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문도 모른채 끔찍한 살인용의자가 된 한 남자의 이야기 「인디고 프로퍼시」 |
1990년대를 화려하게 풍미한 정통 어드벤처장르는 20세기를 끝으로 사실상 종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보다 자극적이고 보다 스릴 넘치는 게임을 찾는 유저들에게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추리를 거듭해야하는 어드벤처게임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한지 오래며 현재 게임을 즐기는 세대는 이같은 장르가 존재했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그것이 현재 게임을 즐기는 세대의 문제점이라고 할 순 없다. 지금과 같은 PC환경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때 어드벤처라는 장르는 개발자들이 자신의 창조력을 쏟아낼 수 있었던 가장 이상적인 탈출구였으며 게임을 즐기던 유저들 역시 마치 소설을 읽듯 자신의 상상력을 극대화시켜주는 어드벤처게임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멸종위기에 직면한 장르라지만 그래도 정통 어드벤처게임은 '롱기스트 저니'라든가, '런어웨이', 'CSI 과학수사대' 등 여러 가지 특색 있는 모습으로 그 생명력을 이어왔다. 물론 비약적인 성공을 거둔 게임들이라곤 할 순 없겠지만 과거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게이머들에게 이같은 타이틀의 등장은 가뭄의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 |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유저들이 모여 한글화작업 등을 벌이는 열성으로 어드벤처게임 알리기에 힘쓰는 모습은 이 장르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을 증명하고 있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디고 프로퍼시’에 어드벤처게이머들은 열광한다. 마치 영화를 보는듯한 긴박감 넘치는 연출과 독특한 인터페이스로 그려낸 어드벤처게임만의 묘미 그리고 흥미진진한 스토리라인까지, 지난 7월 중순 등장한 데모버전 만으로도 이 작품은 어드벤처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될 혁신적인 기대작이라는 칭송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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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그래야하는지도 모른채 시체수습에 정신없는 주인공 |
당신이 살인용의자가 된다면?
추운
겨울의 뉴욕, 어느 식당 화장실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화장실에 용변을
보러온 한 사내를 자신도 모르게 무참히 단도로 살해한 남자 루카스 케인. 어느덧
정신을 차린 그는 자신의 손에 왜 단도가 들려있는지, 왜 남자가 칼에 찔려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지도 모른 채 경악한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모든 사람이 오가는
공용화장실이다. 연유야 어찌됐든 살인현장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된 그는 바로
게이머가 플레이하게 될 주인공이며 되도록 빨리 현장을 벗어나야 하는 ‘도망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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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고 프로퍼시의 모든 상황은 실시간이다. 멍청히 서 있다가는 이유도 모른채 감옥행 |
여기서부터 게임은 실시간으로 진행된다. 게이머가 머뭇거리는 한 순간에도 시간은 현실과 똑같이 흘러가고 있으며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어느 누군가가 화장실을 박차고 들어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복도 끝에서 커피를 마시던 경찰관이라면 주인공은 영문도 모른 채 교도소 철창에서 평생을 썩어야 할테고 그길로 게임은 끝이다.
인디고 프로퍼시의 흥미로운 게임전개방식과 인터페이스 조작은 데모버전에 포함된 이 화장실씬(?) 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되고 있다. 일단 주인공을 조작케 되면 주위의 어느 사물에 다가갈 때마다 화면 상단에 그 물체를 조작할 수 있는 심장박동모습과 흡사한 아이콘이 나타난다. 이 작은 아이콘은 빠르게 동서남북 중 어느 한 방향으로 점선이 이동하고 있는데 마우스를 클릭한 채 그 방향으로 끌어주면 간단히 해당 물건을 조작할 수 있다. 이는 PS2나 Xbox의 패드를 고려해 제작된 인터페이스 방식으로 마치 루카스아츠와 시에라가 만들어오던 어드벤처게임의 인터페이스를 현재의 모습에 맞게끔 개조해놓은 듯한 인상을 풍긴다.
게이머가 주인공에게 어떤 행동을 취하게 할 때마다 나타나는 흥미로운 특징 중의 하나는 심리상태가 표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클락타워의 ‘공포게이지’를 연상시키는 이 주인공의 심리상태는 게임을 풀어나가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재 손에 한가득 묻어 있는 피를 씻어버린다든가, 화장실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한켠에 숨겨놓게 되면 주인공의 심리상태는 차츰 안정되지만 자신의 살해혐의를 씻을 만한 단서를 잡지 못할 땐 불안감이 고조된다. 심리상태가 안정될수록 주인공은 침착한 행동이 가능하며 불안한 상태에서는 떨리는 말소리로 의심을 사거나 그 불안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하게 된다.
어쨌든 게이머는 이 급박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최대한 빠른 행동을 취해야만 한다. 손을 씻고, 시체를 치운 뒤 걸레로 바닥을 닦고 화장실을 빠져 나온 주인공. 자신이 앉았던 테이블 앞엔 아직도 식지 않은 음식과 계산서가 놓여있다. 그길로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벗어나든 식당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단서를 획득하든 모든 것은 게이머의 선택에 달렸다. 온몸에 피를 묻힌 채 곧장 뛰쳐나와 식사비도 내지 않고 뒷문으로 달아난다면 식당주인의 고함과 함께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며 주인공은 화장실 살해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만약 아직도 화장실에 머뭇거린다면 식당 끝에서 식사를 하던 경찰이 다가오는 광경을 분할된 화면으로 볼 수 있다(물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어디에 있건 경찰은 화장실을 들리게 될테지만). 이것은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드라마 24시와 같은 연출방법으로 똑같은 시간대에 각각의 캐릭터들이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지 알 수 있으며 이는 게이머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훌륭한 장치로 작용한다.
인디고 프로퍼시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범인으로 몰린 케인 외에도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인 칼라(Carla)와 타일러(Tyler)의 시점으로도 게임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데모버전에서는 이를 체험해 볼 수 없지만 여러 명의 주인공으로 맞닥뜨리는 거대한 음모의 실체는 서스펜스영화에 버금가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는게 제작사의 설명이다.
과거의 어드벤처가 그랬듯 인디고 프로퍼시 역시 높은 자유도를 전제로 한 게임은 아니다. 대신 게이머가 주인공에게 어떤 행동을 취하게 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상황이 연출되고 수십여개 이상이 준비된 멀티엔딩에도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치는 등 '전개의 자유도'를 극대화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볼만 하다. 한 편의 인터랙티브 영화를 게임 속에서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특징은 현세대 게이머들의 입맛을 충분히 만족시켜줄만한 그래픽과 사운드로 마무리된다. 게임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움직임은 모조리 모션캡처를 통해 연출됐으며 풍부한 경력의 성우들이 연기한 음성은 게임의 흥미를 돋우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지금 당장 데모를 즐겨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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