 시드마이어가 기획, 개발한 해적은 “롤플레잉은 롤플레잉이어야하고 시뮬레이션은 시뮬레이션이어야 한다”는 기존의 통념을 깨버린 기념비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복합장르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해적은 캐릭터 성장의 재미가 있는 롤플레잉적 요소와 모험의 묘미를 주는 어드벤처, 통쾌한 스릴감을 주는 액션을 모두 취합한 작품으로 발매 당시 게이머들의 높은 인기를 얻었다. 물론 당시 국내에는 ‘정품’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암흑(?)의 시기였던 만큼 많은 게이머들이 해적을 접해볼 기회는 없었지만 해외에서는 ‘삼국지’ 못지않은 국민게임으로 통용되고 있는 타이틀이 바로 이 해적이다.
17년의 세월이 흐르고
시드마이어와
그의 동료들이 새롭게 설립한 개발사 피락시스는 문명 3의 발매 이후 이전에 자신들이
몸담았던 마이크로프로즈사의 모든 타이틀 라이센스를 구입했다. 그 중 시드마이어
자신이 특히나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해적은 피락시스의 리메이크 대상 1호로 지목돼
새로운 탄생을 예고케 하고 있는 것이다.
장르도 틀리고 목적 자체가 상이한 게임이긴 하지만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대항해시대’의 기본개념이 녹아들어 있는 작품이 바로 해적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바다를 항해하고 비밀지도를 토대로 이곳저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가 하면 해적선과 박진감 넘치는 전투를 벌이는 개념 자체는 대항해시대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피락시스에 의해 새롭게 리메이크되고 있는 해적은 이러한 묘미를 2004년의 시대적 상황에 맞게 멋진 그래픽과 사운드, 그리고 추가된 미니게임으로 부활시켰다. 화려한 3D 그래픽으로 펼쳐지는 해전, 해적선장과 함께 벌이는 1:1 대결, 총독의 딸과 함께 미니게임으로 즐기는 댄스에 이르기까지 새로우면서도 옛 추억을 상기시키는 다양한 묘미로 시드마이어는 패키지게임의 로망을 이어나가려 하고 있다.
잘 만들어진 칵테일 한잔처럼…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게이머는 일개 선원으로 해적의 삶을 시작한다. 폭동이 일어난 배
안에서 자신을 따르는 몇몇의 선원과 함께 게임을 시작한다는 점은 같지만 네덜란드나
에스파냐, 프랑스 등 정박할 장소와 일거리를 찾아다니는 선택권이 부여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전편과 다른 자유도를 부여하고 있다.
일거리를 찾아다니는 주인공은 술집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식민지 정부의 근황을 듣고 카리브 연안에서 악명을 떨치는 해적 Top.10(-_-;)에 대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 카리브 연안에서의 해적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주인공에겐 이들의 명단 자체가 꿈만 같은 이야기겠지만 곧 이 명단에 이름이 추가될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술집에서 익명의 해적이나 여행가에게 듣는 정보를 토대로 보물을 찾아나서는 것은 좋지만 종자돈을 마련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총독의 잔심부름이다. 물론 총독은 햇병아리 주인공을 미더워하지는 않지만 단순한 일을 진행함으로서 얻은 신임을 토대로 결국 다른 국가의 항구를 나포하라는 허가서를 끊어주게 되는 것이다.
지금껏 벌어들인 돈을 토대로 조선소에서 배를 업그레이드하고 총독의 명령에 따라 해당 국가를 나포하면 금은보화로 그 대가를 받게 된다. 나중에 얻게될 이익이나 명성에 비하면 이는 콧방귀를 낄만한 금액일지도 모르지만 초반 주인공의 견실한 터를 닦기 위해서는 총독의 명령을 최대한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작품이 복합장르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이유는 이러한 게임진행자체가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일단 바다로 나간 주인공은 방향키로 배를 간단하게 조종할 수 있으며 상대함선과 전투 역시 마치 키보드의 방향키로 배를 움직이고 마우스로 포를 발사하는 아케이드게임 형식으로 전개된다. 상대 전함을 온전하게 나포하기 위해 선장과 1:1 대결을 펼치는 것 역시 액션게임을 즐기듯 키보드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포로로 붙잡혔을 때 미로처럼 짜여진 적진에서 적들의 시야를 피해 빠져나오는 잠입액션스타일의 게임전개방식 역시 이채롭기 그지없다. 또 선원을 데리고 적진에 상륙하는 나포임무에서는 마치 실시간전략시뮬레이션을 플레이하듯 유닛을 하나하나 통제할 수 있으며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야 손해 없는 장사가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총독의 딸에게 사랑을 얻기 위해 익히는 미니게임형식의 댄스, 보물을 찾기 위해 지도 곳곳을 샅샅이 뒤지는 임무에 이르기까지 해적!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는 무궁무진하다. 게임개발의도자체가 다분히 시드마이어의 감상에 따른 것이라 해도 분명 이 게임은 17년의 세월을 충분히 커버할만한 막강한 컨텐츠로 무장돼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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