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혈전:
군대 스타크래프트를 알려주마!
황금기의 도래와 N모 길드 출신의 신병
그렇게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고….
어느덧 나도 눈치 안보고 맘대로 스타하는 이른바 ‘개말년 짬밥’을 먹게 되었고
드디어 군생활의 황금기를 구가하게 된다. 우리 내무실 90명에 옆 내무실 30명, 총 120명 중에 싸제에서 스타
좀 해봤다는, 그러니까 이른바 테란이라면 골리앗으로 방황 좀 해봤다는, 저그라면 히드라로 침 좀 뱉어봤다는, 프로토스라면
질럿으로 연장질 좀 해봤다는, 그런 쫄다구들을 한 열일곱 명 정도 추려서 그 유명한 17:1의 형식으로 붙어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쫄다구들이 계속 돌아가며 나에게 도전하는 고참제일주의 시스템이라는 거다.
아, 물론 한 2년여 스타 안 했다지만 내 실력이 어디 갔겠는가? 사실 많이
갔지. 그래도 쫄다구들 또한 나하고 마찬가지 신세일 테니 뭐 내가 꿀릴 건 없지 않은가. 95%이상의 승률로 쫄다구들을
돌려가며 참 유쾌하게 살았었다. 랜덤저그 4드론 저글링 + 성큰러시 또는 목숨 건 초패스트 몰래리버드랍 같은 일회성,
도박성 전략으로 날 이긴 쫄다구는 반드시 수양록(주4)에다 적을 정도였으니 부대 내 나의 위상은 한마디로 ‘우리부대
임요환’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갓 들어온 따끈따끈한 이등병들 중엔 나를 꺾을 놈도 있었겠지만 이등병이 컴퓨터
앞에 앉는다는 게 상상이나 할 일인가? 칼각잡고 있는 대기신병들 억지로 앉혀서 붙어본 적은 있지만 또 싸제스타랑 군스타가
오리지널과 브루드 워 만큼이나 차이가 있는 것이어서 제 실력 발휘하는 놈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팀플로 유명했던 N모 길드원이었다는 운전병 신병이 들어왔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내가 또 어찌 붙어보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런데 이 놈이 로스트템플에서 저그로 나의 테란에게 깨지더니만
아 글쎄 병무청 장병대장에 잉크도 안 마른 손자뻘 되는 그 놈이 ‘김 병장님, 헌터에서 리겜하면 안되겠습니까?’ 이러는
거 아닌가? 허허. 그 하드코어적인 당돌함을 높이 산 것도 있고 또 마메 VS 히럴의 중앙 힘싸움(주5)의 손맛을
입대 후 이렇게 짜릿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으므로 흔쾌히 리겜을 수락했다. 나 6시 테란 VS 신병 7시 프토였는데
난 사실 헌터에서 일대일을 해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고로 빠른 질럿에 대비한 입구막기가 제대로 될 리가 없지
않은가. 바락을 들었다 놨다 SCV로 잘 막아졌나 통과도 시켜봤다가 이러고 있는데 이 녀석이 프로브 한 마리로 정찰을
와서는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신병 : Hi.
Hi라… 첫 정찰에서 보내는 Hi라는 메시지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군대에서, 그것도 까마득한 이등병에게 받는 Hi라는 메시지는 주는 느낌이 조금은 달랐다. 힘들었던 2년여의 내 군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메시지를 받았으면 화답을 해주는 게 예의라는 네티켓이 불현듯 생각났다.
나: ‘Hi’ is banmal.
그렇다. 하급자는 상급자에게 존칭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극히 기본적인 군대예절이었다.
나는 상급자로서 하급자에게 잘못을 지적해 주는 선임병으로서의 당연한 도리를 행했다. 나의 지적을 받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는지 후임병은 즉각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신병: Hiyo.
구경하던 물병장(병장 1호봉)이 한 마디 한다.
“이게 돌았나. 군대에서 말끝에 ‘요’ 붙이게 돼있냐? 그리고 고참한테 경례도
안해?”
신병: Tong il! (부대경례구호가 통일이었다)
그러던 중 신병의 질럿 한 기는 초병없는 위병소, 즉 마린도 없이 제대로
못 막은 입구를 통과해 유유히 나의 지휘부 쪽으로 기동하고 있었다. 작전기동로가 확보됨을 확인한 프로토스 측에서는
재차 삼차 후속증원조를 고속침투시켜 항복사인인 GG를 받아내고야 말았다.
나의 어이없는 패배는 은폐엄폐와 기도비닉이 용이하고 지형의 차폐로서 화력의
집중이 가능한 고지사수형의 로템이 아닌 지형의 기복이 거의 없어 작전로의 개척이 용이하고 개활지에서의 백병전이 유리하며
진지구축이 지근거리에서 이루어졌을 때 전투준비태세완비에 심대한 제한사항이 수반되는 헌터형 맵에 대한 적응력 부재였던
것 같다고 나는 패인을 분석했다(이 대목에서 아직 군대 안가보신 분은 내용의 이해에 심대한 제한사항이 발생할 것이라
생각한다). 여하튼 개말년 병장의 GG를 받아낸 이등병 때문에 점호 끝나고 상말급들이 자기들 밑으로 다 집합시키는
것 같았다. 뭐 이런 식의 훈계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주4) 수양록:
싸제말로 일기장이라고 부르는 것. 대개 매주 일요일 저녁 작성하게 되며 恨과 고통의 역사가 기록된다.
주5) 마메 VS 히럴:
테란측 마린, 메딕 조합과 저그측의 히드라, 럴커 조합이 격돌하는 테란 대 저그전의 대표적인 힘싸움. 후반이 되면 테란측에는
시즈탱크과 사이언스 베슬, 저그측에는 울트라리스크와 디파일러가 추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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